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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 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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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이 쿠바는 1964년 미하일 칼라토조프가 감독한 쿠바-소련 합작 영화로, 쿠바 혁명 이후 쿠바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네 개의 단편으로 묘사한다. 각 단편은 쿠바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을 다루며, 가난, 착취, 혁명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혁신적인 촬영 기법으로 유명하지만, 개봉 당시에는 쿠바와 소련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았으며, 1990년대에 재조명되어 복원판이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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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 쿠바 - [영화]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감독미하일 칼라토조프
프로듀서벨라 프리드만
세묜 마랴힌
미겔 멘도사
각본엔리케 피네다 바르넷
예브게니 옙투셴코
주연세르히오 코리에리
살바도르 우드
호세 가야르도
장 부이즈
루스 마리아 콜라소
음악카를로스 파리냐스
촬영세르게이 우루세프스키
편집니나 글라골레바
배급사쿠바 영화 예술 산업 연구소 (ICAIC)
모스필름
개봉일1964년
1995년 3월 8일 (미국)
2003년 5월 22일 (칸 영화제)
상영 시간135분 / 141분
제작 국가쿠바
소비에트 연방
언어스페인어
영어
영화 제목 (스페인어)Soy Cuba
영화 제목 (러시아어)Я - Куба

2. 줄거리

이 영화는 쿠바 혁명 전후, 고통받는 쿠바 민중의 삶과 그들의 변화를 네 개의 단편 소설 형식으로 엮어낸다. 각 이야기는 서로 다른 인물과 상황을 다루지만, 쿠바 사회의 현실과 혁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여성 내레이터는 "나는 쿠바다, 카지노의 쿠바이지만, 또한 사람들의 쿠바다."와 같은 대사를 통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목소리를 전달하며,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초기에는 현실에 순응하거나 소극적으로 반응하던 인물들이 점차 게릴라전과 같은 적극적인 저항에 나서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바나의 화려한 카지노 문화 이면에 숨겨진 빈곤과 외세에 의한 착취를, 두 번째 이야기는 대자본에 의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농민의 비극을 다룬다. 세 번째 이야기는 아바나 대학교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와 독재 정권의 탄압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마지막 이야기는 전쟁의 참상을 겪은 평범한 농부가 결국 혁명의 대의에 동참하여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에서 아바나로 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2. 1. 첫 번째 이야기: 마리아 (베티)

첫 번째 이야기는 주인공 마리아를 통해 아바나의 화려한 카지노 이면에 감춰진 쿠바 민중의 가난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리아는 아바나 외곽의 빈민가 판자촌에 살면서 과일 장수인 남자친구 르네와의 결혼을 꿈꾸는 평범한 여성이다. 하지만 르네는 그녀가 밤에는 부유한 미국인들을 상대하는 카지노에서 '베티'라는 이름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어느 날 밤, 베티로 일하는 마리아를 만난 한 미국인 손님은 호텔 방 대신 그녀가 사는 곳을 보고 싶다고 요구한다. 마리아는 그를 자신의 누추한 오두막으로 데려가고, 그의 요구에 마지못해 옷을 벗는다. 다음 날 아침, 미국인은 하룻밤의 대가로 약간의 돈을 던져주듯 주고는 그녀가 소중히 여기던 십자가 목걸이마저 빼앗아 간다. 그가 떠나려는 순간, 르네가 오두막에 들어와 모든 상황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다. 미국인은 당황한 마리아와 르네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안녕, 베티!"라고 말하며 냉정하게 자리를 떠난다. 그는 판자촌을 벗어나며 잠시 쿠바의 비참한 현실에 놀라는 듯하지만, 이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감상일 뿐이다. 이 장면은 당시 쿠바 사회에 만연했던 빈곤과 외세에 의한 착취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2. 2. 두 번째 이야기: 페드로

두 번째 이야기는 농부 페드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최고의 사탕수수 작물을 수확했지만, 땅 주인이 찾아와 그가 작물을 거두는 동안 땅을 미국의 유나이티드 프루트에 팔았다고 통보한다. 이로 인해 페드로와 그의 가족은 즉시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페드로가 작물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땅 주인은 "네가 내 땅에서 그것들을 키웠으니, 그것들을 키우기 위해 흘린 땀은 네가 가져가도 되지만 그게 전부다"라고 냉담하게 말하고 떠난다. 절망한 페드로는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괜찮다고 안심시킨 뒤, 가진 돈을 전부 주어 마을로 보낸다. 가족들이 떠나자, 그는 자신의 모든 작물과 집에 불을 지르고 연기를 들이마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2. 3. 세 번째 이야기: 엔리케

세 번째 이야기는 아바나 대학교 학생 엔리케를 중심으로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그린다. 이 부분은 특히 긴 롱테이크 촬영 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유명하다. 엔리케는 동료들과 함께 소규모 저항 활동을 벌이지만, 이러한 방식에 한계를 느끼고 더 과감한 행동을 계획한다.

