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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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르완다는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19세기 말 독일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벨기에 위임 통치령을 거쳐 1962년 독립했다. 독립 후 투치족과 후투족 간의 갈등으로 내전과 르완다 대학살이 발생했으나, 폴 카가메 대통령 집권 이후 경제 성장을 이루어 '아프리카의 기적'으로 불린다. 현재 르완다는 공화제,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키냐르완다어, 영어,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주요 산업은 농업이며, 커피와 차를 수출한다. 1984년부터 올림픽에, 2009년부터 영연방 경기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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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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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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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르완다 공화국 |
현지 명칭 | (르완다어) (프랑스어) (영어) (스와힐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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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표어 | "우붐웨, 우무리모, 구쿤다 이기후구" (통일, 노동, 애국심) |
지리 | |
수도 | 키갈리 |
최대 도시 | 키갈리 |
면적 | 26,338 제곱킬로미터 |
면적 순위 | 144위 |
수역 비율 | 6.341% |
인구 | 13,623,302명 (2024년 추정) |
인구 순위 | 76위 |
인구 밀도 | 517 명/제곱킬로미터 |
인구 밀도 순위 | 22위 |
정치와 정부 | |
정치 체제 | 권위주의 독재 체제 하의 단일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 |
대통령 | 폴 카가메 |
총리 | 에두아르 은기렌테 |
의회 | 의회 |
상원 | 상원 |
하원 | 하원 |
역사 | |
형성 | 르완다 왕국 (15세기) |
독일령 동아프리카 일부 | 1897년–1916년 |
루안다-우룬디 일부 | 1916년–1962년 |
르완다 혁명 | 1959년–1961년 |
공화국 선포 | 1961년 7월 1일 |
벨기에로부터 독립 | 1962년 7월 1일 |
유엔 가입 | 1962년 9월 18일 |
현재 헌법 | 2003년 5월 26일 |
언어 및 민족 | |
공용어 | 키냐르완다어 영어 프랑스어 스와힐리어 |
민족 구성 | 100% 바냐르완다인 85% 후투족 14% 투치족 1% 트와족 |
민족 구성 년도 | 1994년 |
경제 | |
GDP (PPP) | $423.46억 (2023년) |
GDP (PPP) 순위 | 139위 |
1인당 GDP (PPP) | $3,136 (2023년) |
1인당 GDP (PPP) 순위 | 165위 |
명목 GDP | $139.27억 (2023년) |
명목 GDP 순위 | 129위 |
1인당 명목 GDP | $1,031 (2023년) |
1인당 명목 GDP 순위 | 167위 |
지니 계수 | 43.7 (2016년) |
인간 개발 지수 | 0.548 (2022년) |
인간 개발 지수 순위 | 161위 |
통화 | 르완다 프랑 |
통화 코드 | RWF |
기타 | |
시간대 | CAT |
UTC 시간대 | +2 |
날짜 형식 | dd/mm/yyyy |
운전 방향 | 우측통행 |
국가 전화 코드 | +250 |
최상위 도메인 | .rw |
종교 | 93.8% 기독교 3.0% 무종교 2.2% 이슬람교 1.0% 기타 |
2. 역사
19세기 말부터 독일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919년 벨기에 위임 통치령이 되었고, 1946년에는 벨기에의 신탁 통치령이 되었다. 1962년 7월 1일 벨기에로부터 독립하였다. 독립 이후 소수 부족인 투치족과 후투족의 종족 갈등이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1990년에는 종족 간 내전이 일어나 1994년까지 지속되었으며, 1994년 4월부터 7월까지 후투족과 투치족의 싸움으로 르완다 내전이 격화되었다. 1994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고, 2009년에는 영국 연방에 가입하였다.
