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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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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매드체스터는 1980년대 후반 영국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일어난 음악 운동으로, 댄스 음악, 레이브 문화, 마약 유행과 록 음악을 결합하여 개방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음악성을 추구했다. 더 스톤 로지스, 해피 먼데이스, 더 샬라탄스 등이 대표적인 밴드이며, 팩토리 레코드와 같은 레이블이 이 운동을 이끌었다. 매드체스터는 짧은 기간 동안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오아시스, 블러, 라디오헤드 등 이후 영국 음악 씬에 큰 영향을 미친 밴드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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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체스터
음악 스타일 및 문화
활동 기간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
지역잉글랜드, 맨체스터
주요 인물더 스톤 로지스
해피 먼데이스
인스파이럴 카펫츠
더 찰라탄스
제임스
808 스테이트
영향세컨드 썸머 오브 러브
애시드 하우스
인디 록
사이키델리아
영향 받은 장르브릿팝
얼터너티브 댄스
일렉트로닉 록
관련 용어배기
장르 개요
스타일얼터너티브 록
인디 록
댄스 록
네오 사이키델리아
추가 정보
설명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일어난 음악 및 문화 운동

2. 역사

매드체스터는 1980년대 후반 영국 맨체스터에서 시작된 음악 및 문화 운동이다. 레이브 문화와 마약의 유행이 댄스 음악의 부상과 맞물리면서, 록 음악계에서도 개방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음악성을 지향하는 밴드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레이브와 마찬가지로 공동체 의식을 중시하며 아티스트와 관중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제는 (무대 위의 밴드가 아니라) 오디언스의 시대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61]

이러한 움직임은 세컨드 서머 오브 러브의 영향을 받았으며, 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댄스 음악의 발전과도 관련이 깊다. 음악적으로는 전통적인 록 형식을 취하면서도 하우스의 4비트 비트를 도입하여 "오디언스가 춤출 수 있는지"를 중시했다.

팩토리 레코드와 같은 레이블이 이러한 음악성 발전에 기여했으며, 더 스톤 로지스,[61] 해피 먼데이스, 더 샬라탄스 (UK) 등이 대표적인 밴드로 꼽힌다.

매드체스터는 다른 장르의 부상과 침체되어 있던 UK 씬을 끌어올리는 과장된 인상을 주면서 단명했지만, 이후 오아시스, 블러, 라디오헤드 등 많은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2. 1. 프리 매드체스터 (Pre-Madchester)

더 스미스, 뉴 오더, 더 폴은 매드체스터 시대 직전의 맨체스터 음악계를 주도했으며, 이들은 매드체스터 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팩토리 레코드가 주도하여 1982년 5월에 개장한 더 하시엔다 나이트클럽도 맨체스터의 대중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초기에는 주로 클럽 지향적인 팝 음악을 선보였으며, 뉴 오더, 카바레 볼테르, 컬처 클럽, 톰슨 트윈스, 더 스미스 등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개최했다. 휴언 클라크, 그렉 윌슨과 같은 DJ들이 클럽의 명성에 기여했다. 1986년까지 더 하시엔다는 라이브 공연장보다는 댄스 클럽으로 초점을 전환했다.[14]

1986년 7월, 팩토리 레코드가 주최한 제10회 여름 축제는 맨체스터가 대안 팝 문화의 중심지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이 축제는 영화 상영, 음악 세미나, 미술 전시회와 함께 맨체스터 G-Mex에서 열린 어 서튼 레이쇼, 더 스미스, 뉴 오더, 더 폴의 종일 콘서트 등 도시의 주요 밴드들의 공연을 선보였다. 데이브 해슬람에 따르면, 이 축제는 "도시가 최첨단 음악을 연주하는 개성 넘치는 인물들과 동의어가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 개인들은 영감을 얻었고 도시는 활력을 얻었다. 자발적으로, 통제되지 않게."[15]