그는 혼자서 경찰청장을 암살하려 하지만, 막상 총을 겨누었을 때 어린 자녀들과 함께 있는 청장의 모습을 보고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엔리케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동료들은 반정부 전단지를 인쇄하다가 경찰의 습격을 받아 체포된다. 이 과정에서 한 동료가 건물 아래 군중에게 전단지를 뿌리자 경찰이 총을 발포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이후 엔리케는 아바나 대학교에서 직접 시위를 이끌게 된다. 경찰은 물대포 등을 동원하여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고, 격렬해진 시위 도중 엔리케는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진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의 시신이 거리를 따라 운구되며, 그는 쿠바 혁명의 대의를 위한 순교자로 그려진다.

2. 4. 네 번째 이야기: 마리아노

마지막 이야기는 평범한 농부 마리아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진행 중인 혁명 전쟁에 참여해 달라는 혁명 군인의 요청을 받지만 거절한다. 혁명 군인은 마리아노의 자녀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줄 수 있다며 설득하지만, 마리아노는 단지 평화롭게 살고 싶다며 군인을 돌려보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군 비행기가 마리아노가 사는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기 시작한다. 이 폭격으로 마리아노의 집은 파괴되고 그의 아들은 목숨을 잃는다. 아들을 잃은 슬픔과 분노 속에서 마리아노는 결국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으로 들어가 반군에 합류하고, 혁명의 완수를 위해 아바나를 향한 승리의 행진에 나선다.

3. 등장인물

(내용 없음)

3. 1. 주연


  • 세르히오 코리에리 - 알베르토
  • 호세 가야르도 - 페드로
  • 살바도르 우드
  • 라울 가르시아 - 엔리케
  • 루스 마리아 콜라조 - 마리아 / 베티
  • 장 부이스 - 짐
  • 알베르토 모건 - 안헬
  • 셀리아 로드리게스 - 글로리아
  • 파우스토 미라발

3. 2. 조연


  • 라울 가르시아 - 엔리케 역
  • 루즈 마리아 콜라조 - 마리아 / 베티 역
  • 장 부이스 - 짐 역
  • 알베르토 모건 - 안헬 역
  • 셀리아 로드리게스 - 글로리아 역
  • 세르히오 코리에리 - 알베르토 역
  • 살바도르 우드
  • 호세 가야르도 - 페드로 역
  • 파우스토 미라발

4. 제작

쿠바 영화 예술 산업 연구소(ICAIC)와 소련의 협력 하에 제작이 진행되었으며, 촬영은 1963년 2월 26일에 시작되었다.[3] 감독 미하일 칼라토조프는 제작 과정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보장받고 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4] 이 영화는 특수 방수 카메라나 복잡한 트래킹 숏을 위한 장비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촬영 기법들을 선보였다.[5] 또한 특정 장면 촬영을 위해 1,000명이 넘는 쿠바 군인이 동원되기도 하는 등 대규모 제작 자원이 투입되었다.

4. 1. 배경

1959년 쿠바 혁명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던 풀헨시오 바티스타 독재 정권이 무너졌다. 이후 1961년 미국과의 외교 및 무역 관계가 단절되면서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사회주의 쿠바 정부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쿠바는 여러 분야에서 소련과 협력 관계를 모색하게 되었고, 영화 협력도 그중 하나였다. 소련 정부는 국제 사회주의를 선전하는 한편, 새로운 동맹국인 쿠바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따라 소련은 쿠바 영화 예술 산업 연구소(ICAIC)와 협력하여 쿠바 혁명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기로 합의했다. 영화 촬영은 1963년 2월 26일에 시작되었다.[3]

감독 미하일 칼라토조프는 작품 제작 과정에서 상당한 자유를 누렸으며,[4] 소련과 쿠바 양국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그는 혁명 이후 라틴 아메리카 국가를 다룬 또 다른 소련의 미완성 프로젝트였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Que viva México!''에서 영감을 얻었다.[3] 이 영화 제작에는 쿠바 측에서 각본가 엔리케 피네다 바르넷과 작곡가 카를로스 파리냐스 등이 협력자로 참여했다.[3]

