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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슈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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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니슈멘드 왕조는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아나톨리아로 이주한 튀르크계 다니슈멘드 가지에 의해 건국되었다. 룸 셀주크 왕조의 혼란을 틈타 독립한 이 왕조는 아마시아를 수도로 삼았으며, 십자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1134년에는 압바스 왕조로부터 '말리크' 칭호를 받았으나, 1142년 이후 시바스와 말라티야로 분열되었다. 1175년과 1178년, 각각 룸 셀주크 왕조에 병합되어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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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슈멘드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개요
정식 명칭다니슈멘드
유형베이, 가지, 말리크
존속 기간1071년/1075년 – 1178년
지리
1097년 [[아나톨리아]]
1097년 아나톨리아, 니케아 공방전 이전
수도시바스
니크사르
위치아나톨리아 북동부
정치
정부 형태군주제
주요 지도자다니슈멘드 가지 (1071년/1075년–1084년)
나스레딘 무함마드 (1175년–1178년)
역사
시작1071년/1075년
종료1178년
이전 국가셀주크 제국
계승 국가룸 셀주크
언어 및 종교
공용어고대 아나톨리아 튀르크어
중세 그리스어
종교이슬람

2. 명칭

다니슈멘드(다니슈만드 가지 (Daānishmand Ghāzī, 혹은 Danishmend Taylu[13], 전명은 귐쉬테킨 다니슈멘드 아흐메드 가지)라는 인물에 의해 건국되었으나, 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빈약하며, 게다가 그 대부분은 후세에 쓰여진 것이다.

다니슈멘드(Dānishmand/Dāneshmand/دانشمندfa)는 페르시아어로 '현자'를, 가지(Ghāzī/Gazi/غازيar)는 '이교도에 대한 정복 전쟁(가즈와)에 종사하는 전사'를 의미한다. 다니슈멘드 가지 이후의 통치자는 튀르크어의 베그나 아랍어의 아미르 (에미르)(둘 다 '장군', '유력자'의 의미)라고 불렸지만, 1134년에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무스탄시드로부터 수많은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려 '말리크 (멜리크)'(ملك Malik/Melik, 왕)의 칭호를 받아, 이 이전의 통치자들도 소급하여 멜리크(왕)라고 불리게 되었다.[13]

3. 역사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동로마 제국에 승리하여 아나톨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정복하자, 튀르크계 민족이 잇달아 아나톨리아로 이주했다. 다니슈멘드도 1071년에 아나톨리아 중앙부에 이주하여 지배를 확립했다.[14] 1086년 아나톨리아를 지배하는 룸 셀주크 왕조의 초대 술탄 술레이만 이븐 쿠탈미쉬가 살해되고, 1092년 대 셀주크 제국의 술탄 말리크 샤가 죽자 왕조의 후계 다툼이 일어나 아나톨리아 각지의 튀르크계 지족이 술탄위를 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니슈멘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독립 정권을 세웠으며, 첫 수도는 아마시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14]

다니슈멘드는 룸 셀주크 왕조를 계승한 킬리즈 아르슬란 1세와 여러 차례 싸웠다. 1097년, 제1차 십자군의 침공으로 룸 셀주크 왕조가 니케아를 잃자, 다니슈멘드 왕조는 룸과 연합하여 도릴라움 전투에서 십자군과 싸웠으나 패배했다.

1100년, 다니슈멘드 가지의 아들 아미르 가지 구무슈티긴( 아미르 가지 구무슈티긴/امیر غازی گوموش‌تگین, ''Amīr Ghāzī Gūmūsh-tigīn''ota /Emir Gazi Gümüshtigin)은 멜리테네 전투에서 십자군 국가안티오크 공국의 보에몽 1세를 격파하여 포로로 잡아 1103년까지 억류했다. 보에몽 1세를 구출하려 다니슈멘드 왕조에 접근한 "1101년 십자군"에 대해서도 룸 셀주크 왕조와 다니슈멘드 왕조는 연합하여 싸워 이번에는 격파했다. 그러나 다니슈멘드 가지가 죽은 후인 1104년, 킬리즈 아르슬란은 다니슈멘드 왕조의 약세를 틈타 공격해 왔다.

