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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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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파르타 국왕은 고대 스파르타를 통치했던 왕들을 의미하며, 전설 시대부터 헬레니즘 시대까지 다양한 왕조가 존재했다. 초기에는 레렉스, 라케다이몬, 아트레이드 왕조 등이 있었으며,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왕들도 있었다. 스파르타의 두 주요 왕조는 아기아다이 왕조와 에우리폰티다이 왕조였으며, 이들은 각각 아기스 1세와 에우리폰을 시조로 한다. 셀라시아 전투 이후 스파르타는 쇠퇴하여, 아게시폴리스 3세와 리쿠르고스를 마지막 왕으로 공화정을 거쳐 아카이아 동맹에 병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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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스는 쇠퇴하는 스파르타의 국력 회복을 위해 급진적인 정책을 펼쳤으나 내부 반발과 대외 갈등을 야기하여 암살당하고 스파르타는 독립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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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니다스 1세는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300명의 스파르타 병사들을 이끌고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으며, 그의 용감한 죽음은 그리스의 승리에 기여했다.
스파르타 국왕
개요
국가스파르타
존속 기간기원전 9세기 ~ 기원전 146년
통치 가문아기아다이 가문
에우리폰티다이 가문
칭호
계승 방식세습
통치 형태이두 정치
권력 분담왕은 군사 및 종교적 기능을 수행, 정치적 권력은 게루시아와 에포로이에 의해 견제됨
아기아다이 가문
전설적인 시조아기스 1세
마지막 왕아게시폴리스 3세
에우리폰티다이 가문
전설적인 시조에우리폰
마지막 왕나비스

2. 전설 시대의 왕

고대 그리스인들은 남성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지었으며, 접미사 '-id-'를 사용하여 부칭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은 아트레이드였다. 왕가는 부계 명칭이 창시자 또는 왕조의 초기 주요 인물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지배 가문은 여러 왕조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아기스 1세는 아기아드 가문을 명명했지만, 그는 헤라클레스의 자손이었고 그의 후손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혈통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경우,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문화적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여 몇 가지 표준적인 가정을 했다. 아기아드 사람들은 부족으로 취급되었으며, 그들의 이름을 가진 조상으로부터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는 틀림없이 왕이었으며, 그의 이름을 딴 왕조를 세웠다. 이러한 신화화는 지명에도 적용되었다. 그들은 왕과 신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왕들은 그들의 종교에서 종종 신이 되었다.

레렉스

뮐레스

에우로타스

디온

라케다이몬

아뮈클라스

알갈로스

퀴노르타스

페리에레스

오이발로스

튄다레오스

히포코온

튄다레오스 (복위)

메넬라오스

오레스테스

티사메노스

아리스토데모스

2. 1. 레레기데스 왕조

레레게스의 시조인 레렉스의 후손으로, 신화적 계보에 따르면 그리스인과 융합되었다.

연도레레기데스 왕조기타 주목할 만한 정보
기원전 1600년경레렉스포세이돈 또는 헬리오스의 아들, 또는 토착민이라고 함
기원전 1575년경마일레스레렉스의 아들
기원전 1550년경에우로타스마일레스의 아들, 스파르타의 아버지



라케다이몬, 아뮈클라스, 알갈로스, 퀴노르타스, 페리에레스, 오이발로스, 튄다레오스, 히포코온, 메넬라오스, 오레스테스, 티사메노스, 아리스토데모스 등이 레레기데스 왕조에 속한다.

2. 2. 라케다이몬 왕조

레케다이몬인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인물들을 포함하며, 현재 그리스의 청동기 시대로 여겨진다. 신화적 계보에 따르면, 왕권은 레게스족에서 그리스인에게로 넘어갔다.