영화 제작에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여러 촬영 기술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방수 처리된 카메라 렌즈(잠수함 잠망경용 특수 세척제 코팅)를 사용하여 물속과 물 밖을 오가는 장면을 물방울 없이 촬영했다. 또한, 한 장면을 위해 1,000명이 넘는 쿠바 군인이 외딴 지역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카메라가 들것에 실린 시신 위로 펄럭이는 깃발을 따라 혼잡한 거리를 이동하는 장면이다.[5] 카메라는 잠시 멈춘 뒤, 최소 4층 높이까지 천천히 상승하여 건물 위에서 깃발에 덮인 시신을 비춘다. 이후 멈추지 않고 트래킹을 시작하여 옆으로 이동하며 담배 공장 창문을 통과하고, 공장 내부에서 행렬을 지켜보는 노동자들을 지나 반대편 창문으로 나간다. 카메라는 마치 건물 사이의 허공을 떠다니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은 카메라맨이 조끼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등에 고리가 달린 조끼를 착용하는, 초기 형태의 스테디캠과 유사한 장비를 사용하여 촬영되었다. 기술자들은 건물 여러 층과 옥상에 설치된 도르래와 케이블을 이용하여 카메라맨의 조끼를 연결하고 해제하는 방식으로 복잡한 카메라 이동을 구현했다.

4. 2. 제작 과정

1959년 쿠바 혁명으로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미국 지원 독재 정권이 무너진 후, 쿠바는 1961년 미국과의 외교 및 무역 관계가 단절되면서 고립되었다. 이에 사회주의 카스트로 정부는 여러 분야에서 소련과 협력하기 시작했으며, 영화 제작도 그중 하나였다. 국제 사회주의 확산과 새로운 동맹국인 쿠바에 대한 이해 증진에 관심이 있던 소련 정부는 쿠바 영화 예술 산업 연구소(ICAIC)와 손잡고 쿠바 혁명에 관한 영화 제작에 합의했다. 촬영은 1963년 2월 26일에 시작되었다.[3]

감독 미하일 칼라토조프는 작품 제작에 있어 상당한 자율성을 보장받았으며,[4] 소련과 쿠바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그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미완성작 ''¡Que viva México!''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이 작품 역시 혁명 이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를 다룬 소련의 프로젝트였다.[3] 영화 제작에는 쿠바의 예술가들도 참여했는데, 각본가 엔리케 피네다 바르넷과 작곡가 카를로스 파리냐스가 대표적이다.[3]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촬영 기법들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카메라 렌즈에 잠수함 잠망경에 쓰이는 특수 세척제를 코팅하여 물방울이 맺히지 않게 하면서 카메라를 물 속에 넣었다 빼는 촬영이 가능했다. 또한, 한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1,000명이 넘는 쿠바 군인들이 동원되어 외딴 지역으로 이동하는 등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기도 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카메라가 들것에 실린 시신 위로 펄럭이는 깃발을 따라 혼잡한 거리를 이동하는 장면이다.[5] 카메라는 잠시 멈춘 뒤, 최소 4층 높이까지 천천히 상승하여 건물 위에서 깃발에 덮인 시신을 내려다본다. 이후 멈추지 않고 트래킹을 시작하여 옆으로 이동하며 담배 공장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고, 행렬을 지켜보는 노동자들을 지나 반대편 창문으로 향한다. 카메라는 마침내 창문을 통과하여 건물 사이의 허공을 떠다니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들은 카메라맨이 조끼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등에 고리가 달린 조끼를 입는 방식으로 촬영되었다. 이는 초기 형태의 조잡한 스테디캠과 유사한 장비였다. 기술자들은 건물 층과 옥상에 설치된 도르래와 케이블을 이용해 카메라맨의 조끼를 연결하고 분리하는 작업을 반복하며 복잡한 카메라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5. 평가

영화는 뛰어난 기술적, 형식적 완성도를 갖추었으며, 미하일 칼라토조프 감독과 세르게이 우루셉스키 촬영 감독(1958년 칸 영화제에서 ''두루미는 날아간다''로 황금종려상 수상) 등 저명한 소련 영화 제작진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 관객들로부터 엇갈린 반응을 얻었다. 쿠바의 하바나에서는 쿠바인에 대한 고정관념적인 묘사라는 비판이 있었고, 소련모스크바에서는 내용이 순진하며 충분히 혁명적이지 못하고 쿠바 혁명 이전 부르주아 계급에 동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평가는 영화가 제작될 당시 쿠바 미사일 위기 직후 쿠바와 소련 사이의 관계가 다소 불안정했던 시대적 배경과도 연관된다. 당시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가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상의 없이 미사일을 철수하면서 양국 간 혁명 전략에 대한 이견이 발생하기 시작했다.[3]

한편, 체 게바라는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하며 예술적 중요성을 강조했다.[3] 하지만 냉전 시대에 제작된 공산주의 진영의 작품이었고 미국의 쿠바 봉쇄 조치로 인해 서방 국가에서는 개봉되지 못했다.

