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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메 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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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보메 왕궁은 1695년부터 1900년까지 다호메 왕국을 다스린 12명의 통치자들이 건설한 궁전으로, 베냉 공화국 아보메에 위치해 있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왕궁 건물과 흙벽으로 둘러싸인 아카바 궁전 구역으로 구성된다. 궁전은 폰족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부조로 장식되었으며, 1892년 프랑스 점령 당시 파괴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2009년 화재로 일부 훼손되었으나, 국제 기구의 지원을 받아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다. 2020년에는 프랑스가 약탈한 문화재 26점을 베냉으로 반환하는 등 문화재 반환 운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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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메 왕궁
위치 정보
기본 정보
위치아보메, 베냉
등재 기준(iii), (iv)
ID323bis
좌표좌표: 7°11′11.22″N 1°59′38.41″E
등재 연도1985년
확장 연도2007년
위험 목록 등재 기간1985년–2007년
면적47.6 ha
완충 구역181.4 ha
설명아보메의 왕궁
아보메의 왕궁
아보메에 있는 왕궁의 모습
세계유산 등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연도1985년
위기 유산 지정 연도1985년–2007년

2. 역사

1878년 글렐레 왕과 프랑스 간에 코토누 지역 양도를 위한 계약이 체결되었다.[9] 1889년부터 1894년까지 베한진 왕은 프랑스의 보호정치에 대항했으나,[9] 1894년 프랑스에 의한 식민화가 완료되면서 마르티니크로 추방되었다.[11] 이후 1944년 게조 왕과 글렐레 왕의 궁전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9] 1960년, 현재의 베냉프랑스로부터 독립했을 때, 처음에는 다호미라는 이름을 사용했다.[11]

2. 1. 건국과 발전

아보메 왕궁


아보메의 베한진 동상


아보메의 은밀한 부지에 1695년부터 1900년까지 왕국을 다스린 12명의 통치자들이 지은 화려한 궁전은 제국의 전통적인 문화 중심지 역할을 했다. 궁전 건축을 시작한 첫 번째 통치자는 도시를 건설한 후에그바자 왕이었다.[9]

민간 전승에 따르면 12개의 왕궁을 지은 아보메 왕가의 후손들은 타도의 알리그보논 공주와 표범의 자손이다.[10] 그들의 왕국은 현재 베냉 공화국 남부 아보메에 존재했다. 하지만 기록된 역사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후손인 도-아클린과 다코도누에서 시작된다. 후에그바자 왕(1645–1685)은 아보메 고원에 왕국을 세우고 왕국의 기능, 정치적 역할, 계승 규칙 등을 위한 법적 틀을 마련한 왕이었다.[10]

아가자 왕(1718–1740)은 1724년에 알라다 왕국을, 1727년에는 위다 왕국을 무찔렀다. 이로 인해 수많은 포로들이 살해되었고, 많은 포로들은 당시 글레웨(살무사 집)라고 불리던 위다에서 노예로 팔려나갔다. 이 전쟁은 다호미의 노예 무역 지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는 유럽인과 함께 위다 항구를 통해 이루어졌다.[10][11]

19세기에 영국에서 노예 폐지 운동이 일어나면서 구에조 왕(1818–1858)은 이 나라에서 농업 개발을 시작했고, 이는 옥수수와 팜유와 같은 농산물 수출을 통해 왕국의 추가적인 경제적 번영을 가져왔다.[10]

1892년부터 1894년까지 폰족이 우에메 계곡을 다시 습격하자, 프랑스는 다호미에 선전 포고를 했다. 제2차 프랑스-다호미 전쟁에서 프랑스가 일련의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후, 그들은 싱보지 궁전을 점령했다. 다호미의 마지막 독립 통치 왕이자 군대의 잔존 세력이었던 베한진 왕은 11월 17일 프랑스가 수도에 입성하자 북쪽으로 도망쳤다. 프랑스는 베한진의 형제인 구치리를 새로운 왕으로 선택했다. 베한진은 결국 마르티니크로 추방되었고, 그의 후계자인 아골리 아그보 왕은 1900년 가봉으로 추방되기 전까지 통치할 수 있었다. 1960년, 현재의 베냉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을 때, 처음에는 다호미라는 이름을 사용했다.[11]

왕국의 공식 역사는 일련의 다색 흙으로 된 부조를 통해 기록되고 이어졌다.[14]