연도레케다이몬인기타 정보
c.라케다이몬제우스의 아들이자 스파르타의 남편
c.아미클라스라케다이몬의 아들. 아미클라이를 건립
c.아르갈루스아미클라스의 아들
c.키노르타스아미클라스의 아들
c.페리에레스키노르타스의 아들
c.오이발로스키노르타스의 아들
c.틴다레오스(첫 번째 재위); 오이발로스의 아들이자 헬레네의 아버지
c.히포코온오이발로스의 아들이자 틴다레오스의 형제
c.틴다레오스(두 번째 재위)



''날짜가 없는 연도("''c.''")는 알려지지 않음''

레렉스, 뮐레스, 에우로타스, 디온, 라케다이몬, 아뮈클라스, 알갈로스, 퀴노르타스, 페리에레스, 오이발로스, 튄다레오스, 히포코온, 튄다레오스 (복위), 메넬라오스, 오레스테스, 티사메노스, 아리스토데모스 등이 왕위를 계승했다.

2. 3. 아트레이드 왕조

아테레이다이(라틴어: Atreidae)는 후기 청동기 시대, 즉 미케네 그리스 시대에 속한다. 신화에서 그들은 페르세우스(Perseides)의 후손이다. 아테우스(Atreus)라는 이름이 히타이트 문서에서 증명되었으므로, 이 왕조는 원사시대일 수 있다.

연도아테레이드기타 주목할 만한 정보
기원전 1250년경메넬라오스아테우스(Atreus)의 아들이자 헬레네(Helen of Troy)의 남편
기원전 1150년대경오레스테스아가멤논(Agamemnon)의 아들이자 메넬라오스의 조카
기원전티사메노스(Tisamenus)오레스테스의 아들
기원전 1100년경디온프로낙스(Pronax)의 딸 암피테아(Amphithea)의 남편



''날짜가 없는 연도 (단지 "''기원전''")는 알려지지 않음''

3. 헤라클레스 왕조

스파르타의 왕들은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는데, 헤라클레스는 어머니를 통해 페르세우스의 후손이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자, 헤라클레스는 방랑 생활을 시작했다.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은 최소한 전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의 귀환이라고 불리는 침략 동안 도리아인들과 함께 유로타스 계곡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아르테이드 가문을 몰아내고 적어도 일부 미케네인들을 쫓아냈다.

연도헤라클레이드기타 주목할 만한 정보
c.아리스토데모스아리스토마쿠스의 아들이자 아르게이아의 남편
c.테라스 (섭정)아우테시온의 아들이자 아리스토데모스의 아내 아르게이아의 형제; 그의 조카 유리스테네스와 프로클레스의 섭정으로 활동했다.


