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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라임 주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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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프라임 주로프는 나치 전범 추적 및 홀로코스트 연구에 헌신한 인물이다. 뉴욕 출신으로 예시바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히브리 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시몬 비젠탈 센터에서 활동하며 나치 전범 재판을 위한 노력을 조율하고, '마지막 기회 작전'을 통해 전범 기소에 기여했다. 저술 활동을 통해 홀로코스트 관련 주제를 다루었으며, 르완다 정부 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그는 스레브레니차 학살과 홀로도모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나치 사냥꾼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되었고, 여러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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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라임 주로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07년의 주로프
유튜브 링크Conversations with friends about their lives: The last Nazi-hunter Efraim Zuroff
인물 정보
이름에프라임 주로프
출생일1948년 8월 5일
출생지미국 뉴욕 시
국적미국, 이스라엘
모교예시바 대학교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PhD)
직업나치 사냥꾼
배우자알려진 정보 없음
파트너알려진 정보 없음
자녀4명

2. 초기 생애 및 교육

뉴욕시에서 태어난 주로프는 예시바 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사(우등) 학위를 받고 예시바 대학교 남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0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3] 히브리 대학교 현대 유대교 연구소에서 홀로코스트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내 정통 유대교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대응을 기록하고 1939년 미국 정통파 랍비들이 설립한 Vaad ha-Hatzala 구조 위원회가 시작한 구조 시도에 초점을 맞춘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3] 2000년, 예시바 대학교 출판사와 KTAV 출판사는 Vaad ha-Hatzala의 역사를 연구한 그의 저서를 출판했는데, 이 저서는 이스라엘 일반 노동 연맹(히스타드루트)으로부터 홀로코스트 및 유대 저항 문학에 대한 Egit 보조금을 받았으며, 또한 유대 연구 분야에서 예시바 대학교 동문이 출판한 최고의 도서에 수여하는 1999-2000년 사무엘 벨킨 문학상을 받았다.

2. 1. 출생 및 가정 환경

뉴욕시에서 태어난 주로프는 예시바 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사(우등) 학위를 받고 예시바 대학교 남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0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3] 히브리 대학교 현대 유대교 연구소에서 홀로코스트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내 정통 유대교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대응을 기록하고 1939년 미국 정통파 랍비들이 설립한 Vaad ha-Hatzala 구조 위원회가 시작한 구조 시도에 초점을 맞춘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3]

2. 2. 학력

에프라임 주로프는 뉴욕시에서 태어나 예시바 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사(우등) 학위를 받고 예시바 대학교 남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0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3] 히브리 대학교 현대 유대교 연구소에서 홀로코스트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3] 미국 내 정통 유대교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대응을 기록하고 1939년 미국 정통파 랍비들이 설립한 Vaad ha-Hatzala 구조 위원회가 시작한 구조 시도에 초점을 맞춘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3]

3. 경력

에프라임 주로프는 1978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시몬 비젠탈 센터의 초대 이사로 초청받아 센터의 도서관과 기록 보관소를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1] 1980년 이스라엘로 돌아가 미국 법무부 특별 수사국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미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나치 전범에 대한 소송 준비에 기여했다.[1]

1986년 비젠탈 센터에 다시 합류하여 수백 명의 나치 전범들이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영국 등으로 탈출한 사실을 밝혀냈다.[1] 그는 홀로코스트 가해자들을 재판에 회부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조율했으며, 이는 캐나다(1987), 오스트레일리아(1989), 영국(1991)에서 관련 특별 법률 제정에 영향을 미쳤다.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 이후, 주로프는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이 홀로코스트 범죄에 자국민이 광범위하게 공모했음을 인정하고, 현지 나치 협력자들을 기소하도록 설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2]

2002년에는 아리에 루빈과 함께 마지막 기회 작전을 시작하여 나치 전범 기소 및 처벌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공했다.[13] 이 작전은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었으며, 2008년에는 보상금이 인상되기도 했다.

