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너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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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매리너 1호는 1962년 7월 22일 발사된 미국 최초의 금성 탐사선으로, 냉전 시대 우주 경쟁의 일환으로 개발되었다. 아틀라스-아게나 로켓에 실려 발사되었으나, 유도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발사 5분 만에 자폭했다. 이 실패는 유도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오류, 특히 하이픈 누락으로 인한 문제로 발생했으며, NASA에 1,850만 달러의 손실을 입혔다. 매리너 1호의 실패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이후 매리너 2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금성 탐사에 성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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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너 7호는 매리너 6호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며, 텔레비전 영상과 과학 데이터를 기록하고 전송하는 탐사선이다.
매리너 1호 |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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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 유형 | 금성 플라이바이 |
운영 기관 | NASA / JPL |
임무 기간 | 22 Jul 1962 09:21:23 - 22 Jul 1962 09:26:17 궤도 진입 실패 |
우주선 종류 | 레인저 블록 I |
제조사 | 제트 추진 연구소 |
발사 | |
발사일 | GMT |
발사 로켓 | 아틀라스 LV-3 아제나-B |
발사 장소 | 케이프커내버럴, LC-12 |
폐기 방식 | 발사 실패 |
파괴 | GMT |
프로그램 | |
프로그램 | 매리너 계획 |
다음 임무 | 매리너 2호 |
추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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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적 배경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군사, 기술, 정치적 우위를 과시하기 위해 우주 경쟁을 벌였다.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미국은 1958년 익스플로러 1호로 대응했다.
달 탐사 이후, 두 나라는 행성 탐사로 목표를 돌렸고,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금성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금성과 지구는 19개월마다 최소한의 연료로 이동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다.
1962년 여름, NASA는 제트 추진 연구소(JPL)에 "매리너 A"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센타우르 로켓 개발이 지연되자, JPL은 아틀라스-아게나 로켓을 사용하는 더 가벼운 "매리너 R"을 제안했고, NASA는 이를 승인했다. 매리너 1호는 "매리너 R" 계획의 첫 번째 탐사선이었다.
2. 1. 냉전과 우주 경쟁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군사, 기술, 정치적 우위를 과시하기 위해 우주 개발 경쟁을 벌였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며 우주 경쟁의 시작을 알렸다. 미국은 1958년 2월 1일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하며 경쟁에 참여했다.지구 궤도 경쟁 이후, 두 나라는 달 탐사에 집중하였다. 1959년 초, 소련의 루나 1호는 달을 지나간 최초의 탐사선이 되었고, 루나 2호는 달에 충돌한 최초의 인공 물체가 되었다.
달 탐사 이후, 미국과 소련은 행성 탐사로 목표를 전환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인 금성은 매력적인 탐사 대상이었다. 금성과 지구는 19개월마다 최소한의 연료로 이동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는데, 이 시기가 탐사선을 발사하기에 가장 적합했다.
1962년 여름, NASA는 제트 추진 연구소(JPL)에 "매리너 A"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센타우르 로켓 개발 지연으로 인해, JPL은 아틀라스-아게나 로켓을 사용하는 더 가벼운 우주선으로 임무를 수행할 것을 제안했다. NASA는 이 제안을 수락했고, JPL은 레인저 달 탐사선을 기반으로 한 "매리너 R" 개발에 착수했다. 매리너 1호는 최초로 발사된 매리너 R이었다.
2. 2. 금성 탐사의 시작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우주 경쟁을 벌였다.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미국은 1958년 익스플로러 1호로 대응했다. 달 탐사 이후, 지구와 가장 가까운 금성이 새로운 목표로 떠올랐다.금성은 지구와 19개월마다 가까워져 우주선을 보내기 유리한 시기가 찾아온다. 1961년 초, 소련은 베네라 1호를 발사했으나 통신 두절로 실패했다.
1962년 여름, NASA는 제트 추진 연구소(JPL)에 아틀라스-센타우르 로켓을 이용하는 "매리너 A" 개발을 의뢰했다. 그러나 센타우르 개발이 늦어지면서, JPL은 아틀라스-아게나 로켓을 사용하는 더 가벼운 "매리너 R"을 제안했고, NASA는 이를 승인했다. 매리너 1호는 이 "매리너 R" 계획의 첫 번째 탐사선이었다.
3. 우주선
매리너 1호는 약 41842840.00k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지구로 데이터를 전송하고, 지구 궤도에서보다 2배 더 강렬한 태양 방사선 환경에서 생존해야 했다. 세 대의 매리너 R 우주선이 제작되었는데, 두 대는 발사용, 한 대는 시험 및 예비용으로 사용되었다.
3. 1. 구조
매리너 1호는 육각형 본체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펼쳐졌을 때 약 3.66m 높이, 약 5.03m 너비의 두 개의 태양 전지 패널 "날개"가 달려 있었다. 본체 안에는 전자 및 전기 기계 장비를 위한 6개의 개별 케이스가 있었다.
- 두 개의 케이스는 전력 시스템으로, 9800개의 태양 전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약 15.10kg의 충전 가능한 1000와트 은-아연 축전지로 조절하고 전송하는 개폐기가 있었다.
