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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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는 중국에서 기원하여 전차, 보병, 기병에게 사용된 고대 무기이다. 야금 기술과 전술 변화에 따라 찌르는 능력이 강조된 창으로 발전했다. 모와 창의 구분은 지역에 따라 다르며, 찌르기와 베기를 모두 할 수 있는 칼날과 자루집 형태를 특징으로 한다. 초기에는 자루집 방식이 사용되었으나, 야금 기술 발달로 창의 칼자루 방식으로 변화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으며, 제례 의식에도 사용되었다.
모는 석기 시대부터 사용된 돌창(뼈창, 나무창)과 관련이 있으며, 창의 전 단계로 여겨지기도 한다. 어업에 사용된 것을 특히 돌모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는 어류를 찔러 잡는 긴 자루에 촉이 달린 어구로 사용되었는데, 작살과의 구별이 모호하다.[1]
모는 중국에서 전차 병에게 필수적인 무기였을 뿐만 아니라, 보병과 기병에게도 유효한 무기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후, 야금 기술의 진보와 전술의 변화에 따라, 자르는 능력보다는 찌르는 능력이 뛰어나 집단전에 적합한 창으로 진화했다.[1]
2. 역사
모와 창의 구분은 일부 지역에서만 나타나는데, 명확한 기준은 없으며, 중국에서는 둘의 차이가 없다는 설도 있다. 일반적으로 모는 "찌르기"와 "베기"가 모두 가능하며, 자루와의 접합부가 '자루집'이라는 소켓 모양인 반면, 창은 찌르기에 더 특화되어 있고 칼자루를 꽂아 고정하는 방식이다.[1]
자루집은 생산성이 떨어지지만, 초기 야금 기술로는 칼자루 방식이 어려워 사용되었다. 이후 야금 기술 발달로 창으로 변화했다.[1]
2. 1. 중국
모는 중국에서 전차 병에게 필수적인 무기였을 뿐만 아니라, 보병과 기병에게도 유효한 무기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후, 야금 기술의 진보와 전술 변화에 따라, 자르는 능력보다는 찌르는 능력이 뛰어나 집단전에 적합한 창으로 진화했다.[1]
모와 창의 구분은 일부 지역에서만 나타나는데, 모와 창을 구분하는 기준이나 모의 정의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고 애매하다. 중국에서는 창과 모의 차이가 전혀 없다는 설도 있다.[1]
일반적인 모의 특징과 창의 구별 기준은 다음과 같다.[1]
더욱 추상적인 구분 기준은 다음과 같다.[1]
자루집은 형태를 만들고 성형하는데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칼자루 방식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초기 야금 기술로는 실전에 견딜 수 있는 가늘고 긴 칼자루 형태를 만드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자루집으로 자루와 접합되었다. 그리고 야금 기술이 발달하면서 위력과 생산성이 뛰어난 창으로 변화해 갔다고 생각된다.[1]
중국에서는 명나라 시대에 뱀을 연상시키는 구부러진 칼날을 가진 개량형 사모(蛇矛, 셰마오)가 등장했다.[1]
2. 2. 일본
일본에서 창과 찌르개 창의 차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국토 창조 신화에서 대지를 휘젓는 데 천총모가 사용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래된 역사를 가진 무기이다.
찌르개 창은 금속기의 전래와 함께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재질은 청동제 구리 찌르개 창였으며, 후에 철로 생산되면서, 구리 찌르개 창은 대형화되어 제기로 사용되었다. 일본의 훈독에서 '호코'(矛)나 '호코'(鉾), '호코'(桙)뿐만 아니라 '카'(戈), '호'(鋒), '게키'(戟) 모두 '호코'라는 발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대의 '호코'는 긴 자루 무기의 총칭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기존의 찌르개 창이나 테보코(手鉾)가 사용되었지만, 전투는 기마전인 일기토가 주를 이루었고, 칼 제작 기술의 발달과 유행으로 인해, 태도, 장권, 나기나타가 주력이었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 후기의 원나라의 일본 침략에서 원군이 사용한 집단전에 대한 대응과, 아시가루(족경)의 대두로 인해, 일본에서도 전투 형태가 보병의 집단전으로 변화했다. 이에 적합한 무기로 긴 자루의 자루 찌르기 무기가 재평가된 결과, 창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아라이 하쿠세키는 " '야리'(やり)라는 것은 옛 '호코'(ほこ)의 제도로 만들어진 것일 것이다. 겐코(元弘)・겐무(建武) 연간부터 세상에 퍼진 듯하다."라고 저서에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문장의 기술에서, '야리'에는 '야리'(也利)를, '호코'에는 '창'(槍) 자를 사용하고 있다.
