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빈 히메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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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빈 히메이어는 1951년 사우스다코타에서 태어나 콜로라도주 그랜비에서 거주하며 머플러 정비소를 운영했다. 그는 지역 사회와의 갈등, 특히 시멘트 공장 건설 계획과 관련된 문제로 인해 불도저를 개조하여 2004년 6월 4일, 킬도저로 그랜비 시내의 건물 13채를 파괴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히메이어는 이 사건으로 자살했으며, 그의 행동은 이후 부패한 정부에 대한 시민 불복종으로 옹호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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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 히메이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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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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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51년 10월 28일 |
출생지 | 캐슬우드, 사우스다코타주, 미국 |
사망일 | 2004년 6월 4일 |
사망지 | 그랜비, 콜로라도주, 미국 |
사망 원인 | 총기 자살 |
알려진 이유 | "킬도저" 난동 |
직업 | USAF 참전 용사 용접공 자동차 수리점 운영자 |
범죄 정보 | |
범행 동기 | 시멘트 공장 부지 선정 문제, 대안책 요청 거부로 인한 복수심, 가족의 죽음 (이 일로 아버지가 죽고, 애인과도 헤어짐) |
2. 어린 시절 및 배경
1989년 콜로라도주 그랜드 레이크로 이주한 마빈 히메이어는 1992년 경매를 통해 42000USD에 2acre의 토지를 구매했다.[3] 그는 이 땅에 머플러 정비소를 열 계획이었으나, 토지 구매 과정에서 이전 소유주였던 코디 도체프와 마찰이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히메이어는 도체프가 토지를 잃은 것에 분노하여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이를 기억하지 못했다.[3]
히메이어가 구매한 토지에는 기본적인 하수 처리 시설(매립된 시멘트 믹서)만 있었고, 이를 현대적인 하수도 시스템으로 개선하는 데는 토지 구매 비용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비용이 필요했다.[3] 시 당국은 정화조 설치가 더 저렴한 대안이라고 제안했지만, 히메이어는 정부가 하수관 연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이를 '정부의 강요'라고 주장하고 거부했다.[3]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는 1993년 자신의 머플러 정비소를 열었다.[3]
1997년, 히메이어의 부지 인근에서 사업을 하던 도체프 가족은 콘크리트 배치 플랜트 건설을 포함한 사업 확장을 계획했다.[1] 그들은 사업 부지 확보를 위해 히메이어의 부지를 매입하려 했으나 가격 협상에 실패했다.[1][3] 히메이어는 처음 250000USD를 요구했으나, 이후 토지 재평가를 이유로 가격을 계속 올려 최종적으로 450000USD까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1][3] 히메이어는 도체프 가족의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해 토지 교환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추가적인 요구 사항으로 인해 이 역시 결렬되었다.
히메이어는 계획된 콘크리트 공장 건설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환경 문제를 제기하며 소송까지 제기했다.[1][3] 그러나 2001년 1월, 시 공무원들은 공장 건설 계획을 거의 만장일치로 승인했다.[1][3] 히메이어는 공사로 인해 자신의 가게 접근이 어려워졌다고 주장하며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3][7][8]
하수 처리 문제도 다시 불거졌다. 기존 시설이 가득 차자 히메이어는 가솔린 펌프를 이용해 하수를 인근 관개용 수로에 무단 방류했으며, 이웃의 하수관에 불법 연결하려다 적발되기도 했다.[3] 이로 인해 히메이어는 2001년 7월, 시 조례 위반으로 2500USD의 벌금을 부과받았다.[3] 2001년 11월, 법원은 히메이어에게 하수 문제를 해결하고 불법 시설물을 철거하라고 명령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며 판결 당시 변호사에게 "이 곳 전체를 불도저로 밀어버릴 거야."라고 중얼거린 것으로 전해진다.[3]
2. 1. 초기 생애
마빈 히메이어는 1951년 10월 28일 사우스다코타주의 한 낙농장에서 태어났다. 1974년, 그는 로우 리 공군 기지에 주둔하면서 콜로라도주로 이사했다. 1989년, 그는 그랜비에서 약 약 25.75km 떨어진 그랜드 레이크로 이사했다. 그의 친구들에 따르면, 그는 그랜비-그랜드 레이크 지역에 친척이 없었다고 한다.2. 2. 지역 사회와의 관계
이웃에 따르면, 히메이어는 그랜비에서 약 약 25.75km 떨어진 그랜드 레이크, 콜로라도로 사건 발생 10년 전에 이사했으며, 그랜비-그랜드 레이크 지역에는 친척이 없었다고 한다.히메이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의 친구 존 볼드리는 히메이어를 호감이 가는 사람이라고 말했으며, 그의 형제 켄은 그가 "누구에게나 최선을 다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히메이어를 상냥한 사람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 크리스티 베이커는 자신의 남편이 히메이어와 머플러 수리 비용 문제로 다툰 후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베이커는 그녀의 남편이 나중에 중개인을 통해 히메이어에게 124USD를 지불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히메이어는 친구들과 함께 스노모빌 여행을 즐겼으며, 친구가 작은 눈사태에 갇혔을 때 구조 활동을 지휘하기도 했다.[3]
