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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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교회로, 프란체스코 보로미니가 설계했다. 1630년대에 삼위일체 수도회 수사들의 의뢰로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1646년 성 카를로 보로메오에게 봉헌되었다. 콰트로 폰타네 교차로에 위치하며, 독특한 물결치는 파사드와 복잡한 내부 디자인을 특징으로 한다. 보로미니는 수도원과 회랑을 먼저 짓고 교회를 건설했으며, 돔과 내부 공간의 기하학적 구성, 빛의 활용을 통해 바로크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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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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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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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이름 |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
원어 이름 | San Carlo alle Quattro Fontane |
위치 | 이탈리아 로마, Via del Quirinale 23, 00184 |
상태 | 본당 교회, 스페인 국립 교회 |
교단 | 가톨릭 |
수도회 | 삼위일체회 |
봉헌 | 카를로 보로메오 |
건축가 |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
건축 양식 | 바로크 건축 |
웹사이트 | www.sancarlino-borromini.it |
언어 | 이탈리아어 |
전례 | 로마 전례 |
건축 정보 | |
기공 | 1638년 |
축성일 | 1646년 |
길이 | 20미터 |
너비 | 12미터 |
2. 역사
1630년대 트리니타리아 수도회는 수도원과 연결될 교회를 지을 건축가를 찾고 있었고, 프란체스코 보로미니가 이 공사를 맡았다. 이 성당은 기독교도 노예 해방에 헌신한 스페인의 삼위일체 수도회 소유 수도원 복합 건물의 일부로 퀴리날레 언덕에 세워졌으며, 바로크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1634년, 보로미니는 추기경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로부터 건설 의뢰를 받았다. 바르베리니 추기경은 성당 건설을 후원했으나, 재정 지원은 오래가지 못해 건설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11]。 수도원 건물과 회랑이 먼저 완공된 후, 교회는 1638년부터 1641년까지 건설되었고 1646년 성 카를로 보로메오에게 봉헌되었다. 독특한 물결 모양의 파사드는 보로미니의 생애 말년에 지어졌으며, 상부는 그의 사후에 완성되었다[12]。
성당은 '콰트로 폰타네'(네 개의 분수)의 남서쪽 모퉁이에 위치하며, 이는 스트라다 피아(Strada Pia)와 스트라다 펠리체(Strada Felice) 교차로를 의미한다. 근처에는 베르니니가 설계한 산탄드레아 알 퀴리날레 성당이 있다. 성당 내부에서 발견된 비문들은 교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빈첸초 포르첼라(Vincenzo Forcella)가 수집하여 출판했다.
2. 1. 건설 과정
1630년대, 트리니타리아 수도회(삼위일체 수도회)의 수사들은 기존 수도원 건물과 연결될 새로운 교회를 지을 건축가를 찾고 있었다. 독립 건축가로서 경력을 시작하려던 프란체스코 보로미니가 이 공사를 무상으로 맡았다.이 성당은 바로크 건축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기독교도 노예 해방을 목표로 활동했던 스페인의 삼위일체 수도회 소유 수도원 복합 건물의 일부로 퀴리날레 언덕에 세워졌다. 1634년, 보로미니는 성당 건설을 후원한 추기경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로부터 정식으로 의뢰를 받았다. 바르베리니 추기경은 성당 부지 바로 옆에 자신의 궁전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바르베리니 추기경의 재정 지원은 오래가지 못했고, 건설 과정에서 여러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11]。
건설은 수도원 건물과 회랑부터 시작되어 먼저 완공되었고, 이후 1638년부터 1641년까지 교회가 건설되었다. 1646년, 교회는 성 카를로 보로메오에게 봉헌되었다. 성당 정면, 즉 물결치는 듯한 파사드에 대한 아이디어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1630년대 중반에 구상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건설은 보로미니의 생애 말년에 이루어졌으며, 파사드의 상부 구조는 보로미니가 사망한 후에야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12]。
새로운 교회와 수도원이 들어선 곳은 '콰트로 폰타네'(네 개의 분수)의 남서쪽 모퉁이였다. 콰트로 폰타네는 스트라다 피아(Strada Pia)와 스트라다 펠리체(Strada Felice)가 교차하는 지점의 네 모퉁이에 각각 설치된 분수를 일컫는다. 베르니니가 설계한 타원형 구조의 산탄드레아 알 퀴리날레 성당은 이후 스트라다 피아를 따라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지어졌다.