5. 1. 쿠바 내 평가

하바나에서는 쿠바인에 대한 고정관념적인 시각을 보여준다고 비판받았다. 반면, 모스크바에서는 영화가 순진하고 충분히 혁명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카스트로 이전 계급인 부르주아의 삶에 너무 동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체 게바라는 이 영화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스페인 영화 제작자 리카르도 무뇨스 수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리가 제작한 공동 제작물 중 최고이며 예술적으로 중요한 영화이다. 촬영과 음악이 훌륭하고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큰 위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시적이며 종종 감동적이고, 영감을 주는 순간이 많고, 단점은 거의 없는 영화이다. 그 이미지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의 국민으로 인식할 수 있다."[3]

5. 2. 소련 내 평가

뛰어난 기술적, 형식적 성취와 더불어 미하일 칼라토조프 감독과 세르게이 우루셉스키 촬영 감독 같은 유명 소련 제작진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소련 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영화가 순진하고 충분히 혁명적이지 않으며, 쿠바 혁명 이전 부르주아 계급의 삶에 지나치게 동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평가는 영화가 제작될 당시 쿠바와 소련의 관계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다소 불안정했던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당시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피델 카스트로와 충분한 협의 없이 미사일을 철수하면서 양국 간 혁명 전략에 대한 이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3]

5. 3. 기타 평가

눈부신 기술적, 형식적 성취와 미하일 칼라토조프, 세르게이 우루셉스키 (1958년 칸 영화제에서 ''두루미는 날아간다''로 황금종려상 수상) 등 유명 소련 영화 제작진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개봉 초기 관객들로부터 엇갈린 반응을 얻었다. 하바나에서는 쿠바인에 대한 고정관념적인 시각을 보여준다고 비판받았고, 모스크바에서는 순진하고 충분히 혁명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카스트로 이전 부르주아 계급의 삶에 너무 동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체 게바라는 이 영화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스페인 영화 제작자 리카르도 무뇨스 수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우리가 제작한 공동 제작물 중 최고이며 예술적으로 중요한 영화이다. 촬영과 음악이 훌륭하고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큰 위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시적이며 종종 감동적이고, 영감을 주는 순간이 많고, 단점은 거의 없는 영화이다. 그 이미지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의 국민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썼다.[3]

이 영화는 냉전 시대에 제작된 공산주의 작품이었고, 쿠바에 대한 미국의 봉쇄 조치로 인해 원래 개봉 당시 서방 국가에서는 상영되지 못했다.

6. 재조명과 복원

소련 붕괴 이후 오랫동안 잊혔던 《소이 쿠바》는 1990년대 초 국제 영화제 상영을 계기로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미국의 마일스톤 필름스를 비롯한 여러 배급사들의 노력을 통해 영화 필름이 복원되었고, 다양한 매체로 재출시되면서 영화사적 가치를 재평가받았다. 최근에는 고화질 디지털 복원 작업까지 이루어져 크라이테리온 컬렉션 등을 통해 발매되는 등, 꾸준히 새로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6. 1. 재조명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소이 쿠바》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92년 텔루라이드 영화제에서 영화의 프린트본이 상영되었고, 이듬해인 1993년에는 샌프란시스코 국제 영화제에서도 상영되며 재조명되었다. 이 영화제 상영 직후, 샌프란시스코 상영회에 참여했던 영화 전문가들은 잊힌 고전 영화 배급을 전문으로 하는 뉴욕의 소규모 배급사 마일스톤 필름스(Milestone Films)에 연락했다. 마일스톤 필름스는 흐릿하고 자막이 없는 VHS 테이프를 본 후, 러시아의 모스필름으로부터 배급권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마일스톤 필름스에 의한 미국 개봉은 1995년 3월 뉴욕의 필름 포럼에서 시작되었다. 개봉 10주년을 맞은 2005년 9월, 마일스톤 필름스는 러시아어 더빙이 제거된 새로운 35mm 복원판을 공개했으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비디오 감상을 포함한 얼티밋 에디션 DVD 박스 세트도 출시했다.