2. 3. 도박 합법화 운동
히메이어는 도박 합법화를 강력히 지지했으며, 여러 차례 이 문제에 대해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지역 신문들이 이 문제에 대해 편향된 입장을 보인다고 생각하여, 직접 관련 내용을 담은 신문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4][5]1994년, 그랜드 레이크에서 도박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제안되었다. 히메이어는 이 법안을 열렬히 지지했으며, 이 문제에 매우 열정적이어서 법안에 반대하는 지역 기자와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는 일도 있었다.[4]
3. 갈등의 발단
2001년, 용접사이자 자동차 머플러 수리사였던 마빈 히메이어는 자신의 가게 옆 부지에 대규모 시멘트 생산 공장이 들어설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이 공장 건설로 인해 가게와 거처로 향하는 주 통행로가 막힐 것을 우려하여 그랜비 시청과 시멘트 공장 측에 직접 찾아가 대안 마련을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히메이어는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시청 앞에서 홀로 시위를 벌였고, 법원에 공장 건축 불허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하여 상당한 소송 비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2003년에는 지역 신문 '스카이하이 뉴스'가 그를 개인 이기주의자로 묘사하는 기사를 내면서 마을 주민들의 비난을 받게 되었고, 결혼을 앞두었던 연인과도 이별하는 등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
시멘트 공장 건설이 시작되자 히메이어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시 당국에 탄원서를 제출하며 다시 한번 대안 마련을 호소했으나, 이마저도 거부되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불도저를 직접 구입하여 가게로 통하는 다른 길을 내려 했지만, 이 역시 시 당국에 의해 거절당했다. 설상가상으로, 정비소에서 나온 쓰레기를 사유지에 무단으로 버렸다는 이유로 2500USD의 벌금이 부과되었고,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정비소는 3개월간 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04년에는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연이어 닥친 불행과 좌절 속에서 히메이어는 시 당국과 자신을 외면한 사회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게 되었다.
3. 1. 토지 매입 및 정비소 운영
1992년, 히메이어는 경매를 통해 4.2만달러에 2acre의 토지를 구매했다. 그는 처음에 이 토지를 친구에게 임대하여 친구가 그곳에 정비소를 지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었다.[3] 이 경매에는 해당 토지의 이전 소유주였던 코디 도체프도 참석했다. 히메이어는 당시 토지를 잃은 도체프에게 자신이 분노하여 욕설을 퍼부었다고 주장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을 기억하지 못했다.[3]히메이어가 매입한 토지에는 이전 소유자가 남겨둔 시설이 있었는데, 이는 땅에 묻힌 시멘트 믹서를 이용한 기본적인 하수 저장 시설이었다.[3] 제대로 된 하수도 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한 비용은 히메이어가 토지를 구매하는 데 지불한 금액인 4.2만달러의 거의 두 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3]
시 공무원들은 히메이어에게 정화조를 설치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더 나은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히메이어는 이 두 가지 선택지를 모두 거부하며, 정부가 하수관 연결 비용을 지원하지 않는 것을 "정부의 강요"라고 주장했다.[3] 이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랜비 시로의 토지 합병 요청을 철회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그의 부지는 하수도 구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3]
1993년 무렵, 히메이어는 친구에게 토지를 임대하려던 초기 계획을 변경하여, 해당 부지에 직접 자동차 머플러 정비소를 열었다.[3] 히메이어에 따르면, 그의 친구는 1992년 4월경 발생한 기름 유출과 관련된 환경 문제 때문에 토지에 대한 사업적 관심을 잃었다고 한다.[6]
3. 2. 시멘트 공장 건설 계획
1997년, 히메이어의 정비소 인근 부지를 소유하고 있던 도체프 가족은 사업 확장을 위해 콘크리트 배치 플랜트 건설을 계획했다.[1] 이들은 주변 토지를 매입하여 총 23개 구획을 소규모 제조업체에 임대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1] 그랜비의 계획 및 지구 위원회는 도체프 가족에게 공장 건설을 위해서는 '계획 개발 오버레이 구역' 허가가 필요하다고 알렸다.[1] 위원회는 또한 공장을 콜로라도주 40번 국도변의 호텔과 상업 시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짓기 위해, 히메이어의 부지를 매입하는 방안을 도체프 가족에게 제안했다.[3]히메이어는 처음 자신의 부지 가격으로 25만달러를 요구했으나, 이후 부지를 재평가받았다는 이유로 추가로 12.5만달러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도체프 측은 35만달러를 모았지만, 수잔 도체프에 따르면 히메이어는 다시 가격을 올려 최종적으로 45만달러를 요구했다고 한다.[1][3] 이러한 가격 협상은 재구역 설정 계획에 대한 공청회가 시청에서 열리기 전에 이루어졌다.