3. 형태와 특징
모와 창의 구분은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데,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고 애매하다. 중국에서는 창과 모의 차이가 전혀 없다는 설도 있다.[1]
일반적인 모는 "찌르기"와 "베기"를 모두 목적으로 하는 칼날을 가지며, 자루와의 접합부가 '자루집'이라고 불리는 소켓 모양이다.[1]
더 추상적인 구분 기준으로 창이 무기로 완성되기 전 단계의 것이나, 어류를 찔러 잡는 긴 자루에 촉이 달린 어구를 모라고 칭하기도 한다. 석기 시대에 사용된 돌창(뼈창, 나무창)과 관련하여, 창의 전 단계로 돌모라고 부르거나, 어업에 사용된 것을 특히 돌모라고 칭하는 경우도 있다.[1]
명나라 시대에는 뱀을 연상시키는 구부러진 칼날을 가진 개량형 사모(蛇矛, 셰마오)가 등장했다.[1]
일본에서 창과 찌르개 창의 차이에 대해서는 찌르개 창은 한 손으로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며 반대 손에는 방패를 들고 사용한 반면, 창은 양손으로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는 설이 있다. 가마쿠라 시대 후반, 특히 기쿠치 창에서 발전하여 남북조 시대에 널리 퍼진 것을 창으로, 후세에 사용된 하즈야리(弭槍)나 주머니 창은 주머니 모양의 칼날 형식이지만 창에서 진화한 창의 일종으로 분류한다.[1]
국토 창조 신화에서 대지를 휘젓는 데 천총모가 사용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래된 역사를 가진 무기이다.[1]
찌르개 창은 금속기의 전래와 함께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재질은 청동제 구리 찌르개 창였으며, 후에 철로 생산되면서, 구리 찌르개 창은 대형화되어 제기로 사용되었다. 일본의 훈독에서 '호코'(矛)나 '호코'(鉾), '호코'(桙)뿐만 아니라 '카'(戈), '호'(鋒), '게키'(戟) 모두 '호코'라는 발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대의 '호코'는 긴 자루 무기의 총칭이었을 가능성이 있다.[1]
가마쿠라 시대에는 기존의 찌르개 창이나 테보코(手鉾)가 사용되었지만, 전투는 기마전인 일기토가 주를 이루었고, 칼 제작 기술의 발달과 유행으로 인해, 태도, 장권, 나기나타가 주력이었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 후기의 원나라의 일본 침략에서 원군이 사용한 집단전에 대한 대응과, 아시가루(족경)의 대두로 인해, 일본에서도 전투 형태가 보병의 집단전으로 변화했다. 이에 적합한 무기로 긴 자루의 자루 찌르기 무기가 재평가된 결과, 창의 탄생으로 이어졌다.[1]
아라이 하쿠세키는 " '야리'(やり)라는 것은 옛 '호코'(ほこ)의 제도로 만들어진 것일 것이다. 겐코(元弘)・겐무(建武) 연간부터 세상에 퍼진 듯하다."라고 저서에서 말하고 있으며, 문장의 기술에서, '야리'에는 '야리'(也利)를, '호코'에는 '창'(槍) 자를 사용하고 있다.[1]
3. 1. 날의 형태
모는 날의 형태가 "찌르기"와 "베기"를 모두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창은 모에 비해 더 뾰족하고 찌르는 데 특화된 형태를 가진다. 모는 자루와의 접합부가 '자루집'이라 불리는 소켓 모양인 반면, 창은 칼자루(나카고)를 꽂아 고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1]
일본에서는 창과 찌르개 창의 날 모양에 차이가 있는데, 찌르개 창은 끝이 둥글고 둔각인 반면, 창은 날이 직선적이고 끝이 예각이다. 찌르개 창은 한 손으로 사용하고 다른 손에는 방패를 드는 것이 기본이지만, 창은 양손으로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1]
