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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웰 공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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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스웰 공군기지는 미국 뉴멕시코주에 위치했던 군 기지로, 1941년 미국 육군 항공대에 의해 설립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조종사 훈련소로 사용되었으며, 냉전 시대에는 전략공군사령부의 기지로서 핵무기 운용 임무를 수행했다. 1967년 폐쇄된 후 로스웰 국제 항공 센터로 재개발되었으며, 1947년 인근에서 발생한 로스웰 사건으로 인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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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웰 공군기지
개요
2006년 미국 지질 조사국 항공 사진
2006년 미국 지질 조사국 항공 사진
위치로스웰, 뉴멕시코주
종류공군 기지
건설1941년
사용 기간1941년–1967년
역사
건설1941년
폐쇄1967년
부대 정보
소속전략 공군 사령부
주요 시설
현재 용도로스웰 국제 항공 센터
이전 이름
이전 이름로스웰 육군 비행장 (Roswell Army Airfield)
지휘관
과거 지휘관케네스 뉴턴 워커 준장

2. 역사

1941년 미국 육군 항공대가 뉴멕시코주 로스웰 인근의 목장 부지를 매입하면서 워커 공군 기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로스웰 육군 비행 학교(Roswell Army Flying School)로 명명되어 군 조종사 훈련 및 폭격 학교로 사용되었다.[1] 1947년 육군 항공 군단이 공군부로 이전하면서 '''워커 공군 기지'''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1948년 1월 13일 뉴멕시코주 출신 명예 훈장 수훈자인 케네스 워커 공군 준장의 이름을 따 개칭되었다.

비행장은 7개의 콘크리트 활주로와 9개 이상의 보조 착륙장을 갖추고 있었다. 활주로 규격은 다음과 같다.

방향규격 (길이 x 너비)
북/남약 2233.88m x 약 60.96m, 약 2133.60m x 약 60.96m
북동/남서약 2194.56m x 약 60.96m, 약 1723.64m x 약 60.96m
북서/남동약 2122.63m x 약 60.96m, 약 1798.32m x 약 60.96m
동/서약 2098.24m x 약 60.96m


2. 1. 제2차 세계 대전

Roswell Army Air Field영어가 된 곳은 1941년 목장주 데이비드 체서로부터 미국 육군 항공대가 매입하여 군사 비행 훈련 센터 및 폭격 학교를 설립한 곳이다. 처음부터 뉴멕시코의 훌륭한 비행 기후를 고려하여 크고 넓은 시설로 설계되었다. 1941년 9월 20일 미국 육군 항공대 훈련 사령부에 배정되었고, 같은 날 로스웰 육군 비행학교가 가동되었다. 이 학교의 임무는 2단계 항공 사관 생도에게 쌍발 엔진 항공기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학교는 비치크래프트 AT-11 칸잔 쌍발 엔진 훈련기를 운영했으며, 비행학교 외에도 폭격학교가 AT-11을 운용하는 훈련 비행대를 운영했다.

1943년에는 벌티 BT-13 및 BT-15 발리언트 단발 엔진 훈련기와 세스나 AT-17 쌍발 엔진 훈련기가 추가되었다.

1944년 가을, 제2항공군은 육군 항공대에 모든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 전환 훈련을 제공했다. 1945년 1월까지 로스웰 육군 비행장은 전환을 완료했고, 제3030 육군 항공대 기지 부대 (조종사 학교, 특수 초중량)가 활성화되어 B-29 슈퍼포트리스 4발 엔진 조종사 전환 및 폭격 훈련을 전문으로 했다.

활주로 옆에는 폭격 목표물이 있었지만, 항공기에서 투하된 유일한 품목은 모래나 밀가루 자루였다. 실습 폭격 및 사격 훈련장은 비행장 정남쪽, 텍사스 걸프 해안을 따라 마타고르다 섬에 있었다.

