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라다 도라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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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데라다 도라히코는 일본의 물리학자이자 수필가로, 지진 연구 분야에 기여했으며, 자연과학과 문학을 융합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1878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 제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간토 대지진의 원인을 연구하여 지진 연구소 설립에 기여했다. 또한, X선 회절 연구를 진행했으나 노벨상 수상에 실패하는 좌절을 겪기도 했다. 데라다는 과학적 업적 외에도 수필을 통해 문학적 활동을 펼쳤으며, 그의 작품은 다양한 형태로 출판되었다. 그의 이름을 딴 소행성이 명명되었으며, 고치현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상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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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라다 도라히코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데라다 도라히코 |
| 원어 이름 | 寺田寅彦 |
| 로마자 표기 | Terada Torahiko |
| 출생 | 1878년 11월 28일 |
| 출생지 | 일본, 도쿄 |
| 사망 | 1935년 12월 31일 |
| 사망 원인 | 불명 |
| 안장지 | 히가시쿠마, 데라다 가문 묘지 (고치시 히가시쿠마) |
| 국적 | 일본 |
| 학력 | |
| 모교 | 도쿄 제국대학 이학부 |
| 박사 지도 교수 | 나가오카 한타로, 다나카다테 아이키타 |
| 지도 학생 | 나카야 우키치로, 쓰보이 주지 |
| 경력 | |
| 직장 | 도쿄 제국대학 도쿄 대학 지진 연구소 이화학연구소 |
| 분야 | 물리학 |
| 수상 | |
| 수상 | 일본 학사원 은사상 |
2. 생애
데라다 도라히코는 관동 대지진 발생 후 이 현상의 원인 조사를 진지하게 시작하여 지진 연구 분야의 발전을 이끌었다.[6] 1924년에는 이화학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으로 선출되었고,[6] 1926년에는 도쿄 제국대학 지진연구소를 설립하고 그곳의 선임 교수로 재직했다.[6] 그의 연구는 계속 발전하고 주목을 받아 1928년에는 제국 학사원의 선임 위원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다.[6]
1935년, 데라다는 골종양으로 고통받기 시작하여[6] 1935년 12월 31일에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6] 그의 유해는 고치시에 있는 어린 시절 집 옆의 묘지에 묻혔으며,[7] 그 집은 이후 데라다 도라히코 기념관으로 바뀌었다.[7]
2. 1. 어린 시절과 교육
데라다 도라히코는 1878년 도쿄 고지마치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호랑이띠에 태어났기 때문에 "도라히코"라는 이름을 얻었다.[11] 구마모토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어린 도라히코는 나쓰메 소세키와 과학 교사 타마루 타쿠로의 지도를 받았다. 데라다는 그의 인생에서 과학과 문학을 진지하게 연구하도록 영감을 준 것은 두 사람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다.[12]1897년, 데라다는 첫 번째 부인이 될 예정이었던 사카이 나츠코를 만나 교제했다.[1] 1899년, 도쿄 제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1] 그의 논문은 샤쿠하치 대나무 피리의 음향에 관한 것이었다.[2] 이 기간 동안 그의 지도교수는 나가오카 한타로와 다나카타테 아이키치였다.[3]
1902년, 사카이 나츠코가 사망하자 데라다는 떠나야 했다.[1] 1903년, 그는 도쿄 제국대학 실험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1] 이 기간 동안 그는 두 번째 부인이 될 예정이었던 하마구치 히로코와 교제했다.
1908년, 데라다는 마침내 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도쿄 제국대학 부교수로 선출되었다.[4] 그 후 그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유학했다. 1910년 스톡홀름에서 유학하는 동안 그는 스웨덴 물리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와 서신을 주고받았다. 1911년, 데라다는 파리, 영국, 미국을 거쳐 일본으로 귀국했다.

