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응룡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두응룡은 고려 명종 때 활약한 장군으로, 두릉 두씨 7세손이자 문하시중 두경승의 조카이다. 김보당의 난과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는 데 기여했으며,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숙청되었다. 최충헌은 두응룡을 비롯한 무신들을 변방으로 유배 보내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다. 두응룡은 최충헌의 명종 폐위 시도에 저항한 충신으로 평가받는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두릉 두씨 - 두영철
두영철은 고려 시대 문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평장사를 역임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고, 원나라 간섭 시기 고려의 자주성을 지키려 노력했으며, 유배지에서 시를 짓고 후학을 양성한 인물로 긍정적 평가와 비판적 시각이 공존한다. - 두릉 두씨 - 두재표
두재표는 조선 말기 시인이자 학자로, 최익현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우고 한시경선에서 수석을 차지했으며, 외세 침략에 맞서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 헌신한 그의 우국충정이 담긴 문집 《시해집》은 국역되어 시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있다. - 고려의 장군 - 최영
최영은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왜구와 홍건적을 격퇴하고 쌍성총관부를 수복하는 등 국방을 굳건히 했으며,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공민왕을 보필했으나, 우왕의 요동정벌에 참여했다가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에 의해 처형당한 후 무민이라는 시호를 받은 고려 말기의 대표적인 무신이다. - 고려의 장군 - 최무선
최무선은 고려 후기에 태어나 화약과 화포 개발에 힘썼으며 왜구 격퇴에 기여했고,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화포를 제작하고 진포 해전에서 활약했으며, 그의 업적은 아들에게 이어졌다. - 무신정권 - 원종 (고려)
원종은 고려 고종의 장남으로 몽골과의 강화 조약을 위해 원나라에 갔다가 즉위하여 원나라의 속국이 되었으며, 임연의 쿠데타와 삼별초의 항쟁을 겪고 개경으로 환도한 후 1274년에 사망했다. - 무신정권 - 삼별초의 항쟁
삼별초의 항쟁은 최씨 무신정권의 군사조직인 삼별초가 원종의 친몽 정책과 해산 명령에 반발하여 1270년 강화도에서 시작, 배중손을 중심으로 왕족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며 진도와 제주도에서 3년간 고려-원 연합군에 맞서 싸웠으나 1273년 진압되어 고려의 몽골 지배 강화와 원의 제주도 직접 통치를 가져왔으며, 민족적 저항의 상징으로 평가되지만 무신정권의 잔재라는 비판도 있다.
| 두응룡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두응룡 |
| 원어 이름 | 杜應龍 |
| 본명 | 미상 |
| 출생일 | 생몰년도 미상 |
| 출생지 | 전라북도 김제시 |
| 사망일 | 생몰년도 미상 |
| 본관 | 두릉(杜陵) |
| 입사일 | 미상 |
| 입사명 | 미상 |
| 근무 기간 | 미상 |
| 현직 | 미상 |
| 전직 | 전라도 만경현 출신의 고려시대 명종조 무장으로 장군을 역임하였다. |
| 거주 | 미상 |
| 거주 기간 | 미상 |
| 퇴사일 | 미상 |
| 퇴사명 | 미상 |
| 소속 | 미상 |
| 별명 | 미상 |
| 펜클럽 | 미상 |
| 상훈 | 미상 |
| 경력 | |
| 개인 정보 | |
| 배우자 | 미상(未詳) |
| 종교 | 미상 |
| 가족 | 미상 |
2. 생애
두응룡은 고려 명종 때 장군(정4품 무관직)을 역임하였다. 고려 시대 장군은 상장군, 대장군을 보좌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2군 6위의 각 영에 1명씩 편성되어 각 영을 실질적으로 통솔하였다.