2. 2. 노예 무역과 번영

아가자 왕(1718–1740)은 1724년에 알라다 왕국을, 1727년에는 위다 왕국을 무찔렀다. 이로 인해 수많은 포로들이 살해되었고, 많은 포로들은 당시 글레웨(살무사 집)라고 불리던 위다에서 노예로 팔려나갔다. 이 전쟁은 다호미의 노예 무역 지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으며, 유럽인과 함께 위다 항구를 통해 이루어졌다.[10][11]

19세기에 영국에서 노예 폐지 운동이 일어나면서 구에조 왕 (1818–1858)은 농업 개발을 시작했고, 이는 옥수수와 팜유와 같은 농산물 수출을 통해 왕국의 경제적 번영을 가져왔다.[10]

2. 3. 프랑스 식민 지배와 왕궁 파괴

1892년 프랑스인들이 아보메를 점령하면서 원래 왕궁이 있던 도시는 파괴되었고, 왕궁다운 모습은 사라지고 점토로 된 작은 신전만이 남게 되었다.[9] 그러나 이곳은 수백 년간 왕들이 신하와 병사들, 그리고 다호메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여성 전사들과 함께 거주하고 사후에도 묻힌 장소였다.

1878년 글렐레 왕과 프랑스 간에 코토누 지역 양도를 위한 계약이 체결되었다.[9] 1889년부터 1894년까지 베한진 왕은 프랑스의 보호정치에 대항했다.[9] 1894년 프랑스에 의한 식민화가 완결되면서 베한진 왕은 추방되었다.[9] 이후 1944년 게조 왕과 글렐레 왕의 궁전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9]

1892년부터 1894년까지 폰족이 우에메 계곡을 다시 습격하자, 프랑스는 다호미에 선전 포고를 했다.[11] 제2차 프랑스-다호미 전쟁에서 프랑스가 일련의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후, 그들은 싱보지 궁전을 점령했다. 다호미의 마지막 독립 통치 왕이자 군대의 잔존 세력이었던 베한진 왕은 11월 17일 프랑스가 수도에 입성하자 북쪽으로 도망쳤다. 프랑스는 베한진의 형제인 구치리를 새로운 왕으로 선택했다. 베한진은 결국 마르티니크로 추방되었고, 그의 후계자인 아골리 아그보 왕은 1900년 가봉으로 추방되기 전까지 통치할 수 있었다.[11]

2. 4. 독립 이후 복원과 문화재 반환

1960년, 현재의 베냉프랑스로부터 독립했을 때, 처음에는 다호미라는 이름을 사용했다.[11] 2020년 12월 24일,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소장품에서 세네갈베냉으로 여러 문화재의 영구적인 반환을 허용하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했다.[17] 이 법률에 따라 1892년 아보메 왕궁 약탈 당시 프랑스 군대에 의해 약탈된 후 알프레드 도즈 대령이 케 브랑리 박물관의 전신에 기증한 26개의 조각상이 반환되었다.[18][19] 프랑스 개발청은 2000만유로를 차관하여 아보메에 새로운 박물관 건립을 지원했다.[20]

반환된 26점의 문화 유물은 2022년 초부터 코토누에 있는 베냉의 팔레 드 라 마리나에서 전시되었다. 이 유물들은 전국을 순회하며 향후 몇 년 동안 여러 박물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며, 최종적으로 아보메의 아마존 및 다호메 왕들의 서사시 박물관에 영구 전시될 예정이다. 박물관 탈식민화는 문화재를 원산지로 반환하는 세계적인 움직임의 일환이다.[21][22]

3. 구성

궁궐이 세워진 마을은 둘레가 10km인 진흙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6개의 과 깊이 1.5m의 도랑으로 보호받았다. 도랑은 서아프리카 요새의 일반적인 방어 수단인 가시가 많은 아카시아로 덮여 있었다. 성벽 안에는 밭으로 구분된 마을, 여러 왕궁, 시장, 병영이 있는 넓은 광장이 있었다. 벽의 평균 두께는 약 0.5m로, 궁궐 내부 온도를 시원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12]

각 궁궐은 왕의 변덕에 맞게 독특하게 설계되었다. 건축 재료는 기초, 바닥 및 솟은 구조를 위해 흙을 사용했고, 목공에는 야자나무, 대나무, 이로코, 마호가니 종을 사용했다. 지붕은 짚과 판금으로 만들어졌다.[12]

3. 1. 궁전 건축과 구조

원래 14개의 궁전이 있었으나, 현재는 2개만 남아있다. 6m 높이의 담으로 둘러싸인 궁전 구역과 신성한 궁전의 뜰, 왕의 정령, 왕모의 정령의 오두막, 왕가의 제단이 있는 제식당(祭式堂) 등이 있다. 특히 유럽인들과 아프리카인들과의 첫 만남을 상징하는 새, 각각의 왕들을 상징하는 북, 물고기와 통발이 새겨진 궁중 건물 외벽의 부조, 해골 위에 안치된 게조 왕의 왕관을 비롯한 왕관 보관소의 7개 왕관이 유명하다.