2. 2. 대학 시절과 결혼
데라다 도라히코는 1897년에 사카이 나츠코와 학생 결혼을 했다.[13] 1899년, 도쿄 제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그의 논문은 샤쿠하치 대나무 피리의 음향에 관한 것이었다.[2] 이 기간 동안 그의 지도교수는 나가오카 한타로와 다나카타테 아이키치였다.[3]1902년, 아내 나츠코가 사망하자[22] 데라다는 큰 슬픔에 잠겼다. 1903년, 도쿄 제국대학 실험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1] 이후 1905년 하마구치 히로코와 재혼하였으나,[15] 1917년 히로코 역시 사망했다. 1918년, 데라다는 사카이 신코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15]
2. 3. 연구 활동과 유럽 유학
데라다 도라히코는 1878년 도쿄 고지마치구에서 태어났다.[11] 호랑이띠에 태어났기 때문에 "도라히코"라는 이름을 얻었다.[11] 구마모토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쓰메 소세키와 과학 교사 타마루 타쿠로의 지도를 받았다.[12][13] 데라다는 이 두 사람의 영향으로 과학과 문학을 진지하게 연구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1899년 도쿄 제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1] 그의 논문은 샤쿠하치 대나무 피리의 음향에 관한 것이었다.[2] 이 기간 동안 그의 지도교수는 나가오카 한타로와 다나카타테 아이키치였다.
1908년, 데라다는 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도쿄 제국대학 부교수로 선출되었다.[4] 이후 베를린 대학교에서 유학했다.[4] 스톡홀름에서 유학하는 동안 스반테 아레니우스와 서신을 주고받았다. 1911년, 파리, 영국, 미국을 거쳐 일본으로 귀국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 농상무성으로부터 해양학 연구를 맡았다. 그의 연구 결과는 1913년에 출판된 책 ''우미노 부츠리가쿠''(Umi no Butsurigaku)에 실렸다. 같은 시기에 데라다는 X선 회절 연구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막스 폰 라우에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은 데라다는 사진 과정을 가속화하는 기술을 고안했지만,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제때 보내지 못했다.[5] 결과적으로 1915년 노벨 물리학상은 윌리엄 헨리 브래그와 윌리엄 로렌스 브래그에게 수여되었다.[5] 데라다는 X선 회절 연구에서 물러났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 분야를 연구하도록 권하지 않았다.[5] 이러한 좌절에도 불구하고, 1917년에 그의 연구로 제7회 일본학사원상을 수상했다.
1922년, 데라다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환영회에 참석했다. 1923년 관동 대지진 발생 후, 데라다는 이 현상의 원인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여 지진 연구 분야 발전에 기여했다. 1924년 이화학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으로 선출되었고, 1926년 도쿄 제국대학에 지진 연구소를 설립하여 선임 교수로 재직했다. 1928년에는 제국 학사원의 선임 위원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다.
2. 4. X선 회절 연구와 좌절
데라다 도라히코는 1878년 도쿄 고지마치구에서 태어났다. 구마모토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쓰메 소세키와 타마루 타쿠로의 지도를 받았다.[11] 1899년 도쿄 제국대학에서 샤쿠하치 대나무 피리의 음향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2] 이 기간 동안 그의 지도교수는 나가오카 한타로와 타나카다테 아이키츠였다.[3]1908년, 데라다는 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도쿄 제국대학 부교수로 선출되었다. 그 후 베를린 대학교에서 유학했다.[4] 1911년, 파리, 영국, 미국을 거쳐 일본으로 귀국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데라다는 농상무성으로부터 해양학 연구를 맡았다. 같은 시기에 데라다는 X선 회절 연구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막스 폰 라우에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은 데라다는 사진 과정을 가속화하는 기술을 고안했다. 그러나 일본과 출판사 위치의 거리 때문에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제때 보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1915년 노벨 물리학상은 윌리엄 헨리 브래그와 윌리엄 로렌스 브래그에게 수여되었다. 데라다는 X선 회절 연구에서 물러났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 분야를 연구하도록 권하지 않았다.[5] 이러한 좌절에도 불구하고 데라다는 1917년에 그의 연구로 제7회 일본학사원상을 수상했다.
2. 5. 지진 연구와 말년
데라다 도라히코는 관동 대지진 발생 후 이 현상의 원인 조사를 진지하게 시작하여 지진 연구 분야의 발전을 이끌었다. 1924년에는 이화학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으로 선출되었고, 1926년에는 도쿄 제국대학 지진연구소를 설립하고 그곳의 선임 교수로 재직했다. 그의 연구는 계속 발전하고 주목을 받아 1928년에는 제국 학사원의 선임 위원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다.1935년, 데라다는 골종양으로 고통받기 시작하여 1935년 12월 31일에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고치시에 있는 어린 시절 집 옆의 묘지에 묻혔으며, 그 집은 이후 데라다 도라히코 기념관으로 바뀌었다.