2. 1. 식민지 이전 시대
현재 르완다 지역에 현생 인류가 정착한 것은 최근 빙하기 이후, 기원전 8000년경 신석기 시대 또는 그 이후의 신석기 아습윤기인 기원전 3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4][15] 고고학 발굴 조사를 통해 후기 구석기 시대의 드문드문한 수렵 채집인 정착의 증거와 함몰된 토기와 철제 도구를 생산한 더 많은 초기 철기 시대 정착민들의 증거가 발견되었다. 이 초기 거주민들은 오늘날 르완다에 남아 있는 원주민 피그미족 수렵 채집민인 트와족의 조상이었다. 그 후 기원전 3000년경에는 중앙 수다니어와 쿨리아크어를 사용하는 농부와 목동들이 르완다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기원전 2000년경에는 남 쿠시어어를 사용하는 목동들이 뒤따랐다. 숲에 살던 트와족은 서식지의 대부분을 잃고 산비탈로 이동했다. 기원전 800년부터 서기 1500년까지 여러 반투족 집단이 르완다로 이주하여 농업을 위해 숲을 개간했다.역사가들은 반투족 이주에 대한 몇 가지 이론을 가지고 있는데, 한 이론은 최초의 정착민이 후투족이었고, 투치족은 나중에 이주하여 아마도 닐로-하미트계 기원을 가진 별개의 인종 집단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론은 이주가 느리고 꾸준했으며, 유입되는 집단이 기존 사회를 정복하기보다는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후투족과 투치족의 구분은 나중에 발생했으며 인종적 구분이라기보다는 계급적 구분이였다.
이 지역에서 가장 초기의 사회 조직 형태는 씨족(''ubwoko'')이었다. 씨족은 계보학적 혈통이나 지리적 지역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대부분 후투족, 투치족, 트와족을 포함했다. 15세기부터 씨족들이 왕국으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기항가 왕의 지배하에 있던 한 왕국은 여러 이웃 지역을 통합하여 르완다 왕국을 건설했다. 1700년까지 현재 르완다에는 약 8개의 왕국이 존재했다. 이 중 투치족 니기냐 씨족이 통치하는 르완다 왕국은 18세기 중반부터 점점 더 우세해졌다. 이 왕국은 19세기 키겔리 르와부기리 왕의 통치 기간 동안 최대 규모에 달했다. 르와부기리는 여러 소국을 정복하고 왕국을 서쪽과 북쪽으로 확장했으며, 행정 개혁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투치족 수호자가 후투족이나 투치족 의뢰인에게 소를 양도하고, 따라서 특권 계급을 부여하는 대신 경제적, 개인적 봉사를 받는 ubuhake|우부하케rw와 후투족이 투치족 수장을 위해 일하도록 강요당한 강제 노역 제도인 uburetwa|우부레트와rw가 포함된다. 르와부기리의 변화는 후투족과 투치족 인구 사이에 균열을 키웠다. 트와족은 왕궁에서 무용수가 된 일부를 제외하고는 왕국 시대 이전보다 더 나은 상황이었지만, 그 수는 계속 감소했다.[61][57]

2. 2. 독일 및 벨기에 식민 시대
19세기 말 베를린 회의를 통해 르완다는 독일 제국에 할당되었고, 독일 동아프리카의 일부로 선포되었다.[16] 독일은 왕과 기존 계층을 지원하고 지역 수장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간접 통치를 했다.[17]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6년, 벨기에군이 르완다와 부룬디를 침공했다. 1922년, 벨기에는 국제 연맹 위임 통치령인 르완다-부룬디를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보다 직접적인 식민 통치를 시작했다.[57] 벨기에는 권력 구조를 단순화하고 중앙 집권화했으며, 교육, 보건, 공공 사업, 농업 감독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독일과 벨기에는 신제국주의의 영향으로 후투족과 투치족을 다른 인종으로 간주하고 투치족의 우월성을 부추겼다.[60] 1935년 벨기에는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여 각 개인을 투치족, 후투족, 트와족, 귀화인으로 분류했다. 이전에는 부유한 후투족이 명예 투치족이 될 수 있었지만, 신분증 제도로 인해 계급 간 이동이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다.[60] 이 정책은 훗날 르완다 내전으로 이어진 민족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60]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벨기에는 르완다-부룬디를 UN 신탁통치 지역으로 계속 통치하며 궁극적인 독립을 감독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57]
2. 3. 독립과 르완다 내전
1962년 7월 1일 르완다는 벨기에로부터 독립하였다. 독립 이후, 소수 부족인 투치족과 후투족 간의 갈등이 유혈 사태 등으로 이어졌다. 1990년에는 종족 간 내전이 발발하여 1994년까지 지속되었다. 1994년 4월부터 7월까지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싸움으로 르완다 내전이 격화되었다. 1994년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18]1959년, 르완다 왕국의 국왕 무타라 3세 사망을 계기로 투치족과 벨기에 당국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후투족의 저항도 거세졌다. 1961년, 벨기에 당국은 쿠데타로 군정을 펼치고, 왕정에 관한 국민 투표를 실시하여 키게리 5세를 폐위하고 공화제 수립을 승인했다. 르완다-우룬디 초대 대통령으로 후투족인 도미니크 므보뉴무투와가 취임했다.
