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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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정전은 경복궁 근정전 서쪽에 위치한 건물로, 조선 시대에는 학문 연구 기관인 집현전으로 사용되었고, 고종 때 중건되어 왕의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갑오개혁 시기에는 군국기무처가 설치되기도 했다. 현재는 건물만 남아 있으며, 다른 궁궐에서 볼 수 없는 넓은 월대를 갖춘 건축 양식과 내부 구조를 지니고 있다. 임진왜란 이전 집현전으로 사용되었고, 대한제국 시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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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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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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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경복궁 수정전 (景福宮 修政殿) |
종류 | 보물 |
지정번호 | 1760 |
지정일 | 2012년 3월 2일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
소유자 | 국유 |
수량 | 1동 (정면 10칸, 측면 4칸) |
시대 | 조선시대 |
문화재청 ID | 12,17600000,11 |
2. 입지 현황 및 역사
경복궁 근정전 서쪽, 경회루 북쪽에 위치한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소실되기 전 세종 때는 집현전이 있던 곳이었다. 고종 때 중건되어 왕의 편전으로 사용되었으며, 1894년 갑오개혁 때에는 대한제국의 군국기무처가 설치되었고, 이후 내각 청사로 사용되었다. 4면 행각과 남쪽 외행각은 일제 때 훼철되어 현재는 수정전 건물만 남아있다.[2]
2. 1. 조선 전기: 집현전
세종 때에는 학문 연구와 정책 자문을 담당하던 집현전이 있던 곳으로, 한글 창제의 중심지였다.[2] 세조 때에는 예문관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2] 그 후 선조 25년(1592) 4월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되었다.[2]2. 2. 조선 후기 ~ 대한제국: 중건과 훼손
세종 연간에는 학문을 연구하며 왕에게 주요 정책을 자문하고 건의하던 기관이자 한글 창제의 중심지였던 집현전이 있던 곳이다. 왕의 영역과 신하들의 영역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고종 때 중건되어 왕의 편전으로 사용되었으며, 1894년 갑오개혁 때에는 대한제국의 군국기무처를 여기에 두었고, 이후 내각 청사로 사용되었다.[2]고종 4년(1867)에 근정전, 사정전, 경회루 등과 함께 중건되었다. 중건 당시에는 4면의 행각과 남쪽으로 외행각이 있었으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내부 벽체와 창호가 훼철되었고 수정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철거되었다.[2] 1915년 가을, 조선의 정궁을 훼손하고 조선총독부를 세우려는 일제의 계획으로 시정 5주년 기념사업인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하면서 철거되었다. ‘수정(修政)’은 ‘정사를 잘 수행함’이란 의미로, 현판 글씨는 중건 당시 조석원이 썼다. 그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도승지에까지 이르렀으며 글씨에 조예가 깊었다.
3. 구조
경복궁 근정전 서편 외조 공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로, 다른 궁궐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넓은 월대를 갖추고 있어 중건 당시의 장대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3. 1. 건축 양식

궁궐지에는 수정전과 이에 부속된 행각의 명칭, 규모, 양식, 주칸 등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수정전은 정면 10칸, 측면 4칸의 비교적 긴 장대한 건물로 남향으로 앉혀진 1고주 7량가의 이익공 양식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1]
수정전 정면에는 네 벌대의 넓은 월대가 조성되어 있다. 월대에는 정면에 계단을 3곳 설치하였고, 중앙의 계단은 소맷돌을 두어 좌우 계단과 차별화시켰는데, 이는 임금의 출입이 자주 있는 편전임을 의미한다. 다섯 벌대나 되는 높은 건물기단 위에는 4각 초석 위에 각기둥을 세우고 띠살창 분합문과 빗살창 교창을 사방 전면에 둘러 설치하였다.[1]
높은 기단의 좌우 측면에는 불을 넣는 아궁이를 설치하여 온돌방을 두었다.[1]
평면은 정면 10칸, 측면 4칸으로, 앞면 퇴칸 주간을 넓게 하여 10칸의 도리 방향을 모두 대청으로 터 놓았으며 좌우 및 후면의 퇴칸이 연결되어 내부 회랑 역할을 한다.[1]
공포는 길게 뻗은 쇠서의 이익공 위에 소로를 놓고 양봉한 보머리를 받으며 주심도리를 받아준다.[1]
지붕의 용마루 및 내림마루엔 양성을 하고 취두, 잡상을 배열했다. 건물의 짜임이 견고하고 창의력 있는 구조다.[1]
3. 2. 내부 구조
평면은 정면 10칸, 측면 4칸으로 앞면 퇴칸 주간을 넓게 하여 10칸의 도리방향을 모두 대청으로 터 놓았다. 좌우 및 후면의 퇴칸이 연결되어 내부 회랑 역할을 한다.[1] 공포는 길게 뻗은 쇠서의 이익공 위에 소로를 놓고 양봉한 보머리를 받으며 주심도리를 받는다.[1] 지붕의 용마루 및 내림마루엔 양성을 하고 취두, 잡상을 배열했다.[1] 건물의 짜임이 견고하고 창의적인 구조이다.[1]
4. 지정 가치
수정전은 중건 당시의 모습이 잘 유지되어 있고,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태이다. 임진왜란(1592) 이전에는 한글 창제의 본산인 집현전으로 사용되었으며, 고종 중반(1890년대) 우리 역사의 대격변기에 여러 제도가 급변할 때 중추적 역할을 했던 건물로서 사회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또한 광화문에서 근정전 서편에 해당하는 외조 공간에서 궐내각사가 모두 훼철되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로 역사적, 건축적 가치가 높다.[1]
참조
[1]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문화재청장
2012-03-02
[2]
웹인용
경복궁 사정전 등 6개소 보물 지정 예고
https://www.cha.go.k[...]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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