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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이코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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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이코 지진은 일본서기에 기록된 지진으로, 스이코 천황 7년(599년) 5월 28일에 발생하여 건조물이 붕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지진의 피해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쇼토쿠 태자가 지진을 예측하고 건물 보강을 촉구했다는 내용도 전해진다. 지진학자 이마무라 아키츠네는 이 지진을 일본 최초의 대지진으로 평가했으며, 가와스미 히로시는 규모를 MK = 4.3으로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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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이코 지진
지진 개요
이름스이코 지진
발생 날짜추고 천황 7년 4월 27일 / 율리우스력 599년 5월 26일 / 그레고리력 599년 5월 28일
지역일본
진도 구역불명
추가 정보

2. 역사적 기록

599년 지진에 대한 기록은 《일본서기》, 《쇼토쿠 태자전력》, 《구마노 연대기》 등 여러 역사서에 등장한다. 이들 기록에는 지진 발생 사실과 더불어 쇼토쿠 태자가 지진을 예측하고 피해 복구를 위해 세금 면제를 건의하는 등 노력을 했다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1] 다만, 《구마노 연대기》나 《도요하마정지》 같은 후대의 기록은 《일본서기》의 내용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어, 그 내용이 얼마나 구체적인지는 알 수 없다.[2]

2. 1. 《일본서기》

599년 음력 4월 27일(율리우스력 5월 26일, 그레고리력 5월 28일) 조항에 피해 지진에 대한 기록이 있다.[1]

지진으로 건물과 창고가 모두 파괴되었다. 조정에서는 사방에 명하여 지진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다.[1] 쇼토쿠 태자의 전기에 따르면, 태자가 지진을 예측하고 건물의 보강을 촉구했으며, 지진 후에는 세금 면제를 건의했다고 한다.[1]

七年夏四月丁未朔辛酉。 地震。 舎屋悉破。 仍令四方。 祭祀地震神。|7년 여름 4월 을미삭신유. 땅이 흔들렸다. 집과 창고가 모두 파괴되었다. 이에 사방에 명하여 지진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다.일본어

2. 2. 《쇼토쿠 태자전력》

쇼토쿠 태자의 전기에 따르면, 태자가 지진을 예측하고 건물 보강을 촉구했으며, 지진 후에는 세금 면제를 건의했다고 전해진다.[1]

『쇼토쿠 태자전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春三月。太子占天曰。必有地震乎。即令天下。堅造屋舎。夏四月。大地震。舎屋悉破。太子竊奏曰。天以爲男。以陽。地以爲女。以陰。陰理不足。則陽迫不通。陽道不充。則陰塞不達。故有地震。陛下爲女主。居於男位。唯理陰事。不施陽徳。故有斯殃。伏願。以徳沢潤万物。以仁化覆百姓。天皇大悦。詔於天下。悉除今年租庸調税。|봄 3월, 태자는 날씨를 살피고 아뢰었다. "반드시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 즉시 천하에 명하여 집을 튼튼히 짓도록 했다. 여름 4월, 큰 지진이 일어났다. 집과 창고가 모두 파괴되었다. 태자는 몰래 아뢰었다. "하늘은 남자를 양으로, 땅은 여자를 음으로 여깁니다. 음의 이치가 부족하면 양이 압박하여 통하지 못하고, 양의 도가 채워지지 않으면 음이 막혀 통달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진이 있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여주(女主)로서 남자의 자리에 계시며, 오직 음의 이치만 다스리시고 양의 덕을 베풀지 않으시니, 이러한 재앙이 있는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덕택으로 만물을 윤택하게 하시고, 인화(仁化)로 백성을 덮으소서." 천황은 크게 기뻐하며 천하에 조서를 내려 올해 조용(租庸)과 조세(調税)를 모두 면제했다.일본어

2. 3. 《구마노 연대기》 및 기타 기록

《구마노 연대기》(고서·세대기)에도 《일본서기》와 유사한 기록이 있으며[2], 《도요하마정지》에도 사누키국(현재의 가가와현)에서 미진(微震)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들 기록은 《일본서기》보다 훨씬 후대에 작성된 것이라 상세한 내용은 불분명하다.

  • 《구마노 연대기》


을미 7|을미 7일본어

4月27日、地震、舎屋破倒、祭神也|4월 27일, 지진, 사옥파도, 제신야일본어

  • 《도요하마정지》


讃岐国亦微震 (四・二七)|사누키국역미진 (4·27)일본어

3. 지진학적 분석

현대 지진학자들은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599년 지진의 규모와 진앙을 추정하고 있다. 이마무라 아키츠네는 이 지진이 정사에 나타나는 최초의 대지진이라고 평가했고, 가와스미 히로시는 이 지진의 규모를 ''M'' = 7.0으로 추정했다.

3. 1. 이마무라 아키츠네

지진학자 이마무라 아키츠네는 인교 지진과는 대조적으로, 본 지진이야말로 정사에 나타나는 최초의 대지진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대일본지진사료'에는 '야마토국 지진'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3] 사방에 지진의 신을 제사지내게 한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좁은 범위의 지진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4]

3. 2. 가와스미 히로시

가와스미 히로시는 이 지진의 규모를 ''M''K = 4.3으로 판정했으며,[5] 규모는 ''M'' = 7.0으로 환산했지만, 진앙은 제시하지 않았고 규모의 근거도 불분명하다.

참조

[1] 웹사이트 "[古代・中世]地震・噴火史料データベース(β版)" http://historical.se[...]
[2] 서적 日本の歴史地震史料 拾遺 二 1993
[3] 서적 大日本地震史料 丸善 1904
[4] 논문 本邦正史に現はれる最初の大地震 1944
[5] 논문 有史以來の地震活動より見たる我國各地の地震危險度及び最高震度の期待値 195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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