3. 과학적 업적
데라다 도라히코는 지구물리학 관련 연구로 조석의 부진동 관측 등의 업적을 남겼다. 1913년에는 "X선의 결정 투과"(라우에 반점의 실험)에 대한 발표(결정 해석 분야로서는 매우 초기 연구 중 하나, 헨리 브래그, 로렌스 브래그 부자와는 독립적으로 브래그의 조건을 얻음)를 발표했고, 그 업적으로 인해 1917년에 제국학사원 은사상을 수상했다. 또한, 데라다의 시사에 의해 니시카와 마사하루는 선구적인 스피넬 구조 연구를 했는데, 이는 막스 폰 라우에, 파울 페터 에발트 등의 역사적인 연구로부터 불과 1, 2년 후의 일이었다.
"별사탕의 각 연구"나 "균열 연구" 등, 통계역학적인 "형태의 물리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했으며, 이들 주변의 물리 현상 연구는 "테라다 물리학"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3. 1. X선 회절 연구
데라다 도라히코는 지구물리학 관련 연구로 조석의 부진동 관측 등의 업적을 남겼다. 1913년에는 "X선의 결정 투과"(라우에 반점의 실험)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이는 결정 해석 분야의 초기 연구 중 하나였다. 헨리 브래그, 로렌스 브래그 부자와는 독립적으로 브래그의 조건을 발견하였고, 이 업적으로 1917년에 제국학사원 은사상을 수상했다. 또한, 데라다의 지도로 니시카와 마사하루는 선구적인 스피넬 구조 연구를 수행했는데, 이는 막스 폰 라우에, 파울 페터 에발트 등의 역사적인 연구로부터 불과 1, 2년 후의 일이었다.3. 2. 지진 연구
데라다 도라히코는 지구물리학 관련 연구로 조석의 부진동 관측 등이 있으며, 1913년 "X선의 결정 투과"(라우에 반점의 실험)에 대한 발표를 통해 헨리 브래그, 로렌스 브래그 부자와는 독립적으로 브래그의 조건을 얻었다. 이 업적으로 1917년 제국학사원 은사상을 수상했다. 니시카와 마사하루는 데라다의 시사에 의해 선구적인 스피넬 구조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는 막스 폰 라우에, 파울 페터 에발트 등의 역사적인 연구로부터 불과 1, 2년 후의 일이었다.3. 3. 기타 연구
데라다 도라히코는 지구물리학 관련 연구로 조석의 부진동 관측 등이 있으며, 1913년에는 "X선의 결정 투과"(라우에 반점의 실험)에 대한 발표를 통해 헨리 브래그, 로렌스 브래그 부자와는 독립적으로 브래그의 조건을 얻었다. 이 업적으로 1917년에 제국학사원 은사상을 수상했다. 또한, 데라다의 시사로 니시카와 마사하루는 막스 폰 라우에, 파울 페터 에발트 등의 연구로부터 불과 1, 2년 후에 선구적인 스피넬 구조 연구를 진행했다.데라다 도라히코는 통계역학적인 "형태의 물리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했으며, 이들 주변의 물리 현상 연구는 "테라다 물리학"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도라히코는 자연 과학자이면서 문학 등 자연 과학 이외의 분야에도 조예가 깊어, 과학과 문학을 조화시킨 수필을 많이 남겼다. "천재는 잊을 만하면 찾아온다"는 그의 말로, 발언록에 남아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연장자에 위치하며, 과학이나 서양 음악 등 도라히코가 특기로 하는 분야에서는 소세키가 가르침을 청하기도 했다. 또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미즈시마 칸게츠나, 『산시로』의 노노미야 소하치의 모델이다.
