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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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록도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고흥군에 위치한 섬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했던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 격리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수용소로 운영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도 격리 정책이 지속되었다. 1960년대 이후 오스트리아 간호사들의 활동과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계기로 인권 개선 노력이 시작되었고, 1990년대 후반부터 한센병 연구와 사회적 인식 개선을 통해 치료 및 요양 시설로 변화했다. 현재는 국립소록도병원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춘 관광지로, 소록대교 개통으로 접근성이 향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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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소록도 |
원어 이름 | 소록도 |
한자 표기 | 小鹿島 |
로마자 표기 | Sorokdo |
위치 | 남해 |
![]() | |
지리 정보 | |
면적 | 4.46km² |
최고점 | 118m |
행정 구역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지역 | 전라남도 |
군/읍/리 |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 |
인구 정보 | |
인구 (2020년) | 708명 |
인구 (과거) | 1,169명 |
2. 역사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1910년 세운 시립나 요양원에서 시작되었다. 1916년 조선총독부가 소록도 자혜병원으로 정식 개원하면서 일제강점기 강제 격리 수용 시설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약 1,000명의 주민이 170가구에 거주하고 있었다.[2] 해방 이후에도 격리 정책은 계속되었으며,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은 환자와 거주자들의 인권에 대한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겨졌다.[2] 일본 식민지 시기 나병 환자 격리법은 1991년까지 대한민국에서 효력을 유지했다.
2. 1.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 강제 격리와 인권 유린
1910년 개신교 선교사들이 세운 시립나요양원이 1916년 조선총독부 소록도 자혜병원으로 개원하면서,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 강제 격리 수용 시설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한센병 환자들을 전국에서 강제 이주시켰을 뿐만 아니라, 강제 노역, 강제 불임 시술, 비윤리적인 생체 실험, 고의적인 기아 등 비인간적인 행위를 자행했다.[4]소록도 내 검시실은 사망한 한센병 환자를 해부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환자들은 본인이나 가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해부당했다.[2] 감금실은 1935년 제정된 조선나예방령에 따라 설치되어 환자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데 사용되었다.[2] 이러한 시설들은 당시 인권 유린의 실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물이다.
1940년에는 섬에 6,000명의 한센병 환자가 거주할 정도로 강제 격리가 극심했다.[6] 일본 당국은 섬을 동쪽(직원 및 가족 거주)과 서쪽(환자 격리) 구역으로 나누고, '수탄장'이라는 경계선을 두어 환자들의 이동을 제한했다.[5]
4대 원장 스오 마사스에는 환자 처우에 불만을 품은 원생 이춘상에게 살해당했다.[2] 이는 당시 환자들이 겪었던 고통과 억압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2. 1. 1. 하나이 원장의 공적
제2대 원장 하나이 젠키치(花井善吉)는 1921년부터 1929년까지 재직하면서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펴 '소록도의 슈바이처'로 불렸다.[12] 그는 조선총독부에 요청하여 기독교 신자들의 예배 처소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13]1930년 환자들은 하나이 원장의 공적을 기려 '화정원장창덕비'를 세웠다. 해방 후 철거 위기에 처하자 환자들이 땅에 묻어 보존했다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다시 발굴해 중앙공원에 세웠고, 1988년에 원래 위치로 옮겨졌다.[12]
2. 2. 해방 이후: 격리 정책 지속과 인권 개선 노력
해방 이후에도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격리 정책은 계속되었다. 환자 자녀들은 소록도 병원 밖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 등 차별과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1945년 8월 22일, 병원 직원들은 자치권을 요구하는 한센병 환자 84명을 살해하고 매장하는 사건을 일으켰다.[2] 또한, 한센병이 유전된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1990년대 전후까지 단종 및 낙태 강제 수술이 지속되는 등 인권 침해가 계속되었다.[2]
1962년에는 오스트리아 가톨릭 간호사인 마그레트 피사렉(Margreth Pissarek)과 마리안느 스토거(Marianne Stoeger)가 소록도에 도착하여 환자들을 치료하고 보육 시설을 설립하는 등 지역 사회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8]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소록도를 방문하면서, 남아있는 환자와 거주자들의 인권에 대한 고려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겨졌다.[2]
1990년대 후반부터 한센병 연구가 진전되고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소록도는 한센병 치료 및 연구, 요양 시설로 기능이 변화하기 시작했다.[2] 일부 환자들은 소록도 축구단을 결성하여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2. 2. 1. 한센인 피해자 명예 회복과 국가 배상
2007년 10월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2008년 10월 시행에 들어갔다.[2]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의 진상조사 결과, 2009년 3월부터 2013년 4월 말까지 6차례 연장 접수를 실시해 최종적으로 1만 38건이 접수되었고, 이 중 6,462건(신고 당시 사망 1,758건)이 피해자로 인정받았다.[2] 진상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11년부터 한센인 539명이 국가를 상대로 강제 단종(斷種)과 낙태에 따른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2] 2017년 2월 대한민국 대법원은 한센인 19명의 국가소송 상고심에서 국가의 상고를 기각하고 낙태 피해자 10명에 4000만원, 단종 피해자 9명에 3000만원의 배상금과 그 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2]3. 국립소록도병원과 현재의 소록도
소록도는 전체가 국유지로 국립소록도병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주민 대부분은 병원 직원, 전염력을 상실한 한센병 환자, 그리고 그 가족들이다. 환자 대부분은 65세 이상 고령자다. 환자 거주 구역(병사지대)은 외부인 출입이 제한되며, 직원 및 가족 거주 구역(관사지대)과 분리되어 있다.
