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비크 성당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비크 성당은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존재했으며, 11세기에 아바트 올리바 주교에 의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현재의 성당은 1803년에 완공된 신고전주의 양식 건물로, 건축가 주제프 모레토 이 코디나의 작품이다. 20세기에는 호세 마리아 세르트가 내부 벽화 작업을 진행했으나,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소실되었고, 이후 재건되었다.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 지하 묘지, 회랑 등을 포함하며, 비크 주교 박물관이 부속되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비크 성당 - [지명]에 관한 문서
개요
강에서 바라본 비크 성당 전경. 신고전주의 양식의 앱스와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이 보이며, 왼쪽에는 로마네스크 다리가 있다.
강에서 바라본 비크 성당 전경. 신고전주의 양식의 앱스와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 로마네스크 다리가 보인다.
정식 명칭비크 성 베드로 성당
다른 이름비크 대성당
현지 이름ca: Catedral de Vic
ca: Catedral de Sant Pere Apòstol
es: Catedral de Vich
es: Catedral de Sant Pere Apòstol
es: Catedral de San Pedro Apóstol
위치비크, 카탈루냐, 스페인
종교로마 가톨릭
교구비크 교구
주교로마 카사노바 카사노바 주교
일반 정보
건축가주세프 모레토 이 코디나
건축 양식로마네스크 건축
고딕 건축
신고전주의 건축
건축 유형교회
기공1781년 9월 24일
완공1803년
축성1038년 및 1803년 9월 15일
상태대성당
소 바실리카
재료대리석
벽돌
웹사이트비크 성당 웹사이트
지정
WHS 번호RI-51-0000432
WHS 지역유럽 및 북미
WHS 국가스페인
크기

2. 역사

비크 대성당은 오랜 역사를 거치며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을 반복했다.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516년 문서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8세기 아랍 침략으로 파괴된 후 9세기에 재건되었고, 10세기에는 석조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11세기에는 주교 아바트 올리바의 주도로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으로 대대적인 재건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지어진 종탑과 지하 묘지는 현재까지 남아 있다. 또한, 대성당 옆에는 Santa Maria la Rodona|산타 마리아 라 로도나ca라는 독특한 원형 교회가 있었으나, 18세기 말 현재의 대성당을 건축하면서 철거되었다.

현재의 대성당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설되었다. 20세기에는 화가 호세프 마리아 세르가 내부 벽화를 그렸으나, 스페인 내전 중 성당이 불타면서 벽화도 소실되었다. 전쟁 후 성당은 복구되었고, 세르 역시 파괴된 벽화를 다시 그려 1945년에 재개장했다.

2. 1. 초기 역사

비크 대성당의 로마네스크 양식 종탑. 맨 앞에는 아바트 올리바의 조각상이 있다.


초기 기독교 시대와 이후 서고트 양식의 바실리카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비크 대성당은 적어도 516년부터 문서 기록에 등장한다. 이 성당은 717년에서 718년 사이 아랍의 침략으로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886년, 백작 윌프레드 털보가 이 지역을 재건하고 주교구를 복원하면서 임시로 흙으로 만든 교회당이 세워졌다.

10세기에 들어 기독교 세력이 다시 안정되면서, 대성당은 돌로 재건되었다. 이때 성당은 세 개의 본당과 성 마리아와 성 미카엘에게 봉헌된 두 개의 부속 교회를 갖추고 있었다.

2. 2. 올리바 주교 시대의 대성당 (로마네스크 양식)



대성당 지하 묘지


11세기에 들어서 대성당은 주교 아바트 올리바에 의해 기념비적인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이 재건축된 대성당은 1038년 나르본의 대주교 윌프레드에 의해 봉헌되었다. 당시 지어진 높이 46m의 종탑은 본 건물과 분리된 형태였다.

이 로마네스크 양식 대성당의 구조물 중에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종탑과 지하 묘지뿐이다. 특히 지하 묘지는 10세기에 지어진 이전 성당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네스크 이전 양식의 주두(기둥머리 장식)를 볼 수 있어 주목할 만하다. 또한, 비크 주교 박물관에는 당시 로마네스크 양식 정문에서 가져온 조각상과 회랑의 주두 등 조각적 가치가 뛰어난 일부 부조들이 보관되어 있다.