1962년 독립 후, 르완다-우룬디의 제2대 대통령이었던 후투족 그레고와르 카이반다가 르완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카이반다 정권은 투치족을 정치적으로 배제하는 정책을 시행했다.[62]
1973년 쿠데타로 후투족 주베날 하비야리마나가 제2대 대통령에 취임했다.[61] 하비야리마나는 개발 독재를 실시하는 한편, 투치족에 대해서는 화해 정책을 추진하여 정치 분야 이외의 억압은 감소시켰다.[62]

1990년 우간다로 피신했던 투치족 난민들을 중심으로 르완다 애국전선(RPF)이 결성되었다. 이후 RPF와 르완다 정부 간에 르완다 내전이 발발했다.[60] 경제 침체와 정치적 혼란 속에서 RPF의 침공에 직면한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은 반투치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게 되었다.[62]
1993년 8월 4일, 르완다 정부와 RPF 간에 아루샤 협정이 체결되었다. 협정에 따라 휴전을 감시하기 위해 유엔 르완다 지원단(UNAMIR)이 파병되었다.[60]
1994년 4월, 주베날 하비야리마나가 탑승한 비행기가 격추되어 암살당하는 사건(하비야리마나와 냐타리미라 양 대통령 암살 사건)을 계기로, 르완다 대학살이 발발했다.[60] 정부와 폭도화된 후투족에 의한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족에 대한 집단 학살이 자행되었다.[60] 약 100일 동안 르완다 총인구 약 730만 명 중 약 80만 명에서 100만 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살은 RPF가 르완다 전역을 장악함으로써 종식되었고, 후투족의 파스퇴르 비지무구를 대통령으로, RPF의 폴 카가메를 부통령으로 하는 신정부가 같은 해 7월에 수립되었다.[60]
2. 4. 르완다 대학살과 그 이후
1994년 4월 6일, 주베날 하비아리마나 대통령과 시프리앵 은타랴미라 부룬디 대통령이 함께 탄 비행기가 키갈리 공항 근처에서 격추되었다. 이 사건은 몇 시간 내에 르완다 대학살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60] 약 100일 동안, 임시 정부의 명령에 따라 50만 명에서 100만 명에 이르는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족이 계획적으로 살해되었다. 직접적인 표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트와족도 살해되었다.투치족 반군인 르완다 애국전선(RPF)은 공세를 재개하여 체계적으로 르완다를 장악했고, 7월 중순까지 전국을 통제하게 되었다. 대학살에 대한 국제 사회의 대응은 제한적이었으며, 주요 강대국들은 이미 과부하 상태인 유엔 평화유지군을 강화하는 것을 꺼렸다. RPF가 르완다를 장악했을 때, 약 200만 명의 후투족이 보복을 두려워하여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를 포함한 이웃 국가들로 피난했다.[63][64] RPF가 이끄는 군대는 제1차 및 콩고 제2차 전쟁의 주요 교전 당사자였다.