주로프는 우스타샤 야세노바츠 강제 수용소의 전 사령관인 딘코 사키치의 체포와 기소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2] 1999년 사키치는 2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06년에는 노비사드 학살에 가담한 헝가리 헌병대 전범 샨도르 케피로를 폭로하고, 18세 유대인 살해 혐의를 받는 찰스 젠타이를 추적했다.[15]

시몬 비젠탈이 사망한 후에도, 주로프는 나치 전범 아리베르트 하임을 추적했다. 2008년에는 하임을 체포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18]

3. 1. 시몬 비젠탈 센터 활동

1978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시몬 비젠탈 센터(Simon Wiesenthal Center)의 초대 이사로 초청받았으며,[1] 센터의 도서관과 기록 보관소를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센터의 다큐멘터리 ''제노사이드(Genocide)''의 역사 고문으로 활동했다. 1980년 이스라엘로 돌아가 미국 법무부 특별 수사국의 연구원으로 근무했다.[1] 그의 노력은 미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나치 전범에 대한 소송 준비에 기여했다.[1]

1986년 비젠탈 센터에 다시 합류하여 수백 명의 나치 전범들이 전후에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영국 및 기타 국가로 탈출한 사실을 밝혀냈다.[1] 그는 홀로코스트 가해자들을 재판에 회부하기 위한 센터의 국제적인 노력을 계속 조율했다. 이러한 노력은 캐나다(1987), 오스트레일리아(1989), 영국(1991)에서 나치 전범을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 법률 제정에 영향을 미쳤다.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 이후 주로프는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및 기타 탈공산주의 사회가 홀로코스트 범죄에 대한 자국민의 광범위한 공모에 직면하고 현지 나치 협력자를 기소하도록 설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그의 공개적인 옹호는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가 현지 홀로코스트 가해자들에 대한 기소장(알렉산드라스 릴레이키스, 카지스 김자우스카스, 알기만타스 다일리데) 및/또는 인도 요청(콘라드 칼레야스와 안타나스 게체비치우스)을 제출하는 데 기여했다.[2]

그러나 루마니아에서의 주로프의 활동은 실패로 끝났다. 루마니아는 시몬 비젠탈 센터의 ''마지막 기회 작전''(Operation Last Chance)의 일환으로 아무도 기소하지 않았으며, 루마니아 전범에 대한 복권을 되돌리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4][5]

1993년, 주로프는 당시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인 시몬 페레스에 의해, 최근 독립을 되찾은 리투아니아 당국이 나치 전범 혐의자에게 발부한 사면을 다루기 위해 설립된 이스라엘-리투아니아 공동 조사 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6] 이 위원회는 현재까지 홀로코스트 동안 유대인 살해에 참여한 개인에게 부여된 약 200건의 리투아니아 당국의 복권을 취소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 그는 라트비아 정부가 나치 전범 혐의자에게 부여한 복권을 폭로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사면을 취소하기 위한 노력을 주도했다.

주로프는 우스타샤 야세노바츠 강제 수용소의 전 사령관인 딘코 사키치의 폭로, 체포, 인도 및 기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9년 10월 초, 50년 이상 아르헨티나에 거주했던 사키치는 공산주의 이후 국가에서 나치 전범에 대한 최초의 재판에서 그의 범죄로 인해 자그레브에서 20년 징역형(당시 크로아티아 법에 따른 최고 형벌)을 선고받았다.[2]

