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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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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단양 전투는 1950년 7월 6일부터 12일까지 한국 전쟁 중 대한민국 국군 제8사단과 북한군 제8사단 간에 벌어진 전투이다. 국군 제8사단은 육군본부의 작전 명령에 따라 단양으로 이동하여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려 했으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인해 단양을 상실하고 풍기 지역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는 국군이 7일 동안 전선을 유지하며 북한군의 추가 병력 투입을 유도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국군은 효과적인 지연 전술을 통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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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전투
전투 개요
분쟁한국 전쟁
날짜1950년 7월 8일 ~ 7월 12일
장소충청북도 단양 일대
결과전략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승리
교전 세력
지휘관 (대한민국)
지휘관이정일 제8사단장 대령
지휘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휘관김광협 제2군단장 소장
병력 규모
사상자 규모

2. 배경

제8사단은 6월 27일에 강릉을 물러나서 대관령에 집결하였다가 다음날에 반격을 감행하여 시가지를 눈 아래 굽어보는 외곽선을 포위하였으나 이때 마침 원주의 제6사단을 방문한 육군본부의 작전국장 장창국 대령이 구두로 전달한 명령에 따라서 제6사단의 작전임무를 인수코자 6월 29일 06:00에는 진당리를 출발하여 7월 2일 11:00에 제천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사단은 즉각 대구로 이동하라”는 육본작명이 하달되어 각연대를 또다시 집결케하는 즉시로 이동준비에 착수토록 하였으며, 김묵 대위가 이끄는 사단공병대대는 신림리-제천문의 철교와 교량을 폭파하였다.

7월 5일 02:00에 선발대가 출발하면서 특별열차를 이동하는대로 주력이 후속중에 있었는데 선발대가 대구에, 중문제대가 영천에 그리고 공병파괴반을 제외한 후 방제대가 안동에 각각 도착한 것은 15:00였다.

이때에 대전으로 선행한 사단장은 총참모장 정일권 소장으로부터 “그러한 작명을 하달한 사실이 없으니 즉각 북상하여 제천선을 계속 확보하라'는 작전지시를 받았으므로 즉각 L-4 연락기로 대구에 당도하게 되었으며 사단주력은 기관차를 돌려 달고 그대로 북상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사단공병대대의 S-3 서정우 중위가 지휘하는 폭파반은 제천 동남쪽 1km 지점의 소하천상의 철교를 비롯하여 단양에 이르는 사이의 대소철교를 폭파하면서 남행 중에 있었다.

20:00에 안동에 집결한 사단은 이곳에서 숙영하고 다음날인 7월 6일 10:00에 출발하여 18:00에는 단양에 도착하였다. 이때에는 이미 공병폭파반이 단양철교를 폭파한 뒤 이고, 영월-주천리에서 남하한 오백룡 소장이 이끄는 북한군 제8사단의 전위가 이미 하차하여 지휘소를 단양중학교에 개설하고 즉각 전투준비에 착수하였다.

2. 1. 작전 계획

사단이 단양에 진출하였을 무렵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23호는 "1개 연대로 원주를 공격하고, 기타 부대는 현 전선을 고수하여 적의 남하를 저지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날 안동에서 접수한 작전명령 제20호는 "제천 부근에서 고립을 각오하고 남하하는 적을 저지 섬멸하라"는 것이었다. 육군본부가 사단의 제천 북상을 가정한 것으로 판단한 사단장 김정일 대령은 참모회의를 소집했다.

회의 결과, 북한군 선견대가 이미 도담리 대안의 덕천리-여천리-덕문곡리 부근에 도달한 상황에서 전 사단이 제천으로 진격 후 원주로 진격하는 것은 전후협격 및 후방차단의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1개 연대만 남한강을 도하하여 천주봉을 거쳐 제천을 공격하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면 단양으로 후퇴하여 남한강 방어로 전환하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신임 작전참모 권태순 중령이 작전계획을 성안하던 중, 첩보대로부터 북한군 사단 전방 지휘소가 매포 초등학교(구만리, 현 평동리)에 추진되고 주력은 제천에서 남하 준비 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사단장은 정보참모 육근수 소령을 통해 확인 후, 제10연대 1개 대대로 사단 지휘소를 기습하는 작전을 결정하고 다음과 같은 작전 명령을 하달하였다.