성당 내부에서 발견된 비문들은 교회의 건설 역사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며, 이는 빈첸초 포르첼라(Vincenzo Forcella)에 의해 수집되고 출판되었다.
2. 2. 건축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1599–1667)는 하층 계급 출신이었으나, 유럽 전역의 교회에서 소규모 위탁 공사를 맡으면서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5] 보로미니는 아버지를 따라 밀라노로 가서 돌 조각 작업을 보면서 건축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후 수년간 건축 및 조각 훈련을 받으며 실력을 키웠지만, 이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진 빚이 늘어나자 이를 피하기 위해 로마로 이주했다. 로마에서 그는 당대 유명 이탈리아 건축가였던 카를로 마데르노 밑으로 들어가 뛰어난 제자로 인정받았다. 마데르노가 사망할 때까지 보로미니는 스승과 함께 성 베드로 대성당, 팔라초 바르베리니, 산탄드레아 델라 발레 등 여러 중요한 건축 작업에 참여했다. 마데르노 사후, 보로미니는 독립하여 바로크 건축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5]1630년대, 삼위일체 수도회 수사들은 자신들의 수도원과 연결할 새로운 교회를 지을 건축가를 찾고 있었다. 이때 프란체스코 보로미니는 독립 건축가로서 자신의 경력을 시작하기 위해 이 공사를 보수 없이 맡기로 했다. 이것이 그의 첫 단독 프로젝트였으며,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을 완성한 후 그는 바로크 건축의 아버지로 알려지게 되었다.[5]
성당 건축은 1634년 추기경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의 후원으로 시작되었다. 바르베리니 추기경은 성당 부지 바로 옆에 자신의 궁전을 짓고 있었기에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재정 지원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건설 과정은 여러 재정적 어려움에 부딪혔다.[11] 우선 수도원 건물과 회랑이 먼저 완공되었고, 교회 건물 자체는 1638년부터 1641년까지 건설되었다. 이후 1646년에 성 카를로 보로메오에게 봉헌되었다. 성당의 특징적인 물결 모양의 파사드(정면) 디자인은 1630년대 중반 비교적 초기에 구상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제 건설은 보로미니의 생애 말년에 이루어졌으며, 파사드 상부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12]
3. 디자인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가 설계한 바로크 건축의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이다. 성당이 세워진 부지는 매우 좁고 형태가 불규칙하여, 전통적인 르네상스 시대의 직사각형 평면 대신 독창적인 디자인이 필요했다.[7] 보로미니는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바로크 양식의 특징인 곡선과 타원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으며, 이를 입방체 형태와 결합하여 부지에 맞는 독특한 평면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곡선과 타원의 사용은 공간의 제약을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에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부여하고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효과를 더하여 바로크 디자인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2]
보로미니는 조각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 디자인에서도 곡선과 직선, 사각형 형태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조합하는 데 능숙했다.[6] 특히 그는 당대의 많은 바로크 건축가들이 인체의 비율을 디자인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순수한 기하학적 도형을 설계의 기초로 삼았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보여준다.[5] 성당의 복잡하면서도 통일성 있는 내외부 공간 구성은 이러한 기하학적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3. 1. 외부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의 파사드는 고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오목하고 볼록하게 물결치는 형태를 보여준다. 