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의 칼뱅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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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에서의 칼뱅 연구는 1884년 선교사들의 도래와 함께 시작되어, 평양신학교를 통해 칼뱅과 그의 사상이 처음 소개되었다. 1920년대에는 칼뱅의 저작들이 번역, 출판되며 '칼빈'이라는 표기가 정착되었고, 1924년에는 칼뱅에 대한 최초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1945년 이후에는 연구의 양적, 질적 성장이 있었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칼뱅 전공 학자들이 배출되고, '기독교 강요' 등 칼뱅의 원저들이 역간되었다. 현재는 원본 연구, 서구 신학자 연구 평가, 해석학 연구 등이 과제로 남아 있으며, 칼뱅주의의 책임 있는 삶의 방향과 실천이 요구되고 있다.
2009년은 종교개혁가 칼뱅 탄생 500주년이 되는 해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상 중 하나로 칼뱅주의를 꼽았다.[1] 벤저민 워필드는 바울, 아우구스투스, 16세기 루터에 이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칼뱅을 지목했다.[2]
신복윤 박사 이후 칼뱅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들은 칼뱅의 신학, 교회론, 성찬론, 윤리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여 한국 신학계에 기여했다.[1] 이들은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파리 소르본 대학교, 연세대학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등 국내외 유수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2. 역사
칼뱅의 가르침, 즉 칼뱅주의는 제네바에서 프랑스, 네덜란드, 헝가리, 스코틀랜드 등 다양한 지역으로 확산되며 16세기 이후 서구 역사에 광범위하고 영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칼뱅과 칼뱅주의 연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2. 1. 기독교 전래에서 1945년까지
칼뱅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1884년 알렌 선교사의 입국으로 시작된 선교사들의 도래 이후였다. 한국에서 칼뱅이라는 인물이 처음 소개된 곳은 평양신학교였다. 평양의 장로회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친 왕길지와 윌리엄 R. 부두일이 16세기 종교개혁에 관한 책을 쓰면서 칼뱅과 그의 사적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었다. 1920년대에 와서 칼뱅은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는데, 1922년 조선야소교서회가 발행한 게일이 번역한 《교회긔》가 대표적이다. 이 책은 최초의 통사적 교회 사서로서, 이 책과 오천경의 저작을 통해 칼뱅의 사적이 소개되고, '칼빈'이라는 표기가 정착하게 된다.
1920년대의 또 다른 역사서는 오천경의 《교회역사인물지》였다. 이 책은 익나티우스에서 드와이트 L. 무디까지 40여 명의 인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칼뱅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칼뱅의 가정 배경, 학교 교육, 제네바에서의 개혁 활동, 그리고 루터와의 비교를 통한 그의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칼뱅을 ‘갈빈’ 혹은 ‘갈윈’으로 표기하기도 했으나, 1920년대 전후 '칼빈'으로 정착하였고, 그의 삶의 여정과 개혁운동이 한국에 점차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한국교회에서 칼뱅에 대한 논문이 처음으로 발표된 때는 1924년 9월이었다. 《신학세계》[3]
《신학지남》은 1934년 7월호(통권 76호)에서 최초로 칼뱅을 소개하는 특집호를 발간했는데, 평양신학교 교수들의 7편의 논문이 게재되었다. 이 논문과 함께 칼뱅의 설교, “핍박”(Enduring Persecution for Christ)이 김재준의 번역으로 게재되었다.
이상의 논문들은 칼뱅과 그의 신학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나 당시의 연구 결과를 반영한 논문으로 볼 수 없고, 단지 종교개혁의 위인으로서의 칼뱅의 업적을 소개하는 상식적 수준에 그쳤다. 《신학지남》이 정간되는 1941년까지 23년간 게재된 칼뱅 혹은 칼뱅주의에 대한 논문은 14편에 불과했다. 1936년에는 한국에서 최초로 칼뱅에 관한 단행본인 김태복의 《칼빈의 생애와 그 사업》이 출간되었다.
2. 2. 1945년에서 1979년까지
1924년 칼뱅에 대한 최초의 논설이 발표된 후 1979년까지 55년간 발표된 칼뱅 관련 논설은 약 200여 편에 달한다. 1918년 창간된 《신학지남》은 1941년 정간되었으나, 1954년 박형룡에 의해 복간되었다. 박형룡은 1954년 2월 1일자로 신학지남 복간호(23권 1호)를 발간하고, “신학의 지남침은 다시 움직인다”고 속간사를 썼다. 이때부터 1979년까지 25년간 칼뱅 관련 논문은 36편 게재되었다. 1962년 통권 122호에서는 칼뱅 특집호를 발간하기도 했으나, 1970년대까지는 양적, 질적으로 특별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칼뱅 혹은 칼뱅신학에 관한 최초의 석사학위 논문은 1961년 연세대학교 대학원에 제출된 박성모의 “칼빈의 인간이해와 근대 시민사회”였다. 1961년부터 1979년까지 칼뱅 및 칼뱅 신학 관련 석사학위 논문은 총 23편 발표되었는데, 이 중 7편은 1960년대에, 16편은 1970년대에 발표되었다. 칼뱅 신학과 유관한 주제의 한국인 학자 저작은 1936년 김태복의 《칼빈의 생애와 그 사업》을 시작으로, 1959년부터 1979년까지 총 8편의 단행본이 발간되었다.