1116년에는 다니슈멘드 왕조는 메수드 1세가 룸 셀주크 왕조의 술탄이 되는 것을 도왔다[15]1130년, 아미르 가지 구무슈티긴은 남쪽에 인접한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을 공격했고, 안티오크 공국은 킬리키아 구원을 위해 개입했지만, 구무슈티긴은 안티오크 공 보에몽 2세를 전사시켰다.

구무슈티긴은 1134년에 죽었고, 그의 아들 무함마드 가지는 아버지나 조부와 달리 전사로서의 힘이 약했다. 그의 치세는 비교적 짧았지만, 그동안 카이세리를 터키풍의 도시로 개조하는 사업을 했다.

’이마드 알딘 주’룬, 카이세리에서 주조한 동전. 서기 1142-1176년.


무함마드 가지가 1142년에 죽자, 그의 형제가 다니슈멘드 왕조를 둘로 분열시켰다. 멜리크 야기바산(Melik Yaghibasan)은 시바스를 수도로 삼고, 멜리크(왕)의 칭호를 칭했다. 한편, 아인 앗다울라(Ayn el-Devle)는 말라티야를 수도로 삼았다. 이후, 이 두 계통이 병립했다.

1155년, 룸 셀주크 왕조의 술탄 킬리즈 아르슬란 2세는 시바스의 다니슈멘드 왕조를 공격했지만, 멜리크 야기바산은 장기 왕조의 누르 앗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누르 앗딘이 1174년에 죽자, 시바스의 다니슈멘드 왕조는 룸 셀주크 왕조에 병합되어 소멸했다. 그로부터 4년 후, 말라티야의 다니슈멘드 왕조도 마찬가지로 룸 셀주크 왕조에 병합되어 다니슈멘드 왕조는 멸망했다.

3. 1. 건국과 초기 발전

다니슈멘드 왕조는 투르크멘 체프니 출신 다니슈멘드 가지에 의해 건국되었다.[2][3] 다니슈멘드 가지는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셀주크 투르크(Seljuks)가 비잔틴 제국을 격파하고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점령한 후, 아나톨리아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1086년 술탄 룸 술탄 수레이만 1세의 죽음으로 셀주크 왕조가 분열된 틈을 타 중앙 아나톨리아에 자신만의 왕조를 세웠다. 수도는 처음에는 아마시아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다.[5]

다니슈멘드 가지의 기원에 대한 자료는 "전설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2] 니케타스 코니아테스에 따르면, 그는 아르사케스 왕조의 후손이었다.[2] 중세 시대의 아르메니아 역사가인 에데사의 마태오와 바르단 아레벨치에 따르면, 다니슈멘드 가지는 아르메니아 출신이었다.[2] 다른 역사가들은 그를 말리크 샤 1세(1072–1092), 셀주크 제국의 술탄의 조카, 혹은 룸 술탄국의 초대 통치자인 술레이만 이븐 쿠툴미쉬(1077–1086)의 외삼촌으로 보기도 하였다.[2] 또한, 일부 역사가들은 그가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싸운 셀주크 사령관 중 한 명이라고 믿었다.[2]

1100년에 가지의 아들 에미르 가지는 안티오크의 보에몽 1세를 멜리테네 전투에서 포로로 잡아 1103년까지 억류했다. 셀주크-다니슈멘드 동맹은 1101년 십자군을 격파하기도 하였다.

1116년에 다니슈멘드는 메수드 1세가 셀주크 술탄이 되는 것을 도왔다.[6]

1130년, 안티오크의 보에몽 2세는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을 돕다가 에미르 가지와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1134년에 에미르 가지가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멜리크 메흐메드 가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무술 정신을 갖지 못했다. 그는 비교적 짧은 통치 기간에도 불구하고 카이세리를 터키 도시로 건설한 최초의 인물로 여겨진다.

1134년 기준으로, 다니슈멘드 왕조의 지도자들은 군사적 성공에 대한 인정으로 압바스 왕조(Abbasids)의 칼리프 알-무스타르시드로부터 부여받은 ''말리크(Malik)'' (''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4]

메흐메드가 1142년에 사망하자 다니슈멘드 영토는 그의 두 형제 사이에서 분할되었다. 시바스에서 통치한 멜리크 야으바산과 말라티아에서 통치한 아인 엘-데블레은 "멜리크"라는 칭호를 유지했다.

1155년, 셀주크 술탄 킬리츠 아르슬란 2세가 멜리크 야으바산을 공격했고, 야으바산은 모술의 젠기드 에미르인 누르 알딘 장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누르 알딘이 1174년에 사망하자 시바스 영토는 술탄국에 병합되었다.

