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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시어터 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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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트 시어터 길드(ATG)는 1961년 11월 15일에 설립된 일본의 영화 배급 및 제작 회사이다. 도호 스튜디오의 지원을 받아 외국 예술 영화 배급사로 시작하여, 이후 저예산 영화 제작, 젊은 감독 발굴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92년 활동을 중단하고 2018년 도호에 흡수 합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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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시어터 길드 - [회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원래 이름일본 아트 시어터 길드
종류기업
산업영화 제작 및 배급
설립1961년
해산2018년 10월 1일 (흡수 합병)
본사 소재지일본, 도쿄도
역사
창립1961년
해산2018년 (도호에 흡수 합병)
추가 정보
참고일본 독립 영화 운동에 중요한 역할

2. 역사

아트 시어터 길드(ATG)는 1961년 11월 15일 설립되어 일본 영화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초기에는 외국 예술 영화 배급을 주로 했으나,[2] 점차 일본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여, 다른 영화 회사와는 차별화된 비상업적인 예술 작품을 제작·배급했다.

1950년대 아시아 영화나 폴란드 영화, 프랑스 누벨바그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도 예술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8] 1957년에는 테시가와라 히로시, 하니 스스무 등 젊은 영화인들이 '시네마 57'을 결성하여 실험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 학생 운동과 베트남 반전 운동 등의 영향으로 진지하거나 대안적인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당시 오차노미즈 부근에 주요 대학이 몰려 있었고, 신주쿠는 젊은이 문화의 중심지였다. ATG의 주요 상영관이었던 아트 시어터 신주쿠 분카는 화제작을 상영하면 만원 사례를 이룰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상황과 회원 제도 덕분에 오시마 나기사의 《신주쿠 도둑 일기》, 하니 스스무의 《첫사랑 지옥편》, 마츠모토 토시오의 《장미의 장례》 등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작품들이 제작될 수 있었다.

쿠로키 카즈오 감독의 '날 수 없는 침묵'(1966년)


ATG는 공개 작품마다 영화 잡지 '아트 시어터'를 발행했다. 이 잡지는 영화의 완전한 시나리오와 영화 평론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상영관에서만 판매되었다.

ATG의 활동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 제1기: 외국 영화 배급 중심
  • 제2기: 저예산 영화 제작
  • 제3기: 젊은 감독 적극 채용

2. 1. 설립 (1961년)

1961년 11월 15일, 영화 체인 상와흥행의 경영자 이제키 타네오가 아트 시어터 길드를 설립했다.[2] 도호는 주요 자금 제공자이자 창립자 중 하나였다.[1] 일본 전역에 10개 극장을 운영했으며, 본점은 도쿄의 예술 영화관 신주쿠분카였다. 영화 평론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상영작을 선정하였고, 관객 수와 상관없이 모든 영화를 최소 한 달 동안 상영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했다.

도와 영화 부사장이었던 가와키타 가시코는 구미의 예술 영화 전문 영화관 (아트 시어터)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일본 아트 시어터 운동의 회'를 설립했다. 이 회의 취지에 찬동한 도호 부사장 모리 이와오는 산와흥행 사장 이세키 타네오에게 아트 시어터 설립을 제안했고, 이세키도 이를 승낙했다.

모리는 도호 산하 5개 영화관(도쿄 닛게키 문화, 나고야 메이호 문화, 오사카 키타노 시네마, 후쿠오카 도호 명화좌, 삿포로 코라쿠 문화)과 자본금 600만을 제공했다. 그 외 5관(신주쿠 문화, 요코하마 소테츠 문화, 도쿄 고라쿠엔 아트 시어터, 교토 아사히 회관, 고베 스카이 시네마)과 도호, 산와흥행, 코토 라쿠텐치, 테아토르 흥행, OS 흥행으로부터 총 1000만의 자본금을 바탕으로 1961년 11월 15일에 ATG가 발족했다. 당시 스태프에는 『영화의 벗』 편집장이었던 타가 쇼스케, 아트 시어터 신주쿠 문화 지배인이자 프로듀서였던 쿠즈이 킨시로 등이 있었다.

2. 2. 제1기 (1961년 ~ 1967년): 해외 예술 영화 배급

아트 시어터 길드(ATG)는 초기에는 주로 해외 예술 영화를 수입하여 배급하는 데 주력했다.[9] 상영할 영화는 영화 평론가로 구성된 작품 선정 위원회에서 심사하여 결정했다. 위원회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이이지마 타다시
이이다 신비
이자와 준
우에쿠사 지니치
시미즈 치요타
도가와 나오키
난부 게이노스케
후타바 주자부



당시 영화 수입은 정부의 쿼터제(할당제)로 인해 회사별 수입 편수 제한이 있었지만, 도와 영화 등 다른 영화 회사들이 협력하여 자사의 할당분을 제공했기 때문에 ATG는 페데리코 펠리니, 장 뤽 고다르, 사티야지트 레이 등 유명 감독들의 수준 높은 외국 영화를 다양하게 배급할 수 있었다.[9]

