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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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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당극은 1970년대 한국에서 시작된 연극 형태로, 전통 문화 계승과 시대 비판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탈춤 등 전통 예술 형식을 차용하고, 배우와 관객의 소통을 중시하며, 정치적·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민중의 고난을 표현했다. 1980년대에는 상업적 공연과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의 활동으로 분화되었으나, 1990년대 이후 민주화 진전과 함께 쇠퇴했다. 오늘날에는 지역 축제나 어린이 공연 등 다양한 형태로 공연되고 있으며, 창작 뮤지컬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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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은 연극, 영화, 스포츠 경기 등 다양한 공연이나 행사에서 감상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직접 대면하거나 매체를 통해 참여하는 등 다양한 유형으로 나뉘고, 공연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거나 공연자와 소통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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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
기본 정보
마당극 공연
마당극 공연 모습
다른 이름들놀이, 걸립패 놀이, 농악놀이, 장터극
하위 장르굿
탈춤
인형극
민요
농악
역사
기원민중 운동 시기
발전1970년대
특징
성격민족극, 민중극, 참여극, 공동체극
공연 장소마당 (야외), 장터, 공터 등
주제사회 비판, 저항 정신, 공동체 의식 고취
형식즉흥 연기
풍자
해학
노래와 춤
관객 참여 유도
음악농악, 민요, 창작 음악
의상탈, 민속 의상, 평상복
언어사투리, 쉬운 표현
주요 단체
과거극단 금강
극단 현장
극단 새벽
전국민족극협의회
현재(정보 부족)
대표 작품
제목《넋전아리》
《아구야 아구야》
《장산곶매 이야기》
《개똥이》
《오구굿》
관련 개념
관련 용어민중극, 민족극, 탈춤, 굿, 농악

2. 역사

1970년대 초기의 마당극은 기존의 연극 대본을 마당극 형태로 바꾸어 공연하는 경우가 많았다.[16] 임진택은 흔히 마당극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데,[17] 당시 마당극 공연은 민족적 전통의 계승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여 연출과 공연 기법에 대한 개발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회고한다.[16]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여러 정부 격변을 겪었고, 정부 탄압, 부패한 지도자, 재산 착취 등 여러 고난을 겪었다.[6] 민중 운동은 엘리트가 아닌 국민을 위한 민주화된 사회를 달성하려는 시도였다. 마당극은 이러한 고난과 이에 대처할 잠재적 방법을 묘사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마당극이 대한민국 민중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5][7][2] 마당극은 정치적 주제와 비판을 담고 있어, 단순한 선전 전달 방식을 넘어 청중을 감정적으로 참여시켜 대의에 몰입하게 만들었다.[5] 1970~80년대의 마당극은 무력 정부 하의 대한민국의 사회 정치적 상황을 교육받지 못한 사람과 교육받은 사람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분석하는 방법이었다.[2] 이동성이 좋고 청중을 쉽게 참여시킬 수 있었던 마당극은, 이 시기에 대부분의 대학교가 자체 마당극 그룹을 갖추면서 매우 빠르게 확산되었다.[7] 마당극의 억압과 반항에 대한 탐구는 민중 운동이 추구했던 혁명을 위한 예행연습으로 볼 수 있으며, 사람들이 맞서 싸울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이러한 이유로 마당극 공연은 종종 정치 행사나 시위에 등장했고, 때로는 공연 자체가 계획되지 않은 폭동이나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마당극이 민중 운동의 시작이었으며, 공유된 고난을 통해 한국인들 사이에 연대감을 형성하고 청중을 행동으로 이끌었다고 평가한다.

1990년대에 들어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 곳곳에 마당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이 창설되었다. 예를 들어 대전의 마당극 극단 우금치는 1990년 대학교의 탈춤 동아리가 모태가 되어 만들어진 단체이다.[20] 현장성을 강조하는 흐름에서는 방송사의 대규모 마당놀이를 상업적이며 국가 주도적 성격의 관제라고 비판한다.[9][16]

2. 1. 기원과 형성 (1970년대)

1970년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실험적 연극이 공연되었다.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은 노래굿의 형태로 공연되었고[10], 박동진은 《판소리 예수전》을 비롯한 창작 판소리를 선보이기도 하였다.[11] 이러한 다양한 실험은 연극 공연에도 영향을 주었다. 마당극은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인식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 말 탈춤 부흥 운동을 마당극의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대학가에는 탈패라는 이름으로 많은 탈춤 동아리들이 만들어졌다.[12]

1970년대 초 당시 연극계에서 공연은 실내 무대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10월 유신이라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표현의 자유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당시의 젊은 연극인들 중 일부가 전통 계승이라는 민족주의적 배경과 시대를 비판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적 배경을 갖고 새로운 극으로서 마당극을 시작하였다. 대개는 김지하의 《진오귀굿》을 그 시작으로 평가한다.[13]