이러한 장소와 행사 외에도 스티브 아지가 조직한 창고 파티는 이 음악 씬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톤 로지스의 창고 파티는 1985년에 처음 열렸으며, DJ 데이브 부스가 스톤 로지스의 라이브 공연을 지원하면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1985년 7월 20일에 열린 "창고 1, 더 플라워 쇼" 행사를 포함한 이 파티들은 밴드의 팬덤을 구축하고 맨체스터에서 싹트고 있는 음악 씬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6] 부스는 맨체스터 음악계에 영향력 있는 DJ였다.[17][18] 그는 플레이펜 나이트와 블러드 클럽을 공동으로 만들었으며, 맨체스터의 대안 클럽 네트워크에서 여러 주요 장소의 레지던트 DJ였다. 그는 핍스의 록시 룸에서 경력을 시작했고[19] 데빌스, 베를린, 클라우드 9, 레전드와 같은 다른 클럽에서 공연하며 맨체스터의 대안 음악 씬의 성장을 촉진하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스톤 로지스를 포함한 도시의 신흥 밴드들은 이러한 클럽을 자주 찾았고 DJ들이 연주하는 다양한 음악에서 영감을 얻었다.[18]

1987년, 하시엔다는 하우스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으며, DJ 마이크 피커링, 그레이엄 파크, "리틀" 마틴 프렌더개스트가 금요일에 "누드 나이트"를 진행했다.[20] 하시엔다는 지속적인 손실에서 벗어나 1987년 초에는 매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21] 그 해, 프랭키 너클스와 아도니스와 같은 미국의 하우스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개최했다.[22]

맨체스터 지역의 다른 클럽들도 하우스 음악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시내의 데빌스, 이사도라스, 콘스피러시, 하우스, 사운드가든스, 맨 얼라이브뿐만 아니라 애시턴 언더 라인의 벅시스와 마일스 플래팅의 오스본 클럽이 포함되었다. 매드체스터의 부상에 또 다른 주요 요인은 1987년에 시작되어 이듬해에 증가한 MDMA 마약의 갑작스러운 등장이었다.[23] 해슬람에 따르면, "[MDMA] 사용은 클럽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하시엔다에서의 밤은 멋진 밤 외출에서 강렬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경험으로 바뀌었다."[24]

영국 음악 씬은 그 당시 가디언이 나중에 "80년대는 음악적 굴욕으로 끝날 운명이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25]

2. 2. 태동기 (Beginnings)

1988년 10월, 스톤 로지스는 싱글 "엘리펀트 스톤"을 발매했다. 같은 시기에 해피 먼데이스는 싱글 "Wrote for Luck"을 발매했고, 그 뒤를 이어 마틴 해넷이 프로듀싱한 앨범 ''범드''가 발매되었다. 11월에는 어 가이 콜드 제럴드가 첫 솔로 싱글 "부두 레이"를 발매했다. "부두 레이"만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해 12월에는 영국 음악 언론에서 이 도시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감지되기 시작했다.[27] 숀 오'해건은 ''NME''에 기고하며 "특정 북부 도시들, 특히 맨체스터가 정신 확장을 위한 화학 물질을 소량 투여한 물로 공급받고 있다는 상당히 신빙성 있는 음악 비즈니스 루머이자 이론이 있다."라고 썼다.[27]

스톤 로지스는 전국 투어를 하면서 팬층을 넓혀갔고, 1989년 2월에는 싱글 "메이드 오브 스톤"을 발매했다.[28] 이 싱글은 차트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들이 3월에 데뷔 앨범 ''더 스톤 로지스'' (존 레키 프로듀싱)를 발매하면서 음악 언론의 밴드에 대한 열광은 더욱 고조되었다. 밥 스탠리 (후에 생 에티엔)는 ''멜로디 메이커''에서 스톤 로지스 앨범을 리뷰하며 "이것은 내가 음반을 구입하는 동안 들었던 최고의 데뷔 앨범이다."라고 썼다.[29] ''NME''는 "역대 최고의 앨범"으로 회자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존 롭은 ''사운즈''에서 이 앨범에 10점 만점에 9점을 주며 스톤 로지스가 "영국 팝을 혁신했다"고 말했다.