1962년 4월 20일, ATG의 첫 배급 작품인 《수녀 요안나》가 9개 상영관에서 개봉했다.[10]

2. 3. 제2기 (1967년 ~ 1979년): 저예산 영화 제작

아트 시어터 길드(ATG)는 1967년부터 일본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2] 텔레비전 보급으로 대형 영화사들이 오락 영화 제작에 집중하면서, 쇼치쿠 누벨 바그 출신의 오시마 나기사 등 예술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감독들은 독립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ATG는 이러한 독립 프로덕션과 협력하여 저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을 택했다.[2]

ATG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인간 증발》(1967), 오시마 나기사의 《신주쿠 도둑 일기》(1968)와 《교수형》(1968), 마츠모토 토시오의 《장미의 행렬》(1969), 짓소지 아키오의 《무상》(1970) 등 젊은 감독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지원했다.[2][6] 당시 학생 운동과 베트남 반전 운동 등으로 인해 진지하거나 대안적인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아트 시어터 신주쿠 분카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1970년대 전반에는 포르노 영화 붐에 편승하여[11] 《무상》, 《만다라》, 《천사의 황홀》과 같은 예술 포르노 영화를 상영하여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11] 하지만 흥행 실패와 경영 악화로 인해 가맹 영화관이 줄어들었고, 1979년에는 초대 사장 이세키가 퇴임하고 사사키 시로가 새로운 사장으로 취임했다.

2. 4. 제3기 (1979년 ~ 1992년): 젊은 감독 발굴

사사키 시로 사장 체제의 ATG는 이전까지 중심이었던 거물 감독 대신, 학생 영화 연구회나 포르노 영화 출신의 젊은 감독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했다.[13] 이전의 ATG 영화가 의욕적이고 실험적인 극영화 이미지를 가졌던 것과 달리,[13] 이 시기에는 오히려 청춘 영화나 오락 영화가 많아졌다.[7]

사사키 사장은 1983년 야마네 사다오와의 인터뷰에서 "더 새로운 타입의 영화, 감독, 배우가 항상 필요하다"고 말하며,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가 있는 분야로 닛카츠 로망 포르노, 핑크 영화, 자주 제작 영화, 기록 영화의 네 가지를 꼽았다.[13] 그는 텔레비전 출신 감독에 대해서는 "텔레비전과 영화는 분명히 다른 장르"라며 선을 그었다.[13]

이러한 변화 속에서 모리타 요시미츠의 『가족 게임』과 같은 히트작이 나오기도 했고, 훗날 일본 영화를 이끌어갈 많은 인재들이 성장했다.[7] 그러나 ATG 자체는 점차 약화되어 1992년 신도 카네토의 『묵동기담』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했다.[7]

3. 주요 작품

아트 시어터 길드(ATG)는 1962년부터 외국 예술 영화를 배급했으며, 1967년부터는 일본 영화 제작을 지원했다.[2] ATG는 비상업적인 예술 영화를 제작·배급하여 일본 영화사에 큰 영향을 미쳤고, 젊은 감독들을 기용하여 인재를 육성했다. 대표적인 배급 영화로는 예쥐 카바레로비치의 <어머니 조안과 천사들(1961)>, 오슨 웰스 <시민 케인> 등이 있으며, 제작 영화로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인간 증발》(1967), 오시마 나기사의 《신주쿠 도둑 일기》(1968) 등이 있다.[2][6]

ATG는 상영 작품마다 영화 잡지 '아트 시어터'를 발행했는데, 이 잡지는 영화의 전체 시나리오와 영화 평론 등으로 구성되어 상영관에서만 판매되었다.

1962년 4월 20일, 도쿄 내 3개 극장에서 아트 영화 상영 시작. 제1회 배급 작품은 '요안나 수녀'였다.


하니 스스무 감독의 '그녀와 그'(1963년)


3. 1. 초기 상영작 (1962년 ~ 1966년)

1962년 4월 예쥐 카바레로비치의 <어머니 조안과 천사들(1961)을 시작으로, 1966년 6월에는 오슨 웰즈의 <시민 케인>이 일본 최초로 공개되었다.[9] 이 외에도 베리만, 콕토, 안토니오니, 브뉘엘, 펠리니, 레네, 카바레로비치, 바이다, 뭉크, 고다르, 트뤼포, 블리어, 존 카사베츠, 토니 리차드슨, 샤티아지트 레이, 굴라우버 로샤 등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초기 아트 시어터 길드(ATG)는 주로 일본 외 예술 영화를 배급하고 상영했다.[9] 당시 영화 수입은 정부의 쿼터제로 인해 회사별 수입 편수 제한이 있었지만, 도와 영화를 비롯한 다른 영화사들이 협력하여 자사 할당분을 제공했기 때문에 ATG는 펠리니, 고다르, 사티야지트 레이 등 양질의 외국 영화를 풍부하게 배급할 수 있었다.