마당극 형성 과정에서 처음부터 연극 형식에 대한 이름을 새롭게 붙이지는 않았다. '마당'과 '극'을 조합하여 이름을 붙인 첫 사례는 1978년 서울대학교 연극반의 《허생전》으로 알려져 있다.[14]

한국 가면극의 예시


마당극은 1970년대에 등장했으며 탈춤과 같은 한국의 오래된 전통 예술 형식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탈춤은 일반적으로 서사적 춤을 추는 가면 무용수를 포함했다. 이 가면은 등장인물의 감정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공연을 통해 종종 엘리트와 종교 지도자들을 비판하는 무용수들에게 익명성을 제공했다.[1] 따라서 마당극은 연기, 춤, 소품을 통해 하층민 또는 중산층의 고난과 정치적 또는 경제적 억압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정치적 서사 표현이기도 했다.[2] 1970년대에 대학생들이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전국에서 공연을 시작하면서 마당극은 대한민국 전역에서 인기를 얻었다. 당시 한국은 군사 정권의 빈번한 정부 불안과 정치적 억압에 직면했다. 1960년대에 정부는 한국 역사를 기념하는 사업을 시작했고, 마당극은 한국 역사와 예술에 대해 발언권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에 반대하는 방식이었다.[2] 따라서 마당극 공연은 종종 불의, 폭력, 가난, 자유 추구의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2. 2. 발전과 분화 (1980년대)

마당극은 발전 과정에서 상업적 연극 공연에 무게를 두는 흐름과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 합류하여 소통에 무게를 두는 흐름으로 분화되었다. 상업적 연극으로서 마당극은 《흥부전》, 《춘향전》과 같은 판소리 계열의 고전을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여 공연하였다. 윤문식과 같은 배우가 이러한 흐름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15]

1980년대에 들어 문화방송과 같은 방송사가 주최하는 마당극 공연은 점차 규모가 커져 체육관에서 공연을 갖기도 하였다. 문화방송의 《마당놀이》는 1981년 창사 기념으로 열린 《허생전》 이후 2010년까지 30년 동안 2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18] 한편, 민주화 운동과 함께한 흐름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노동자 대투쟁을 맞아 《노동의 새벽》과 같은 다양한 마당극을 공연하였다.[9] 특히 이한열의 죽음 이후 일어난 대규모 시위는 당시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을 거리로 불러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19]

2. 3. 쇠퇴와 변화 (1990년대 이후)

1990년대 들어 마당극 공연은 전반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문화평론가 이영미는 현장 중심으로 활동하던 마당극 공연 흐름은 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각종 현장이 쇠퇴하면서 동반하여 쇠퇴할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21] 1996년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마당극 공연을 보도한 이화여자대학교 학보의 기사는 학생운동의 쇠퇴와 함께 마당극 역시 쇠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22]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권력에 대한 풍자가 줄어들면서 마당극은 다시 고전의 재해석, 해외 연극의 번안과 같은 형태의 극들이 공연되기 시작하였다.[23] 기존의 마당극이 쇠퇴하자 변화와 발전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모색되었으며, 그 가운데 마당극을 거리극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마당극이 갖는 극적 유연함이나 관객과의 소통은 살리되 보다 다양한 주제와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였다.[24]

오늘날 마당극 또는 마당놀이는 지역 축제의 일환으로 공연되거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공연이 올려지고 있다. 한편 5.18 민주화 운동 등을 소재로 한 마당극 역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25]

3. 특징

마당극은 야외 공연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관객 참여와 현실 반영을 중시하는 연극이다. 형식적으로는 무대 장치나 소품을 최소화하고 배우의 연기와 관객의 상상력에 의존하며, 내용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현실 문제, 특히 하층민의 삶을 다룬다는 특징을 지닌다.

3. 1. 형식적 특징

마당극은 야외 공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연극으로, 실내 공연 시에도 관객이 3면 이상 둥글게 둘러앉을 수 있도록 무대를 구성한다. 극은 대본을 바탕으로 진행되지만, 배우와 관객 간의 즉흥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계획되며, 때로는 관객이 극의 흐름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12] 마당극은 관객의 적극적인 개입을 유도하는 특징이 있다.[26]

무대 설정은 복잡한 시설이나 도구 없이 상징적인 사물로 배경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두 배우가 무대에 앉아 대화하면 소도구 없이도 안방이 된다. 따라서 마당극 배우는 춤, 노래, 표정, 몸짓 등을 통해 상황을 명확히 전달하는 상징성이 강한 연기를 펼쳐야 한다.[27]