맨체스터의 클럽 장면은 1988년과 1989년 동안 계속 성장했으며, 1988년 여름에 하시엔다가 이비자 테마의 밤을 시작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마이크 피커링과 존 다시바가 주최하는 "핫" 애시드 하우스 밤이 열렸다.[1]

당시 댄스 음악의 부상과 함께 레이브 문화와 마약의 유행과 맞물려, 록 분야에서도 개방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음악성을 지향하는 밴드와, 그것을 향유하는 다수의 팬이 발생했다. 이러한 밴드는 레이브와 마찬가지로 공동체 의식 아래, 아티스트와 관중의 상하 관계나 장벽을 허무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이제는 (무대 위의 밴드가 아니라) 오디언스의 시대다"라고도 불렸다. 동시대의 세컨드 서머 오브 러브의 영향을 받았으며, 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댄스 음악의 발전과도 크게 관련되어 있다. 음악적으로는 전통적인 록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하우스의 4비트 비트를 도입하여 "오디언스가 춤출 수 있는지"라는 기능성을 중시했다.

이 음악성의 발전에 기여한 레이블로는 팩토리 레코드 등이 있으며, 대표적인 밴드로는 더 스톤 로지스[61]나 해피 먼데이스, 더 샬라탄스 (UK) 등이 알려져 있다.

2. 3. 배기 (Baggy)

"배기" 사운드는 일반적으로 펑크, 사이키델리아, 기타 록, 하우스 음악을 결합한다. 맨체스터의 맥락에서 이 음악은 1980년대 도시의 음악계를 지배했던 인디 음악의 영향을 주로 받았으며, "더 해시엔다" 나이트클럽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영향도 흡수했다. 음악과 함께, 배기라는 이름을 붙여준 독특한 스타일의 옷차림이 등장했다. 배기 진(종종 나팔바지, 일반적으로 샤미 아흐메드의 '조 블로그' 브랜드에서 제작)[30][31][32]와 밝은 색상의 또는 타이 다이 캐주얼 상의, 그리고 전반적인 1960년대 스타일은 맨체스터에서 처음 유행한 후 전국으로 퍼져나갔다.[33] 이 스타일은 종종 더 스톤 로지스의 드러머 앨런 "레니" 렌이 착용한 스타일의 낚시 모자로 완성되었다. 전반적인 스타일은 레이브, 레트로, 히피, 그리고 축구 캐주얼의 혼합이었다. 많은 매드체스터 밴드들은 축구 캐주얼 팬들을 가지고 있었고, 몇몇 밴드들은 심지어 축구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34]

당시 댄스 음악의 부상과 함께 레이브 문화와 마약의 유행과 맞물려, 록 분야에서도 개방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음악성을 지향하는 밴드와, 그것을 향유하는 다수의 팬이 발생했다. 이러한 밴드는 레이브와 마찬가지로 공동체 의식 아래, 아티스트와 관중의 상하 관계나 장벽을 허무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이제는 (무대 위의 밴드가 아니라) 오디언스의 시대다"라고도 불렸다. 동시대의 『세컨드 서머 오브 러브』라고 불리는 무브먼트의 영향을 받았으며, 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댄스 음악의 발전과도 크게 관련되어 있다. 음악적으로는 전통적인 록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하우스의 4비트 비트를 도입하여 "오디언스가 춤출 수 있는지"라는 기능성을 중시했다.

이 음악성의 발전에 기여한 레이블로는 팩토리 레코드 등이 있으며, 대표적인 밴드로는 더 스톤 로지스[61], 해피 먼데이스, 더 샬라탄스 (UK) 등이 알려져 있다.

3. 음악적 특징

레이브 문화와 마약 유행이 맞물려 록 음악에서도 개방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음악성을 지향하는 밴드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레이브처럼 공동체 의식을 중시하며 아티스트와 관중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제는 (무대 위의 밴드가 아니라) 오디언스의 시대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61] 동시대의 세컨드 서머 오브 러브 무브먼트의 영향을 받았으며, 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댄스 음악의 발전과도 관련이 깊다. 음악적으로는 전통적인 록 형식을 취하면서도 하우스의 4비트 비트를 도입하여 "오디언스가 춤출 수 있는지"를 중시했다.