3. 2. 자루와의 결합 방식
모는 자루와 결합할 때 '자루집'이라고 불리는 소켓 모양의 접합부를 사용한다. 반면 창은 칼자루(나카고)를 꽂아 고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초기 야금 기술로는 실전에 견딜 수 있는 가늘고 긴 칼자루를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에 자루집 방식으로 자루와 결합했다. 그러나 야금 기술이 발달하면서 위력과 생산성이 뛰어난 창으로 변화해 갔다.[1]
4. 제례 및 의장용 모
제례에 사용되는 제의 창은 "의예"라고도 불린다. 신보, 수창 등의 의장용 물품으로 사용된다. 칼자루는 원형으로 금색이며, 자루는 검은 옻칠이 되어 있다. 칼자루 아래에는 지느러미가 붙어 있고, 붉은 바탕의 비단으로 앞부분을 세 개의 산 모양으로 자르고 금색 소용돌이 무늬 또는 신문(神紋)을 붙인다.[1]
5. 기타
모와 창은 일부 지역에서만 구분되며, 그 기준이나 정의는 명확하지 않고 애매하다. 중국에서는 창과 모의 차이가 없다는 설도 있다.[1]
일반적으로 모는 "찌르기"와 "베기"를 모두 할 수 있지만, 창은 찌르기에 더 특화된 형태를 가진다. 모는 자루와의 접합부가 '자루집'이라는 소켓 모양인 반면, 창은 칼자루를 꽂아 고정한다.[1]
더 추상적인 구분 기준으로는, 창이 무기로 완성되기 전 단계의 것이나, 물고기를 찔러 잡는 어구를 모라고 칭하기도 한다. 석기 시대의 돌창(뼈창, 나무창)을 창의 전 단계로 보거나, 어업용 도구를 돌모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1]
자루집은 생산성이 떨어지지만, 초기 야금 기술로는 가늘고 긴 칼자루를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에 사용되었다. 이후 야금 기술 발달로 위력과 생산성이 뛰어난 창으로 변화했다.[1]
중국에서는 명나라 시대에 뱀 모양의 구부러진 칼날을 가진 사모(蛇矛)가 등장했다.[1]
일본에서는 창과 찌르개 창의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1]
- 찌르개 창은 둥글고 둔각인 반면, 창은 직선적이고 예각이다.
- 찌르개 창은 한 손으로 사용하고 방패와 함께 사용했지만, 창은 양손으로 사용했다.
- 가마쿠라 시대 후반, 기쿠치 창에서 발전하여 남북조 시대에 널리 퍼진 것을 창이라고 한다.
국토 창조 신화에서 천총모가 사용된 것처럼, 모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무기이다.[1]
찌르개 창은 금속기 전래와 함께 중국에서 전해졌으며, 처음에는 청동제 구리 찌르개 창이었다가 후에 철로 만들어졌다. 구리 찌르개 창은 대형화되어 제기로 사용되었다.[1]
일본에서는 '호코'(矛, 鉾, 桙) 외에도 '카'(戈), '호'(鋒), '게키'(戟) 모두 '호코'로 발음되어, 긴 자루 무기의 총칭이었을 가능성이 있다.[1]
가마쿠라 시대에는 찌르개 창이나 테보코(手鉾)가 사용되었지만, 일기토 중심의 기마전에서는 태도, 장권, 나기나타가 주력이었다. 그러나 원나라의 일본 침략 이후 보병 집단전이 중요해지면서 긴 자루 찌르기 무기인 창이 등장했다.[1]
아라이 하쿠세키는 " '야리'(やり)는 옛 '호코'(ほこ)의 제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언급했다.[1]
오키나와 고무술의 로친은 짧은 자루에 칼날을 가진 무기로,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1]
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이나 로마 신화의 넵투눈은 트라이던트(세 갈래 창)를 무기로 사용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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