결국 부지 매입 협상은 결렬되었고, 도체프 가족은 히메이어의 부지 맞은편에 있는 폐쇄된 상업 구획을 구매하여 사업 계획을 계속 추진했다. 히메이어 역시 이 부지를 구매하려 했으나 실패했으며, 이후 도체프에게 주요 부지를 받는 조건으로 토지 교환을 제안했지만, 히메이어가 도체프에게 새 건물 건설 비용까지 요구하면서 이마저도 무산되었다. 히메이어는 이후 도체프의 사업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히메이어는 계획된 콘크리트 공장이 환경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건설 반대 캠페인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건설 제안 청문회에 많은 주민이 참여하기도 했다.[1][3] 그러나 도체프 측이 먼지와 소음 문제에 대한 추가 조치를 약속하고 공장 모형을 제시하며 주민들을 설득하자 반대 여론은 점차 줄어들었다.[1][3] 결국 2000년 11월, 히메이어는 공장 건설을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시 서기는 지역 신문에 히메이어가 도체프에게 개인적인 앙심을 품고 있으며, 토지 매각 협상 과정에서 점점 더 "터무니없는" 요구를 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기고했다.
2001년 1월 9일, 시 공무원들은 공장 건설 계획을 거의 만장일치로 승인했으며, 히메이어만이 유일하게 반대했다.[1][3] 이 결정으로 인해 4월에 있을 그랜비 지구 위원회와 이사회의 최종 승인은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가 되었다.[3]
히메이어는 공장 건설로 인해 자신의 정비소로 가는 길이 막힐 것이라고 주장하며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려 했으나,[3] 사건 담당 판사,[7] 지역 언론인,[8] 그리고 항공 사진을 검토한 전문가들은 그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했다.[7] 그는 또한 환경 보호국에 민원을 제기했고, 이로 인해 도체프 가족은 전문적인 소음 영향 분석을 받아야 했다.[1]
2001년 6월, 조 도체프는 히메이어에게 소송을 취하하면 새로 건설될 콘크리트 공장까지 하수도관을 무료로 연결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히메이어는 이를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다.[3] 비슷한 시기, 히메이어의 정비소에서 하수를 처리하던 임시 저장 시설(매립된 콘크리트 트럭 배럴)이 가득 찼다. 히메이어는 가솔린 펌프를 이용해 하수를 자신의 부지 뒤편 관개용 수로로 몰래 방류했다.[3] 또한 이웃의 하수관에 불법적으로 연결하려다 발각되어 위생 구역에 신고되기도 했다. 결국 시 당국은 9년 동안 미뤄왔던 하수도 연결 또는 정화조 설치 의무를 이행하도록 강제하기 시작했고, 2001년 7월, 히메이어에게 하수 문제 및 기타 시 조례 위반을 이유로 2500USD의 벌금을 부과했다.[3]
2001년 11월, 히메이어는 시 법원에서 조례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2003년 7월까지 하수 문제를 해결하고 임시 하수 시설을 철거해야만 사업을 계속하거나 부지에 거주할 수 있다는 명령을 받았다. 히메이어는 처음에 동의했지만, 당일 늦게 이를 거부하며 시의 요구를 "테러의 한 형태"라고 비난했다. 판결 당시 그의 변호사는 히메이어가 "이 곳 전체를 불도저로 밀어버릴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고 보고했다.
3. 3. 협상 결렬 및 갈등 심화
1997년, 그랜비의 도체프 가족은 사업 확장을 위해 콘크리트 배치 플랜트 건설을 계획하고 히메이어의 부지 주변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1] 시의 계획 및 지구 위원회는 도체프 가족에게 공장을 40번 국도변의 상업 시설로부터 떨어뜨리기 위해 히메이어의 부지 매입을 고려해볼 것을 제안했다.[3]히메이어는 처음 자신의 토지 가격으로 25만달러를 요구했으나, 이후 재평가를 이유로 37.5만달러, 최종적으로는 45만달러까지 가격을 올렸다.[1][3] 도체프 가족은 35만달러까지 마련했지만, 히메이어가 다시 가격을 인상하면서 협상은 결렬되었다.[1][3]
협상이 결렬되자 히메이어는 계획된 콘크리트 공장에 반대하는 대중 캠페인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공장의 잠재적 환경 영향에 대한 우려로 대중의 지지를 얻었으나, 도체프 측이 소음과 먼지에 대한 추가 조치를 약속하고 설명을 진행하자 반대 여론은 점차 줄어들었다.[1][3] 그럼에도 히메이어는 2000년 11월, 공장 건설을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1][3] 당시 시 서기는 히메이어가 도체프 가족에게 개인적인 앙심을 품고 있으며, 토지 매각 협상 과정에서 점점 더 "터무니없는" 요구를 했다고 비판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하기도 했다.[1][3]