르완다 내에서는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의 설립과 전통적인 마을 법정 시스템인 가카카|Gacacarw의 재도입을 통해 화해와 정의를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2000년 이후 르완다의 경제, 관광객 수, 그리고 인간개발지수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2006년에서 2011년 사이 빈곤율은 57%에서 45%로 감소했고, 평균수명은 2000년 46.6세에서 2021년 65.4세로 증가했다.

2000년, 파스퇴르 비지무구 대통령의 사임에 따라 투치족 출신 폴 카가메가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61] 카가메 대통령은 개발 독재적 성격과 반체제 인사에 대한 탄압, 임기 연장 등 독재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도 받고있다.[59]
2. 5. 카가메 정부 시대
2000년, 파스칼 리지무구(Pascal Lizimugo) 대통령의 사임에 따라 투치족의 폴 카가메(Paul Kagame)가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61]카가메는 2000년 대통령 취임과 함께 발표한 국가 개발 계획 『VISION2020』에서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을 내세웠다.[60] 내전으로 르완다의 산업·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1999년 내전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61] 내전 시기에 해외로 탈출(디아스포라(Diaspora))한 투치족 중 200만 명 가까이가 전후 귀국하여 해외에서 습득한 다양한 기술로 국가 재건에 기여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 르완다는 급격한 근대화를 이루어 “아프리카의 싱가포르”[68], “아프리카의 기적”[65]으로 불린다. 매년 경제성장률이 7% 안팎으로 급성장했으며, 수도 키갈리는 중국 기업[66] 등의 투자로 르완다 최고층 랜드마크인 키갈리 시티 타워를 비롯한 현대적인 건물과 도로가 건설되면서 새롭게 변모하였다.[67][68][69] 2008년부터는 비닐봉투의 제조·수입·판매를 엄격히 단속하여, 위반 시 마약 사용과 동등한 수준의 처벌을 내리고 있다.[70][71]
카가메는 2018년 아프리카 연합 의장을 역임하며 아프리카 대륙 자유 무역 협정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72] 그러나 강력한 반체제파 탄압 등으로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그의 통치 방식은 독재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73] 실제로 2015년 헌법 제172조 개정으로 카가메는 2034년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74] 카가메 대통령은 『일본경제신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완벽한 지도자는 없다”, “르완다에 적합한 통치를 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강압적이라는 비판에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답했다.[75]
전통적으로 가부장제 사회였던 르완다는 대량학살 이후 국가 재건 과정에서 젠더 평등과 농업 및 가사 이외 직업에서의 여성 참여가 진전되었다.[60] 2008년 르완다 의회는 세계 최초로 여성 의원이 과반수를 차지했다.[60] 2003년 제정된 신헌법은 2015년 개정되어 모든 의사결정 기구에서 여성 비율을 30% 이상으로 규정하였다.[60] 얼네스트 루와무키오 주일 르완다 대사는 여성이 주요 직책에 취임해도 부패에 연루되지 않고, 여성도 출세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딸에게 교육을 시키는 가정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60]
3. 정치
르완다는 공화제를 채택한 입헌 국가이며, 2003년 5월 26일에 승인된 현행 헌법이 같은 해 6월 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7년이고 3선은 금지된다. 그러나 2015년 헌법 개정으로 폴 카가메 대통령은 예외적으로 2034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74] 총리와 내각에 해당하는 각료평의회 구성원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르완다 의회는 양원제로,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다. 상원은 26석으로, 12석은 지방의회, 8석은 대통령, 4석은 '''정치 조직 포럼''', 2석은 고등 교육 기관 대표가 선출 또는 임명한다. 하원은 80석으로, 53석은 국민 직접 선거, 24석은 여성 의원 할당제, 3석은 청년 및 장애인 단체가 선출한다. 상원 임기는 8년, 하원은 5년이다. 르완다 대학살 이후 남성 인구 감소와 헌법 규정(여성 의원 비율 30% 이상)으로 인해 여성 의원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2008년에는 여성 의원이 세계 최초로 과반수를 차지했다.[76]
최대 정당은 폴 카가메 대통령이 이끄는 르완다 애국 전선(RPF)이다. RPF는 기독교 민주당(PDC), 이상 민주당(PDI, 구 이슬람 민주당), 르완다 사회당, 진보 조화당, 르완다 인민 민주 연합과 여당 연합을 구성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 RPF는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당시 정권을 장악한 이후 지속적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선거 과정에서 유력 후보 배제, 야당 등록 금지, 편향 보도 등 여당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여 독재 성향을 보인다는 비판을 받는다.[77] 그러나 개발 독재를 통해 양호한 치안과 높은 경제 성장을 달성하기도 했다. 주요 야당으로는 사회 민주당, 자유당 등이 있다.