노비 사드 습격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주로프


그의 저서 ''점령: 나치 사냥꾼; 홀로코스트 가해자들을 계속 추적하다''(KTAV; 호보켄, 1994)에서 주로프는 서방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치 전범을 기소하기 위한 늦은 노력을 기록하고, 범죄가 발생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그러한 노력을 수행하는 근거를 설명한다. 이 책은 Ahriman Verlag에서 독일어로 출판되었다. 1999년 6월부터 나치 사냥꾼으로서의 주로프의 활동은 5개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되었다. 첫 번째 다큐멘터리인 ''나치 사냥꾼''(The Nazi-Hunter)은 1999년 ZDF(독일 채널 2)에서 제작되었고, 두 번째 다큐멘터리인 ''마지막 나치 사냥꾼''(The Last Nazi-Hunter)은 2004년 SWR(독일 채널 1-지역 방송국)에서 제작되었으며, 세 번째 다큐멘터리인 ''나치에 대한 마지막 사냥''(The Final Hunt for the Nazis)은 2005년 12월 France 3(채널 3)에서 방송되었다. 2009년, BBC는 주로프가 마우트하우젠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아리베르트 하임 박사를 찾기 위해 남아메리카로 가는 여정을 담은 "죽음의 박사 찾기"를 제작했다. 2012년, 이스라엘 채널 10은 다큐멘터리 영화 "Tzayad ha-Natzim ha-Acharon(마지막 나치 사냥꾼)"을 방송했다.

2009년, 주로프는 프라하 선언을 비판했다.[7][8] 주로프에 따르면 홀로코스트는 다른 비극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되며,[9] 이 선언을 "허위 등가 운동의 주요 선언문"[10]이라고 묘사하고 동유럽 국가의 우익 정당들이 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11]

2024년 9월, 주로프는 38년 만인 이달 말에 시몬 비젠탈 센터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했다.[12]

3. 2. 동유럽 국가와의 관계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 이후, 주로프는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및 기타 탈공산주의 국가들이 홀로코스트 범죄에 자국민이 광범위하게 공모했음을 인정하고, 현지 나치 협력자들을 기소하도록 설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2] 그의 공개적인 활동은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가 현지 홀로코스트 가해자들에 대한 기소(알렉산드라스 릴레이키스, 카지스 김자우스카스, 알기만타스 다일리데) 및/또는 인도 요청(콘라드 칼레야스, 안타나스 게체비치우스)을 하는 데 기여했다.[2]

1993년, 주로프는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에 의해, 독립을 되찾은 리투아니아 당국이 나치 전범 혐의자에게 발부한 사면을 다루기 위해 설립된 이스라엘-리투아니아 공동 조사 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6] 이 위원회는 현재까지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유대인 학살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부여된 약 200건의 리투아니아 당국의 복권을 취소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 그는 라트비아 정부가 나치 전범 혐의자에게 부여한 복권을 폭로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사면을 취소하기 위한 노력을 주도했다.

그러나 루마니아에서의 주로프의 활동은 실패로 끝났다. 루마니아는 시몬 비젠탈 센터의 ''마지막 기회 작전''(Operation Last Chance)의 일환으로 아무도 기소하지 않았으며, 루마니아 전범에 대한 복권을 되돌리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4][5]

2009년, 주로프는 프라하 선언을 비판했다.[7][8] 그는 홀로코스트가 다른 비극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9] 이 선언을 "허위 등가 운동의 주요 선언문"이라고 묘사하고 동유럽 국가의 우익 정당들이 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11]

3. 3. 마지막 기회 작전 (Operation Last Chance)

2002년, 마이애미, 플로리다에 있는 타르굼 쉴리쉬 재단(Targum Shlishi Foundation)의 설립자인 아리에 루빈과 함께, 주로프는 나치 전범의 기소 및 처벌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는 마지막 기회 작전(Operation Last Chance)을 시작했다.[13] 이 프로젝트는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2002년); 폴란드, 루마니아, 오스트리아(2003년); 크로아티아, 헝가리(2004년); 독일(2005년)에서 시작되었다.[13] 2008년 1월 15일, 보상금은 1만 달러에서 2만 5천 달러로 인상되었다.[13]