1196년(명종 26년) 4월,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뒤,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위협이 될 만한 무인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두응룡은 남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는데, 이는 당시 왕이었던 명종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군부의 실세였던 두경승을 제거하기 위한 사전 조치였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2. 1. 가문 배경
두응룡은 두릉 두씨 7세조로 본관은 두릉이며 전주 만경현 사람이다. 고려 명종 때 김보당의 난과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고 삼한후 벽상공신에 봉해진 문하시중 두경승의 조카로, 두경승의 친형인 두경길의 아들이다. 두릉 두씨 시조 두경녕의 7세손이며, 원종공신 대호군 두수총의 현손이고, 평장사를 지낸 두방의 손자이다. 고려 명종조에 정4품 무관직인 장군을 역임하였다.두응룡의 가문 연원은 두릉 두씨 족보와 중앙일보사에서 발행한 『성씨의 고향』, 『한국인의 족보』 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시조 두경녕은 중국 송나라 두릉인으로, 송 태종 때 병부상서였으나 진종 옹립에 반대하다 실패하여 소주자사로 좌천되었다. 이후 아들 중서사인 두지건과 우습유 두지봉 형제를 데리고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나 1004년(목종 7) 고려의 궁지현(지금의 전라북도 김제군 만경읍 만경현에 있는 궁지도, 현재의 고군산도)에 표착하여 고려에 귀화하였다.
고려 조정에서는 목종이 두경녕에게 좌사관 벼슬을 내리고 궁지현을 식읍으로 하사했으며, 두릉군에 봉했다.
2. 2. 관직 생활
두응룡(杜應龍)은 고려 명종 때 장군(정4품 무관직)을 역임하였다. 고려 시대 장군은 상장군, 대장군을 보좌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2군 6위의 각 영에 1명씩 편성되어 각 영을 실질적으로 통솔하였다.1196년(명종 26년) 4월,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최충헌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위협이 될 만한 무인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두응룡은 남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이는 당시 왕이었던 명종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군부의 실세였던 두경승을 제거하기 위한 사전 조치였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2. 3. 최충헌과의 갈등 및 유배
최충헌은 이의민 세력을 제거한 이후에도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협하는 무인들을 꾸준히 제거했다. 그 과정에서 두경승의 조카인 두응룡을 우선 제거 대상으로 삼았다.『고려사절요 권13』에 따르면, 1196년(명종 26년) 4월에 장군 두응룡과 권식(權湜)은 남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이는 최충헌이 자신의 독재 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명종에게 충성심이 강하고 군부 실세였던 두경승을 제거하기 위한 사전 조치였다.
2. 3. 1. 최충헌의 명종 폐위 시도와 두경승의 저지
1196년 4월,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으나,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위협이 될 만한 무인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두경승의 사위 유삼백(柳森柏)과 조카 두응룡 장군을 먼저 제거했다.당시 왕이었던 명종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군부의 실세였던 두경승을 제거하기 위해, 최충헌은 먼저 그의 조카인 두응룡을 숙청 대상으로 삼았다. 『고려사절요 권13』에는 "1196년 명종(明宗) 26년 4월에 장군(將軍) 두응룡(杜應龍)· 권식(權湜)을 남쪽 변방으로 유배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최충헌은 두경승의 사돈인 유득의(柳得義)를 권지이부상서(權知吏部尙書)로 삼았는데, 이는 집권 당시 정4품 섭장군(攝將軍)에 불과했던 최충헌이 재상인 두경승을 의식한 결과였다.
1196년 8월, 왕의 행차 중 발생한 혼란 속에서 두경승은 왕을 지켰다. 최충헌 세력은 명종 폐위를 시도했으나, 두경승은 왕과 태자를 보호하는 임무를 다했다. 이러한 상황은 최충헌 세력에게 두경승이 제거해야 할 부담스러운 존재임을 보여주었다.