4. 문학적 업적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하는 과학자 미즈시마 간게쓰의 캐릭터는 데라다 토라히코를 모델로 한 것으로 여겨진다.[7] 메이지 유신의 다른 많은 역사적 인물들과 함께, 데라다 토라히코는 아라마타 히로시의 1985년 수상작 역사 판타지 소설 《제도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다. 마키노 노조미의 코미디 연극 《후유히코와 행운의 고양이》(1987)는 데라다 토라히코의 삶을 바탕으로 한다(제목은 데라다의 필명인 요시무라 후유히코에서 유래). 이 연극은 데라다가 두 번째 부인을 잃고 세 번째 결혼을 앞두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겪는 스트레스를 극화한 것이다. 이 작품은 1998년 요미우리 연극상을 수상했다.[8]
데라다 도라히코는 다양한 주제로 수필을 집필했으며, 그의 수필은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형태로 출간되었다. 고미야 도요타카가 편집한 이와나미 문고 전 5권(1947-1948년, 개정판 1964년, 와이드판 1993년)이 대표적이다. 쿠시타 손이치 편, 헤이본샤 라이브러리에서 2022년 3월에 출간된 판본도 있다.
지쿠마 서방에서는 지쿠마 일본 문학 전집(1992년)과 지쿠마 일본 문학 034(2009년)에 데라다 도라히코의 수필이 수록되었다. 이케우치 사토루는 데라다 도라히코의 수필을 엮어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나츠메 서방에서 출간된 『동백꽃에 우주를 보다 데라다 토라히코 베스트 오브 에세이』(1998년), 이와나미 소년 문고에서 출간된 『과학과 과학자의 이야기 데라다 토라히코 에세이집』(2000년), 미스즈 서방에서 출간된 『소매에 손을 넣고 우주 구경』(2006년) 등이 있다.
쇼덴샤 황금 문고에서는 『데라다 토라히코의 과학 에세이를 읽다』(2012년)가 출간되었고, 고단샤 학술 문고에서는 『천재와 국방』(2011년)이 출간되었다. 야마오리 테츠오가 엮은 『천재와 일본인 데라다 토라히코 수필선』은 카도카와 소피아 문고에서(2011년), 치바 토시지, 호소카와 미츠히로가 엮은 수필 선집은 중앙공론신사 문고에서 2011년과 2012년에 각각 출간되었다.
헤이본샤 STANDARD BOOKS에서는 『데라다 토라히코 과학자와 머리』(2015년)가 신서판으로 출간되었고, 고단샤 문예 문고에서는 『데라다 토라히코 셀렉션 Ⅰ・Ⅱ』(2016년)가 출간되었다. 2020년에는 카도카와 소피아 문고에서 『과학 시절의 이야기』, 『긴자 알프스』, 『과학과 문학』, 『피타고라스와 콩』, 『독서와 인생』이, 중앙공론신사 문고에서는 『소세키 선생님』이 출간되었다. 2022년에는 카도카와 소피아 문고에서 『만화경』이 출간되었다.
4. 1. 수필
데라다 도라히코는 다양한 주제로 수필을 집필했으며, 그의 수필은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형태로 출간되었다. 고미야 도요타카가 편집한 이와나미 문고 전 5권(1947-1948년, 개정판 1964년, 와이드판 1993년)이 대표적이다. 쿠시타 손이치 편, 헤이본샤 라이브러리에서 2022년 3월에 출간된 판본도 있다.지쿠마 서방에서는 지쿠마 일본 문학 전집(1992년)과 지쿠마 일본 문학 034(2009년)에 데라다 도라히코의 수필이 수록되었다. 이케우치 사토루는 데라다 도라히코의 수필을 엮어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나츠메 서방에서 출간된 『동백꽃에 우주를 보다 데라다 토라히코 베스트 오브 에세이』(1998년), 이와나미 소년 문고에서 출간된 『과학과 과학자의 이야기 데라다 토라히코 에세이집』(2000년), 미스즈 서방에서 출간된 『소매에 손을 넣고 우주 구경』(2006년) 등이 있다.
쇼덴샤 황금 문고에서는 『데라다 토라히코의 과학 에세이를 읽다』(2012년)가 출간되었고, 고단샤 학술 문고에서는 『천재와 국방』(2011년)이 출간되었다. 야마오리 테츠오가 엮은 『천재와 일본인 데라다 토라히코 수필선』은 카도카와 소피아 문고에서(2011년), 치바 토시지, 호소카와 미츠히로가 엮은 수필 선집은 중앙공론신사 문고에서 2011년과 2012년에 각각 출간되었다.