이러한 음악성 발전에 기여한 레이블로는 팩토리 레코드 등이 있으며, 대표적인 밴드로는 더 스톤 로지스,[61] 해피 먼데이스, 더 샬라탄스 등이 있다.

매드체스터는 다른 장르의 부상과 침체되었던 UK 씬을 끌어올리는 과장된 인상을 주기도 하면서, 무브먼트 자체는 단명했다. 하지만 이후 UK 씬에서 활약한 오아시스, 블러, 라디오헤드 등 많은 밴드들이 이 무브먼트를 거쳐갔으며, 후배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4. 주요 밴드

밴드 이름
더 스톤 로지스
더 찰라탄스
해피 먼데이스
인스파이럴 카펫츠
뉴 오더
더 팜
어 가이 콜드 제럴드
제임스
소울 II 소울
월드 오브 트위스트
808 스테이트
히프노톤
2 포 조이
캔디 플립
레일웨이 칠드런


5. 전성기와 상업적 성공

1988년 10월, 스톤 로지스는 싱글 "엘리펀트 스톤"을 발매했고, 해피 먼데이스는 싱글 "Wrote for Luck"과 앨범 ''범드''를 발매했다. 같은 해 11월, 어 가이 콜드 제럴드는 "부두 레이"를 발매했다. 1989년 2월, 스톤 로지스는 싱글 "메이드 오브 스톤"을 발매했고, 3월에는 데뷔 앨범 ''더 스톤 로지스''를 발매하여 음악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28][29]

1989년 중반, 맨체스터 씬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높아졌다. 같은 해 9월, 해피 먼데이스는 "Wrote for Luck" 리믹스 버전을 발매했다. 11월에는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Move", 808 스테이트의 "Pacific State", 해피 먼데이스의 EP ''Madchester Rave On'', 스톤 로지스의 "Fools Gold/What the World is Waiting For" 등 네 개의 중요한 싱글이 발매되었다. 해피 먼데이스의 EP는 "매드체스터(Madchester)"라는 용어를 대중화시켰다.[35] 1989년 11월 23일, 스톤 로지스와 해피 먼데이스는 ''Top of the Pops''에 함께 출연했다. "Fools Gold"는 UK 싱글 차트에서 8위에 오르며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인디 싱글이 되었다.[36]

스튜어트 매코니에 따르면, 영국 언론은 "맨체스터 밴드에 미쳐 있었다".[37] 제임스는 싱글 "Come Home"과 "Sit Down"의 성공으로 폰타나 레코드와 계약했고, 1990년 "How Was It for You"와 "Come Home" 재녹음 버전으로 차트 히트를 기록했다. 더 찰라탄스는 1989년 10월 데뷔 싱글 "Indian Rope"를 발매했고, "The Only One I Know"는 UK 10위 안에 들었다. 월드 오브 트위스트, 뉴 패스트 오토매틱 다포딜스, 더 하이, 노스사이드, 파리 앤젤스, 인타스텔라 등도 주목받았다.[38] 1990년 ''뉴스위크''는 "미친 듯한 매드체스터"라는 기사를 통해 매드체스터 신을 묘사했다.[39]

해피 먼데이스의 "Step On"과 "Kinky Afro"는 싱글 차트 5위에 올랐고, 제임스는 "Sit Down" 재녹음 버전으로 1991년 2위를 기록했다. 앨범 차트에서는 해피 먼데이스의 ''Pills 'n' Thrills and Bellyaches''가 4위,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Life''가 2위, 더 찰라탄스의 ''Some Friendly''가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서는 ''The Stone Roses'', ''Pills 'n' Thrills and Bellyaches'', ''Some Friendly'' 앨범이 미국 앨범 차트 하위권에 진입했다. 더 스톤 로지스, 인스파이럴 카펫츠, 해피 먼데이스, 더 찰라탄스의 여러 싱글이 모던 록 트랙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해피 먼데이스는 "Step On"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 57위에 올랐고, "Kinky Afro"로 모던 록 트랙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더 찰라탄스의 "Weirdo"도 모던 록 트랙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매드체스터는 레이브 문화와 마약 유행과 맞물려, 록 음악에서도 개방적이고 쾌락주의적인 경향을 띠는 밴드와 팬들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레이브처럼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며 아티스트와 관객의 장벽을 허무는 것을 목표로 했다.[61] 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댄스 음악의 발전과도 관련이 깊으며, 팩토리 레코드 등의 레이블이 이 흐름에 기여했다. 더 스톤 로지스, 해피 먼데이스, 더 샬라탄스 등이 대표적인 밴드로 꼽힌다.