ATG의 첫 배급 작품은 수녀 요안나로, 1962년 4월 20일 9개 상영관에서 개봉했다.[10]

3. 2. 제작 영화 (1967년 이후)

이마무라 쇼헤이의 《인간 증발》(1967), 오시마 나기사의 《신주쿠 도둑 일기》(1968)와 《교수형》(1968), 마츠모토 토시오의 《장미의 행렬》(1969), 짓소지 아키오의 《무상》(1970) 등이 제작되었다.[2][6]

4. 영향 및 평가

ATG는 다른 영화 회사와는 차별화된 비상업주의적인 예술 작품을 제작·배급하여 일본 영화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후기에는 젊은 감독을 적극적으로 채용하여, 훗날 일본 영화계를 이끌어 갈 인물을 육성했다.[2][6]

ATG는 양질의 예술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는 취지하에 설립되었다. 연회비를 내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영화를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지지를 얻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의 학생 운동, 베트남 반전 운동, 자율 연극 등의 고조 속에서 진지하거나 대안적인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당시 오차노미즈 부근에 주요 대학이 집중되어 있었고, 신주쿠가 젊은이 문화의 중심이 되면서, ATG의 가장 중요한 상영관이었던 아트 시어터 신주쿠 분카는 화제의 영화를 상영하면 만원이 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이러한 상황과 회원 제도에 힘입어 오시마 나기사의 『신주쿠 도둑 일기』, 하니 스스무의 『첫사랑 지옥편』, 마츠모토 토시오의 『장미의 장례』 등, 당시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화제작의 제작이 가능해졌다.[2]

5. 관련 인물

아트 시어터 길드(ATG)는 일본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친 여러 인물들과 관련이 깊다. ATG는 비상업적인 예술 영화를 제작·배급하고, 젊은 감독들을 발굴하여 일본 영화의 발전에 기여했다.

쇼치쿠 출신의 오시마 나기사, 요시다 기주, 시노다 마사히로를 비롯하여, 신도 가네토, 이마무라 쇼헤이 등 다양한 영화사 출신 감독들이 ATG와 함께 작업했다. 이와나미 영화 제작소 출신의 구로키 카즈오, 하니 스스무 등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와카마쓰 고지, 아다치 마사오 등 언더그라운드 영화, 학생 영화, 핑크 영화 출신 감독들도 ATG를 통해 작품을 선보였다. TBS 출신의 짓소지 아키오, TV 도쿄 12 채널 출신의 다하라 소이치로 등 텔레비전 감독들과 데라야마 슈지, 가라 주로 등 연극계 출신 인물들도 ATG와 협력했다.

미시마 유키오, 미야기 마리코 등 영화계 외의 인물들도 ATG와 관련을 맺었다. 특히 이타미 주조는 ATG의 로고와 영화 잡지 '아트 시어터'의 디자인을 담당하고, ATG 배급 작품 《장례식》을 감독하기도 했다.

5. 1. 경영진

아트 시어터 길드(ATG)는 일본에서 외국 예술 영화를 배급하는 회사였으며, 도호 스튜디오가 주요 자금 제공자이자 창립자 중 하나였다.[2]

5. 2. 영화 감독

아트 시어터 길드(ATG)와 협력하거나 ATG를 통해 영화를 제작, 배급한 감독들은 다음과 같다.

영화사 출신다큐멘터리 출신언더그라운드/학생/인디/핑크 영화 출신텔레비전 출신연극 출신기타


5. 3. 기타

이타미 주조 (ATG 로고 및 잡지 '아트 시어터' 디자인), 타가 쇼스케 (영화의 벗 편집장), 가와키타 가시코 (도와 영화 부사장, '일본 아트 시어터 운동의 회' 설립), 모리 이와오 (도호 부사장) 등이 ATG의 주요 인물이었다.[8]

참조

[1] 웹사이트 The Anticipation of Freedom: Art Theatre Guild and Japanese Independent Cinema http://www.midnighte[...] 2004-06-28
[2] 서적 Directory of World Cinema: Japan Intellect
[3] 웹사이트 東宝、日本アートシアターギルド吸収合併へ (Toho to merge with Japan Art Theater Guild) https://bunkatsushin[...] 2018-09-26
[4] 간행물 Official Toho press release of the merging with ATG. http://contents.xj-s[...]
[5] 웹사이트 (株)日本アート・シアター・ギルド(ATG)吸収合併のお知らせ (Notice of Merger with Japan Art Theater Guild (ATG) ) https://www.jpubb.co[...] 2018-09-25
[6] 서적 A New History of Japanese Cinema Continuum
[7] 문서 ATG https://kotobank.jp/[...]
[8] 문서 映画ポスターの革命 ATG[アート・シアター・ギルド]の挑戦 https://kamakura-kaw[...]
[9] 서적 日本喜劇映画史 NTT出版
[10] 서적 現代世相風俗史年表:1945-2008 河出書房新社
[11] 학술지 文化チャンネルやる気十分の芸術ポルノ(若松孝二) 朝日新聞社
[12] 학술지 新作進行状況 ATG'80ラインナップ決定!! エコー企画
[13] 서적 日本映画の現場へ 筑摩書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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