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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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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신자는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서울수송국민학교, 숙명여자중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및 스프링필드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상업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1967년 유니버시아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은퇴했다. 1967년 세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MVP를 수상했으며, 1999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미국 여자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은퇴 후에는 신용보증기금 여자 농구단 창단 감독, 1988년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 농구 담당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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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자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박신자
포지션센터
국적대한민국
출생일1941년 12월 26일
출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신장176cm
선수 경력
고등학교숙명여자고등학교
대학교숙명여자대학교
시작 연도1960년
종료 연도1967년
소속팀상업은행 여자 농구단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 연도1964년-1967년
국가대표팀대한민국
코치 경력
코치 연도 11982년-1986년
코치팀 1신용보증기금
코치 연도 21983년
코치팀 2대한민국 여자 U-18
수상 내역
주요 수상세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 득점왕 (1964년)
여자 농구 명예의 전당 (1999년)
메달 기록
종목여자 농구
대회세계 선수권 대회
대회아시아 선수권 대회
대회유니버시아드
박신자 선수

2. 학력

서울수송국민학교, 숙명여자중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및 스프링필드 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를 졸업하였다.

3. 생애

상업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하였는데 본인과 함께 해당 회사(상업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한 국가대표 야구선수 유백만이 박신자가 그랬던 것처럼 등번호 14번을 달았다[2].

1967년 유니버시아드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 국민적 자부심을 심어준 뒤 26세의 나이에 농구코트를 떠났다. 이미 1964년 제4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월드 베스트5’에 선정된 뒤 은퇴를 고려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3년을 더 뛰었다. 1967년 11월 2일, 그의 은퇴 경기가 벌어진 서울 장충체육관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7000여명의 농구팬이 운집, 대스타의 고별을 지켜봤다.

박신자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숙명여대 영문학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를 나왔고 주한 미군 문관인 스티븐 브래드너와 결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 칼리지에서 체육학을 전공했는데 최초의 한인 성공회 주교였던 이천환이 주례를[3] 봤다. 1982년 신용보증기금 여자 농구단 창단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4]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조직위원회 농구담당으로 행정과 외교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1999년 그가 현역에서 은퇴한 지 32년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에서 6월 문을 연 여자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99년 7월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개막식 시구를 하였고, WKBL 사옥 준공식에도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었다. 1999년 8월 예일대학교를 나온 막내 아들 앤드루가 하와이 주에서 결혼,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박신자는 ‘흰머리가 썩 잘 어울리는 건강한 할머니’로 불리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2015년 7월, 박신자컵 서머리그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 주인공으로 고국을 찾아 신선우 총재 취임식에 참석한 후, 속초체육관에서 열린 개회식에서 조카 박정은[5] 함께 입장한 다음, 개막전 기념 시구를 하였다.

3. 1. 선수 시절

박신자는 상업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으며, 함께 상업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한 국가대표 야구선수 유백만은 박신자처럼 등번호 14번을 달았다.[2]

1967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1967년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하여 국민적 자부심을 심어준 뒤, 26세의 나이에 농구 코트를 떠났다. 1964년 제4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월드 베스트 5'에 선정된 후 은퇴를 고려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3년을 더 뛰었다. 1967년 11월 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은퇴 경기에는 평일임에도 7,000여 명의 농구팬이 운집하여 대스타의 고별을 지켜봤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숙명여자대학교 영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를 졸업했고, 주한 미군 문관인 스티븐 브래드너와 결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 칼리지에서 체육학을 전공했다. 최초의 한인 성공회 주교였던 이천환이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3] 1982년 신용보증기금 여자 농구단 창단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4]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조직위원회 농구 담당으로 행정 및 외교 솜씨를 발휘했다.

1999년, 현역 은퇴 32년 만에 동양인 최초로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에 개관한 여자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같은 해 7월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개막식 시구를 하였고, WKBL 사옥 준공식에도 참석하였다. 1999년 8월, 예일대학교를 졸업한 막내 아들 앤드루가 하와이 주에서 결혼하여,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박신자는 '흰머리가 썩 잘 어울리는 건강한 할머니'로 불리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2015년 7월, 박신자컵 서머리그의 주인공으로 고국을 찾아 신선우 총재 취임식에 참석한 후, 속초체육관에서 열린 개회식에서 조카 박정은[5] 함께 입장하여 개막전 기념 시구를 하였다.

3. 2. 은퇴 이후

상업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하였는데, 본인과 함께 해당 회사에서 선수생활을 한 국가대표 야구선수 유백만이 박신자가 그랬던 것처럼 등번호 14번을 달았다.[2]

1967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 국민적 자부심을 심어준 뒤 26세의 나이에 농구코트를 떠났다. 1964년 제4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월드 베스트5’에 선정된 뒤 은퇴를 고려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3년을 더 뛰었다. 1967년 11월 2일, 그의 은퇴 경기가 벌어진 서울 장충체육관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7000여명의 농구팬이 운집, 대스타의 고별을 지켜봤다.

박신자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숙명여대 영문학과, 이화여대 대학원 체육학과를 나왔고 주한 미군 문관인 스티븐 브래드너와 결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 칼리지에서 체육학을 전공했는데, 최초의 한인 성공회 주교였던 이천환이 주례를[3] 봤다. 1982년 신용보증기금 여자 농구단 창단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4]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조직위원회 농구담당으로 행정과 외교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1999년 그가 현역에서 은퇴한 지 32년 만에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에서 6월 문을 연 여자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99년 7월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개막식 시구를 하였고, WKBL 사옥 준공식에도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었다. 1999년 8월 예일대학교를 나온 막내 아들 앤드루가 하와이주에서 결혼,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박신자는 ‘흰머리가 썩 잘 어울리는 건강한 할머니’로 불리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2015년 7월, 박신자컵 서머리그에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 주인공으로 고국을 찾아 신선우 총재 취임식에 참석한 후, 속초체육관에서 열린 개회식에서 조카 박정은[5] 함께 입장한 다음, 개막전 기념 시구를 하였다.

4. 1967년 세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

1967년 한국이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벌어진 제5회 세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세계 2위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숙명여중고와 상업은행을 거치는 동안 한국 여자 농구의 상징이었던 등번호 14번의 박신자는 세계 선수권 대회 첫 MVP에 오르며 ‘국력의 상징’이 되었다. 당시 한국 대선과 맞물려 ‘한국 농구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6]

당시 한국팀의 평균 신장은 1m 68cm였고, 대부분 동유럽팀의 평균 신장은 1m 90cm을 넘었다. 1m 76cm의 박신자를 앞세운 한국은 비록 당시 소련에게 패했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두뇌플레이로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유고슬라비아를 차례로 눌러 기술농구의 우위를 세계에 알렸다.[6]

참조

[1] 뉴스 박신자, 아시아 최초로 FIBA 명예의 전당 선수 부문에 헌액 https://sports.news.[...] 연합뉴스 2021-03-31
[2] 뉴스 선수들의 간판 백넘버 그由來(유래)와 얽힌 事緣(사연)들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2020-08-02
[3] 뉴스 메杯蹴球(배축구) 韓國(한국)은三位(삼위) 버마 優勝(우승)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2023-06-05
[4] 웹사이트 박신자에서 박미희까지 한국 여자감독의 계보는 http://hankookilbo.c[...] 2014-05-19
[5] 뉴스 박정은 코치가 말하는 ‘박신자컵 서머리그’ https://sports.news.[...] 점프볼 2020-08-02
[6] 뉴스 한국스포츠 50년 - 박신자 활약, 농구 2위 "세계가 놀랐다" http://sports.news.n[...] 한국일보 200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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