매드체스터는 UK 씬을 부흥시켰지만, 과장된 인상과 다른 장르의 부상으로 인해 단명했다. 그러나 오아시스, 블러, 라디오헤드 등 후배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6. 쇠퇴

1990년 5월 27일, 스톤 로지스는 위드네스의 스파이크 아일랜드에서 공연을 열었고, 이는 "우드스톡 for the E 세대"로 묘사되었다.[44] 그해 여름, 스톤 로지스의 "원 러브",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This Is How It Feels", 더 찰라탄스의 "The Only One I Know", 해피 먼데이스의 "Kinky Afro" 등이 연이어 차트에서 히트했다. 연말에는 제임스의 성공적인 콘서트와 해피 먼데이스, 808 스테이트의 합동 공연이 맨체스터 G-Mex에서 개최되었다.

스톤 로지스는 1990년 6월 "미국은 아직 우리를 받을 자격이 없다"며 미국 투어를 취소했다.[4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데뷔 앨범은 그해 미국에서 35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밴드는 스페인 공연과 영국의 토크쇼 ''Wogan'' 출연도 취소했다. 그들은 1994년 말까지 다시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동안 실버톤 레코드와의 계약에서 벗어나기 위한 법정 투쟁을 벌였다.

해피 먼데이스의 다음 앨범 ''예스 플리즈!'' 제작 또한 어려움을 겪었고, 1992년 10월에야 발매되었다. 밴드는 녹음을 위해 바베이도스로 갔는데, 폴 라이더에 따르면 "크랙에 미쳤다."[46] 그들은 팩토리 레코드에 추가 시간과 자금을 반복적으로 요청했고, 이는 1992년 11월 레이블 파산의 주요 요인으로 여겨진다.[47]

두 밴드가 활동을 중단하면서 매드체스터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은 줄어들었다. 제임스, 인스파이럴 카펫츠, 찰라탄스, 808 스테이트는 1990년대 내내 계속 녹음했지만, 더 이상 지역 씬의 일부로 여겨지지 않았다. 더 목 터틀스와 같은 밴드들은 더 넓은 배기 운동의 일부가 되었다. 영국의 음악 언론은 잉글랜드 남부의 슈게이징 밴드와 미국의 그런지 장면에 초점을 맞추었고, 결국 맨체스터의 오아시스와 런던의 블러와 같은 브릿팝 밴드에 의해 대체되었다.

매드체스터는 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댄스 음악의 발전과 관련이 깊었고, "오디언스가 춤출 수 있는지"라는 기능성을 중시했다. 팩토리 레코드 등이 이 음악성 발전에 기여했으며, 더 스톤 로지스,[61] 해피 먼데이스, 더 샬라탄스 등이 대표적인 밴드로 알려져 있다.

매드체스터는 다른 장르의 부상과 과장된 인상으로 인해 단명했지만, 오아시스, 블러, 라디오헤드 등 많은 밴드에게 영향을 주었다.

7. 유산

당시 댄스 음악의 부상과 레이브 문화, 마약 유행이 맞물리면서, 록 분야에서도 개방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음악성을 지향하는 밴드와 팬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러한 밴드들은 레이브와 마찬가지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아티스트와 관중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이제는 (무대 위의 밴드가 아니라) 오디언스의 시대다"라고도 불렸다. 동시대의 세컨드 서머 오브 러브 무브먼트의 영향을 받았으며, 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댄스 음악의 발전과도 크게 관련되어 있다. 음악적으로는 전통적인 록 형식을 취하면서도, 하우스의 4비트 비트를 도입하여 "오디언스가 춤출 수 있는지"를 중시했다.