2001년 1월 9일, 히메이어는 공장 건설에 반대하는 대부분의 지지자를 잃었고, 시 공무원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공장 건설 계획을 승인했다.[3][1] 최종 승인은 같은 해 4월에 이루어졌다.[3] 히메이어는 공사로 인해 자신의 정비소 접근로가 막힐 것이라 주장하며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사건 담당 판사, 지역 언론인, 항공 사진 검토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3][7][8] 그는 또한 환경 보호국에 불만을 제기했고, 이로 인해 도체프 가족은 전문적인 소음 분석을 받아야 했다.[1]
같은 해 6월, 조 도체프는 히메이어에게 소송을 취하하면 새로운 콘크리트 공장까지 하수도관을 연결할 수 있는 권리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히메이어는 이를 거절하며 전화를 끊었다.[3] 이후 히메이어의 부지 내 하수 처리 시설에 문제가 생기자, 그는 가솔린 펌프를 이용해 하수를 부지 뒤편의 관개용 수로로 무단 방류했다.[3] 또한 이웃의 하수관에 불법적으로 연결하려다 발각되어 위생 구역에 보고되기도 했다.[3]
결국 2001년 7월, 시 당국은 히메이어에게 하수 문제 및 기타 시 조례 위반을 이유로 2500USD의 벌금을 부과했다.[3] 2001년 11월, 시 법원은 히메이어의 조례 위반을 인정하고, 2003년 7월까지 하수 문제를 해결하고 불법 시설물을 철거하라고 명령했다. 히메이어는 처음에는 동의했으나 곧 이를 거부하며 시의 요구를 "테러의 한 형태"라고 비난했다. 판결 당시 그의 변호사는 히메이어가 "이 곳 전체를 불도저로 밀어버릴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고 보고했다.[3]
3. 4. 하수도 문제 및 벌금
히메이어가 1992년 매입한 부지에는 이전 소유자가 남겨둔 기본적인 하수 저장 시설(매립된 시멘트 믹서)만 있었다.[3] 하수도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은 부지 매입 비용인 42000USD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3] 시 공무원들은 정화조 설치가 더 저렴한 대안이라고 알렸지만, 히메이어는 두 가지 선택 모두 거부하며 시가 하수관 연결 비용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정부의 강요"라고 주장했다.[3] 그는 결국 하수도 구역에 편입되었다.[3]2001년 6월, 콘크리트 공장을 짓던 조 도체프는 히메이어가 공장 건설 반대 소송을 취하하면, 공장까지 연결되는 하수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히메이어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다.[3] 이 시기에 히메이어의 하수 저장 시설로 쓰이던 시멘트 믹서 배럴이 가득 찼고, 그는 가솔린 펌프를 이용해 하수를 부지 뒤편의 관개용 수로로 퍼냈다.[3] 또한 이웃의 하수관에 불법적으로 연결하려다 발각되어 위생 구역에 신고되기도 했다.[3]
결국 하수도 구역은 법적 요건(하수관 연결 또는 정화조 설치)을 강제하기 시작했고, 2001년 7월, 설치 의무가 생긴 지 9년 만에 히메이어에게 하수 처리 문제 및 기타 시 조례 위반으로 2500USD의 벌금을 부과했다.[3] 2001년 11월, 히메이어는 시 법원에서 조례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2003년 7월까지 하수 문제를 해결하고 시멘트 트럭 배럴을 제거해야만 사업 목적으로 부지를 계속 사용하거나 거주할 수 있다는 명령을 받았다. 히메이어는 처음에는 동의했으나 당일 늦게 이를 거부하며 해당 요구를 "테러의 한 형태"라고 비난했다. 판결 당시 그의 변호사는 히메이어가 "이곳 전체를 불도저로 밀어버릴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고 보고했다.[3]
4. 킬도저 제작
히메이어는 그랜비 시 당국과의 구획 설정 분쟁에서 패소하자 복수를 결심했다.[1] 그는 2002년 7월 캘리포니아 경매에서 16000USD에 코마츠 D355A 불도저를 구입했다.[1][3] 이후 2003년 10월, 자신의 머플러 수리 사업장을 폐쇄하고 재산을 폐기물 처리 회사에 40만달러에 매각했다.[3][1]
히메이어는 매각한 건물 일부를 다시 임대하여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비밀리에 불도저 개조 작업에 몰두했다.[1] 약 1년 반에 걸쳐 진행된 이 작업을 통해 불도저는 강력한 파괴력을 갖춘 일종의 장갑차량으로 변모했다. 그는 조종석, 엔진, 궤도 일부를 강철과 콘크리트를 이용한 사제 복합장갑으로 보강했으며, 외부 시야 확보를 위한 비디오 카메라와 모니터 시스템, 그리고 외부 공격을 위한 총기 거치대 등을 설치했다.[1] 또한 최루탄 등에 대비한 NBC 방호 능력과 양압장치까지 갖추었다. 히메이어는 자신이 개조한 불도저에 "킬도저"라는 별명을 붙였으며, 한번 탑승하면 내부에서 문을 열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 자신의 결의를 다졌다.[1][3] 이 기간 동안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도저에 대해 이야기하며 파괴적인 목적을 암시하기도 했다.[3]