4. 아기아다이 왕조



아기아다이 왕조는 스파르타의 두 왕가 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에우리폰티다이 왕조였다. 아기아다이 왕조는 두 번째 왕인 아기스 1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 에우리스테네스(Εὐρυσθένης) (? - 기원전 930년경)
  • 아기스 1세(Ἄγις) (기원전 930년경 - 기원전 900년경)
  • 에케스트라토스(Εχέστρατος) (기원전 900년경 - 기원전 870년경)
  • 레오보타스(Λεοβώτας) (기원전 870년경 - 기원전 840년경)
  • 도리소스(Δόρυσσος) (기원전 840년경 - 기원전 820년경)
  • 아게실라오스 1세(Αγησίλαος Α΄) (기원전 820년경 - 기원전 790년경)
  • 아르켈라오스(Αρχέλαος) (기원전 790년경 - 기원전 760년경)
  • 텔레클로스(Τήλεκλος) (기원전 760년경 - 기원전 740년경)
  • 알카메네스(Αλκαμένης) (기원전 740년경 - 기원전 700년경)
  • 폴리도로스(Πολύδωρος) (기원전 700년경 - 기원전 665년경)
  • 에우리크라테스(Ευρυκράτης) (기원전 665년경 - 기원전 640년경)
  • 아낙산드리다스 1세(Αναξανδρίδας Α') (기원전 640년경 - 기원전 615년경)
  • 에우리크라티다스(Ευρυκρατίδας) (기원전 615년경 - 기원전 590년경)
  • 레온(Λέων) (기원전 590년경 - 기원전 560년)
  • 아낙산드리다스 2세(Αναξανδρίδας Β΄) (기원전 560년경 - 기원전 520년경)
  • 클레오메네스 1세(Κλεομένης Α΄) (기원전 520년경 - 기원전 490년경)
  • 레오니다스 1세(Λεωνίδας Α΄) (기원전 490년경 - 기원전 480년)
  • 플레이스타르코스(Πλείσταρχος) (기원전 480년 - 기원전 459년경)
  • 플레이스토아낙스(Πλειστοάναξ) (기원전 459년경 - 기원전 409년)
  • 파우사니아스(Παυσανίας Α΄) (기원전 409년 - 기원전 395년)
  • 아게시폴리스 1세(Αγησίπολις Α΄) (기원전 395년 - 기원전 380년)
  • 클레옴브로토스 1세(Κλεόμβροτος Α') (기원전 380년 - 기원전 371년)
  • 아게시폴리스 2세(Αγησίπολις Β') (기원전 371년 - 기원전 370년)
  • 클레오메네스 2세(Κλεομένης Β΄) (기원전 370년 - 기원전 309년)
  • 아레우스 1세(Αρεύς Α΄) (기원전 309년 - 기원전 265년)
  • 아크로타토스(Ακρότατος) (기원전 265년 - 기원전 262년)
  • 아레우스 2세(Αρεύς Β΄) (기원전 262년 - 기원전 254년)[6]
  • 레오니다스 2세(Λεωνίδας Β΄) (기원전 254년 - 기원전 235년)
  • 클레오메네스 3세(Κλεομένης Γ΄) (기원전 235년 - 기원전 222년)


셀라시아 전투 이후, 클레오메네스 3세가 기원전 219년에 사망할 때까지 이중 군주는 공석으로 남아 있었다.

  • 아게시폴리스 3세 (기원전 219년 ~ 기원전 215년) : 마지막 아기아스 왕, 에우리폰티드 왕조의 리쿠르고스에 의해 폐위됨


아기스 1세는 헬로트를 정복했고, 에케스트라토스는 키누리아인들을 추방했다. 텔레클루스는 메세니아인에게 살해되었고, 알카메네스는 제1차 메세니아 전쟁을 시작했다. 폴리도루스는 제1차 메세니아 전쟁을 종결지었으나, 스파르타 귀족 폴레마르쿠스에게 살해되었다.[5] 아낙산드리다스 2세는 사슬 전투를 치렀고, 클레오메네스 1세 시기에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레오니다스 1세는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전사했다. 플레이스타르쿠스 시기에는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플레이스토아낙스 시기에는 제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되었다. 파우사니아스는 아테네 민주주의 복원을 지원했고, 스파르타 헤게모니 시대를 열었다. 아게시폴리스 1세 시기에는 코린토스 전쟁이 시작되었다. 클레오메네스 2세 시기에는 제3차 신성 전쟁이 발발했고, 아레우스 1세는 메갈로폴리스의 폭군 아리스토데모스와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레오니다스 2세는 망명 중 재판을 피하기 위해 잠시 폐위되기도 했다. 클레오메네스 3세셀라시아 전투 이후 망명했다.

5. 에우리폰티다이 왕조

에우리폰티다이 왕조는 헤라클레이다이의 후손인 프로클레스를 시조로 하며, 세 번째 왕인 에우리폰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8] 입법자 리쿠르고스는 이 가문의 젊은 아들이었으나, 왕위에 포함되지는 않았다.[11]

초기 왕조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이 혼재되어 있어, 수스,[7] 에우리폰,[8] 프리타니스,[9] 에우노무스[10] 등의 왕들은 허구적 인물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초의 역사적 에우리폰티드 왕으로 여겨지는 카릴라오스는 리쿠르고스의 보호를 받았으며, 아르고스와의 전쟁, 국경 마을 아이기스 파괴, 테게아 전투 등의 업적을 남겼다.[11]

니칸드로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테오폼포스 시대에는 제1차 메세니아 전쟁이 발발하였다. 헤로도토스파우사니아스의 기록에 따르면, 아낙산드리다스 1세와 아르키다무스 1세의 재위 시기가 다르게 나타난다.