비행장 외에도 최대 4,800명의 전쟁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로스웰 전쟁 포로(POW) 수용소가 건설되었다. 수용소에 수용된 대부분의 전쟁 포로는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포로로 잡힌 독일 및 이탈리아 군인이었다. 전쟁 포로는 실제로 지역 프로젝트의 건설 노동자로 사용되었으며, 로스웰의 많은 공원이 전쟁 포로에 의해 건설되었다. 로스웰 시내를 통과하는 스프링 강은 전쟁 포로의 노동력을 사용하여 콘크리트와 돌로 덮였다. 포로들은 강바닥에 철십자를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색상의 돌을 사용했다.[1]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로스웰 육군 비행장의 훈련 임무는 1945년 11월 1일에 종료되었다. 기지는 영구적인 육군 항공대 시설로 지정되었으며, 기지의 관할권은 제238 육군 항공대 기지 부대, 제2항공군, 대륙 항공 사령부로 이관되었다.

2. 2. 냉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로스웰 육군 비행장은 전략공군사령부(SAC)에 배속되었다. 1948년, 한국 전쟁 참전 용사인 케네스 워커 준장의 이름을 따 워커 공군 기지로 개명되었다.

2. 2. 1. 제509폭격비행단

제509폭격비행단의 휘장


1946/47 로스웰 육군 비행장의 표지판. 제509폭격단에 대한 버섯 구름 기호에 주목하십시오.


마틴-오마하 B-29-40-MO 슈퍼포트리스 AAF 일련 번호 44-27353 ''The Great Artiste'' 제509폭격단의 제393폭격비행대에 배정된 C-15 승무원. 이 항공기는 실버플레이트 빅터 번호 89로 개조되었습니다. 이 항공기는 두 개의 원자 폭탄 임무(1945년 8월 6일, 1945년 8월 9일)에서 핵 폭발을 감시하는 계측 항공기로 비행했습니다.


제509혼성단은 티니안 섬에서 귀환하여 1945년 11월 6일 로스웰로 이전했으며, 처음에는 대륙공군 소속의 제2공군에 배속되었다. 1946년 1월 17일, 포트워스 육군 비행장의 제58폭격비행단으로 재배치되었으며, 1946년 3월 21일 전략공군사령부(SAC)에 배속된 최초 11개 부대 중 하나였다.

1946년 4월, 제509혼성단의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 항공기 다수가 크로스로드 작전의 일환으로 콰잘레인 환초에 배치되었다. 나머지 항공기는 제715폭격비행대와 제830폭격비행대의 핵심이 되었다. 1946년 5월, 육군 항공대는 새로 창설된 SAC에 원자 폭탄 투하 책임을 부여했으며, 제509혼성단만이 원자 폭탄 임무를 수행할 훈련을 받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제509혼성단에 배속된 비행대는 다음과 같다.

  • 제393폭격비행대
  • 제715폭격비행대
  • 제830폭격비행대


1946년 7월 10일, 제509혼성단은 ''제509폭격단 (중폭격)''으로 개칭되었다. 1947년 11월 17일, 미국 공군이 별도의 군으로 창설되면서 제509폭격단은 제509폭격비행단의 전투 구성요소가 되었지만, 존 데일 라이언 대령이 사령관으로 임명된 1948년 9월 14일이 되어서야 작전을 시작했다.

1948년 6월 30일, 제509공중급유비행대가 제509폭격비행단의 일부로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개념을 개척했으며, 애리조나주 데이비스-먼선 공군기지의 제43ARS도 함께 창설되어 최초의 부대가 되었다. KB-29M 급유기 덕분에 제509폭격단의 폭격기는 지구상 거의 모든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1950년 6월, B-29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B-50 슈퍼포트리스를 받기 시작했다. 컨베어 B-36 피스메이커가 공군에 합류하면서 "중폭격" 명칭은 삭제되었고, 제509폭격단은 다른 모든 B-29 및 B-50 비행단과 마찬가지로 "중폭격"으로 재지정되었다.