4. 1. 불도저 구입 및 개조
히메이어는 시 당국과의 구획 설정 관련 소송에서 패소하자 복수를 결심했다.[1] 그는 2002년 7월 캘리포니아로 가서 경매를 통해 16000USD에 코마츠 D355A 불도저를 구입하여 콜로라도주 그랜비로 운송했다.[1][3] 처음에는 사업장 밖에 "판매" 표지판을 붙여 되팔려 했으나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1][3] 2002년 10월 머플러 수리 사업 폐쇄를 발표한 후, 팔리지 않은 불도저를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라는 신의 징표로 여겼다.[3]2003년 10월, 히메이어는 자신의 재산을 폐기물 처리 회사에 400000USD에 매각했는데, 이는 원래 구매 가격의 약 10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그는 "어떤 작업을 끝낼 때까지"라는 조건으로 이전에 소유했던 건물의 절반을 임대하는 계약을 맺었다.[3][1] 그는 임대한 공간과 나머지 건물을 분리하기 위해 벽을 세우고 자물쇠를 바꿨다.[1] 이후 약 1년 반 동안 그는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며 비밀리에 불도저 개조 작업에 몰두했다. 작업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작업장 내에 불법적으로 마련한 공간에서 생활하기도 했다.[1] 그는 자신의 작업이 발각되지 않은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며 "이것은 1년 반 동안의 파트 타임 프로젝트였다"고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친구나 동료들에게 불도저에 대해 언급하며 파괴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것임을 암시하기도 했다.[3]

히메이어는 개조한 불도저를 "킬도저" 또는 "MK 탱크"(마브의 코마츠 탱크)라고 불렀다.[3] 그는 불도저의 조종석, 엔진, 그리고 궤도 일부를 사제 복합장갑으로 덮었다. 이 장갑은 여러 장의 공구용 강철판 사이에 5000-psi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것으로, 최대 두께가 30cm를 초과했다. 외부 시야 확보를 위해 여러 대의 비디오 카메라를 외부에 설치하고 조종석 내부의 모니터 2개에 연결했다. 카메라는 약 약 7.62cm 두께의 투명 방탄 렉산으로 보호되었으며, 먼지가 시야를 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압축 공기 노즐이 설치되었다.
외부 공격에 대비해 .50 구경 배럿 M82 대물저격총, FN FNC 소총, 루거 미니-14 소총 등을 장착할 수 있는 총구멍 세 개를 만들었으며, 각 총구멍은 약 1.27cm 두께의 강철판으로 방호되었다.[1] 조종석 내부는 최루탄 등 화학무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양압 장치와 NBC 방호 능력을 갖추었으며, 더운 날씨에 대비해 팬과 에어컨도 설치했다. 불도저 안에는 세 정의 권총과 일주일 분량의 식량 및 물도 준비되어 있었다.[1] 이 불도저는 히메이어가 죽음을 각오하고 설계한 것이었기에, 한번 탑승하면 내부에서는 절대로 문을 열고 내릴 수 없는 구조였다.
4. 2. 킬도저의 특징
마빈 히메이어가 개조한 불도저는 코마츠 사의 D355A 모델이었다. 그는 이 불도저를 "MK 탱크" 또는 "마브의 코마츠 탱크"라고 불렀다.[3]
개조된 불도저는 조종석, 엔진, 궤도 일부를 덮는 급조된 복합장갑을 장착했다. 이 장갑은 여러 장의 공구용 강철판 사이에 5000-psi 강도의 콘크리트를 주입하여 제작되었으며, 최대 두께는 30cm를 초과했다. 이러한 견고한 장갑 덕분에 3번의 외부 폭발과 200발 이상의 총탄에도 파괴되지 않았다.
완전히 밀폐된 조종석에서 외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외부에 여러 대의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하고 이를 조종석의 모니터 2개에 연결했다. 카메라 렌즈는 약 7.62cm 두께의 투명 방탄 플라스틱(렉산)으로 보호되었으며, 렌즈에 먼지가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에어컨과 연결된 압축 공기 노즐이 장착되었다.
외부를 향해 사격할 수 있도록 3개의 총안구가 마련되었다. 각 총안구에는 .50 BMG 구경 배럿 M82 대물저격총, .308 윈체스터 구경 FN FNC 반자동 소총, .22 롱 라이플 구경 루거 미니-14 소총이 각각 거치되었다.[1] 총안구는 약 1.27cm 두께의 강철판으로 방호되었다.
조종석 내부에는 에어컨과 선풍기가 설치되어 히메이어가 운전 중에도 비교적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외부의 최루탄과 같은 화학 공격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양압장치를 설치하고 NBC 방호 능력을 갖추었다.