3. 역사적 기록
두응룡(杜應龍)은 고려 명종 때 장군을 역임한 인물로, 두릉 두씨 7세조이다. 두경승의 조카이자 두경길의 아들로, 『고려사』 및 『고려사절요』등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한 후 자신의 정권에 위협이 되는 인물들을 제거했는데, 두응룡도 그 대상 중 하나였다. 1196년(명종 26년) 4월, 최충헌은 두응룡을 권식 등과 함께 남쪽 변방으로 유배 보냈다. 이는 당시 군부 실세였던 두경승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3. 1. 『고려사』 및 『고려사절요』
두응룡은 고려 명종 때 장군을 역임한 인물이다. 두릉 두씨 7세조로, 두경승의 조카이자 두경길의 아들이다. 『고려사』 및 『고려사절요』등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1196년(명종 26년) 4월,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최충헌은 자신의 정권 유지에 위협이 될 만한 무인들을 제거했는데, 두응룡도 그 대상 중 하나였다. 당시 왕이었던 명종에게 충성심이 강하고 군부 실세였던 두경승을 제거하기 위해 그의 조카인 두응룡을 사전에 숙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절요』 권13에는 "1196년 명종 26년 4월에 장군 두응룡, 권식을 남쪽 변방으로 유배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 129권 열전 42에도 최충헌이 최광원, 권신, 권식, 두응룡, 최비를 남쪽 변방으로 귀양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9000년 한민족사』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최충헌은 이의민 세력을 제거한 이후에도 자신의 정권에 위협이 될 만한 무인들을 꾸준히 제거했다. 두응룡은 이러한 과정에서 제거된 인물 중 한 명으로, 최충헌의 독재 체제 구축 과정에서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3. 2. 기타 사료
杜應龍|두응룡중국어 장군은 두릉 두씨 7세조로 본관은 두릉이며 전주 만경현 사람이다. 고려 명종 때 김보당의 난과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문하시중 두경승 장군의 조카로, 두경승 장군의 친형인 6세조 杜景吉|두경길중국어 공의 아들이다. 고려 명종조에 정4품 무관직인 장군을 역임하였다.최충헌은 이의민 세력을 제거한 이후에도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협하는 무인들을 꾸준히 척결했는데, 두경승의 사위 유삼백과 조카 두응룡 장군을 먼저 제거했다. 1196년 4월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때 두응룡은 최광원, 권신, 권식 등과 함께 남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고려사절요 권13』에는 "1196년 명종 26년 4월에 장군 杜應龍|두응룡중국어· 權湜|권식중국어을 남쪽 변방으로 유배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 129권 열전 42에도 최충헌이 판위위사 최광원, 소경 권신, 장군 권식, 두응룡, 낭장 최비를 남쪽 변방으로 귀양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최충헌은 명종에게 이의민이 역심을 품고 왕위를 노려 자신이 직접 제거하였다고 보고하고, 이의민의 남은 무리들을 몰아내는 데 주력했으며, 이 과정에서 최광원, 권신, 권식, 두응룡 등이 귀양 보내졌다.
4. 평가
두응룡은 두경승과 함께 최충헌의 명종 폐위 시도와 독재 체제 구축에 저항한 고려의 충신으로 평가받는다. 최충헌은 이의민 세력을 제거한 후에도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위협이 될 만한 무인들을 꾸준히 제거하였다. 특히 명종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군부의 실세였던 두경승을 제거하기 위해 그의 조카인 두응룡을 사전에 숙청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5. 가족 관계
杜應龍|두응룡중국어 장군의 가문은 두릉 두씨 족보와 중앙일보사에서 발행한 『성씨의 고향』, 『한국인의 족보』 등의 문헌에 따르면, 시조 杜慶寧|두경녕중국어은 중국 송나라 사람이었다. 송 태종 때 병부상서였던 두경녕은 진종 옹립에 반대하다 실패하여 소주자사로 좌천되자, 아들인 중서사인 杜之建|두지건중국어과 우습유 杜之逢|두지봉중국어 형제를 데리고 1004년(목종 7)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나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에 있는 궁지도에 표착하여 고려에 귀화하였다. 고려 목종은 두경녕에게 좌사관 벼슬을 내리고 궁지현을 식읍으로 하사하고 두릉군에 봉했다. 두응룡은 송나라 병부상서를 지낸 두릉 두씨 시조 두경녕의 7세손이며, 원종공신 대호군을 지낸 杜遂寵|두수총중국어의 현손이고, 두경승의 선친이자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杜邦|두방중국어의 손자이다. 또한 두경승의 친형인 杜景吉|두경길중국어의 아들로 두경승의 조카이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