헤이본샤 STANDARD BOOKS에서는 『데라다 토라히코 과학자와 머리』(2015년)가 신서판으로 출간되었고, 고단샤 문예 문고에서는 『데라다 토라히코 셀렉션 Ⅰ・Ⅱ』(2016년)가 출간되었다. 2020년에는 카도카와 소피아 문고에서 『과학 시절의 이야기』, 『긴자 알프스』, 『과학과 문학』, 『피타고라스와 콩』, 『독서와 인생』이, 중앙공론신사 문고에서는 『소세키 선생님』이 출간되었다. 2022년에는 카도카와 소피아 문고에서 『만화경』이 출간되었다.
4. 2. 하이쿠
4. 3. 과학과 문학의 융합
데라다 도라히코는 과학과 문학 양쪽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하는 과학자 미즈시마 간게쓰는 데라다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7] 아라마타 히로시의 역사 판타지 소설 《제도 이야기》에서는 데라다가 중심 인물로 등장하기도 한다.마키노 노조미의 코미디 연극 《후유히코와 행운의 고양이》(1987)는 데라다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이 연극은 1998년 요미우리 연극상을 수상했다.[8]
데라다 도라히코의 수필은 고미야 도요타카 편, 이와나미 문고 전 5권(1947 - 1948년, 개정판 1964년, 와이드판 1993년)으로 출판되었다. 쿠시타 손이치 편, 헤이본샤 라이브러리(2022년 3월)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그외, 『데라다 토라히코집 현대의 수상 8』 쿠시타 손이치 편, 아야오이 서방(1981년)이 있다.
이케우치 사토루는 데라다 도라히코의 에세이를 엮어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다. 대표적으로 《동백꽃에 우주를 보다 데라다 토라히코 베스트 오브 에세이》(나츠메 서방, 1998), 《과학과 과학자의 이야기 데라다 토라히코 에세이집》(이와나미 소년 문고, 2000), 《소매에 손을 넣고 우주 구경》(미스즈 서방, 2006) 등이 있다. 또한, 『데라다 토라히코의 과학 에세이를 읽다』(쇼덴샤 황금 문고, 2012)를 편저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데라다의 과학과 문학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담은 책들이 출판되었다. 『천재와 국방』(고단샤 학술 문고, 2011), 『천재와 일본인 데라다 토라히코 수필선』(카도카와 소피아 문고, 2011), 『지진 잡감/ 쓰나미와 인간 데라다 토라히코 수필 선집』(중공 문고, 2011), 『괴이 고찰/ 괴물의 진화 데라다 토라히코 수필 선집』(중앙공론신사 문고, 2012), 『데라다 토라히코 과학자와 머리』(헤이본샤, 2015), 『데라다 토라히코 셀렉션 Ⅰ・Ⅱ』(고단샤 문예 문고, 2016), 『과학 시절의 이야기』, 『긴자 알프스』, 『과학과 문학』, 『소세키 선생님』, 『피타고라스와 콩』, 『독서와 인생』, 『만화경』 (카도카와 소피아 문고, 2020-2022) 등이 있다.
5. 평가 및 영향
6514 토라히코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23] 고치현 문교협회는 데라다의 업적을 기념하여 "데라다 토라히코 기념상"을 설립했다.[23] 이 상은 데라다에 관한 작품, 그리고 자연과학을 대상으로 한 연구나 수필에 대해 수여하고 있다.[24]
6. 한국과의 관계
데라다 도라히코에 관련된 서적은 2017년 3월 31일 민음사에서 강정원이 옮긴 《도토리》가 출판되었다.
7.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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寺田寅彦覚書
岩波書店
[22]
웹사이트
俳句から小説へ――小説家漱石の弟子としての寅彦
https://soseki-kumam[...]
熊本県立大学図書館
[23]
웹사이트
寺田寅彦記念賞のあゆみ
https://www.kochi-bu[...]
高知県文教協会
[24]
웹사이트
寺田寅彦記念賞
https://www.kochi-bu[...]
高知県文教協会
[25]
논문
근대일본문학에 나타난 자연재해와 일본인의 災害觀에 대한 연구
https://papersearch.[...]
한국일본어문학회
2014
[26]
논문
근대일본문학에 나타난 자연재해와 그 폭력성의 연원에 대한 연구 -關東大地震과 朝鮮人虐殺事件을 中心으로-
https://www.kci.go.k[...]
한국일본어문학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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