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수륙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수륙재는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혼들을 위로하여 성불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 의식이다. 조상의 명복을 빌고 무주고혼을 위령하며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조선 시대에는 국가적인 행사로 정착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수륙재가 금지되기도 했지만, 선조 때 다시 부활하였고, 정조 시대에는 용주사에서 국행수륙재가 열리기도 했다. 현대에는 진관사 수륙재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무위사에서도 수륙재가 이어지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수륙재 - 범패
    범패는 불교 의식에서 사용되는 음악으로, 안채비소리, 바깥채비소리, 화청으로 나뉘며, 다양한 재에서 사용되고 불교 무용과 함께 공연되기도 하며,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불교 의식 - 호마 (의식)
    호마는 3000년 이상 된 종교 의례로, 브라만교의 불을 이용한 제물 봉헌 의식에서 시작하여 불교 밀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종교에서 전승되었으며, 특히 일본 밀교 종파에서 중심 수행법으로 자리 잡았고, 힌두교와 자이나교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행해지며, 최근에는 정신 수련법으로도 활용된다.
  • 불교 의식 - 사십구재
    사십구재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 의례로, 칠칠재라고도 불리며, 망자가 다음 생을 받기 전 49일 동안 영혼의 명복을 빌어주는 의미를 지닌다.
수륙재
기본 정보
유형불교 의례
종교불교
관련 문화재[[파일:영산재 및 수륙재.jpg|영산재 및 수륙재]]
상세 정보
정의물과 육지에 사는 외로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불교에서 행하는 의례
기원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양무제가 시작한 것으로 알려짐
역사한국에서는 고려 시대에 국가적인 행사로 시행됨
조선 시대에는 억불 정책으로 인해 사찰에서 명맥을 유지함
내용수륙연기: 수륙재의 기원과 의미를 설명하는 의식
시련: 재에 참석한 신들을 맞이하는 의식
대령: 부처와 보살을 모시는 의식
관욕: 부처와 보살의 몸을 깨끗하게 씻는 의식
괘불이운: 괘불을 모셔오는 의식
봉송: 재에 참석한 신들을 돌려보내는 의식
특징물과 육지에 사는 모든 영혼을 평등하게 위로하는 의식
다양한 불교 의례와 예술이 결합된 종합적인 문화 행사
중요성한국 불교 의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함
영산재와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됨
참고 문헌
논문최정동, "濯纓 金馹孫의 師友와 政治活動", 조선대학교 리포지터리
강호선, "조선 태조 4년 國行水陸齋 설행과 그 의미", 한국문화 62,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3): 199-234.
웹사이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수륙재 (水陸齋)",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여수문화대전, "수륙대재", 한국학중앙연구원

2. 수륙재의 성격

수륙재는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餓鬼)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불법(佛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 의식이다.[1]

2. 1. 조선 시대에 정형화된 불교 행사

조선 시대에는 고려의 잔재를 없애고 유교적 이념을 내세우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정월 15일에 열리던 연등회는 태종 14년(1414)부터 수륙재라고 불리게 되었다.[1] 태조는 물과 육지에서 떠도는 외로운 영혼을 달래고 구제하기 위해 매년 2월과 10월에 수륙재를 열었다.[1]

이는 태조의 불교 정책이 은근히 반영된 것으로, 신라고려연등회, 팔관회 의식을 수륙재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거행한 것이다.[1] 태종은 2월과 10월에 열리던 행사를 정월 15일로 확정하였다.[1]

2. 2. 무주고혼의 위령

수륙재는 죽은 뒤 윤회하여 고통받는 영혼들을 부처와 보살의 자비로써 성불하게 하는 의식이다.[1] 또한, 수륙재를 베풀면 반승(飯僧)이 따르며, 이를 통해 조상의 명복을 빌고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위령하며 국가의 안녕을 기원한다.[1]

3. 국행 수륙대제

국행 수륙대제는 국가의 지원과 주관으로 거행되는 수륙재를 말한다. 진관사 수륙제는 국가무형문화재이며, 조선시대 3대 수륙대재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5] 1430년 세종 12년에 지어진 무위사에서도 2018년부터 국가무형문화재 미지정인 수륙재를 봉행하고 있다.[6]