마당극은 상황 이해를 위해 관객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자극하고, 관객의 개입을 요구하며, 극적 완성을 추구해야 하므로 뛰어난 공연은 쉽지 않다. 마당극은 관객의 호응과 함께 진행되어 제의적 성격을 띠며, 본격적인 연극 전에 관객과 호흡을 맞추는 앞풀이, 본공연, 공연 후 함께 놀이를 즐기는 뒤풀이 등으로 구성된다.[28]

전통적으로 마당극은 마당, 뜰, 들판과 같은 비공식적인 장소에서 공연되었다.[3] 관객은 원을 이루어 앉고 배우들은 중앙에서 공연을 펼쳤으며,[4] 무대 세트나 무대는 없었다.[3] 이는 마당극이 저렴하고 효과적인 표현 수단이었기 때문에 당시 대학생들을 매료시킨 요인이었다. 실내 공연에서도 약간의 조명 외에는 특별한 세트가 제작되지 않았다.[3] 배우와 관객 사이에 경계가 없어 관객 참여가 장려되었고,[2] 참여를 쉽게 하고, 휴대성을 높였으며, 아이디어나 이야기를 전파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현대 마당극 공연은 더 많은 소품과 의상을 사용하지만, 최소한의 무대 연출은 동일하게 유지된다.[3]

마당극 공연의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며, 한국 사회 하층민들이 직면한 실제 삶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5] 이는 관객 스스로가 이야기의 대상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하여 마당극이 큰 인기를 얻은 또 다른 이유이다.

3. 2. 내용적 특징

마당극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느슨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마당, 뜰, 들판과 같은 비공식적인 장소에서 공연되었다.[3] 관객은 원을 이루어 앉고 배우들은 그 중앙에서 공연을 펼쳤다.[4] 이러한 이유로 현대 서구 연극에서 기대할 수 있는 무대 세트나 무대는 없었다.[3] 이는 마당극이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표현 수단이었기 때문에 당시 대학생들을 매료시킨 요인이었을 수 있다. 실내에서 공연할 때조차 약간의 조명 외에는 특별한 세트가 제작되지 않았다.[3] 배우와 관객 사이에 경계가 없어 관객 참여를 장려했으며, 모두 같은 공간에 있었다.[2] 이러한 요소들은 참여를 쉽게 하고, 휴대성을 높였으며, 아이디어나 이야기를 전파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현대 마당극 공연은 더 많은 소품과 의상을 사용하지만, 최소한의 무대 연출은 동일하게 유지된다.[3]

줄거리 면에서, 현대 연극과 달리 마당극 공연의 이야기는 종종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허구적인 경험을 창조하거나 다른 영역으로의 관음적인 여정을 만들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하층민들이 직면한 실제 삶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5] 관객 스스로가 공연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의 대상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이 예술 형태가 매우 인기를 얻었다.

4. 민중 운동과의 관계

마당극은 발전 과정에서 상업적 연극 공연과 민주화 운동 현장에 참여하는 두 흐름으로 나뉘었다. 1980년대 문화방송의 《마당놀이》는 큰 인기를 얻었지만, 민주화 운동과 함께한 흐름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노동자 대투쟁을 맞아 《노동의 새벽》과 같은 마당극을 공연하였다.[9] 특히 이한열의 죽음은 많은 문화예술인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19]

1990년대에는 지역 각 곳에 마당극 전문 극단이 창설되었다. 대전의 마당극 극단 우금치도 그 중 하나이다.[20] 현장성을 강조하는 흐름에서는 방송사의 대규모 마당놀이를 상업적이며 관제적이라고 비판한다.[9][16]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여러 정부 격변을 겪었고, 민중 운동은 국민을 위한 민주화된 사회를 달성하려는 시도였다. 마당극은 이러한 고난과 대처 방법을 묘사하여 민중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5][7][2] 마당극은 정치적 비판을 통해 청중을 감정적으로 참여시키고, 무력 정부 하의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분석했다.[5][2] 이동성과 청중 참여의 용이성 때문에 대학교에 마당극 그룹이 확산되었다.[7] 마당극의 억압과 반항에 대한 탐구는 혁명을 위한 예행연습으로, 맞서 싸울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이 때문에 마당극 공연은 정치 행사나 시위에 자주 등장했고, 때로는 계획되지 않은 폭동이나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많은 학자들은 마당극이 민중 운동의 시작이었으며, 연대감을 형성하고 청중을 행동으로 이끌었다고 믿는다.