최고 사법 기관은 대법원(''Cour suprême'')이다.
내전 이후 르완다 정부는 거버넌스(통치 능력) 향상에 힘쓰고 있다. 특히 부패 감소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2016년에는 정부 청렴성이 세계 50위, 아프리카 3위를 기록했다.[78] 중앙 정부의 강화된 권력은 개발을 원활하게 추진하여 경제 성장에 기여했지만, 시민 생활 전반에 걸친 정부의 통제와 이미히고(노르마)를 통한 개발 계획 추진 등[79] 강권적인 개발 독재 체제가 확립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4. 행정 구역
2006년 1월 1일 르완다의 행정 구역이 개편되어 5개 주(Province)로 구성되었다.
- 북부 주 (Province du Nord)
- 남부 주 (Province du Sud)
- 동부 주 (Province de l'Est)
- 서부 주 (Province de l'Ouest)
- 키갈리 주 (Kigali)
각 주는 다시 여러 개의 구(District)로 나뉜다. 2006년 이전에는 11개 주와 수도 키갈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5. 지리
르완다는 아프리카 중동부의 내륙국으로, '천 개의 언덕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구릉 지대가 많다.[60] 국토의 거의 전역이 완만한 구릉으로 덮여 있으며, 이 구릉은 모두 정상까지 경작되어 르완다의 밀집된 인구를 지탱하고 있다. 르완다는 우간다, 부룬디, 콩고 민주 공화국, 탄자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서쪽에는 콩고 강과 나일 강의 유역을 나누는 평균 해발 2,740m의 분수령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그 서쪽 사면을 키부 호와 루지지 강 계곡으로 내려가면 아프리카 대지구대의 일부가 된다. 키부 호와 루지지 강은 콩고 민주 공화국과의 국경이기도 하다. 동쪽 사면은 완만하게 중앙 고원에서 평원, 늪지, 호수로 고도가 낮아지고, 동쪽 끝을 남북으로 흐르는 카게라 강이 탄자니아와의 국경을 이룬다. 카게라 강은 나일 강의 지류 중 하나이다.
국토의 거의 전역이 완만한 구릉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르완다는 “천 개의 언덕의 나라”라고 불린다.[60] 주거 형태는 산촌(散村)이 일반적이었지만, 르완다 내전 이후 정부의 강력한 주도하에 집촌화(集村) 정책이 시행되어 집촌(集村)이 생겨나고, 일부에서는 농촌 형태가 크게 변화했다.[85]
숲은 개발이 제한된 3개의 국립공원(동부의 아카게라 국립공원, 북서부의 화산 국립공원, 남서부의 뉴응웨 국립공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뉴응웨 숲에서는 2006년 영국의 탐험대가 나일 강의 원류(源流)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국내 평균 해발이 1,600m로 고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월 평균 기온은 연중 20도 초반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서늘하며, 우기(雨季)가 두 번 있다.[60]
6. 경제
르완다는 농업이 중심 산업이며, 주요 수출 품목은 커피와 차이다.[86] 2014년 기준으로 커피는 총 수출의 8.9%, 차는 8.8%를 차지했다.[86] 아프리카 대지구대에 위치하여 해령형 광물 자원도 풍부하다. 주석, 텅스텐, 희토류 금속인 탄탈럼과 니오브 등이 주요 광물 자원이다.[86] 2012년 기준 탄탈럼 생산량은 150톤으로 세계 1위(세계 생산량의 20.6%), 니오브 생산량은 190톤으로 세계 3위였다.[86] 2014년 기준 니오브는 총 수출의 15.8%, 주석 광석은 11.0%를 차지했다.[86]
1994년 르완다 대학살 이후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으나, 폴 카가메 대통령은 2000년 취임 이후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육성, 인프라 정비, 부정부패 감소 등을 통해 경제 발전을 추진했다.[60][89] 그 결과, 르완다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 '아프리카의 기적'이라고 불린다.[65]