나치 전범 사냥에 관한 그의 두 번째 책인 ''Chasseur de nazis''(파리: 미셸-라퐁, 2008)는 프랑스 언론인 알렉상드르 두이와 함께 집필되었으며, 특히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 공산주의 몰락 이후 홀로코스트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주로프의 새로운 노력을 이야기하고 "Operation: Last Chance"가 거둔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은 2009년 Zavod za udzbenike 출판사에서 세르비아어로 ''Lovac na naciste''라는 제목으로, 2010년 Wydawnictwo Dolnoslaskie에서 폴란드어로 ''Lowca Nazistow''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주로프는 2009년 Palgrave Macmillan에서 영어로 출판된 책인 ''Operation Last Chance: One Man's Quest to Bring Nazi Criminals to Justice''에서 Operation Last Chance에 대한 프랑스어 책 내용을 대부분 다시 썼다.[14] 이 책은 2011년 말 Prospero Verlag에서 독일어로 ''Operation Last Chance; Im Fadenkreuz des "Nazi Jaegers"''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며, 2012년에는 세르비아어, 헝가리어, 핀란드어로 업데이트된 버전이 출판되었다. 2013년, Propero Verlag는 업데이트된 독일어 버전을 출판했다. 최근에는 루마니아어와 크로아티아어 버전의 책이 출판되었다.

2006년,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처벌받지 않은 헝가리 헌병대 전범 샨도르 케피로를 폭로했다. 그는 노비 사드에서 약 2,000명의 민간인을 대량 학살하는 데 책임이 있는 장교 중 한 명으로 알려졌으며, 그에 대한 형사 수사가 시작되어 2011년 5월 5일에 재판이 열렸다. 케피로가 주로프를 명예 훼손으로 고소한 소송은 기각되었다.[15] 2011년 7월 18일, 1심 판결은 샨도르 케피로의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은 항소했다. 케피로는 항소가 열리기 전인 2011년 9월 초에 사망했다. 18세 유대인 살해 혐의를 받는 찰스 젠타이는 주로프에 의해 발견되었고, 헝가리 정부는 그를 호주에서 부다페스트로 송환하여 재판을 받도록 요청했다.[16][17]

3. 4. 샨도르 케피로와 찰스 젠타이 추적

주로프는 2006년에 노비사드에서 약 2,000명의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처벌받지 않은 헝가리 헌병대 전범 샨도르 케피로를 폭로했다.[15] 그에 대한 형사 수사가 시작되어 2011년 5월 5일에 재판이 열렸으나, 1심 재판부는 2011년 7월 18일 케피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15] 검찰은 항소했지만, 케피로는 항소심이 열리기 전인 2011년 9월 초에 사망했다.[15]

주로프는 18세 유대인 살해 혐의를 받는 찰스 젠타이를 찾아내어 헝가리 정부가 호주에서 부다페스트로 송환하여 재판을 받도록 요청했다.[16][17]

3. 5. 아리베르트 하임 추적

시몬 비젠탈이 2005년 사망한 후에도, 주로프는 나치 전범 아리베르트 하임에 대한 추적을 계속했다. 2008년 7월 6일, 주로프는 하임을 체포하기 위한 공개 캠페인의 일환으로 남아메리카로 향했다.[18] 그는 2008년 7월 15일에 하임이 살아있다고 확신하며, 몇 주 안에 그를 체포하기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밝혔다.[19] 2009년 가을, 마우트하우젠 강제 수용소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아리베르트 하임에 대한 그의 추적은 BBC 다큐멘터리 ''죽음의 의사를 찾아서(The Search for Dr Death)''의 주제가 되었으며, 다섯 번째 다큐멘터리 ''Tzayad ha-Natzim ha-Acharon (마지막 나치 사냥꾼)''은 2012년 홀로코스트 추모일에 이스라엘 채널 10에서 방영되었다.