5. 영향

마당극 형식은 창작 뮤지컬과 같은 다른 형식의 공연에 영향을 주었다. 한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로 평가받는 《살짜기 옵서예》는 많은 부분에서 마당극 형식을 빌려왔다.[29]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여러 정부 격변을 겪었고, 다양한 정부 탄압, 부패한 지도자, 재산 착취 및 기타 고난을 겪었다.[6] 민중 운동은 엘리트가 아닌, 국민을 위한 민주화된 사회를 달성하려는 시도였다. 마당극은 이러한 고난과 고난에 대처할 잠재적 방법을 묘사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마당극이 대한민국 민중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5][7][2] 실제로 마당극은 정치적 주제와 비판을 포함했기 때문에, 선전을 전달하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청중을 감정적으로 참여시킴으로써 그들을 대의에 몰입하게 만들었다.[5] 1970~80년대의 마당극은 무력 정부 하의 대한민국의 사회 정치적 상황을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과 교육을 받은 사람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분석하는 방법이었다.[2] 마당극은 이동성이 좋고 청중을 쉽게 참여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 대부분의 대학교가 자체 마당극 그룹을 갖추면서 매우 빠르게 확산되었다.[7] 마당극의 억압과 반항에 대한 탐구는, 민중 운동이 추구했던 혁명을 위한 예행 연습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맞서 싸울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마당극 공연은 종종 정치 행사나 시위에 등장했다. 때로는 공연 자체로 인해 계획되지 않은 폭동이나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마당극이 민중 운동의 시작이었으며, 공유된 고난을 통해 한국인들 사이에 연대감을 형성하고 청중을 행동으로 이끌었다고 믿는다.

6. 주요 작품

제목극작가주제
소리굿 아구김지하물질주의, 반 초국적 자본주의
장산곶 매황석영정부 부패, 농민 봉기
통일 쌀남북 통일, 기아
예언미국과 탈식민주의, 폭력, 광주 민주화 운동


참조

[1] 서적 Tal and Talchum https://books.google[...] 길잡이미디어 2013-11-28
[2] 논문 Transnational Capitalism, National Imaginary, and the Protest Theater in South Korea 1995
[3] 논문 Observing Modern Korean Plays 1985
[4] 논문 Touching Worlds: Performing the Cross-Cultural in and through Nameless forest 2012
[5] 논문 The Discourse of Decolonization and Popular Memory: South Korea https://read.dukeupr[...] 1993-02-01
[6] 웹사이트 South Korea https://www.history.[...] 2019-06-08
[7] 논문 Between Indeterminacy and Radical Critique: Madang-guk, Ritual, and Protest https://muse.jhu.edu[...] 2003-12-09
[8] 백과사전 마당극
[9] 백과사전 마당극 http://encykorea.aks[...]
[10] 백과사전 공장의 불빛 http://encykorea.aks[...]
[11] 백과사전 창작 판소리 https://folkency.nfm[...]
[12] 논문 마당극의 공연양식적 특성에 기반한 연기연출방법론 연구 한국연기예술학회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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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뉴스 마당극 30년 윤문식 - “재주도 있고 싸가지도 있는 광대가 진짜 광대” https://monthly.chos[...] 월간조선 2014-10
[16] 웹사이트 진짜마당극이 되려면 http://bh.kyungpook.[...]
[17] 뉴스 장성아카데미, 마당극의 창시자 ‘임진택 명창’ 강연 https://m.newsro.kr/[...] 뉴스로 2017-11-13
[18] 웹사이트 마당놀이 http://theme.archive[...]
[19] 웹사이트 6월항쟁 30주년 특집 인터뷰 ⑩ - 임진택 판소리 명창 ‧ 마당극 연출가 https://change2020.o[...] 2017-06-19
[20] 웹사이트 대한민국 마당극의 산 역사 ‘마당극패 우금치’ http://futurechosun.[...] 2016-10-17
[21] 웹사이트 마당극 양식의 조정과 침체의 시기: 1993년 이후 https://www.culture.[...]
[22] 뉴스 한판 어우러짐으로 느낀 시대정신 http://inews.ewha.ac[...] 이대학보 1996-09-23
[23] 뉴스 공연리뷰 - 마당극 '황말순일가 이혼대소동' 등 https://www.yna.co.k[...] 연합뉴스 2012-08-23
[24] 논문 한국의 거리극 연구 https://www.kci.go.k[...] 한국드라마학회 2011
[25] 웹사이트 5월 마당극 상설공연 - 다시 광장에 서다 http://518now.kr/the[...]
[26] 웹사이트 마당판에서의 역학관계 http://bh.knu.ac.kr/[...]
[27] 웹사이트 극중 장소의 설정과 변환 http://bh.knu.ac.kr/[...]
[28] 웹사이트 마당극의 원리와 특성 http://www.dureart.c[...]
[29] 웹사이트 한국의 창작뮤지컬, 세계로 뻗어가다 https://www.culture.[...]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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