7. 사회
르완다는 1994년 르완다 집단학살 이후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교육 분야에서는 2012년 이전에는 9년간 무상 교육이 제공되었으나, 이후 12년으로 확대되었다.[45] 초등학교 등록률은 높지만, 졸업률은 낮고 중복률은 높은 편이다.[45] 학부모는 자녀 교육에 일부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정부는 이것이 교육 배제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45] 사립학교도 다수 존재하며, 일부는 교회에서 운영하며 수업료를 받는다.[45] 동아프리카 공동체 및 영연방과의 관계 강화로 인해, 2009년까지 중등 교육에서 프랑스어와 영어가 모두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영어 교육과정만 제공된다.[45] 고등 교육 기관으로는 르완다 대학교가 있으며, 2013년 기존의 르완다 국립대학교 등을 통합하여 설립되었다.[45] 2013년 고등 교육 등록률은 7.9%로, 2006년의 3.6%에 비해 증가했다.[45] 2022년 문해율은 78.8%이다.[45]
르완다는 IT 강국을 목표로, 개인용 컴퓨터를 활용한 초등교육을 실시하고, 투움바 고등기술전문학교를 설립하여 IT 교육을 제공한다.
의료 분야에서는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었으나, 폴 카가메 대통령은 의료를 비전 2020의 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투자를 늘렸다.[45] 지역 사회 기반의 건강보험 시스템을 도입하여 2014년 기준 90% 이상의 인구가 혜택을 받고 있다.[45] 파트너스 인 헬스는 르완다의 건강 증진을 "지난 5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45] 그러나 여전히 전염병, 높은 산모 사망률, HIV/AIDS 유행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45]
인권 분야에서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제 사회였으나, 집단 학살 이후 양성평등과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진되었다.[60] 2008년 르완다 의회는 세계 최초로 여성 의원이 과반수를 차지했다.[60] 동성애는 금기시되며, LGBT 인권은 제한적이다.[52][53] 동성 결혼은 인정되지 않는다.[53] 휴먼 라이츠 워치는 르완다 당국이 거리 아이 등을 체포, 구금하고 고문한 사례를 기록했다.[54]
2022년 영국은 난민을 르완다로 이송하는 대가로 1.2억파운드를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으나, 비인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60]
7. 1. 인구 및 민족
1994년 당시 르완다 인구는 775만 명이었으며, 이 중 약 89%가 후투족이고 나머지는 투치족이었다.[58] 르완다 통계청 추산에 따르면 2015년 르완다 인구는 11,262,564명이었고,[43] 2022년 예상 인구는 13,246,394명이었다.[44] 2012년 인구 조사에서는 인구가 10,515,973명으로 집계되었다.[43]르완다는 식민지 시대 이전부터 통일된 국가였으며, 인구는 바냐르완다라는 하나의 문화적, 언어적 집단에서 나왔다. 이는 식민 열강에 의해 국경이 그어지고 민족적 경계나 식민지 이전의 왕국과 일치하지 않는 대부분의 현대 아프리카 국가들과 대조된다. 바냐르완다 사람들 안에는 후투족, 투치족, 트와족이라는 세 개의 별개의 집단이 있다. CIA의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2009년 후투족은 인구의 84%, 투치족은 15%, 트와족은 1%를 차지했다.[58] 트와족은 르완다의 초기 주민들에서 유래한 피그미족이지만, 학자들은 후투족과 투치족의 기원과 차이점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식민지 이전 르완다에서 투치족은 왕과 대부분의 수장이 나온 지배 계급이었고, 후투족은 농업민이었다. 현재 르완다 정부는 후투족/투치족/트와족 구분을 막고 신분증에서 이러한 분류를 제거했다.