이 불도저는 히메이어가 죽음을 각오하고 만든 것으로, 한번 탑승하면 내부에서는 문을 열 수 없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내부에는 일주일 분량의 식량과 물도 비축되어 있었다.[1]
5. 킬도저 난동
2004년 6월 4일, 마빈 히메이어는 자신이 개조하여 만든 장갑 불도저, 일명 '킬도저'를 몰고 콜로라도주 그랜비 시내에서 난동을 벌였다. 그는 사전에 자신과 원한 관계가 없는 시민들과 지인들에게 대피할 것을 알린 후[1], 시멘트 공장, 시청, 경찰서, 지역 신문사 건물 등 자신과 갈등을 겪었던 대상들의 건물 13채를 차례로 파괴했다.
경찰과 SWAT이 출동하여 저지를 시도했으나 킬도저의 방탄 장갑 때문에 총격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3] 콜로라도 주지사 빌 오웬스는 미국 육군 공격 헬리콥터나 대전차 미사일 투입까지 고려했으나, 민간인 피해 우려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난동은 히메이어가 갬블스 상점을 파괴하던 중 킬도저가 건물 지하실에 빠져 기동 불능 상태가 되면서[3][9] 약 2시간 만에 끝났다. 움직일 수 없게 된 히메이어는 킬도저 조종석 안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 사건으로 사망자나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남겼다.
5. 1. 범행 과정
2004년 6월 4일, 마빈 히메이어는 개조를 마친 불도저인 '킬도저'를 이용해 범행을 시작했다. 그는 먼저 자신과 원한 관계가 없는 시민들과 자신을 도왔던 지인들에게 대피하라고 알린 뒤[1], 자신의 정비소 옆에 있던 도체프 가족 소유의 마운틴 파크 시멘트 공장을 공격했다. 당시 공장에서는 코디 도체프가 작업을 하던 중 폭발 소식을 듣고 대응에 나섰다. 직원들은 불도저의 궤도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고, 코디 도체프는 권총을 발사하고 불도저에 올라타려 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이후 자신의 프론트 엔드 로더로 불도저를 공격했지만 이마저도 성공하지 못했으며, 이 과정에서 히메이어는 로더를 향해 여러 발의 총을 쏘았다.[1]현장에 도착한 보안관 대리와 콜로라도 주 경찰 순찰대원 역시 히메이어의 총격을 받았다. 경찰과 SWAT은 불도저의 카메라를 파괴하거나 제압하기 위해 총격을 가했지만, 약 7.62cm 두께의 방탄 플라스틱을 뚫지 못했다. 한때 히메이어는 경찰관들이 자리 잡은 사격 지점을 공격하기도 했다.[3][1] 부보안관 글렌 트레이너는 불도저 위에 올라타 제압 방법을 찾으려 했으나, 배기관에 섬광 수류탄을 투척하는 것도 효과가 없었고 결국 뛰어내려야 했다.[3] 히메이어가 차체 위에 뿌려 놓은 기름 때문에 더 이상 불도저에 올라타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멘트 공장을 파괴한 히메이어는 애게이트 애비뉴를 따라 시속 약 5mph의 속도로 시내 중심가로 향했다.[1] 당국은 역 911 시스템을 통해 주민들에게 대피를 요청했다. 이후 히메이어는 그란비 시청(당시 도서관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으나 직전에 대피 완료), 구역 위원회 위원이 근무하던 자유 저축 은행,[1] 지방 신문사인 스카이하이 사무실, 판사의 미망인 집, 톰슨 가족의 집과 직장 등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건물들을 차례로 파괴했다. 범행을 막기 위해 한 중장비 기사가 킬도저보다 더 큰 스크레이퍼를 몰고 정면 대결을 벌였으나 옆으로 밀려나며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킬도저의 라디에이터가 손상되어 증기를 뿜기 시작했다.[3]
히메이어는 다음으로 프로판 저장소를 표적으로 삼아 15발의 총알을 발사했다. 일부 탱크에는 30000USgal의 프로판이 들어있었기에, 경찰은 반경 약 0.80km 이내의 주민들을 긴급 대피시켜야 했다. 히메이어는 근처 변압기에도 총격을 가했으나, 탱크를 점화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 또 다른 스크레이퍼의 공격을 받았지만 이 역시 막아냈다.[3]
경찰이 발사한 200여 발의 총알이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자[1], 당시 콜로라도 주지사였던 빌 오웬스는 콜로라도 주방위군 육군의 AH-64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에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하거나, FGM-148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로 무장한 화력팀 투입을 고려했다. 그러나 그란비 중심부에서 미사일 공격으로 인한 잠재적 부수 피해가 히메이어가 불도저로 일으킬 피해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실제 투입은 보류되었다. (2011년까지 오웬스 주지사 참모진은 군사력 사용 고려를 부인했지만, 주 순찰대원들은 주지사가 승인을 고려했으나 부수 피해 우려로 반대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히메이어는 갬블스 상점을 공격했다. 건물을 부수던 중, 히메이어는 건물에 작은 지하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불도저의 궤도가 지하실에 빠지면서 기동 불능 상태가 되었다.[3] 설상가상으로 앞서 스크레이퍼와의 충돌로 손상된 라디에이터와 엔진 누수로 인해 불도저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3] 이때 이전에 킬도저를 막으려 했던 스크레이퍼 기사 중 한 명이 스크레이퍼를 이용해 킬도저의 후퇴로를 막았다.[9]