결론적으로 해방 후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자기 정체성 확립에 힘썼던 한국교회는 1970년대 이후 칼뱅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구체적인 연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칼뱅에 관한 외국 학자들의 저작이 번역 출간되면서 칼뱅 신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이후 창의적 칼뱅 연구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72년 신복윤 박사가 ‘칼빈의 신 지식론’(Calvin's Doctrine of the Knowledge of God)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한국에서의 칼뱅 연구는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했다.
2. 3. 1980년 이후
1980년대 이후 한국교회에서 칼뱅 연구는 새로운 단계를 맞게 된다. 이 시기에 와서 비로소 칼뱅학자가 나타나고, 칼뱅 혹은 칼뱅신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물이 출간되고, 또 기독교 강요 등 칼뱅의 원저들이 역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전 시대 박형룡, 박윤선, 이종성, 한철하, 이근삼 등과 같은 칼뱅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진 학자들이 없지 않았으나, 이들을 칼뱅 전공 학자로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았다.
이 당시 한국에는 칼뱅신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던 신복윤, 이근삼, 이종성, 정성구, 홍치모 등과 같은 학자들 외에도 칼뱅을 전공하여 학위를 얻은 20여명의 학자들이 배출되었는데, 그 첫 인물이 기독교강요를 분석하여 그 책에 표명된 경험의 개념을 석명한 이수영이었다.[4] 그는 칼뱅(Calvin)을 ‘칼빈’으로 표기해 왔던 한국교회에 현지 음에 준하여 ‘깔뱅’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깔뱅’ 혹은 ‘깔뱅주의’라는 표기를 확산시켰다. 말하자면 그는 인명, 지명 등에 대한 귀속주의를 제창했던 셈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했던 박건택 또한 칼뱅의 초기 작품을 역간하면서 칼뱅 연구의 토대를 제공하고자 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칼뱅을 전공하여 학위를 얻은 이는 연세대학교의 이양호 교수였다. 이수영, 박건택, 이양호 등을 시작으로 1990년대 이후 칼뱅 전문 연구가들이 배출된 것은 서구 추구성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칼뱅 연구의 커다란 발전이었다.
3. 한국의 칼뱅 연구가들
3. 1. 주요 연구자 목록
이름 | 학위 논문 | 학위 수여 기관 | 연도 |
---|---|---|---|
이수영 | La notion dexperience chez Calvin dapres son Institution de la Religion Chrestienne|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경험 개념프랑스어 |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 1984 |
박건택 | Doctrine de la Sainte Cène chez Calvin|칼빈의 성찬 교리프랑스어 | 파리 제4대학교 (소르본) | 1984 |
이양호 |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교회론 | 연세대학교 | 1985 |
권호덕 | Eduard Boehls Aufname der reformatorischen Theologie. besonders der Calvins|에두아르트 뵐의 개혁주의 신학, 특히 칼뱅 신학 수용de |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 1991 |
황정욱 | Der junge Calvin und die Psychopannychia|초기 칼뱅과 영혼수면설de | 부퍼탈 신학대학 | 1991 |
유해룡 | Bonaventura and John Calvin: The Restoration of the Image of God as a Mode of Spiritual Consummation|보나벤투라와 존 칼빈: 영적 완성을 위한 하나님의 형상 회복영어 | 포덤 대학교 | 1992 |
최병섭 | Christiliches Leben nach Calvin|칼빈에 따른 그리스도인의 삶de | 뮌스터 대학교 및 루벤 대학교 | 1994 |
최윤배 | De verhouding tussen pneumatologie en christologie bij Martin Bucer en Johannes Calvijn|마르틴 부서와 요하네스 칼빈의 성령론과 기독론의 관계nl | 아펠도른 신학대학교 | 1996 |
김세광 | The Relevance of John Calvin's Pneumatology for the Worship of the Presbyterian Churches in Korea|한국 장로교회 예배를 위한 존 칼빈 성령론의 적절성영어 | 보스턴 대학교 | 1996 |
이은선 | 칼빈의 신학적 정치윤리 | 총신대학교 | 1996 |
강경림 | 칼빈과 니고데모주의 | 총신대학교 | 1997 |
이정숙 | Excommunication and Restoration in Calvin's Geneva, 1555-1556|1555-1556년 칼빈의 제네바에서의 출교와 회복영어 | 프린스턴 신학교 | 1997 |
김재성 | Unio Cum Christo: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n Calvin's Theology|그리스도와의 연합: 칼빈 신학에서 성령의 사역영어 |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 1998 |
박성현 | John Calvin on Providence: The Relation of Providence to the Secondary Cause and Man's Sin|섭리에 대한 존 칼빈: 섭리와 이차 원인 및 인간의 죄와의 관계영어 | 칼빈 신학교 | 1998 |
안명준 | Brevitas et Facilitas, A study of a vital aspect in the theological hermeneutics of John Calvin|간결성과 용이성, 존 칼빈의 신학적 해석학에서 중요한 측면에 대한 연구영어 | 프리토리아 대학교 | 1998 |