궁궐이 세워진 마을은 둘레가 10km로 추정되는 진흙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6개의 이 있었다. 깊이 1.5m의 도랑으로 보호받았는데, 이 도랑은 서아프리카 요새의 일반적인 방어 수단인 가시가 많은 아카시아로 덮여 있었다. 성벽 안에는 밭으로 구분된 마을, 여러 왕궁, 시장, 병영이 있는 넓은 광장이 있었다. 벽의 평균 두께는 약 0.5m였으며, 이로 인해 궁궐 내부의 온도가 시원하게 유지되었다.[12]

각 궁궐은 왕의 변덕에 맞게 독특한 설계를 가지고 있었다. ''Kpododji''는 ''Honnouwa''를 통해 궁궐의 첫 번째 내부 안뜰을 형성했고, 두 번째 내부 안뜰 ''Jalalahènnou''는 ''Logodo''에 의해 형성되었다. 독특한 건물인 Ajalala는 다양한 유형의 개구부가 있으며, 두 번째 안뜰에 위치해 있고, 벽에는 저부조로 된 암시적인 이미지 장식이 있다. 베한진이 1894년에 의도적으로 지른 불에서 살아남은 글렐레와 게조의 궁궐은 복원되었으며 현재 박물관의 일부이다.[12]

건축에 사용된 재료는 기초, 바닥 및 솟은 구조를 위한 흙이었다. 목공은 야자나무, 대나무, 이로코, 마호가니 종으로 만들어졌다. 지붕은 짚과 판금으로 만들어졌다.[12]

3. 2. 부조

부조폰족과 그들의 제국 진화의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하는 기록서(문서가 없는 경우) 역할을 했으며, 각 왕의 군사적 승리와 권력을 이야기하고 폰족의 신화, 전통의례를 기록했다.[13] 1892년, 프랑스 점령에 반대하여 베한진 왕(1889–1894)은 도시와 궁전을 불태우라고 명령했으나, 다행히 대부분의 기념물은 불에서 살아남았고 많은 궁전이 그 이후 복원되었다. 구리와 황동 명판이 벽을 장식했다.[13]

부조는 벽과 기둥에 박혀 있었으며, 개미집에서 나온 흙에 팜유를 섞고 채소 및 광물성 안료로 염색하여 만들었다. 이것들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복제품으로 대체된 궁전의 가장 인상적인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다.[12]

과거 왕들이 수행했던 종교 의식의 일부였던 박물관에 전시된 많은 물건들은 지금도 다호메의 왕족이 종교 의식에 사용하고 있다.[15]

3. 3. 아보메 역사 박물관

아보메 역사 박물관은 5acre 면적의 건물에 자리 잡고 있으며, 1943년 프랑스 식민 행정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박물관은 40ha 면적 내의 모든 궁궐, 특히 게조 국왕과 글렐레 국왕의 궁궐을 포함한다.[15][16] 1,050개의 전시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 중 대부분은 다호메 왕국을 통치했던 왕들의 소유였다.[15][16] 박물관에는 다호메 왕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퀼트 “왕”, 전통 북, 프랑스와 다호메 간의 전쟁과 의식에 관한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다.[11]

2020년 12월 24일,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소장품에서 세네갈베냉으로 여러 문화재의 영구적인 반환을 허용하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했다.[17] 1892년 아보메 왕궁 약탈 당시 프랑스 군대에 의해 약탈된 후 프랑스 알프레드 도즈 대령이 케 브랑리 박물관의 전신에 기증한 26개의 조각상이 새로운 법률에 따른 최초의 영구 반환 대상이다.[18][19] 프랑스 개발청으로부터 2000만유로의 차관이 아보메에 새로운 박물관 건립을 위해 배정되었다.[20]