이러한 음악성 발전에 기여한 레이블로는 팩토리 레코드 등이 있으며, 대표적인 밴드로는 더 스톤 로지스[61], 해피 먼데이스, 더 샬라탄스 (UK) 등이 있다.

매드체스터는 다른 장르의 부상과 함께, 침체되어 있던 UK 씬을 끌어올리는 과장된 인상을 리스너에게 주기도 하면서, 무브먼트로는 단명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후 UK 씬에서 활약한 오아시스, 블러, 라디오헤드 등 많은 밴드들은 이 무브먼트를 거쳤으며, 후배 밴드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도 한다.

7. 1. 음악적 유산

매드체스터는 영국에서 배기 운동을 촉발시켰고, 1990년대 초 여러 지역 밴드들이 매드체스터 밴드들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제작했다. 여기에는 Flowered Up(런던), The Farm과 the Real People(리버풀), the Bridewell Taxis(리즈), the Soup Dragons(글래스고), Ocean Colour Scene(버밍엄) 등이 포함된다. Blur(콜체스터)는 초기에 배기 스타일을 채택했지만, 1991년 ''Select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이 장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48] Blur는 1990년대 내내 맨체스터 출신의 브릿팝 밴드인 오아시스와 라이벌 관계를 맺었다.[49]

매드체스터 시대에 맨체스터에서 결성된 밴드로는 the Chemical Brothers, the Verve, Sub Sub(나중에 Doves가 됨), Oasis(노엘 갤러거는 로드 매니저였다)가 있었다. 매드체스터 씬은 전자 댄스 음악과 얼터너티브 록을 결합했는데, 특히 펑크디스코 음악의 드럼 스타일(그리고 80년대 힙합 음악에서 샘플링됨)과 징글 팝 기타의 융합이 두드러졌다. 1990년대에는 이것이 표준적인 공식이 되었으며, 심지어 가장 상업적인 음악에서도 흔히 발견되었다.

매드체스터 운동 이후 이 시대 최고의 노래를 결정하기 위한 투표가 여러 차례 실시되었다. 2005년, A Guy Called Gerald의 "Voodoo Ray"가 매드체스터 씬 최고의 곡으로 선정되었다.[50] 이 곡은 해피 먼데이스의 "Step On"과 스톤 로지스의 "Waterfall"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50]

2010년, 뉴 오더의 피터 훅이 운영하는 새로운 나이트클럽 FAC251이 맨체스터에 문을 열었으며, 매드체스터 음악에 중점을 두었다.[51][52] 매드체스터 씬은 1990년대 중반에 사라졌지만, 여러 밴드들이 일회성 콘서트 투어를 위해 재결합했다. 2012년에 재결합한 주목할 만한 밴드로는 스톤 로지스, 해피 먼데이스, 인스파이럴 카펫츠가 있다.[53]

''The Guardian''의 평론가 페니 앤더슨은 이 씬을 "공격적으로 마케팅된 평범함의 온상"이라고 묘사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54]

매드체스터 씬의 사운드는 U2의 전자 및 댄스 음악의 영향을 받은 앨범 ''Achtung Baby''에 영향을 미쳤다. ''Rolling Stone''의 엘리사 가드너는 앨범의 댄스 비트를 기타 중심의 믹스에 레이어링한 것을 영국 밴드 해피 먼데이스와 Jesus Jones의 노래와 비교했다. "Mysterious Ways"는 펑키한 기타 리프를 댄스 가능한 콩가 리듬과 결합했는데,[55] 보노는 이를 "U2가 가장 펑키한... Sly and the Family Stone가 매드체스터 배기를 만나는" 곡이라고 묘사했다.[56] 또한 the Cure의 곡 "Never Enough"에도 영향을 미쳤다.[57]

당시 댄스 음악의 부상과 레이브 문화, 마약의 유행과 맞물려, 록 분야에서도 개방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음악성을 지향하는 밴드와 팬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러한 밴드는 레이브와 마찬가지로 공동체 의식 아래, 아티스트와 관중의 상하 관계나 장벽을 허무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이제는 (무대 위의 밴드가 아니라) 오디언스의 시대다"라고도 불렸다. 동시대의 『세컨드 서머 오브 러브』 무브먼트의 영향을 받았으며, 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댄스 음악의 발전과도 크게 관련되어 있다. 음악적으로는 전통적인 록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하우스의 4비트 비트를 도입하여 "오디언스가 춤출 수 있는지"라는 기능성을 중시했다.