오후 4시 30분(MST)경,[1] 불도저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SWAT 대원 중 한 명이 조종석 내부에서 단 한 발의 총성을 들었다고 보고했다. 이후 히메이어가 .357 구경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찰은 부비 트랩을 우려해 처음에는 폭발물로 장갑판을 제거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산소 아세틸렌 절단 토치를 이용해 절단했다.[1] 다음 날인 6월 5일 오전 2시경, 당국은 히메이어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조종석 내부에서는 일주일 분량의 식량과 물이 발견되었다.[1][3]
5. 2. 진압 및 히메이어의 죽음
보안관 사무실과 콜로라도 주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히메이어는 그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경찰은 불도저의 카메라를 파괴하려 총격을 가했으나, 약 7.62cm 두께의 방탄 플라스틱을 뚫지 못했다. 한때 히메이어는 여러 주 순찰대원이 자리 잡은 사격 지점을 공격하기도 했다.[3][1] 부보안관 글렌 트레이너는 불도저 위에 올라타 "마치 로데오 선수처럼 그 '용'(불도저)에 올라타 약점을 찾아 총알을 쏠 지점을 찾으려 했다". 그는 불도저의 배기관에 섬광 수류탄을 떨어뜨렸으나 효과가 없었고, 결국 잔해를 피해 뛰어내려야 했다.[3]경찰은 불도저를 손상시킬 수 없었기에 대규모로 불도저를 따라다녔다. 스크레이퍼가 불도저를 막기 위해 투입되었지만 옆으로 밀려났다.[3] 히메이어가 프로판 저장소를 표적으로 삼아 총격을 가하자 경찰은 인근 주민들을 급히 대피시켜야 했다. 히메이어는 근처 변압기에도 총격을 가했지만, 탱크에 불을 붙이는 데는 실패했다. 보안관실은 만약 프로판 탱크가 폭발했다면 반경 약 0.80km 내의 모든 사람이 위험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 당국과 콜로라도 주 경찰은 경찰이 발사한 약 200발[1]의 총알이 효과가 없자 화력 부족을 우려했다. 콜로라도 주지사 빌 오웬스는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에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하거나,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팀 투입을 고려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2011년 오웬스 주지사 측은 이를 부인했으며, 주 순찰대원들은 미사일 공격으로 인한 부수 피해 우려 때문에 주지사가 승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히메이어는 마지막으로 갬블스 상점을 공격했다. 불도저가 건물을 파괴하며 진입하던 중, 이전에 투입되었던 스크레이퍼가 불도저의 후퇴를 막았다.[9] 히메이어는 해당 건물에 작은 지하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불도저의 궤도가 지하실에 빠지면서 기동 불능 상태가 되었다. 또한 라디에이터 손상과 엔진 누수로 인해 불도저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되었다.[3] 오후 4시 30분(MST)경,[1] 불도저를 포위하고 있던 SWAT 팀원 중 한 명이 조종실 내부에서 단 한 발의 총성을 들었다고 보고했다. 이후 히메이어가 .357 구경 권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찰은 부비 트랩을 우려하여 처음에는 폭발물로 강철판을 제거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산소-아세틸렌 절단 토치를 사용하여 절단했다.[1] 내부에서는 비상 탈출구와 일주일 분량의 식량 및 물이 발견되었다.[1][3] 당국은 다음 날인 6월 5일 오전 2시에 히메이어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사건 발생 2시간 7분 만에 상황은 종결되었으며, 그의 범행 전 대피 명령 덕분에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총 13채의 건물이 파괴되고 700만달러(당시 한화 약 63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6. 사건의 여파
마빈 히메이어의 불도저 난동은 그랜비 시에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남겼다. 약 2시간 동안 이어진 공격으로 시청을 포함한 다수의 건물이 파괴되었으며, 총 피해액은 7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다행히 히메이어 본인 외에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것이 의도된 결과인지 단순한 운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1] 사건 이후 히메이어가 사용한 개조 불도저는 '킬도저'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시 당국은 기념품 수집 등을 우려하여 불도저를 해체하여 폐기했다. 히메이어의 행동은 인터넷상에서 부패한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미화되기도 했으나, 그의 행동을 영웅시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또한 존재한다.[12]
6. 1. 피해 규모
마빈 히메이어의 난동은 2시간 7분 동안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총 13채의 건물이 파괴되거나 심하게 손상되었다. 이 중 11채는 파괴 직전까지 사용 중인 건물이었다. 다행히 히메이어가 범행 전 주변 사람들에게 대피를 유도한 덕분에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재산 피해는 막대했다. 총 피해액은 700만달러(당시 한화 약 6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파괴된 주요 건물 및 시설은 다음과 같다.