베냉으로 반환된 26점의 문화 유물은 2022년 초부터 코토누에 있는 베냉의 팔레 드 라 마리나에서 전시되었다. 이 유물들은 전국을 순회하며 향후 몇 년 동안 여러 박물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며, 최종적으로 아보메의 아마존 및 다호메 왕들의 서사시 박물관에 영구 전시될 예정이다. 박물관 탈식민화는 문화재를 원산지로 반환하는 세계적인 움직임의 일환이다.[21][22]

4. 문화



다호메 문화는 다호메 왕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매우 중요한 종교적 의미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각 왕은 "공통적인 아플리케 퀼트"로 상징되었다. 의식은 문화의 일부였으며, 인신 제사가 그 관행 중 하나였다.[11]

4. 1. 다호메 왕국의 문화

다호메 문화는 다호메 왕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종교적 의미를 중요하게 여겼다. 각 왕은 "공통적인 아플리케 퀼트"로 상징되었다. 의식은 문화의 일부였으며, 인신 제사가 그 관행 중 하나였다.[11]

4. 2. 종교 의식과 인신 공양

다호메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들의 경계가 늘 뒤섞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보메 왕궁에서는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며칠 밤을 새워 왕의 선조들을 기리는 제의가 행해진다.

다호미 문화는 다호미 왕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매우 중요한 종교적 의미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각 왕은 "공통적인 아플리케 퀼트"로 상징되었다. 의식은 문화의 일부였으며, 인신 제사가 그 관행 중 하나였다.[11]

5. 세계 유산 등재

1985년 아보메 왕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코토누 북쪽 아보메에 있다. 이곳은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진 아보메 왕국의 유산이다.

5. 1. 등재 기준

유네스코는 1985년 아보메 왕궁을 세계 유산 목록에 문화유산 - 기준 IV로 등재하며, 이 기념물의 독특한 문화적 중요성을 인정했다.[2] 등재된 유적지는 왕궁이 있는 주요 구역과 북북서쪽의 아카바 궁전 구역으로 나뉘며, 두 구역 모두 부분적으로 보존된 흙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네스코는 등재 사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1625년부터 1900년까지 12명의 왕이 강력한 아보메 왕국의 수장 자리를 차례로 이어받았다. 별도의 구역을 사용한 아카바 왕을 제외하고는, 이들은 모두 공간과 재료의 사용 측면에서 이전 궁전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흙벽 구역 내에 각자의 궁전을 지었다. 아보메 왕궁은 이 사라진 왕국을 독특하게 상기시켜 준다."[2][3] 아보메 왕궁은 2007년 7월 위험에 처한 세계 유산 목록에서 제외되었다.[14]

아보메 왕궁은 다음과 같은 세계 유산 등록 기준을 충족한다.

  • 기준 3: 아보메 왕궁은 17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번성했던 다호메 왕국의 뛰어난 증거이다.
  • 기준 4: 아보메 왕궁은 아프리카의 건축, 장식 예술, 도시 계획 분야에서 뛰어난 예를 보여준다.

5. 2. 보존과 관리

1985년 유네스코는 아보메 왕궁을 세계 유산 목록에 등재했다.[2] 등재된 유적지는 왕궁과 북북서쪽에 있는 아카바 궁전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구역 모두 부분적으로 보존된 흙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보메 왕궁은 2007년 7월 위험에 처한 세계 유산 목록에서 제외되었다.[14]

2009년 1월 21일, 하르마탄 바람의 영향으로 덤불 화재가 발생하여 왕궁 건물 다수가 파괴되었다. 불길은 빠르게 번져 주변 건물 여러 채의 지붕과 골조가 붕괴되었고, 아공글로 왕과 게조 왕, 그리고 왕비들의 묘도 파괴되었다.[23]

이에 당국은 긴급 복구 계획을 논의하고, 구조 잔해에서 물을 제거하는 등 긴급 조치를 취했다. 또한 유사 사고 방지를 위해 소방 장비를 갖추도록 하였다. 베냉 당국과 세계유산 센터의 요청에 따라 국제 기구들이 복원 작업을 지원했다.[23]

1992년부터 광범위한 보존 작업, 건물 확장 및 소장품 관리가 이루어졌다. 이탈리아 개발 협력 기구는 "PREMA-Abomey 프로그램"을 통해 자금을 지원했다. 유네스코 신탁을 통해 450000USD의 자금이 마련되었으며, ICCROM의 PREMA 프로그램, 게티 보존 연구소(Getty Conservation Institute), 스웨덴도 기여했다.[16]