7. 2. 언어
키냐르완다어는 르완다의 주요 언어이자 공용어이며, 거의 모든 국민(98%)이 사용한다.[50] 역사적으로 식민지 시대에는 독일어가 사용되었으나 교육이나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고, 이후 벨기에에 의해 도입된 프랑스어가 독립 후에도 오랫동안 공용어이자 널리 사용되는 언어로 남았다.[50] 네덜란드어도 사용되었다. 1990년대 이후 영어를 사용하는 르완다 난민들의 귀환과[50] 르완다 애국 전선 정권의 미국, 영국과의 협력 강화로 인해 영어의 중요성이 커졌으며, 2008년에는 교육 언어가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전환되었다.[50]현재 르완다의 공용어는 키냐르완다어, 영어, 프랑스어, 스와힐리어이다.[48] 키냐르완다어는 국어이며, 영어는 중등 및 고등 교육의 주요 교육 언어이다. 동아프리카 공동체의 공용어인[48] 스와힐리어는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돌아온 난민들과 콩고민주공화국과의 국경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제2언어로 사용된다.[48] 2015년에는 스와힐리어가 중등학교 필수 과목으로 도입되었다.[48]
르완다 대학살 이후, 영어 사용자가 많은 르완다 애국 전선이 집권하고,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르완다는 단기간에 프랑스어권에서 영어권으로 전환한 드문 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는 프랑스어 교육이 재개되고 프랑코포니 국제기구와의 관계가 회복되는 등 변화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7. 3. 종교

2001년 통계에 따르면, 기독교의 가톨릭 56.5%, 개신교 26%, 재림교 11.1%이다.[58] 이슬람교 4.6%, 토착 신앙 0.1%, 무종교 1.7%이다.
7. 4. 교육
2012년 이전에는 르완다 정부가 국영 학교에서 초등 6년과 중등 3년, 총 9년 동안 무상 교육을 제공했다.[45] 2012년부터는 무상 교육 기간이 12년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45] 2015년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등록률은 "거의 전면적"이지만, 완료율은 낮고 중복률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45] 수업료는 무료이지만, 학부모는 학용품 제공, 교사 개발 지원, 학교 건설 기여 등으로 자녀의 교육 비용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비용이 아동의 교육 배제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45]전국에는 많은 사립학교가 있으며, 그중 일부는 교회 운영 학교로 동일한 교육과정을 따르지만 수업료를 받는다.[45] 1994년부터 2009년까지 중등 교육은 프랑스어 또는 영어로 제공되었지만, 동아프리카 공동체와 영연방과의 관계 강화로 현재는 영어 교육과정만 제공된다.[45]
르완다는 여러 고등 교육 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2013년에는 기존의 르완다 국립대학교와 다른 국립 고등 교육 기관이 통합되어 공립 르완다대학교가 설립되었다.[45] 2013년 르완다의 고등 교육 총 등록률은 7.9%였으며, 2006년에는 3.6%였다.[45] 2022년 르완다의 읽기 쓰기 능력(15세 이상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78.8%였으며, 2009년 71%, 1991년 58%, 1978년 38%였다.[45]
초등교육 3년차까지는 키냐르완다어로, 그 이후는 영어로 수업이 진행된다. 스와힐리어 교육은 필수이다. 국민의 100%가 이해할 수 있는 키냐르완다어는 초등교육을 제외하고는 교육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IT 강국을 목표로 하는 정책에 따라, 전기가 없는 지역에도 인터넷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버스를 도입하거나, 간이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한 초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IT를 가르치는 투움바 고등기술전문학교도 일본의 지원으로 설립되어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7. 5. 보건