조선 시대에는 유교적 이념에 따라 수륙재가 억압받기도 하였으나, 왕실 주도로 명맥을 이어갔다. 1494년 연산군 즉위년에 성종이 승하하자 대비가 수륙재를 열려고 하였으나, 김일손을 비롯한 사림파들이 반대하였다.[1] 1515년 중종 10년에는 유생들의 요구로 금지되기도 하였다.[1] 그러나 1606년 선조 39년에는 왕이 시주가 되어 창의문 밖에서 수륙재를 열었고,[2] 1790년 정조 14년에는 용주사에서 무차회가 열렸다.[7][8]

3. 1. 국행 수륙대제의 역사

조선 시대에는 고려의 잔재를 없애고 유교적 이념을 확립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정월 15일에 열리던 연등회는 태종 14년(1414)부터 수륙재라고 불리게 되었다. 태조는 수륙의 만령(萬靈)을 천도공양하기 위해 매년 2월과 10월에 수륙재를 열었는데, 이는 신라와 고려의 연등팔관회 의식을 수륙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거행한 것으로 그의 불교 정책이 은근히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나 태종은 2월과 10월에 열리던 행사를 정월 15일로 확정하였다.

진관사 수륙제는 현재 국가무형문화재이다.[5] 진관사 수륙대제는 조선시대에 3대 수륙대재로 인정을 받았고, 1430년 세종 12년에 지어진 무위사에서 2018년부터 국가무형문화재 미지정인 수륙재를 봉행해 오고 있다.[6] 무위사 수륙재를 세종 때부터 행하였다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6]

1494년 연산군 즉위년에 성종이 승하하자 대비가 수륙재를 열려고 하였으나, 김일손을 비롯한 사림파들은 숭유억불의 입장에서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1] 1515년 중종 10년에는 유생들의 강력한 요구로 수륙재가 금지되었다.[1] 이후 민간을 통해서만 전승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2] 1606년 선조 39년에는 왕이 시주가 되어 창의문 밖에서 수륙재를 열었다.[2]

1790년 정조 14년에는 용주사가 창건되었다.[7] 조선 정조 14년 용주사에서 열린 무차회가 조선 후기 공식적인 기록을 갖는 유일한 국행수륙재이다.[8]

3. 2. 현대의 수륙재

진관사 수륙재는 현재 국가무형문화재로, 조선시대 3대 수륙재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5]

1430년(세종 12년)에 지어진 무위사에서는 2018년부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수륙재를 봉행하고 있는데, 세종 때부터 수륙재를 행하였다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6]

성종이 승하한 1494년(연산군 즉위년), 인수대비가 수륙재를 열자 김일손을 비롯한 사림파들은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반대 상소를 올렸다.[1] 1515년(중종 10년) 유생들의 강력한 요구로 수륙재는 금지되었으나,[1] 민간에서 명맥을 이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2]

1790년(정조 14년) 용주사가 창건되었다.[7] 조선 후기 공식적인 기록을 갖는 유일한 국행수륙재는 정조 14년 용주사에서 열린 무차회이다.[8]

참조

[1] 학위논문 濯纓 金馹孫의 師友와 政治活動 https://oak.chosun.a[...] 조선대학교 중앙도서관 2007
[2] 웹인용 수륙재 (水陸齋) https://encykorea.ak[...] 한국학중앙연구원 2024-02-10
[3] 웹인용 수륙대재 http://yeosu.grandcu[...] 한국학중앙연구원 2024-02-10
[4] 저널 조선 태조 4년 國行水陸齋 설행과 그 의미 https://kyu.snu.ac.k[...]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3
[5] 뉴스 국가무형문화재 진관사 국행수륙대재 회향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0-10-11
[6] 뉴스 강진 무위사 '조선 3대 수륙대재' 25일 4번째 봉행 https://www.mk.co.kr[...] 매일경제 2021-09-17
[7] 웹인용 한국문화사 > 11권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 제4장 유교 사회의 불교 전통 계승 > 2. 숭불의 실상과 불교의 존립 > 왕실의 숭불과 불교 후원 http://contents.hist[...] 국사편찬위원회 2024-02-11
[8] 뉴스 용주사 무차회, 조선 후기 유일한 국행수륙재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10-2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