2. 3. 산타 마리아 라 로도나 (Santa Maria la Rodona)

비크 성당의 자매 교회로 지어진 독특한 원형 사원인 Santa Maria la Rodona|산타 마리아 라 로도나ca는 수 세기 동안 중요한 건축물이었다. 예를 들어, 당시 주교들은 첫 번째 크리스마스 미사를 산타 마리아에서, 세 번째 미사는 성 베드로 교회에서 거행하기도 했다. 이 교회는 성당 본관과 마찬가지로 여러 차례 재건되었는데, 마지막 재건은 1140년 성직자 Guillem Bonfill|기예름 본필ca에 의해 이루어졌고, 40년 뒤 주교 Pere de Redorta|페레 데 레도르타ca에 의해 봉헌되었다. 그러나 1787년 새로운 대성당을 건설하기 위해 철거되었다. 산타 마리아 라 로도나는 현재 대성당 광장 정면 앞에 위치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최근 발굴 작업을 통해 그 기초가 드러나면서 정확한 위치가 확정되었다. 현재 포장도로 위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 4. 현재의 대성당 (신고전주의 양식)

새로운 대성당은 1781년 9월 24일에 첫 돌을 놓았고, 1803년 9월 15일에 봉헌되었다. 이 성당은 비크 출신 건축가 Josep Moretó i Codina|호세프 모레토 이 코디나ca가 설계했으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비크 대성당 내부, 세르의 그림과 배들


1891년에는 대성당 회랑 2층에 비크 주교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격동의 19세기를 거친 후, 20세기에는 화가 호세프 마리아 세르에게 성당 내부의 빈 벽과 천장을 장식하는 작업이 맡겨졌다. 세르는 1930년에 모든 벽화를 완성했으며, 1931년 대성당은 역사 예술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면서, 혁명 세력에 의해 대성당이 불타고 아치형 천장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전쟁이 끝난 직후 대성당 복구 공사가 시작되었고, 이 과정에서 지하 묘지가 다시 발견되었으며 회랑도 새로 지어졌다. 호세프 마리아 세르는 파괴된 벽화를 다시 그렸고, 성전은 1945년에 재개장했다.

3. 건축



11세기 초, 아바트 올리바 주교의 주도로 대성당은 기념비적인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이 건물은 1038년 나르본의 대주교 윌프레드에 의해 봉헌되었으며, 이때 지어진 높이 46m의 종탑과 지하 묘지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흔적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이후 수 세기에 걸쳐 고딕 양식 요소들이 추가되었다. 14세기에는 상부 회랑 공사가 시작되었고, 15세기에는 페레 올레르가 제작한 주요 설화 석고 제단이 설치되었으며 익랑과 새로운 출입문도 만들어졌다.

현재 성당의 주된 외관은 1803년에 이루어진 신고전주의 양식 개축의 결과이다. 이 개축을 통해 성당은 새로운 파사드를 갖게 되었으며, 이전 시대의 건축 요소와 신고전주의 양식이 혼합된 모습을 보인다.

3. 1. 외부

호안 세구라녜스가 조각한, 열쇠를 든 산트 페레 조각상


엄격하고 차가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다소 딱딱한 느낌을 준다. 도리아 양식과 토스카나 양식을 결합했으며, 파사드는 흰색 석재로 만들어졌고 상부에 난간이 있다. 현재의 파사드는 1803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개축될 때 만들어졌다. 파사드 상부 중앙에는 오래된 성당에서 가져온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치볼트로 장식된 장미 창이 있고, 그 양옆으로 창문이 하나씩 있다. 입구는 총 세 개이며, 이는 내부의 세 네이브와 연결된다. 중앙 입구는 기둥과 박공, 그리고 성당의 수호성인인 성 베드로 조각상으로 가장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건물의 비례가 맞지 않고 건축 장식이 빈약하며 평범하다고 평가하며, 고전 양식 적용 원칙에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3. 2. 내부

호세 마리아 세르트의 그림이 있는 후진


내부는 같은 높이의 세 개의 본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코린트식 벽기둥으로 구분되어 있다(아치형 인방 조각과 자본 및 기둥 세트 사이의 치수가 불균형하다). 뚜렷한 트랜셉트, 반원형 아치 데크, 교차부의 돔, 다각형 후진이 있다. 측면 본당에는 각 아치 아래에 두 개의 예배당이 있다.

3. 3. 호세 마리아 세르트의 벽화

20세기 전반, 성당 내부의 거대한 흰 벽을 장식하는 작업은 카탈루냐 출신 화가 호세 마리아 세르트에게 맡겨졌다. 세르트는 1926년부터 1930년까지 벽화 작업을 진행했으며, 아치 덮개 장식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벽에는 유화로 그린 대형 캔버스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1936-1939) 초기인 1936년에 발생한 화재로 세르트가 그린 벽화는 소실되었고(당시의 구상을 보여주는 다수의 스케치 등은 남아있다), 아치 덮개와 본당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세르트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다시 작업하여 현재 볼 수 있는 새로운 벽화를 제작했다. 그는 마지막 그림을 완성하기 직전에 세상을 떠났고, 남은 부분은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화풍을 따라 마무리했다. 일반적으로 두 번째 벽화는 첫 번째 작품에 비해 덜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번째 벽화 역시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성당 벽에 설치된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졌다. 벽화는 세르트 특유의 양식이 두드러지는데, 크고 육중한 인물들이 강렬한 힘을 뿜어내며, 강한 명암 대비를 통해 입체감을 강조한다. 색상은 거의 단색에 가까우며, 주로 황금색, 갈색, 황토색 계열을 사용하면서 붉은 색조를 강조하여 포인트를 주었다. 이러한 색 처리와 인물의 입체감은 그림에 깊이감을 더한다.