소록도 국립병원은 주로 치매 환자를 치료하며, 연간 약 30만 명의 관광객이 섬을 방문한다.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소록도 국립병원 한센병 박물관을 국립 전문 박물관으로 지정하였다.
1935년, 일본 당국은 환자들에게 신사를 건설하도록 강요하여 일본의 동화 정책인 '내선일체'(内鮮一体)의 일환으로 신사 참배를 의무화했다.[9] 이 신사는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마지막 신사 중 하나이다.[10]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를 배경으로 일제 말기에서 1970년대까지를 다루고 있다. 백동호의 소설 《보리밭에 달뜨면》에는 이춘상 선생이 모델로 등장한다.
3. 1. 시설 및 환경
삼림과 해변이 잘 보호되어 있어서 정취가 뛰어나며 섬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길이 잘 닦여 있다. 우체국 도양읍 소록지소 등 관공서와 천주교 소록도성당, 개신교 교회인 소록도교회, 원불교당 등의 종교 시설, 녹동초등학교 소록도분교 등 교육시설도 있다.
3. 2. 소록대교 개통과 접근성 향상
2007년 9월 22일부터 5일간 고흥반도와 소록도를 잇는 1160m의 연륙교인 소록대교가 임시개통하여 육상교통로가 열렸다. 2009년 3월 3일에 정식 개통했다.[3] 다리가 개통되기 전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섬을 떠나기 위해 배를 타려면 의사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4. 문화적 배경
(내용 없음)
4. 1. 영화 속 소록도
2016년 영화 동주의 일부가 소록도에서 촬영되었다.[11]참조
[1]
웹사이트
Korean Leper Colony: Sorok Island
http://koreabridge.n[...]
2011-05-31
[2]
간행물
Sustainable Conservation of a Difficult Heritage in South Korea: Mapping the Conservation Resources of Sorok-do Island, Hansen's Disease Site
2020-01
[3]
뉴스
The Sorokdo National Hospital of South Korea: complicated legacy
https://hekint.org/2[...]
2020-12-30
[4]
뉴스
Korean ex-leprosy patients return to island colony
http://www.thestate.[...]
2013-11-24
[5]
웹사이트
Island with agonizing past moves forward
https://koreajoongan[...]
2022-06-05
[6]
웹사이트
Sorok-do: Island of Patients
https://gwangjunewsg[...]
2022-06-05
[7]
웹사이트
Sorok Island: The last leper colony
https://www.independ[...]
2022-06-05
[8]
웹사이트
Legacy of sadness and survival on Sorokdo
https://www.koreatim[...]
2022-06-05
[9]
웹사이트
Former Shinto Shrine of Sorokdo Rehabilitation Center, Goheung - Heritage Search
http://english.cha.g[...]
[10]
간행물
Sorokdo as a combined dark tourism site of leprosy and colonized past
https://doi.org/10.1[...]
2020-08-02
[11]
웹사이트
Jeollabuk-do Province: Rising Location for Diverse Films
http://www.koreanfil[...]
[12]
웹인용
자애慈愛의 언행, 하나이 원장 창덕비彰德碑
http://www.churchr.o[...]
교갱뉴스
2020-01-28
[13]
웹인용
하나이 젠키치 vs. 수호 마사토(박용태목사님)
https://www.j-jeja.k[...]
전주제자교회
201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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