이러한 음악성 발전에 기여한 레이블로는 팩토리 레코드 등이 있으며, 대표적인 밴드로는 더 스톤 로지스[61], 해피 먼데이스, 더 샬라탄스 (UK) 등이 알려져 있다.

매드체스터는 타 장르의 부상과 함께, 침체되어 있던 UK 씬을 끌어올리는 과장된 인상을 리스너에게 주기도 하면서, 무브먼트로는 단명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후 UK 씬에서 활약한 오아시스, 블러, 라디오헤드 등 많은 밴드는 세대적으로 이 무브먼트를 거쳤으며, 후배 밴드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도 한다.

7. 2. 맨체스터에 미친 영향

매드체스터는 맨체스터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전에는 더 스미스, 뉴 오더, 더 폴이 주도했으나, 매드체스터 운동으로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팩토리 레코드가 1982년에 개장한 더 하시엔다 나이트클럽은 초기에는 클럽 음악과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선보였고, 1986년부터는 댄스 클럽으로 변화하며 맨체스터 대중문화 형성에 기여했다.[14]

1986년 7월, 팩토리 레코드가 주최한 제10회 여름 축제는 맨체스터가 대안 팝 문화의 중심지임을 보여주었다. 이 축제는 도시의 주요 밴드들의 공연과 함께 영화 상영, 음악 세미나, 미술 전시회 등을 선보였다.[15] 데이브 해슬람은 이 축제가 "도시가 최첨단 음악을 연주하는 개성 넘치는 인물들과 동의어가 되었음을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했다.[15]

스티브 아지가 조직한 창고 파티도 음악 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톤 로지스의 창고 파티는 1985년에 처음 열렸으며, DJ 데이브 부스가 참여하여 밴드의 팬덤을 구축하고 맨체스터 음악 씬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16] 부스는 맨체스터의 여러 클럽에서 레지던트 DJ로 활동하며 대안 음악 씬 성장에 기여했다.[18]

1987년, 하시엔다는 하우스 음악을 도입하고, 마이크 피커링 등의 DJ들이 "누드 나이트"를 진행하며 인기를 얻었다.[20] 프랭키 너클스와 같은 미국의 하우스 아티스트들도 공연했다.[22] 데빌스, 이사도라스 등 다른 클럽들도 하우스 음악을 수용했다. 1987년에는 MDMA 마약이 등장하여 클럽 문화를 변화시켰다.[23] 해슬람은 "[MDMA] 사용은 클럽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라고 언급했다.[24]

당시 영국 음악 씬은 침체되어 있었으나,[25] 매드체스터 운동은 신선하고 혁신적인 사운드로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26] 스톤 로지스와 해피 먼데이스 등의 음악은 1989년에 높은 순위에 올랐고, 뉴 오더는 애시드 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앨범 ''테크닉''으로 영국 음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매드체스터는 맨체스터의 밤문화, 특히 게이 빌리지와 노던 쿼터 발전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시내 거주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이 추세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58] 1990년에는 맨체스터 대학교가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학이 되었다.

매드체스터는 도시의 미디어 및 창작 산업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채널 4의 ''더 워드''와 BBC의 ''The 8:15 from Manchester'' 등이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조직 범죄도 증가했다. 클럽 문화와 엑스터시의 인기는 갱스터리즘을 위한 환경을 조성했다. 더 아시엔다에서의 폭력 사건은 그레이터 맨체스터 경찰의 폐쇄 운동으로 이어졌고, 1997년 클럽은 폐쇄되었다.[59]

1990년대 후반, 맨체스터 음악 명예의 거리가 노던 쿼터에 조성되어 스톤 로지스, 해피 먼데이스 등 밴드들을 기렸다.[60] 블루 플래크는 매드체스터 시대의 중심적인 클럽이었던 더 보드워크의 부지를 표시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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