벽화의 전체적인 도상은 '구원의 신비'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었던 첫 번째 벽화의 주제와는 차이가 있다. 성당 가장 안쪽 후진(後陣)의 다각형 벽면에는 예수의 십자가형 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그 양 옆으로는 예수의 매장예수의 승천 장면이 배치되어 있다. 주랑 벽에는 원죄와 관련된 네 장면, 즉 아담과 이브의 타락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측면 예배당의 아치에는 사도들과 복음사가들의 순교 장면이 그려져 있다. 입구 쪽 벽에는 삼면화 형식으로 그림이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본시오 빌라도가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장면이, 양쪽으로는 예수가 성전 상인들을 내쫓는 장면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의 모습이 각각 그려져 있다.

세르트의 조수였던 Miquel Massot i Tetas|미켈 마소트 이 테타스ca는 별도의 반원형 공간 벽면에, 1936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스승의 첫 번째 벽화 중 팔복 부분을 다시 그렸다.

한편, 1947년에는 화가 Felip Vall i Verdaguer|펠립 바야 이 베르다구에르ca가 성당 아치 덮개 장식 공모에 당선되었으나, 재정 문제로 인해 실제 작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당시 구상했던 모델과 여러 스케치, 예비 도면 등은 현재까지 남아있다.

3. 4. 제단

1420년에서 142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요 설화 석고 제단화는 페레 올레르의 작품이다. 이 제단화는 성모 마리아와 성 베드로에게 헌정되었으며, 주보랑의 주요 벽을 이루고 있다. 15세기 초 베르나르 데스푸졸이 기증하였다.

3. 5. 예배당

성당 북쪽에는 바로크 양식의 여러 채플이 있다. 이는 17세기 초 시작된 새로운 대성당 건설 계획의 첫 번째 부분이었다.

특히 종탑 아래에 있는 '''산트 베르낫 칼보 채플'''은 마타로 출신 건축가 자우메 벤드렐이 1633년에 설계한 작품이다. 성 베르낫 칼보는 1233년부터 1243년까지 비크의 주교였으며, 아라곤의 하이메 1세와 함께 발렌시아 정복에 참여했다. 그의 유해는 금세공인 호안 마톤스가 1700년에서 1728년 사이에 제작한 은도금된 큰 상자에 안치되어 있다.

몬세라트의 성모 채플에는 호셉 토라스 이 바제스 주교의 묘와 호셉 리모나 이 브루게라의 '죽은 그리스도' 조각상이 있다.

3. 6. 지하 묘지



현재의 지하 묘지는 1038년 아바트 올리바 주교가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으로 대성당을 재건했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 로마네스크 양식 대성당은 당시 나르본의 대주교 윌프레드에 의해 봉헌되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부분 중에서는 높이 46m의 종탑과 함께 지하 묘지만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지하 묘지는 특히 기둥머리(주두)가 주목할 만한데, 이는 10세기의 더 오래된 전기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3. 7. 회랑

초기 수도원 부속 건물인 회랑은 2개 층으로 나뉜다. 하층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고, 상층은 14세기에 데스푸익(Despuig), 라르데노사(Lardenosa), 바야스(Valls)와 같은 건축가들이 고딕 양식으로 건축했다. 이 회랑은 수도원 내부와 도시를 향해 열린 이중 창문이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또한 회의실로 이어지는 고딕 양식의 문도 잘 보존되어 있다.

하층 회랑은 1360년에 봉헌된 회의실로 연결된다. 이 회의실은 직사각형 평면에 뒤쪽에는 작은 사각형 앱스(apse, 반원형 공간)가 있으며, 팔각형 볼트(vault)로 덮여 있다. 회랑 중앙에는 비크(Vic) 출신의 카탈루냐 철학자 자우메 발메스의 묘가 있다. 이 묘는 1853년 호세프 보버가 도시 묘지를 위해 제작한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 조각상은 1865년에 현재 위치인 회랑으로 옮겨졌다.

참조

[1] 웹사이트 Vic Cathedral (cathedral, Vic, Spain) http://global.britan[...] Encyclopædia Britannica 2014-10-11
[2] 웹인용 Vic Cathedral (cathedral, Vic, Spain) https://web.archive.[...]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2014-10-1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