주로프는 하임이 1992년 카이로에서 사망했다는 보도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2009년 2월에 "시신도, 유해도, DNA도, 무덤도 없다.... 이 사람들[하임의 자녀들]은 죽었다고 선언되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 완벽하게 짜여진 이야기다. 그게 문제인데, 너무 완벽하다."라고 언급했다.[20]

그러나 주로프는 하임이 의심할 여지 없이 이집트에서 은신 생활을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21] 주로프는 아리베르트 하임이 "오스트리아의 마우트하우젠 강제 수용소에서 수백 명의 수감자들의 심장에 가솔린을 주입하고, 마취 없이 수술을 하고 장기를 절단하는 등의 방법으로 살해했다"고 언급했다.[21] 2011년 인터뷰에서 그는 하임을 "자신의 가장 큰 실패"라고 불렀다. CIA와 서독 정보국이 전쟁 후 나치 범죄자들과 협력한 정도에 대한 새로운 폭로가 나오면서, 주로프는 하임이 서독 정보국을 위해 일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이 그가 기소되지 않은 이유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22]

4. 저술 활동

주로프는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와 유대인 세계의 다른 관심사에 관해 450편 이상의 기사를 게재했다. 그의 출판물은 ''야드 바쉠 연구'', ''사이먼 비젠탈 센터 연보'', ''유대 정치학 리뷰'', ''미국 유대사''뿐만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쥐트도이체 차이퉁'', ''die Tageszeitung'', ''프로필'', ''보스턴 글로브'', ''예루살렘 포스트'', ''티쿤'', ''예루살렘 리포트'', ''마아리브'', ''하레츠'', ''예디오트 아흐로노트'', ''더 유대 크로니클'', ''에레츠 아체레트'' 및 기타 출판물에 게재되었다.[1]

주로프는 나치 전범을 법의 심판에 넘기기 위한 노력에 관해 전 세계 청중에게 광범위하게 강연했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이스라엘 방위군 교육대(예비군)에서 복무했으며 수천 명의 군인에게 그의 작업에 대해 강연했다.[1]

1995년과 1996년에 주로프는 1994년 봄에 그 나라에서 발생한 대량 학살의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기 위한 현지 당국의 노력을 돕기 위해 르완다로 초청받았으며 르완다 정부의 공식 자문역을 맡았다.[1]

2020년 3월 4일, 주로프는 테네시주 그린빌에 있는 퍼스트 침례 교회에서 열린 테네시 홀로코스트 컨퍼런스에 초청되어 약 1,000명의 어린이에게 강연을 했으며, 홀로코스트의 참상과 그가 전쟁 후 처벌을 피해 도망간 나치를 체포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 교육했다.[1]


  • 루타 바나가이테, 에프라임 주로프. 《우리 사람들: 리투아니아의 숨겨진 홀로코스트 발견》(Our People: Discovering Lithuania's Hidden Holocaust). 로우먼 & 리틀필드 출판사, 2020. - 240쪽.[1]

5. 기타 활동

주로프는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와 유대인 세계의 다른 관심사에 관해 450편 이상의 기사를 게재했다. 그의 출판물은 ''야드 바쉠 연구'', ''사이먼 비젠탈 센터 연보'', ''유대 정치학 리뷰'', ''미국 유대사'' 등 학술 저널뿐만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쥐트도이체 차이퉁'', ''die Tageszeitung'', ''프로필'', ''보스턴 글로브'', ''예루살렘 포스트'', ''티쿤'', ''예루살렘 리포트'', ''마아리브'', ''하레츠'', ''예디오트 아흐로노트'', ''더 유대 크로니클'', ''에레츠 아체레트'' 등 기타 출판물에도 게재되었다.

주로프는 나치 전범을 법의 심판에 넘기기 위한 노력에 관해 전 세계 청중에게 광범위하게 강연했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이스라엘 방위군 교육대(예비군)에서 복무했으며 수천 명의 군인에게 그의 작업에 대해 강연했다.

1995년과 1996년에 주로프는 1994년 봄 르완다에서 발생한 대량 학살의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기 위한 현지 당국의 노력을 돕기 위해 르완다로 초청받았으며, 르완다 정부의 공식 자문역을 맡았다.