아가시클레스는 레온과 동시대 인물이며, 아리스톤은 쇠사슬 전투를 치렀다. 데마라투스는 폐위되었고, 레오튀키다스 2세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 참전하였다. 아르키다무스 2세는 제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시작하였고, 아기스 2세는 스파르타의 패권을 확립하고, 에피다우로스, 레욱트라, 카르네아, 카리아이, 오르코메노스, 만티네이아를 공격하고 아르고스를 침공하였다. 그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10명의 스파르타인으로 구성된 전쟁 평의회가 구성되었다.

아게실라오스 2세코린토스 전쟁을 시작하였고, 아르키다무스 3세는 제3차 신성 전쟁을 시작하였다. 아르키다모스 5세는 마지막 에우리폰 왕조의 왕이었으며, 이후 에우클레이다스가 왕위에 올랐으나 그는 아기아다이 왕조 출신이었다. 셀라시아 전투 이후 스파르타의 이중 군주제는 기원전 219년까지 공석으로 남아 있었다.

6. 셀라시아 전투 이후

클레오메네스 3세셀라시아 전투에서 마케도니아 왕국 안티고노스 3세 도손과 아카이아 연맹에 패배한 뒤 스파르타는 몰락하였다. 기원전 222년의 셀라시아 전투에서의 결정적인 패배로 클레오메네스 전쟁에서 패배하자, 스파르타의 국가 제도는 붕괴로 향했고, 클레오메네스 3세의 이집트로의 망명으로 인해 기원전 221년부터 기원전 219년까지 스파르타는 공위 시대가 되었다. 스파르타는 기원전 221년부터 기원전 219년까지 공화제를 채택하였다. 아게시폴리스 3세와 뤼쿠르고스가 기원전 219년에 왕위에 오르면서 이 혼란은 수습되었지만, 그 후에도 혼란은 계속되었고, 결국 나비스의 죽음과 함께 스파르타는 아카이아 동맹에 흡수되어 독립을 잃었다.


  • 아게시폴리스 3세(Αγησίπολις Γ΄): 기원전 219년 - 기원전 215년. 아기아다이 왕조 출신. 스파르타의 마지막 아기어드 왕.
  • 리쿠르고스 2세(Λυκούργος Β΄): 219 - 210 BC. 에우리폰티다이 왕조.
  • 마카니다스(Μαχανίδας): 210 - 207 BC. - 참주, 펠롭스의 섭정
  • 펠로파스(Πέλοπας): 210 - 206 BC. 두 왕조의 마지막 임금. 마카니다스의 반대파
  • 나비스(Νάβις): 206 - 192 BC.- 찬탈자, 펠롭스의 첫 번째 섭정, 이후 찬탈자, 에우리폰티드 왕 데마라투스의 후손이라고 주장
  • 라코니쿠스: 기원전 192년. 헤라클레스 왕조의 마지막 알려진 스파르타 왕


기원전 192년에 아카이아 연맹이 스파르타를 병합하였다.

참조

[1] 서적 A History of the Archaic Greek World: Ca. 1200-479 BCE https://books.google[...] John Wiley & Sons
[2] 문서 ἀρχᾱγέτας, ἀρχηγέτης
[3] 서적 The Spartans Vintage Books
[4] 서적 Pindar and the cult of heroes
[5] 서적 A Classical Dictionary https://books.google[...]
[6] 서적 A Prosopography of Lacedaemonians, Part 396 https://books.google[...]
[7] 문서 Sparta and Lakonia
[8] 문서 Sparta and Lakonia
[9] 문서 Sparta and Lakonia
[10] 문서 Sparta and Lakonia
[11] 문서 Sparta and Lako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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