1993년부터 게티 보존 연구소의 노력으로 궁전을 장식했던 부조가 복원되었다.[24] 한 궁전에서는 56개 중 50개의 부조가 베냉 문화 유산 직원들의 참여로 보존되었다. 궁전에 고용된 많은 예술가들은 우에메 주(Ouémé) 지역 출신이었다.[25]

2007년 8월, 베냉 공화국은 문화 유산 및 문화적 중요성이 있는 자연 유산 보호에 관한 법률 제2007-20호를 채택했다. 2006년, 아보메시는 유적지 보호를 위한 도시 및 계획 규정을 제정했다. 아보메 왕궁 유적지에는 왕족과 주민들이 존중하는 신성한 공간이 포함되어 있으며, 의례적인 행사의 조직도 보호 방법 중 하나이다.

참조

[1] 웹사이트 Royal Palaces of Abomey and Kathmandu removed from Danger List https://whc.unesco.o[...]
[2] 웹사이트 Royal Palaces of Abomey https://whc.unesco.o[...] Unesco.org 2011-05-10
[3] 웹사이트 evaluation report on Royal Palaces of Abomey https://whc.unesco.o[...] Unesco.org 2011-05-10
[4] 서적 Masterworks of man & nature: preserving our world heritage https://books.google[...] Harper-MacRae 2011-04-15
[5] 웹사이트 Royal Palaces of Abomey, Benin http://www.history.c[...] Save Our History 2008-01-14
[6] 서적 Rural-urban dynamics in francophone Africa https://books.google[...] Nordic Africa Institute 2011-04-15
[7] 서적 Credit, currencies, and culture: African financial institutions in historical perspective http://urn.kb.se/res[...] Nordic Africa Institute 2011-04-15
[8] 웹사이트 "Decision - 31COM 8C.3 - Update of the list of the World Heritage in danger - removal - Royal Palaces of Abomey, Río Plátano Biosphere Reserve, Kathmandu Valley, Everglades National Park" https://whc.unesco.o[...] Unesco.org 2011-05-10
[9] 서적 Palace sculptures of Abomey: history told on walls https://books.google[...] Getty Conservation Institute and the J. Paul Getty Museum 2011-04-15
[10] 웹사이트 History http://www.epa-prema[...] Official web site of Historical Museum of Abomey 2010-05-10
[11] 웹사이트 Dahomey http://www.museeouid[...] The Ouida Museum of History 2011-05-09
[12] 웹사이트 Architecture http://www.epa-prema[...] Official web site of Historical Museum of Abomey 2010-05-10
[13] 서적 African royal court art https://archive.org/[...]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1-04-15
[14] 서적 Terra 2008: The 10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Study and Conservation of Earthen Architectural Heritage https://books.google[...] Getty Publications 2011-06-14
[15] 웹사이트 Collections http://www.epa-prema[...] Official web site of Historical Museum of Abomey 2010-05-10
[16] 웹사이트 Home http://www.epa-prema[...] Official web site of Historical Museum of Abomey 2011-05-10
[17] 웹사이트 LOI n° 2020-1673 du 24 décembre 2020 relative à la restitution de biens culturels à la République du Bénin et à la République du Sénégal (1) https://www.legifran[...] 2021-04-20
[18] 웹사이트 Restitution of 26 works to the Republic of Benin https://www.quaibran[...] 2021-08-07
[19] 웹사이트 Royal statues from Benin's historic Kingdom of Dahomey to be restituted from France https://thisisafrica[...] 2021-08-07
[20] 웹사이트 Benin gets $22.5-million loan to build museum for restituted treasures https://www.artsy.ne[...] 2021-08-07
[21] 뉴스 Kingdom Comeback : The spectacular return of Benin's looted art https://www.artforum[...] Artforum 2022-03-24
[22] 뉴스 129-year journey nears end as France returns Benin treasures https://apnews.com/a[...] AP News 2021-10-25
[23] 웹사이트 Devastating fire at the Royal Palaces of Abomey (Benin) https://whc.unesco.o[...] UNESCO World Heritage Center 2009-02-13
[24] 웹사이트 Royal Bas-Reliefs of Abomey Conservation Project records http://hdl.handle.ne[...] 2020-11-22
[25] 서적 Society, state, and identity in African history https://books.google[...] African Books Collective 2011-04-15
[26] 서적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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