디지털 시대에도 복원과 재배포는 이어졌다. 2018년 3월 19일, 마일스톤 필름스는 영화의 새로운 4K 복원판 예고편을 공개했고,[7] 같은 해 말에는 자사의 Vimeo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오리지널 스페인어 오디오 버전의 1080p HD 영상을 제공했다.

그러나 배급권 상황은 계속 변했다. 2020년 3월 9일, 모스필름은 하드코딩된 러시아어 더빙이 포함된 4K 버전 전체 영화를 자사의 YouTube 채널에 공개했다.[8] 2021년 4월 이후, 마일스톤 필름스는 미국 배급 라이선스를 모스필름에 다시 판매하면서 자사 Vimeo 스트리밍 목록에서 영화를 내렸다. 마일스톤은 결국 4K 버전을 출시하지 못했고, 불만을 표한 고객들에게 환불을 진행했다. 2021년 10월 29일, 모스필름은 자사의 영어 YouTube 채널에도 영화를 공개했으나, 하드코딩된 영어 자막, 워터마크, 러시아어 더빙, 16:9 필러박싱 등의 문제로 인해 이전 4K 공개본보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다.

2024년 4월, 크라이테리온 컬렉션은 오리지널 스페인어 오디오를 포함한 《소이 쿠바》의 4K 복원판을 블루레이와 4K 울트라 HD 블루레이로 출시했다.[9][10]

6. 2. 복원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나는 쿠바》는 사실상 알려지지 않았다. 1992년, 이 영화의 프린트본이 텔루라이드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1993년에는 샌프란시스코 국제 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다. 영화제 직후, 샌프란시스코 상영회에 참석했던 영화 전문가들의 추천으로 뉴욕의 소규모 영화 배급사 마일스톤 필름스가 이 영화에 주목하게 되었다. 마일스톤은 약간 흐릿하고 자막이 없는 VHS 테이프를 확인한 후, 러시아의 모스필름으로부터 배급권을 확보하여 1995년 3월 뉴욕의 필름 포럼에서 개봉했다.

개봉 10주년을 기념하여, 마일스톤 필름스는 2005년 9월에 러시아어 더빙이 없는 새로운 35mm 필름 《나는 쿠바》 복원판을 공개했다. 또한, 당시 스코세이지의 비디오 감상을 담은 얼티밋 에디션 DVD 박스 세트도 출시했다.

2018년 3월 19일, 마일스톤은 영화의 새로운 4K 복원판 예고편을 게시했다.[7] 이 영화는 그해 늦게 마일스톤 필름의 Vimeo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오리지널 스페인어 오디오로 1080p HD로 제공되었다.

2020년 3월 9일, 모스필름은 하드코딩된 러시아어 더빙이 있는 전체 영화를 자사의 YouTube 채널에서 4K로 공개했다.[8]

2021년 4월 이후, 마일스톤 필름스는 영화의 미국 배급 라이선스를 모스필름에 되팔았기 때문에 자사의 Vimeo 스트리밍 카탈로그에서 이 영화를 제거했다. 마일스톤은 이 영화를 4K로 출시하지 않았지만 불만을 품은 고객들에게 환불을 제공했다.

2021년 10월 29일, 모스필름은 영화를 자사의 영어 YouTube 채널에 공개했다. 이 버전은 하드코딩된 영어 자막, 워터마크, 러시아어 더빙, 16:9 필러박싱 때문에 보존적 관점에서 모스필름의 이전 4K 릴리스보다 열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크라이테리온 컬렉션은 2024년 4월에 영화의 오리지널 스페인어 오디오와 함께 《나는 쿠바》의 4K 복원판을 블루레이와 4K 울트라 HD 블루레이로 출시했다.[9][10]

7. 다큐멘터리

2005년, 영화 소이 쿠바의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Soy Cuba: O Mamute Siberiano|소이 쿠바: 오 마무테 시베리아노pt (나는 쿠바: 시베리아 매머드)가 개봉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브라질의 비센테 페라즈가 감독했으며, 영화 제작의 역사, 기술적 성과에 대한 설명, 제작에 참여했던 인물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New Cult Canon: I am Cuba http://www.avclub.co[...] 2008-05-01
[2] 문서 2005 Brazilian documentary ''The Siberian Mammoth''
[3] 웹사이트 I Am Cuba: The Filmmakers Who Came In from the Cold https://www.criterio[...] 202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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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웹사이트 I Am Cuba https://milestonefil[...] 202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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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웹사이트 Criterion in April 2024: La Haine, I Am Cuba, Picnic at Hanging Rock in 4K https://screenanarch[...] 20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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