- 다른 두 케이스에는 무선 수신기, 3-와트 송신기, 실험 제어 시스템이 포함되었다.
- 다섯 번째 케이스에는 실험에서 수신한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장치가 있었다.
- 여섯 번째 케이스에는 우주선의 방향을 결정하는 세 개의 자이로스코프와 모든 활동을 조정하는 중앙 컴퓨터 및 시퀀서가 있었다.
우주선 후면에는 궤도 수정을 위한 단일추진제 (무수 히드라진) 225 N 로켓 엔진이 장착되었다. 온보드 자이로스코프, 태양 센서, 지구 센서로 제어되는 10개의 제트 노즐로 구성된 질소 가스 추진 안정화 시스템은 매리너가 지구와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방향을 유지했다.
주요 고이득 포물선 안테나는 매리너의 하단에 장착되어 지구를 향하게 했다. 우주선 상단의 무지향성 안테나는 우주선이 회전할 때도 지구와 통신을 유지하게 했다. 각 날개에는 지상국에서 명령을 수신하기 위한 작은 안테나가 장착되었다.
온도 제어는 단열 및 반사율이 높은 부품을 사용한 수동 방식과 루버를 사용한 능동 방식을 모두 사용했다. 당시에는 금성 근처의 태양 환경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시험 챔버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냉각 기술은 실제 임무가 시작될 때까지 시험할 수 없었다.
3. 2. 과학 장비
매리너 1호는 금성의 대기, 자기장, 온도 등을 측정하기 위한 다양한 과학 장비를 탑재했다.장비 | 설명 |
---|---|
수정 마이크 | 우주 먼지 밀도를 측정했다. 중앙 프레임에 장착되었다. |
양성자 검출기 | 태양풍 내 저에너지 양성자를 측정했다. 중앙 프레임에 장착되었다. |
가이거-뮐러 (GM) 관 및 전리함 (2개) | 행성간 공간과 금성의 지구 밴 앨런대(이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짐)의 고에너지 하전 입자를 측정했다. 제어 장비의 자기장과 우주선 금속 구조에 우주선이 충돌하여 발생하는 이차 방사선을 피하기 위해 매리너의 긴 축에 장착되었다. |
안톤 특수 목적 GM 관 | 금성 근처의 낮은 에너지 방사선을 측정했다. 중앙 프레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장착되었다. |
3축 플럭스게이트 자력계 | 태양과 금성의 자기장을 측정했다. 중앙 프레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장착되었다. |
마이크로파 방사계 | 약 50.80cm 직경, 약 7.62cm 깊이의 포물선 안테나를 사용했다. 두 개의 마이크로파 파장(19 mm 및 13.5mm)에서 작동했다. 19 mm 파장은 행성 표면의 온도를 측정하고, 13.5mm 파장은 금성 구름 상층부의 온도를 측정했다. 중앙 프레임 바로 위에 장착되었다. |
적외선 광학 센서 (2개) | 8~9 마이크로미터와 10~10.8 마이크로미터에서 금성의 온도를 측정했다. 중앙 프레임 위에 장착되었다. |
매리너 1호에는 시각 사진 촬영용 카메라는 탑재되지 않았다. 페이로드 공간이 부족했고, 프로젝트 과학자들은 카메라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칼 세이건은 카메라 포함을 주장했지만 실패했다.
4. 발사 실패
매리너 1호는 1962년 7월 21일 이른 아침에 발사될 예정이었으나, 사정 안전 시스템 문제로 여러 차례 연기되었다. 카운트다운은 전날 밤 11시 33분(EST)에 시작되었으나, 발사 79분 전 사정 안전 회로의 퓨즈가 끊어져 다시 중단되었다. 이후 카운트다운은 재개되었고, 여러 차례의 중단 끝에 다음 날 이른 아침 11시 08분부터 진행되었다.
1962년 7월 22일 오전 9시 21분 23분, 매리너 1호는 발사되었으나, 부스터 분리까지는 계획대로 진행되었지만, 서스테이너 단계에서 유도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켜 아틀라스가 좌우로 흔들렸다. 비행 궤적이 아래로 향하고 예상 궤적의 왼쪽으로 벗어나면서, 사람이 많이 다니는 대서양 해상 항로에 추락할 위험이 발생했다. 결국 오전 9시 26분 16초, 아제나 2단이 분리되기 6초 전, 사정 안전 책임자는 로켓의 자폭을 명령했다. 아틀라스 비행 종료 시스템은 아제나를 파괴하도록 설계되었지만, 아제나는 자체 비행 종료 시스템이 없어 아틀라스 SECO 이후에는 파괴할 수 없었다. 탐사선으로부터의 원격 측정 신호는 1분 30초 동안 더 수신되었다. 매리너 프로그램 책임자 잭 제임스(Jack James)는 로켓 파괴가 불필요했으며, 로켓이 바다 한가운데 이외의 다른 곳에 떨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4. 1. 발사 과정
1962년 7월 22일 오전 9시 21분 23초(동부 표준시), 매리너 1호는 아틀라스-아제나 로켓에 실려 케이프 커내버럴 LC-12 발사대에서 발사되었다. 발사 직후, 로켓의 유도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여 로켓이 좌우로 흔들리고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로켓이 사람이 많이 다니는 대서양 해상 항로에 추락할 위험이 발생했다.발사 후 약 4분 53초 뒤, 사정 안전 책임자는 로켓이 더 이상 파괴될 수 없는 시점이 되기 6초 전에 자폭 명령을 내려 로켓을 파괴했다. 탐사선으로부터의 원격 측정 신호는 로켓 파괴 후 1분 30초 동안 더 수신되었다.