특히 콘크리트 공장은 피해액이 200만달러에 달했으나, 보험 가입 부족 문제로 인해 보험금은 70만달러만 지급되었다.[1] 또한 시청 건물이 파괴되면서 많은 시 기록과 기록 보관소 자료들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다.[1] 히메이어는 건물 외에도 자신의 사업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했던 지역 사업체 외부의 나무들을 파괴했으며,[3] 난동 과정에서 시청과 콘크리트 공장의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되고 트럭이 파손되는 등의 부가적인 피해도 발생했다.
인명 피해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는 히메이어가 의도적으로 인명 피해를 피하려 했다는 주장[10]과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보안관 부서의 반론[1]이 공존한다.
사건 이후 2005년 4월 19일, 그랜비 시 당국은 사람들이 기념품으로 불도저 파편을 가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 히메이어가 사용한 불도저를 폐기하여 여러 고철 처리장에 분산시켜 처리할 계획임을 발표했다. 이 개조된 불도저는 사건 이후 "킬도저"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것이 1944년 발표된 시어도어 스터전의 단편 소설 "킬도저!"나 이를 원작으로 한 1974년 TV 영화 제목에서 유래했는지, 아니면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신조인지는 명확하지 않다.[11]
6. 2. 킬도저 해체 및 사회적 반응
마빈 히메이어가 불도저 안에서 사망한 후, 그의 시신을 수습하는 데 12시간이 걸렸다. 이는 토치를 이용해 킬도저의 장갑을 절단하는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2005년 4월 19일, 그랜비 시 당국은 히메이어가 사용했던 불도저를 폐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 결정에는 히메이어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불도저의 잔해를 기념품으로 수집하거나, 심지어 역설계하여 모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 이를 위해 불도저의 부품들은 여러 고철 처리장으로 분산되어 처리되었다.
사건 이후 개조된 불도저는 '킬도저'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명칭이 1944년 발표된 동명의 단편 소설 킬도저!나 이를 각색한 1974년 영화에서 유래했는지, 아니면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신조어인지는 명확하지 않다.[11]
히메이어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히메이어가 난동 과정에서 인명 피해를 피하려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제빵업자 이안 도허티는 히메이어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했다.[10] 반면, 코디 도체프는 히메이어가 정말 인명 피해를 원치 않았다면 사람이 없는 주말을 이용했을 것이라고 반박했으며,[1] 보안관 부서 역시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히메이어의 의도보다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건 이후 인터넷상에서는 히메이어를 부패한 지방 정부와 관료주의에 맞서 싸운 영웅이나 반영웅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었다. 그의 행동을 일종의 시민 불복종 행위로 해석하는 지지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웅화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존재했다. 사건을 오랫동안 취재했으며 당시 현장에서 위험을 겪었던 기자 패트릭 브라우어는 히메이어를 영웅이나 순교자로 묘사하는 것에 반박하는 글을 썼다가 위협적인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밝혔다.[12]
7.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
2014년 개봉한 러시아 영화 리바이어던은 킬도저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13][14] 2017년 6월 11일에는 대한민국 문화방송(MBC)의 프로그램인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14] 2019년에는 마빈 히메이어의 행동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트레드가 공개되었다.
참조
[1]
간행물
Terror in Granby
http://www.theconcre[...]
Hanley Wood
2005-11-01
[2]
웹사이트
Marvin Heemeyer Wanted Revenge – So He Built A 'Killdozer'
https://allthatsinte[...]
2023-06-29
[3]
서적
KILLDOZER: The True Story of the Colorado Bulldozer Rampage
Wilcox Swanson LLC/ dba Deer Track Publishing
2017-01-01
[4]
웹사이트
Martyr Without a Cause
https://www.latimes.[...]
2023-07-02
[5]
웹사이트
Heemeyer's rage started during Grand Lake gambling furor; Hatred of newspaper predated town tiff
https://www.skyhinew[...]
2023-07-02
[6]
웹사이트
Audio: Hear from Marvin Heemeyer himself in recorded 'manifesto'
https://www.skyhinew[...]
2017-12-01
[7]
Video game
donoteat this Bonus Episode 2: Killdozer!
https://www.patreon.[...]
2018-10-12
[8]
웹사이트
Bogus Killdozer YouTube full of false facts
http://killdozerbook[...]
2023-06-29
[9]
Youtube
Destroyed in Seconds − Bulldozer Rampage
https://www.youtube.[...]
2008-11-10
[10]
뉴스
Armed Colorado man in bulldozer goes on rampage
https://www.morningj[...]
MediaNews Group
2004-06-05
[11]
웹사이트
They are asking again: Why is it called KILLDOZER?
http://killdozerbook[...]
2024-05-27
[12]
웹사이트
The Strange Story of 'Killdozer' and the Man Behind It
https://history.hows[...]
2023-06-29
[13]
웹사이트
'Если больше нет юродивых, кто скажет о беззаконии и лжи?'
https://www.kommersa[...]
2024-09-13
[14]
뉴스
'서프라이즈', 미국 콜로라도주에 등장한 킬도저... 숨겨진 사연은??
http://tenasia.hanky[...]
텐아시아
201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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