1954년 1월, KC-97 공중 급유기가 노후된 KB-29M을 대체했고, 1955년 6월에는 최초의 제트 폭격기인 B-47 스트래토젯을 받으면서 제509폭격비행단은 제트 시대로 접어들었다. 1958년 6월 16일, 제509폭격비행단은 뉴햄프셔주 피스 공군기지로 이전되었다.

2. 2. 2. 제6폭격비행단

제6 폭격 비행단(Medium)은 1951년 1월 2일 뉴멕시코주 워커 공군기지에서 창설되어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를 장비했다. 1951년 8월 1일, 제307 공중 급유 비행대가 비행단에 배속되어 1952년 6월 16일 해체될 때까지 KB-29 유조기를 운용했다. 제6비행단은 워커에 있는 제509폭격비행단과 함께 SAC 제47 항공 사단을 형성하여 제509 비행단이 피스 공군기지로 재배치될 때까지 1958년 6월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나 비행단의 3개 비행대대 (제24, 제39, 제40)는 곧 SAC의 새로운 중폭격기인 컨베어 B-36D 피스메이커로 재장비되었으며 부대는 ''제6 폭격 비행단 (중)''으로 재지정되었다. B-36D는 폭격기의 첫 번째 주요 생산 모델로, 6개의 R-4360-41 피스톤 엔진을 지원하기 위해 외부 날개 아래에 있는 포드에 2쌍의 제너럴 일렉트릭 J47-GE-19 터보 제트 엔진을 장착했다. B-36D는 4개 또는 3개의 피스톤 엔진만으로도 상당히 잘 비행했기 때문에 순항 중에 일부 엔진을 끄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터보 제트 엔진은 일반적으로 표적 지역 위를 빠르게 질주하거나 이륙할 때만 사용되었다. 제6비행단은 이 항공기로 전략 폭격 훈련을 실시했으며, 1955년 10월부터 1956년 1월까지 앤더슨 공군 기지에 배치되었다.

B-36의 퇴역은 1957년에 시작되었으며, 비행단은 새로운 B-52 스트라토포트리스 제트 폭격기를 받기 시작했다. 이 항공기들은 기존 비행대에서 운용되었다. B-36의 마지막 항공기는 1958년에 워커를 떠났다.

기지를 공중 방어하기 위해, 미국 육군 나이키 허큘리스 지대공 미사일 기지가 1959년 로스웰(W-10)과 해거먼(W-50), 뉴멕시코주 근처에 건설되었다. 이 기지는 선정, 건설되었고, 대대가 발족되었으며, 포대가 배치되었고, 이후 전체 시설이 폐쇄되었다. 많은 인원이 나중에 오펏 공군 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네브래스카주 오마하로 이전되었다.

1959년 9월, 제24 및 제30 폭격 비행대가 새로 배정된 제4129 전투 승무원 훈련 비행대에 합류하여 B-52 및 KC-135 승무원을 훈련시켰다. 제40 폭격 비행대는 1960년 6월 10일까지 작전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1960년 6월 10일부터 1961년 12월 1일까지 비행단은 비전투 준비 상태에서 몇 차례의 작전 임무를 수행했다. 제40 비행대는 1961년 12월 1일에 작전 상태로 복귀했다. 다른 두 폭격 비행대는 1963년 9월 5일에 전술적 지위를 회복했다. 제39 비행대는 며칠 후에 해체되었지만, 제24 및 제40 비행대는 1966년 12월까지 글로벌 폭격 훈련을 계속 수행했으며, 해체 단계로 접어들었다.

제6 공중 급유 비행대는 초기 모델 KC-135A 항공기를 운용하며, 1958년 1월 3일부터 워커 공군 기지에 배속되었다. 1960년 2월 3일, "숏테일" (유압식 동력 보조 방향타 없음) KC-135A가 강하고 돌풍이 부는 측풍 속에서 이륙 중 추락했다. 조종사는 방향 제어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고, 항공기를 5–10노트 일찍 회전시켰으며 항공기가 활주로의 흙 포장으로 내려앉아 엔진 2개를 잃고, 항공기 주차 구역을 통과하여 항공기 격납고에 멈췄다. 이 단일 추락 사고로 3대의 KC-135 항공기가 파괴되고 8명의 군인이 사망했다.