JPL 엔지니어들은 5일간의 조사 끝에 유도 컴퓨터 로직의 오류와 하드웨어 고장이 겹쳐 오작동이 발생했음을 밝혀냈다. 유도 프로그램에는 속도 비콘이 고장 났을 때 잘못된 명령이 전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이픈이 포함되어야 했지만, 프로그램에서 실수로 누락되었다.
상승 중, 매리너 1호의 부스터는 지상과의 유도 록을 잠시 잃었다. 이는 비교적 흔한 현상이었기 때문에, 아틀라스-아제나는 지상과의 유도 록이 재개될 때까지 미리 프로그래밍된 경로를 따라가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록이 다시 설정되었을 때, 잘못된 유도 로직은 "속도가 예측 불가능하고 불규칙한 방식으로 변동하고 있다"라고 잘못 보고했고, 프로그램은 이를 수정하려 했다. 이 때문에 실제 불규칙한 동작이 발생하여 관제 안전 담당자가 로켓을 파괴하게 되었다.
이 오류는 이전의 레인저 계획 발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속도 비콘이 오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소프트웨어 신뢰성 문제의 중요성을 보여주었으며, 소프트웨어 공학 분야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아서 C. 클라크는 이 오작동을 "역사상 가장 비싼 하이픈"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4. 2. 오작동 원인
매리너 1호의 오작동 원인은 유도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오류와 하드웨어 고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5일 간의 비행 후 분석 결과, JPL 엔지니어들은 유도 컴퓨터 로직의 오류와 하드웨어 고장이 결합된 것이 오작동의 원인임을 밝혀냈다.버로우즈 유도 컴퓨터는 아틀라스의 속도 비콘에서 전송된 데이터를 사용하여 조향 명령을 내렸다. 유도 프로그램에는 아틀라스의 속도 비콘이 비행 중 고장났을 때 잘못된 명령이 전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컴퓨터에 해당 데이터를 무시하도록 지시하는 하이픈(-)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하이픈이 프로그램에서 실수로 생략되었다. 케이프 커내버럴의 기술자가 컴퓨터에 이 프로그램을 입력했는데, 그는 프로그램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상승 중, 매리너 1호의 부스터는 지상과의 유도 록을 잠시 잃었다. 이것은 비교적 흔한 현상이었기 때문에, 아틀라스-아제나는 지상과의 유도 록이 재개될 때까지 미리 프로그래밍된 경로를 계속 따라가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록이 다시 설정되었을 때, 잘못된 유도 로직은 프로그램이 "속도가 예측 불가능하고 불규칙한 방식으로 변동하고 있다"라고 잘못 보고하게 했고, 프로그램은 이를 수정하려 했다. 이로 인해 실제 불규칙한 동작이 발생하여, 관제 안전 담당자가 로켓을 파괴하게 되었다.
이전에 레인저 발사에는 동일한 로직이 사용되었지만, 속도 비콘은 오작동하지 않아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아틀라스-아제나에 사용된 Mod III-G 유도 시스템은 지속적인 문제의 원인이었으며, 1960년에 아틀라스-아제나가 비행을 시작한 이후 많은 발사에서 오작동을 일으켰다. 원래 Mod III 유도 시스템은 진공관 전자 장치를 트랜지스터로 변환한 아틀라스 B, C, D 미사일에 사용되었는데, 개조가 서둘러 이루어져 신뢰성이 떨어졌다. 1963년에 Mod III-G는 트랜지스터 전자 장치를 적절히 수용하도록 재설계되었다.
이 작은 오류의 치명적인 결과는 "소프트웨어 신뢰성의 전체 문제를 요약"했으며 소프트웨어 공학 분야의 발전에 기여했다. 아서 C. 클라크는 이 오작동을 "역사상 가장 비싼 하이픈"이라고 묘사했다.
5. 영향
미국 최초의 행성간 탐사선인 매리너 1호의 실패는 NASA에 18500000USD의 손실을 안겼다. 이 사건은 소프트웨어의 철저한 발사 전 디버깅과 사소한 오류가 치명적인 실패를 초래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 결과로 시행된 절차는 NASA에 큰 도움이 되었고, 아폴로 계획의 달 착륙을 구제하는데 기여했다. 비록 하강 중 달 착륙선 소프트웨어에 프로그램 오류가 있었지만, 임무 실패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논리 오류가 빠르게 발견되면서, 불필요한 지연은 필요하지 않았다. 동일한 매리너 2호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1962년 8월 27일, 매리너 1호의 자매 우주선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1962년 12월 14일에는 금성 근처에서 데이터를 반환한 최초의 우주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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