2020년 3월 4일, 주로프는 테네시주 그린빌에 있는 퍼스트 침례 교회에서 열린 테네시 홀로코스트 컨퍼런스에 초청되어 약 1,000명의 어린이에게 강연을 했으며, 홀로코스트의 참상과 그가 전쟁 후 처벌을 피해 도망간 나치를 체포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 교육했다.

6. 평가 및 비판

에프라임 주로프는 나치 사냥꾼이자 홀로코스트 학자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특정 사건에 대한 그의 발언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주로프는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집단 학살로 인정하지 않는다. 국제 사법 재판소와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 형사 재판소에서 해당 사건을 집단 학살로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어린이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이를 부정한다.[27][28][29]

또한, 주로프는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홀로도모르에 대해 "절대 집단 학살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홀로코스트와 홀로도모르 부인을 범죄로 규정하는 우크라이나 법을 비판했다. 그는 "홀로코스트와 동일하지 않은 다른 비극을 나치의 범죄와 동일시하려는 노력은 홀로코스트 역사의 심각한 왜곡"이라고 언급했다.[30][31]

6. 1. 긍정적 평가

주로프는 나치 사냥꾼이자 홀로코스트 학자로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2008년 세르비아 대통령 보리스 타디치세르비아 민주당 국회의원들에 의해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되었다.[2]

2009년 1월 22일, 세르비아 노비사드에서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샨도르 케피로의 만행을 폭로한 공로로 노비사드 명예 시민권을 받았다.[23]

2010년 1월 15일, 크로아티아 대통령 스테판 메시치로부터 역사 수정주의에 맞서 싸우고 크로아티아 공화국의 반파시스트적 토대를 재확인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드미트르 트르피미르 훈장을 받았다.[24]

2017년 2월 16일, 세르비아 대통령 토미슬라브 니콜리치는 "특별한 업적"과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대인, 세르비아인, 로마인 및 기타 국가의 고통에 대한 진실을 옹호하기 위한 헌신"을 기리는 금메달을 주로프에게 수여했다.[25][26]

6. 2. 비판적 시각

주로프는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집단 학살로 언급하는 것을 여러 차례 거부했으며,[27][28] 국제 사법 재판소와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 형사 재판소에서 해당 대량 학살을 집단 학살로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어린이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이를 집단 학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29]

주로프는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홀로도모르에 대해 "절대 집단 학살이 아니다"라고 말했으며, 홀로코스트와 홀로도모르 부인을 범죄로 규정하는 우크라이나 법을 비판하며, "홀로코스트와 동일하지 않은 다른 비극을 나치의 범죄와 동일시하려는 노력은 홀로코스트 역사의 심각한 왜곡"이라고 언급했다.[30][31]

7. 수상 내역

에프라임 주로프는 나치 사냥꾼이자 홀로코스트 학자로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여러 상을 받았다.


  • 2008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세르비아 대통령 보리스 타디치세르비아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그를 추천했다.[2]
  • 2009년 1월 22일, 샨도르 케피로의 만행을 폭로한 공로로 세르비아 도시 노비사드의 명예 시민이 되었다.[23]
  • 2010년 1월 15일, 역사 수정주의에 맞서 싸우고 현대 크로아티아 공화국의 반파시스트적 토대를 재확인한 공로로 크로아티아 대통령 스테판 메시치로부터 드미트르 트르피미르 훈장을 받았다.[24]
  • 2017년 2월 16일, "특별한 업적"과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대인뿐만 아니라 세르비아인, 로마인 및 기타 국가의 고통에 대한 진실을 옹호하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으로 세르비아 대통령 토미슬라브 니콜리치로부터 금메달을 받았다.[25][26]