1178년말라티아가 점령되면서 다니슈멘드 통치는 종말을 맞이했고, 남아있는 다니슈멘드들은 셀주크의 군대에 합류했다.[8]

3. 2. 룸 셀주크 왕조와의 갈등 및 분열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동로마 제국에 승리하여 아나톨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정복하자, 튀르크계 민족이 잇달아 아나톨리아로 이주했다. 다니슈멘드도 1071년에 아나톨리아 중앙부에 이주하여 지배를 확립했다.[14] 1086년 아나톨리아를 지배하는 룸 셀주크 왕조의 초대 술탄 술레이만 이븐 쿠탈미쉬가 살해되고, 1092년 대 셀주크 제국의 술탄 말리크 샤가 죽자 왕조의 후계 다툼이 일어나 아나톨리아 각지의 튀르크계 지족이 술탄위를 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니슈멘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독립 정권을 세웠으며, 첫 수도는 아마시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14]

다니슈멘드는 룸 셀주크 왕조를 계승한 킬리즈 아르슬란 1세와 여러 차례 싸웠다. 1097년, 제1차 십자군의 침공으로 룸 셀주크 왕조가 니케아를 잃자, 다니슈멘드 왕조는 룸과 연합하여 도릴라움 전투에서 십자군과 싸웠으나 패배했다.

1100년, 다니슈멘드 가지의 아들 아미르 가지 구무슈티긴(امیر غازی گوموش‌تگین Amīr Ghāzī Gūmūsh-tigīn/Emir Gazi Gümüshtigin)은 멜리테네 전투에서 십자군 국가안티오크 공국의 보에몽 1세를 격파하여 포로로 잡아 1103년까지 억류했다. 보에몽 1세를 구출하려 다니슈멘드 왕조에 접근한 "1101년 십자군"에 대해서도 룸 셀주크 왕조와 다니슈멘드 왕조는 연합하여 싸워 이번에는 격파했다. 그러나 다니슈멘드 가지가 죽은 후인 1104년, 킬리즈 아르슬란은 다니슈멘드 왕조의 약세를 틈타 공격해 왔다.

1116년에는 다니슈멘드 왕조는 메수드 1세가 룸 셀주크 왕조의 술탄이 되는 것을 도왔다[15]1130년, 아미르 가지 구무슈티긴은 남쪽에 인접한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을 공격했고, 안티오크 공국은 킬리키아 구원을 위해 개입했지만, 구무슈티긴은 안티오크 공 보에몽 2세를 전사시켰다.

구무슈티긴은 1134년에 죽었고, 그의 아들 무함마드 가지는 아버지나 조부와 달리 전사로서의 힘이 약했다. 그의 치세는 비교적 짧았지만, 그동안 카이세리를 터키풍의 도시로 개조하는 사업을 했다.

무함마드 가지가 1142년에 죽자, 그의 형제가 다니슈멘드 왕조를 둘로 분열시켰다. 멜리크 야기바산(Melik Yaghibasan)은 시바스를 수도로 삼고, 멜리크(왕)의 칭호를 칭했다. 한편, 아인 앗다울라(Ayn el-Devle)는 말라티야를 수도로 삼았다. 이후, 이 두 계통이 병립했다.

1155년, 룸 셀주크 왕조의 술탄 킬리즈 아르슬란 2세는 시바스의 다니슈멘드 왕조를 공격했지만, 멜리크 야기바산은 장기 왕조의 누르 앗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누르 앗딘이 1174년에 죽자, 시바스의 다니슈멘드 왕조는 룸 셀주크 왕조에 병합되어 소멸했다. 그로부터 4년 후, 말라티야의 다니슈멘드 왕조도 마찬가지로 룸 셀주크 왕조에 병합되어 다니슈멘드 왕조는 멸망했다.

3. 3. 쇠퇴와 멸망

1134년 다니슈멘드 왕조의 지도자들은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무스타르시드로부터 군사적 성공을 인정받아 ''말리크(Malik)''(왕) 칭호를 받았다. 1134년 이전의 다니슈멘드 베이(Bey, ''에미르Emir'')들도 소급하여 ''말리크''라고 불린다.[4] 다니슈멘드 가지 자신은 "다니슈멘드 테일루"라고도 불렸다.[4]

1130년, 안티오크 공국의 보에몽 2세는 귐쉬테킨이 침략한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을 돕다가 에미르 가지와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귐쉬테킨은 1134년에 사망했고,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멜리크 메흐메드 가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같은 무술 정신을 갖지 못했다. 그는 비교적 짧은 통치 기간에도 불구하고 카이세리를 터키 도시로 건설한 최초의 인물로 여겨진다.