높은 코린트식 기둥이 받침대 위에 서서 주요 엔타블러처를 받치고 있으며, 이 기둥들은 2층 구조와 삼분할된 만(bay) 구획의 주요 틀을 정의한다. 주요 기둥 사이에는 작은 기둥들이 주요 기둥 뒤에서 엔타블러처와 함께 얽혀 있으며, 이 기둥들은 차례로 벽감, 창문, 다양한 조각상, 그리고 정문, 상부 중앙의 타원형 아에디큘 및 천사들이 들고 있는 타원형 메달리온을 감싼다. 이 메달리온에는 한때 피에트로 자르구치가 그린 1677년 성 삼위일체 프레스코화가 있었다. 정문 위에는 아기 천사 헤르메스(케루빔)가 안토니오 라지가 조각한 성 카를로 보로메오의 중앙 인물을 감싸고 있으며, 양쪽에는 삼위일체 수도회의 창시자인 성 요한 드 마타와 성 펠릭스 드 발루아의 조각상이 있다.[7]
교회는 수도원과 함께 모퉁이의 좁고 어려운 부지에 위치하며, 둘 다 비아 피아를 마주보고 있다. 수도원 건물은 부지 위에 걸쳐 있으며, 보로미니는 그 너머에 정원을 설계하려 했다.[7] 교회 자체는 폭 약 20.12m, 길이 약 11.89m에 불과하여 고전적이지 않은 평면이 필수적이었다.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이 주된 선택이 되기 전, 르네상스 시대에는 매우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이 많았다. 바로크 양식은 곡선과 타원을 도입했는데, 보로미니는 이를 입방체 요소와 결합하여 어색한 부지의 요구 사항에 맞는 평면을 만들었다. 곡선은 부지에 적합했을 뿐만 아니라, 움직임을 창조하고,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놀고, 장식을 더하고, 극적인 효과를 더함으로써 바로크 디자인을 향상시켰다.[2]
3. 2. 내부
바로크 건축의 거장 프란체스코 보로미니는 조각가로서의 배경을 살려 곡선과 사각형 형태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이 성당을 설계했다.[6] 17세기 당시 많은 바로크 건축가들이 인체의 비율을 디자인의 기초로 삼았던 것과 달리, 보로미니는 기하학적 도형을 기반으로 설계하여 비고전적인 접근을 보여주었다.[5]
성당 내부는 매우 독특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직적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지상층의 하부 구조, 펜덴티브(pendentive)가 있는 전환 영역, 그리고 타원형 코퍼(coffer) 장식이 있는 돔과 랜턴 부분이다.[7][13]
하부에서는 정문과 같은 축 선상에 주 제단이 위치하고, 이와 교차하는 가로축에는 두 개의 제단이 있다. 하나는 성 미카엘 데 산티스에게, 다른 하나는 성 요한 세례자에게 봉헌되었다. 이 제단들 사이에는 총 16개의 기둥이 네 개씩 묶여 배치되어 있으며, 이 기둥들은 넓고 연속적인 엔타블레이처(entablature)를 지지한다. 이러한 배치는 십자형 평면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각 기둥 묶음의 중앙 두 기둥이 공간의 축선에 대해 비스듬히 배치되어 있어 어느 위치에서든 모든 제단을 볼 수 있다. 기둥 사이의 공간(베이)에는 니치, 몰딩, 문 등이 다양하게 처리되어 전체적으로 물결치는 듯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건축 역사가들은 이 하부 구조의 독특한 리듬감[8], 복잡한 평면의 기하학적 논리, 교회의 상징성, 그리고 보로미니의 독창적인 건축 설계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어 왔다.[9][14][15][16]

펜덴티브는 하부 구조의 물결치는 듯한, 거의 십자형에 가까운 형태와 돔으로 이어지는 타원형 개구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전환 영역의 일부이다. 하부 벽 구조에서 제단과 입구를 감싸며 대각선으로 배치된 기둥들 위로 솟아오른 아치들이 타원형 엔타블레이처를 만나며, 둥근 원형이 새겨진 펜덴티브 공간을 형성한다.
돔의 기초가 되는 타원형 엔타블레이처에는 잎사귀 모양의 '왕관' 장식이 있다. 돔 내부는 팔각형, 십자가, 육각형이 서로 맞물려 깊이 파인 코퍼(coffering) 장식으로 덮여 있으며, 이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은 위로 올라갈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돔 아래쪽에 보이지 않게 숨겨진 창문들과 꼭대기 랜턴의 창문을 통해 빛이 내부로 쏟아져 들어온다. 빛은 계층적인 효과를 내는데, 성 삼위일체의 상징이 있는 밝게 빛나는 랜턴이 가장 밝고, 이 빛은 점차 아래로 퍼지면서 코퍼 장식의 입체감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어두운 하부 공간까지 은은하게 내려온다.
주 제단이 있는 앱스(apse) 양옆에는 똑같이 생긴 문이 하나씩 있다. 오른쪽 문은 수도원으로 이어지며 지하 묘역으로 접근할 수 있다. 왼쪽 문은 '카펠라 바르베리니'로 알려진 외부 예배당으로 통하는데, 이곳에는 복녀 엘리자베스 카노리 모라의 성지가 있다.