김재혁 | Understanding of John Calvin's Doctrine of Salvation|존 칼빈의 구원론 이해영어 | Bernadena University | 1999 |
황대우 | Het mystieke lichaam van Christus: de ecclesiologie van Martin Bucer en Johannes Calvin|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 마르틴 부서와 요하네스 칼빈의 교회론nl | 아펠도른 신학대학교 | 2002 |
신경수 | Calvins Theology of Holiness: A Study of the close connection between Calvins doctrine of sanctification and Christian social ethics, and its implications for his view of reform in Geneva|칼빈의 성화론: 칼빈의 성화 교리와 기독교 사회 윤리의 밀접한 관계, 그리고 제네바 개혁에 대한 그의 견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영어 | 애버딘 대학교 | 2002 |
문병호 | Lex Dei Regula Vivendi et Vivificandi: Calvin’s Christ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law in the light of His concept of Christus Mediator Legis|살아있고 살게하는 규칙으로서의 하나님의 율법: 율법 중재자 그리스도의 개념에 비추어 본 칼빈의 기독론적 율법 이해영어 | 에든버러 대학교 | 2003 |
안인섭 | Augustine and Calvin about Church and State: A Comparison|교회와 국가에 대한 어거스틴과 칼빈: 비교영어 | 캄펀 신학대학교 | 2003 |
박경수 | John Calvin as an Advocate of Church Unity: A New Portrait of John Calvin|교회 연합의 옹호자로서의 존 칼빈: 존 칼빈의 새로운 초상영어 | 클레어몬트 대학원 대학교 | 2004 |
조진모 | Persevere in Sufferring with Good Conscience: John Calvin's View of Christian Suffering with an Emphasi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Divine Preservat|선한 양심으로 고난을 견디라: 기독교인의 고난에 대한 존 칼빈의 견해, 하나님의 보존과 관련된 관계를 강조영어 |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 2004 |
오형국 | 칼빈의 신학과 인문주의 | 한국교원대학교 | 2005 |
추연옥 | 칼빈의 신학에서 'fides qua creaditur' | 평택대학교 | 2005 |
윤천석 | 칼빈신학에 있어서 교회본질 이해 | 평택대학교 | 2006 |
박건택 | Problématique de la liberté dans l'oeuvre de Calvin|칼빈의 작품에서 자유의 문제프랑스어 | 파리 제4대학교 (소르본) | 2006 |
윤광원 | John Calvin의 신학에서 Abnegatio Nostri | 평택대학교 | 2009 |
신복윤 박사 이후 칼뱅 연구로 학위를 취득한 주요 연구자들의 학위 논문 및 연구 주제는 위와 같다.
4. 칼뱅 연구에 대한 제안
한국에서 칼뱅이 소개되고 수용된 것은 1910년대 전후이지만, 칼뱅에 대한 실제적인 연구는 1970년에 시작되었고 1980년대 이후 구체적인 연구가 나타나게 되었다.[1] 1980년대 이후에는 매우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전체 문헌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칼뱅 연구의 방향을 정리하는 일이 남아있다.[1]
해방 이전까지 칼뱅 혹은 칼뱅주의에 대한 관심은 적었으나, 함일돈과 박형룡은 칼뱅주의 신학 체계를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프린스턴 신학교 출신인 함일돈은 메이첸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학자로, 변증학 분야와 창세기 연구에 뛰어났다. 1926년부터 1936년까지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신학지남》 19권 4, 5, 6호 (1937년 7, 9, 11월호)에 〈칼빈주의〉라는 제목의 논설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 ‘칼빈주의’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최초의 논문이었다. 함일돈은 이 글을 통해 칼뱅주의 신학 체계를 소개했다.
박형룡은 1937년 로라인 뵈트너의 《The Reformed Doctrine of Predestination》를 《칼빈주의 예정론》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했는데, 이 책은 칼뱅주의 신학에 관한 최초의 번역서였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알미니안주의와 비교하며 칼뱅주의 예정론을 설명하여 한국 장로교회에 칼뱅주의적인 교리를 확립하고자 했다.
4. 1. 향후 연구 과제
앞으로 한국에서의 칼뱅 연구는 원본을 통한 연구, 서구 신학자들의 연구에 대한 평가, 칼뱅의 주석과 설교에 나타난 해석학 연구를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1] 또한 장로교회가 주류인 한국 교회에서 비판받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 칼뱅주의자들의 책임성 있는 삶의 방향과 실천이 구체적으로 요구되고 있다.[1]참조
[1]
웹인용
Time, Thursday, Mar. 12, 2009
http://www.time.com/[...]
2010-05-06
[2]
서적
Warfield, Calvin and Augustine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 Co
1974
[3]
문서
감리교의 신학잡지로 1916년에 창간되었다.
[4]
문서
장신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했던 그는 현재 새문안교회 담임목사로 활동하고 있다.
[5]
간행물
한국에서의 칼빈 연구
요한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사업회
200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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