비행단은 1962년 5월 1일에 ''제6 전략 항공 우주 비행단''으로 재지정되었다. 1965년 6월 25일, 제310 공중 급유 비행대가 비행단에 배속되었다. 기지가 폐쇄될 때까지 KC-135A 항공기를 운용했으며, 부대는 1967년 1월 25일 플래츠버그 공군 기지, 뉴욕주로 이동했다.

2. 2. 3. 아틀라스 미사일 기지

1960년대 초, 워커 공군 기지 인근에는 12개의 SM-65F 아틀라스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 기지가 건설되었다.[1] 1961년 1월 2일, 제579 전략 미사일 비행대대가 편성되어 이 기지들을 운영했다.[1] 10월 31일, 뉴멕시코 주지사 에드윈 L. 메참은 사이트 10 기념식에서 기조 연설을 했는데, 이곳은 첫 번째 미사일 기지가 공군에 인도된 곳이다.[1]

채베스 카운티 주민들은 미사일 비행대대 도착에 애국심을 느꼈지만, 로스웰 주민들은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 1961년 10월에 10건의 방공호 허가를 신청했다.[1]

1962년 1월 24일, 제579 전략 미사일 비행대대는 첫 번째 미사일을 받았다.[1] 같은 해 4월, 워커 공군 기지에 건설된 액체 산소 공장이 완공되어 공군에 인도되었다.[1] 비행대대는 쿠바 미사일 위기 약 한 달 전에 미사일 설치를 완료했다.[1]

로스웰의 기지는 세 차례의 미사일 폭발로 악명을 얻었다.[1] 1963년 6월 1일, 발사 단지 579-1이 추진제 주입 훈련 중에 파괴되었다.[1] 1964년 2월 13일, 또 다른 추진제 주입 훈련 중에 폭발이 발생하여 발사 단지 579-5가 파괴되었다.[1] 한 달 후인 3월 9일, 사일로 579-2가 추진제 주입 훈련 중 발생한 또 다른 폭발로 피해를 입었다.[1]

이러한 사고 당시 미사일은 핵탄두와 결합되지 않았다.[1] 보고된 유일한 부상은 기지에서 도망치던 승무원이 철조망에 부딪힌 것이다.[1]

워커 기지와 다른 아틀라스 및 타이탄 I 기지에서의 사고는 이러한 시스템을 퇴역시키기로 한 결정을 가속화했다.[1] 1965년 3월 25일, 제579 전략 미사일 비행대대는 해체되었고 공군은 사일로에서 미사일을 제거했다.[1] 비무장화된 후, 이전 미사일 기지들은 개인 소유로 반환되었다.[1]

2. 2. 4. 방공 임무

1950년대 초, 워커 공군 기지에는 임시 레이더 기지(L-46)가 설치되어 지상 통제 요격(GCI) 및 경보 임무를 수행했다. 이 기지에는 한국 전쟁 중 현역으로 소집된 아칸소 공군 방위군 소속 120번째 항공 통제 및 경고 비행대대가 배치되어 AN/TPS-1B 레이더를 사용했다.[1]

1953년 10월 1일, 686번째 항공 통제 및 경고 비행대대가 창설되어 120번째 비행대대를 대체했다.[1] 686번째 비행대대는 AN/MPS-7 탐색 레이더와 AN/MPS-14 고도 탐지 레이더를 운영했다.[1] 워커 기지는 주요 시설 외에도 여러 AN/FPS-14 갭 필러 기지를 운영했다.[1]

1963년 3월, 공군은 기지 폐쇄 명령을 내렸고, 1963년 8월 1일에 운영이 중단되면서 686번째 항공통제경보비행대대는 해체되었다.[1]

2. 3. 폐쇄 및 이후

1967년, 공군은 워커 공군 기지가 폐쇄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국방부가 의회가 정한 예산 한도 내에서 베트남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국내 기지 폐쇄 및 통합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제6 폭격비행단은 "제6 전략비행단"으로 변경되어 알래스카 에일슨 공군기지로 이전되었다.