메흐메드가 1142년에 사망하자 다니슈멘드 영토는 그의 두 형제 사이에서 분할되었다. 멜리크 야으바산은 "멜리크"라는 칭호를 유지하고 시바스에서 통치했고, 아인 엘-데블레는 말라티아에서 통치했다.

1155년, 룸 셀주크 왕조 술탄 킬리츠 아르슬란 2세가 멜리크 야으바산을 공격했고, 야으바산은 모술의 젠기 왕조 에미르인 누르 알딘 장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1174년 누르 알딘이 사망하자 시바스 영토는 룸 술탄국에 병합되었다.

1172년 승마 사고로 파흐레딘이 사망한 후, 그의 동생 아프리둔이 계승했다.[8] 1175년까지 나스레딘 무함마드는 권력을 되찾았고, 셀주크의 봉신으로 통치했다.[8] 1178년말라티아가 점령되면서 다니슈멘드 통치는 종말을 맞이했고, 남아있는 다니슈멘드들은 셀주크 군대에 합류했다.[8]


4. 문화

다니슈멘드 가지(Danishmend Gazi)는 사후에 쓰여진 서사시 《다니슈멘드나메(Danishmendnâme)》의 중심 인물로, 여기서는 8세기의 아랍 전사 시디 바탈 가지(Sidi Battal Gazi)와 동일시되어 그들의 업적이 뒤섞여 묘사된다.

거의 모든 다니슈멘드 통치자들은 터키 민속 문학의 전통에 등장하며, 그들은 모두 "멜리크 가지(Melik Gazi)"로 불린다.[9] 니크사르(Niksar), 뷔냔(Bünyan), 크르셰히르(Kırşehir), 자만티 강(River Zamantı) 유역의 동명의 성 (자만티(Zamantı)) 근처, 그리고 아나톨리아(Anatolia)의 다른 지역에는 "멜리크 가지의 묘"가 있으며, 이 묘들은 사실 다른 다니슈멘드 통치자들의 묘로, 많은 방문객이 찾는 성지이다. 멜릭가지(Melikgazi)는 카이세리(Kayseri) 시의 중심 구역 중 하나의 이름이기도 하다. 대중적인 용어에서 이러한 칭호의 통일성은 다니슈멘드에 의해 건설된 다른 건축물에도 적용될 수 있다.

다니슈멘드 왕조의 공식 칭호인 "모든 로마니아와 동방/아나톨리아의 멜리크"는 항상 그리스어로 현지 통화에 새겨졌으며,[10] 이는 비잔틴의 영향력을 보여준다.[11] 다니슈멘드의 동전에는 이중 언어 외에도 성 조지를 묘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용을 죽이는 인물의 이미지가 포함되었다.[12]

5. 역대 군주

다니슈멘드 가지는 1075년 ~ 1084년 사망할때까지 통치하였으며, 다니슈멘드 타일루라고도 불렸다. 그의 아들인 가지 귐쉬테긴은 1084년 ~ 1104년 사망할때까지 통치하였다. 에미르 가지는 1104년 ~ 1134년 사망할때까지 통치하였다. 멜리크 메흐메드 가지는 1134년 ~ 1142년 사망할때까지 통치하였다.

1142년, 멜리크 메흐메드 가지 사후 다니슈멘드 왕조는 시바스와 말라티야 두 분가로 나뉘었다. 시바스 분가는 1175년에, 말라티야 분가는 1178년에 아나톨리아 셀주크에 병합되었다.