3. 3. 지하 묘역
지하 성당은 지상의 교회와 거의 동일한 크기와 형태를 따르며, 천장은 낮고 아치형이다. 이곳에는 여러 작은 예배당들이 있으며, 남동쪽에는 프란체스코 보로미니가 자신의 매장을 희망했던 팔각형 예배당이 있다. 이 예배당은 크고 작은 벽감(틈새)이 늘어서 있고 물결치는 듯한 모양의 처마 장식을 갖추고 있다.3. 4. 회랑
교회 옆에는 2층 구조의 회랑이 있다. 이 공간은 현관 방향의 축이 더 긴 직사각형 형태이지만, 모서리가 비스듬히 잘려나가 있어 긴 팔각형으로 볼 수도 있다. 회랑을 둘러싼 12개의 기둥은 상부가 아치형인 개구부와 평평한 개구부를 번갈아 지지하고 있다. 모서리 부분은 곡선으로 처리되었으며, 상층 난간의 난간 동자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중앙에는 팔각형 모양의 우물이 있고, 상층 기둥의 주두 역시 팔각형으로 만들어져 전체적인 기하학적 주제를 강조한다.
4. 건축적 특징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의 건축은 독특한 기하학적 구성과 빛의 극적인 활용으로 유명하다. 내부는 복잡한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져 물결치는 듯한 동적인 느낌을 주며, 이는 바로크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특히, 타원형 돔의 복잡한 격자 무늬와 스퀸치를 이용한 구조적 전환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의 독창적인 설계를 나타낸다.[13][14][15][16] 돔의 창문과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내부 공간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하며, 구조적 아름다움을 강조한다.[13]
4. 1. 기하학적 구성
교회 내부는 매우 독특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상하 3층 구조로 나눌 수 있는데, 지표면 아래층, 스퀸치(squinch)를 이용한 이행층, 그리고 격자 무늬가 새겨진 타원형의 돔 부분이다[13]。아래층에는 정문 맞은편에 주 제단이 위치하고, 이와 교차하는 축 위에 두 개의 다른 제단이 있다. 이 제단들 사이에는 총 16개의 기둥이 4개씩 그룹을 이루어 서 있으며, 기둥 위로는 넓은 엔타블레이처(entablature)가 둘러져 있다. 전체적으로는 십자형 설계에 가깝지만, 기둥들은 십자형 축이 아닌 비스듬한 각도로 배치되어 있어 어느 위치에서든 모든 제단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기둥 사이에는 벽감(niche), 몰딩(molding), 문 등이 배치되어 공간 전체가 마치 물결치는 듯한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독특한 리듬감과 그 기반이 되는 기하학적 설계는 건축사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받으며, 교회의 상징성이나 건축가 보로미니의 업적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된다[14][15][16]。
스퀸치 층은 아래층의 십자형에 가까운 물결치는 형태에서 위쪽 돔의 타원형 개구부로 자연스럽게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래층의 네 그룹 기둥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아치(arch)가 뻗어 나와 타원형의 엔타블레이처를 지지하는 구조이다.
돔의 기초가 되는 타원형 엔타블레이처에는 나뭇잎 모양의 장식적인 "관"이 둘러져 있다. 돔 내부 벽면에는 팔각형, 십자형, 육각형이 조합된 복잡한 격자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 무늬는 위로 올라갈수록 크기가 작아지도록 설계되었다. 돔의 아래쪽 사방에 있는 창문들과 꼭대기의 천창(lantern)을 통해 빛이 내부로 들어오게 되어 있다. 특히 성삼위일체의 상징이 그려진 천창에서 가장 밝은 빛이 들어오며, 돔 내부의 격자 무늬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차 어두워지는 시각적 효과를 연출한다.
4. 2. 빛의 활용
돔의 기초가 되는 타원형의 엔타블레이처에는 나뭇잎 모양의 "관"이 장식되어 있다. 돔 내부 벽에는 팔각형, 십자형, 육각형을 조합한 격자 무늬가 시공되어 있는데, 이 무늬는 위로 올라갈수록 점차 작아지는 형태를 띤다. 빛은 돔 아랫부분 사방에 있는 창문과 꼭대기의 천창을 통해 내부로 들어오도록 설계되었다. 특히 성삼위일체의 상징이 그려진 천창 부분이 가장 밝게 빛나며, 돔 내부 벽의 격자 무늬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차 어두워지는 명암 효과를 보여준다.[13][14][15][16]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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