워커 공군 기지는 1967년 6월 30일에 공식적으로 폐쇄되었다. 이후 민간 당국에 의해 로스웰 국제 항공 센터(RIAC)로 재개발되었다. 다수의 운행 중단된 항공기가 개조 및 판매를 위해 주차장, 사용하지 않는 유도로/활주로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보잉사는 RIAC를 자사 항공기의 제동 성능 테스트에 사용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737-900ER 모델에 장착된 BF 굿리치 카본 브레이크의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또한 새로운 보잉 787 드림라이너에 대한 브레이크 테스트도 수행되었다.

동뉴멕시코 대학교는 전 기지 서쪽에 대규모 캠퍼스를 건설했지만, 기지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이전 공군 기지의 모습과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항공기 격납고, 정비소, 병영, 사무실 건물 등 많은 이전 공군 건물들이 사적인 용도로 재사용되고 있다. 대규모 주거 지역도 여전히 존재하며, 이전의 정부 주택 유닛은 개인 소유로 남아있다. 많은 건물들이 철거되거나 헐려 넓은 공터, 도로, 이전 주차장 및 콘크리트 기초만 남게 되었다.

5만 명 미만의 인구를 가진 도시에서 5,000명의 군인과 추가로 5,000명의 지원 직원의 퇴직은 지역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공군 기지였던 곳은 로스웰 산업 항공 센터(RIAC)가 되었다. RIAC에는 폭죽 공장, 플라스틱 제조업, 버스 건설업, 사탕 제조업, 항공기 수리 개조 회사, 그리고 로스웰 지방 공항이 들어서 있다.

과거 많은 군사 기지가 민간 사용으로 전환되면서 원래 건물의 상당수가 남아있다. 기지 병원의 경우, 현재는 뉴멕시코 재활 센터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3. 로스웰 사건

1947년 뉴멕시코주 로스웰 공군기지 부근에 미확인비행물체(UFO)가 추락했는데, 잔해와 함께 외계인 시체가 발견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1]

4. 더불어민주당 관점에서의 평가

워커 공군 기지는 냉전 시대 미국의 핵 억지력 강화에 기여한 중요한 군사 시설이었다. 특히, 제509폭격비행단전략공군사령부(SAC)에 배속된 최초 11개 부대 중 하나였으며, B-29 슈퍼포트리스, B-50 슈퍼포트리스, B-47 스트래토젯, B-52 스트라토포트리스 등 다양한 폭격기를 운용하며 핵무기 개발과 운용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1] 제6 폭격 비행단 또한 B-29 슈퍼포트리스, B-36 피스메이커, B-52 스트라토포트리스 등의 폭격기를 운용하며 전략 폭격 훈련을 실시했고, KC-135A 공중급유기를 통해 작전 반경을 확장했다.[1]

그러나 이러한 핵무기 운용은 핵전쟁의 위험성을 높였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특히, B-36 피스메이커는 15명의 승무원과 16개의 20mm 캐논, 그리고 43,500파운드의 MK-17 열핵 무기를 탑재할 수 있었는데, 이는 핵전쟁 발발 시 엄청난 인명 피해와 환경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1]

로스웰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미 공군의 정보 공개 및 대응 방식은 투명성 부족과 은폐 의혹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이는 정부의 정보 공개와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워커 공군기지 폐쇄 이후 지역 경제에 미친 부정적 영향은 군사 시설 의존적인 지역 경제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는 지역 경제 다변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참조

[1] 웹사이트 Brig. Gen Kenneth Newton Walker http://www.wafbmuseu[...]
[2] 뉴스 Foo Fighters Release 2005 Roswell Concert for 'Storm Area 51 Day' https://www.rollings[...] Rolling Stone 20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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