통치자재위 기간비고
멜리크 륀눈1142년 ~ 1143년멜리크 메흐메드 가지의 아들
야으바산1143년 ~ 1164년에미르 가지의 아들
멜리크 뮈자히드 가지1164년 ~ 1166년
멜리크 이브라힘1166년
멜리크 이스마일1166년 ~ 1172년궁정 반란으로 사망[8]
멜리크 륀눈1172년 ~ 1174년멜리크 메흐메드 가지의 아들
아인 엘-데블레1142년 ~ 1152년
쥘카르네인1152년 ~ 1162년
나스레딘 무함메드1162년 ~ 1170년
파흐레딘1170년 ~ 1172년
에프리둔1172년 ~ 1175년
나스레딘 무함메드1175년 ~ 1178년두 번째 통치


5. 1. 통합 왕조

다니슈멘드 가지는 1075년 ~ 1084년 사망할때까지 통치하였으며, 다니슈멘드 타일루라고도 불렸다. 그의 아들인 가지 귐쉬테긴은 1084년 ~ 1104년 사망할때까지 통치하였다. 에미르 가지는 1104년 ~ 1134년 사망할때까지 통치하였다. 멜리크 메흐메드 가지는 1134년 ~ 1142년 사망할때까지 통치하였다.

1142년, 멜리크 메흐메드 가지 사후 다니슈멘드 왕조는 시바스와 말라티야 두 분가로 나뉘었다. 시바스 분가는 1175년에, 말라티야 분가는 1178년에 아나톨리아 셀주크에 병합되었다.

시바스 분가는 멜리크 륀눈, 야으바산, 멜리크 뮈자히드 가지, 멜리크 이브라힘, 멜리크 이스마일, 멜리크 륀눈 (두 번째 통치)이 통치하였다. 멜리크 이스마일은 궁정 반란으로 사망했다.[8]

말라티야 분가는 아인 엘-데블레, 쥘카르네인, 나스레딘 무함메드, 파흐레딘, 에프리둔, 나스레딘 무함메드 (두 번째 통치)가 통치하였다.

5. 2. 시바스 분가 (멜리크)

멜리크 메흐메드 가지 사후 1142년부터 1175년까지 시바스를 중심으로 존속했던 다니슈멘드 왕조의 분가이다.[8] 시바스 분가는 아나톨리아 셀주크 왕조에 병합되었다.[8]

통치자재위 기간비고
멜리크 륀눈1142년 ~ 1143년멜리크 메흐메드 가지의 아들
야으바산1143년 ~ 1164년에미르 가지의 아들
멜리크 뮈자히드 가지1164년 ~ 1166년
멜리크 이브라힘1166년
멜리크 이스마일1166년 ~ 1172년궁정 반란으로 사망[8]
멜리크 륀눈1172년 ~ 1174년멜리크 메흐메드 가지의 아들


5. 3. 말라티야 분가 (에미르)

말라티야 분가는 1142년부터 1178년까지 존속했으며, 아나톨리아 셀주크에 병합되었다.

  • 아인 엘-데블레 (1142년 ~ 1152년)
  • 쥘카르네인 (1152년 ~ 1162년)
  • 나스레딘 무함메드 (1162년 ~ 1170년)
  • 파흐레딘 (1170년 ~ 1172년)
  • 에프리둔 (1172년 ~ 1175년)
  • 나스레딘 무함메드 (1175년 ~ 1178년, 두 번째 통치)

참조

[1] 서적 The New Islamic Dynasties: A Chronological and Genealogical Manual https://books.google[...] Edinburgh University Press
[2] 간행물 Seljuks http://www.oxfordref[...]
[3] 간행물 Crusades http://www.oxfordref[...]
[4] 서적 The Chronicle of Ali ibn al-Athir for the Crusading Period https://books.google[...] Ashgate Publishing Inc.
[5] 문서 Fisher, p. 8
[6] 문서 Turkmen Ruling Dynasties in Asia Minor
[7] 웹사이트 Copper alloy dirham of Nasir al-Din Muhammad, Malatya, 557-73 H. 1917.215.840 https://numismatics.[...] American Numismatic Society
[8] 간행물 Danishmendids Brill
[9] 웹사이트 History of Ünye http://www.unye.net/[...]
[10] 서적 The Empire of Trebizond and the Pontos https://books.google[...] Historical Journal, University of Birmingham
[11] 서적 The Turks: Middle ages https://books.google[...]
[12] 간행물 Christian Elements in the Identity of the Anatolian Turkmens (12th-13th Centuries) CISAM. Spoleto
[13] 서적 The Chronicle of Ali ibn al-Athir for the Crusading Period https://books.google[...] Ashgate Publiching Inc.
[14] 문서 Fisher, p. 8
[15] 문서 Turkmen Ruling Dynasties in Asia Minor
[16] 웹사이트 History of Ünye http://www.unye.net/[...] 200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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