작전
① 사단은 남한강변에서 적의 도하를 저지 격멸하고 일부 병력으로 적의 사단 지휘소를 급습한다.
제8사단장 대령 김정일



이에 따라 사단 공병대장 김묵 대위는 이용구 중위가 이끄는 제2중대에게 S-3 서정우 중위 감독 하에 제10연대의 도하를 위한 교량 작업을 지시했다.

3. 전투 과정

3. 1. 7월 8일

사단이 신림리에서 접적중에 돌연히 철수함으로써 그 작전기도를 헤아리지 못한 북한군은 제천을 탈취하고도 계속 침공하지 못하고 남한강 북안으로 이미 진출한 일부의 선견대 마저 도전을 꾀하지 못한 채 피아문에서는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는데 제10연대가 북한군의 사단 전방 지휘소를 급습했다.

3. 2. 7월 9일

도담리 일대를 석권한 북한군은 이곳을 교두보로 하여 주력의 도하를 엄호하는 한편 695고지를 공격하고 2개 중대 규모는 겨주기 금곡리로 침공하였으며, 상율리에서 도하한 심곡리 돌출부의 적은 외양방일대를 격탈하였다. 제21연대는 차전차퇴로 695고지에서 물러나 664고지-슬음산(671고지)-현천리-324고지로 정면을 하고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사단장은 북한군이 제21연대의 우일선 정면으로 집중 공격하는 징후로 미루어 보아 일부의 병력으로 봉우등-어의곡리-소백산맥의 영마루를 거쳐 풍기로 우회하여 사단의 퇴로를 차단하거나 지령에서 포위해 획책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때 삼척 경찰서장 김두용 총경이 지휘하는 삼척 경찰대와 정선 경찰대의 1개 대대 병력이 진출하기에 이르자 이를 국망봉(1421고지)-소백산(1439고지)일대로 급진시켜 방어종심을 유지케 하였다.

북한군의 계속된 포격과 집요한 공세로 제21연대가 혼전을 거듭하기에 이르자 사단장은 20:00에 다음과 같은 작전명령 제14호를 하달하였다.

작명 제14호
제8사단장 대령 김정일


3. 3. 7월 10일

쾌청한 날씨 속에 사단장 김석원 대령은 기촌리 서쪽의 북한군에 대해 05:00부터 반격을 명령하였다. 제10연대는 664고지를 탈취하고 기촌리에서 북한군을 공격하여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두었으나, 북한군의 포격으로 인해 물러서야 했다.

그날 석양 무렵 북한군이 664고지-슬음산(671고지)을 압박하며 단양을 공격하여 서측방이 노출되자, 사단장은 예비로 재편 중이던 제21연대 주력을 북하리-북하리 선으로 이동시켜 제5번 도로를 따라 침공하는 적을 저지하도록 하였다.

당시 북한군 제2군단장 김무정은 제1군단이 경부가도와 진천 정면에서 진격한 데 비해, 자신의 군단은 충주 정면을 제외한 음성-단양 정면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3. 4. 7월 11일

날씨가 계속 맑은 가운데, 좌인접한 제6사단은 북한군 제1사단의 압박으로 수안보에서 이화령으로, 제1사단은 북한군 제15사단의 포위공격으로 음성에서 괴산으로 물러섰다. 김양원 준장이 이끄는 수도단장은 문안산에서 청주 북쪽의 미호천선으로 전진하였다.

한편 제24사단 정면에서는 북한군 제3, 4 양사단이 오치원(현재의 조치원읍)-금강선으로 진출하여 전국이 긴박해졌다.