참조

[1] 뉴스 Interview: Efraim Zuroff http://www.thejc.com[...] The Jewish Chronicle 2010-02-04
[2] 웹사이트 Conversations with friends about their lives: The last Nazi-hunter Efraim Zuroff https://www.youtube.[...] 2020-06-08
[3] 간행물 Q & A with Dr. Efraim Zuroff 2012-04-04
[4] 뉴스 Newsline - April 22, 2004 https://www.rferl.or[...] Radio Free Europe
[5] 뉴스 Newsline - July 16, 2004 https://www.rferl.or[...] Radio Free Europe
[6] 서적 Lithuania: The Rebirth of a Nation, 1991-1994 https://books.google[...] Lexington Books 1999
[7] 서적 A Litmus test case of modernity: examining modern sensibilities and the public domain in the Baltic States at the turn of the century https://books.google[...] Peter Lang
[8] 웹사이트 OSCE Human Rights Conference in Warsaw (5 October 2009), Antisemitism and Holocaust Distortion http://www.osce.org/[...]
[9] 웹사이트 Digging up the future http://www.jpost.com[...] 2011-05-16
[10] 웹사이트 Lithuania Has Not Changed http://www.israelnat[...] 2011-05-10
[11] 논문 Conflicting Cultures of Memory in Europe: New Borders between East and West? http://israelcfr.com[...] 2011-05-16
[12] 뉴스 Last Nazi hunter Efraim Zuroff resigns from Simon Wiesenthal Center, vows to fight antisemitism https://www.jpost.co[...] Jerusalem Post 2024-09-05
[13] 뉴스 Operation Last Chance: Nazi Hunters More Than Double Reward to $25,000 http://www.spiegel.d[...] Der Spiegel 2008-01-14
[14] 서적 Operation Last Chance: One Man's Quest to Bring Nazi Criminals to Justice Palgrave Macmillan
[15] 뉴스 Hungarian court acquits Nazi hunter Zuroff of libel https://web.archive.[...] JTA 2011-05-03
[16] 뉴스 Zentai loses appeal against extradition hearing http://www.abc.net.a[...] ABC News 2007-04-16
[17] 웹사이트 Felmentették Képíró Sándort http://index.hu/belf[...] 2011-07-18
[18] 뉴스 Most-wanted Nazi sought in Chile http://news.bbc.co.u[...] BBC News 2008-07-09
[19] 뉴스 SS doctor 'still alive in Chile' http://news.bbc.co.u[...] BBC News 2008-07-15
[20] 뉴스 Nazi hunters' doubt over 'death' http://news.bbc.co.u[...] BBC News 2009-02-05
[21] 뉴스 Nazi-hunters cast doubt over Heim death reports https://www.reuters.[...] Reuters 2009-02-05
[22] 뉴스 Time is short in the last Nazi hunters quest for justice https://www.independ[...] The Independent 2011-05-10
[23] 뉴스 Zuroff Novi Sad honorary citizen http://www.b92.net/e[...] B92 2009-01-20
[24] 웹사이트 Odluka kojom se odlikuje Efraim Zuroff Redom kneza Trpimira s ogrlicom i danicom http://narodne-novin[...] 2010-01-15
[25] 문서 Serbian President Awards Efraim Zuroff Gold Medal http://www.lzb.lt/en[...]
[26] 문서 Nazi hunter awarded gold medal by Serbian president https://israelnewson[...]
[27] 웹사이트 Zurof: Srebrenica nije genocid http://www.b92.net/i[...] 2015-07-14
[28] 뉴스 Jews Can't Let the Genocide Deniers Win https://www.haaretz.[...] Haaretz
[29] 뉴스 Zurof: U BiH nije bilo genocida https://www.nezavisn[...] Nezavisne Novine 2013-12-27
[30] 웹사이트 Zuroff: Israel should not recognize Holodomor as genocide https://www.jpost.co[...] 2024-05-11
[31] 웹사이트 Wiesenthal Center slams Ukrainian Holocaust bill https://www.jpost.co[...] 202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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