이에 육군은 금강선을 담당한 미 제24사단과의 협동으로 소백산맥 회랑에서 북한군을 저지하고 공세이동의 전기를 포착하고자, 소백산맥의 죽령-조령-이화령을 담당한 제8, 6 양사단의 통합 지휘를 위해 이날 함창에 제2군단의 전신인 육군본부 전방 지휘소를 개설하고 작전참모부장 김백일 대령이 지휘에 나섰다.

한편, 전날 밤 단양을 탈취한 북한군은 전열을 정비하는 듯 포격을 전 전선에 퍼부어 진지선을 교란하였으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21:00에 2개 연대 규모로 총공격을 개시, 제10연대의 방어선이 동요되자 자정 무렵에는 마조리와 장현리 선으로 전선을 정리하였다.

이에 앞서 19:00부터 30분간 미 공군 F-51 2개 편대의 근접지원으로 단양 시내에 불기둥이 치솟고 적 포격도 한동안 침묵하였으나, “북한군의 공격 기도를 무산”시킬 만큼 결정적인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였다.

3. 5. 7월 12일

이 무렵 미 지상군 사령관 윌리엄 F. 딘 소장의 작전개념은 미 제24사단이 금강선을, 한국군이 소백산맥을 계속 확보하는 것이었다. 7월 10일부터 부산에 상륙하기 시작한 윌리엄 B. 킨 소장이 이끄는 미 제25사단을 김천-함창-경주선으로 급진시켜 한국군을 증원하여 북한군의 “김천돌파 기도를 분쇄하며, 빠른 시일내에 상륙하게 될 호버 R. 게이 소장이 이끄는 미 제1기병사단은 경부 가도정면으로 진출시켜 미 제24사단을 증원하면서 공세이동에 필요한 전투력을 축적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한국군은 이러한 미군의 작전방침에 호응하여 국본일반 명령 제14호로 제2군단을 창설하고 육본작전 참모부장 김백일 대령을 그 군단장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육본 작명 제42호를 하달하여 제6, 8 양사단을 동군단에 배속하고 춘양에서 전투중인 임익순 소령이 이끄는 제2사단 제25연대 제1대대를 제 8사단에 배속하여 2개연대뿐인 사단의 전투력의 보강을 꾀하였다.

그러나 제8사단은 북한군의 계속된 공격과 우회로 주력 연대인 제10연대의 마조리-장현리선 방어선이 무너지고 936고지로 급진한 제 21연대의 공격도 실패하여 죽령으로 물러섰다. 이후 연화봉 쪽으로 우회하는 북한군의 압박으로 두솔산을 거쳐 21:00에는 풍기로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이날 09:00부터 30분간 미 공군의 근접지원이 있어 북한군을 강타하였으나, 이때는 이미 마조리-장현리선의 방어선이 무너져 죽령으로 철수 중이었다.

4. 결과 및 영향

7월 6일 단양으로 진출한 제8사단은 북한군의 사단 전방 지휘소를 기습하여 기세를 올렸으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7월 10일 단양을 상실하고 7월 11일에는 진지선이 무너져 풍기 지역으로 철수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반격과 지연전을 통해 7일 동안 전선을 유지함으로써, 북한군 제2군단장 김무정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는 충주 공략에 투입될 예정이던 북한군 제12사단을 단양 전투에 투입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사단 주력이 풍기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사단장 이정일 대령은 양동 작전을 펼쳐 북한군을 혼란에 빠뜨렸다. 모든 차량이 영주까지 헤드라이트를 켜고 밤새도록 운행하게 하여 영주로 철수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제10연대와 제21연대는 풍기에서 V자형 진지를 편성하였다.

이 무렵, 춘양에 있던 임익순 소령의 제25연대 제1대대가 사단에 배속되어 전력이 강화되었다. 사단은 풍기에서 결전을 준비하며, 비록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효과적인 지연 전술과 임시 방어선 구축으로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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