르완다의 의료 수준은 1994년 대량학살 이전과 이후 모두 역사적으로 매우 낮았다.[45] 1998년에는 5세 미만 아동 5명 중 1명 이상이 말라리아로 인해 사망했다.[45]폴 카가메 대통령은 비전 2020 개발 프로그램의 우선 과제 중 하나로 의료를 설정하고,[45] 2013년 의료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6.5%까지 증가시켰는데, 이는 1996년 1.9%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이다.[45] 정부는 ''mutuelles de santé''라는 건강보험 제공자 시스템을 통해 의료 자금 조달 및 관리를 지역 사회에 이양했다.[45] ''mutuelles''는 1999년 시범 운영되었고, 국제 개발 파트너의 지원을 받아 2000년대 중반까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45] 이 제도의 보험료는 처음에는 연간 2달러였지만, 2011년부터는 최빈층은 무료이고 성인 최대 보험료는 8달러까지 오르는 점진적 규모로 변경되었다.[45] 2014년 기준으로, 90% 이상의 인구가 이 제도의 보장을 받았다.[45] 정부는 또한 1997년에 설립된 키갈리 보건 연구소(KHI)를 포함한 교육 기관을 설립했으며,[45] 현재는 르완다대학교의 일부이다. 2005년, 카가메 대통령은 ''대통령 말라리아 이니셔티브''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46] 이 프로그램은 모기장과 의약품과 같이 말라리아 예방에 가장 필요한 물품을 르완다의 가장 외딴 지역에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르완다는 여러 주요 건강 지표에서 개선을 보였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기대수명은 55.2세에서 64.0세로 증가했고,[45]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은 1,000명당 106.4명에서 52.0명으로 감소했으며,[45] 결핵 발생률은 10만 명당 101명에서 69명으로 감소했다.[45] 르완다의 의료 분야 발전은 국제 언론과 자선 단체에 의해 언급되었다. ''대서양 (잡지)''은 "르완다의 역사적인 건강 회복"에 관한 기사를 실었고,[45] 파트너스 인 헬스는 이러한 건강 증진을 "지난 5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45]
그러나 이러한 개선에도 불구하고 르완다의 건강 상황은 여전히 전염병이 지배하고 있으며,[45] 미국 국제개발처는 "상당한 건강 문제"를 지적했는데,[45] 여기에는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산모 사망률과[45] 지속적인 HIV/AIDS 유행이 포함된다.[45]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르완다 여행객은 말라리아 예방 약을 복용하고 황열병과 같은 예방 접종을 최신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47]
르완다는 또한 의료 전문가가 부족하여 인구 1,000명당 의사, 간호사 및 조산사가 0.84명에 불과하다.[45] 유엔개발계획(UNDP)은 의료와 관련된 밀레니엄 개발 목표 4~6에 대한 르완다의 건강 진전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2015년 중반 UNDP 보고서는 "극적으로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아 사망률 목표 4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45] 산모 사망률을 4분의 3 줄이는 목표 5에 대해서는 "좋은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45] HIV 유병률이 감소하기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표 6은 아직 달성되지 않았다.[45]
2007년 르완다의 인체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 감염자 수는 약 15만 명으로 추산되며,[58] 감염률은 2.8%이다.[58] 르완다인의 평균 수명은 67.67세이다.[58]
7. 6. 인권
르완다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제 사회였지만, 대량 학살 이후 국가 재건 과정에서 젠더 평등과 농업 및 가사 이외의 직업에서 여성의 역할이 증진되었다.[60] 2008년 르완다 의회는 세계 최초로 여성 의원이 과반수를 차지하였다.[60] 2003년 제정된 신헌법(2015년 개정)은 모든 의사 결정 기구에서 여성의 비율을 30% 이상으로 할 것을 규정하였다.( 쿼터제)[60] 여성의 사회 진출이 두드러지며, 2015년에는 성별 관련 범죄에 대응하는 원스톱 센터가 설립되었다.[60]동성애는 일반적으로 금기시되는 주제이며, 전국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는 거의 없다. 일부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및 트랜스젠더(LGBT) 르완다인들은 괴롭힘과 협박을 당했다고 보고했다.[52][53] 르완다에서는 동성 성행위가 불법은 아니지만, LGBT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법적 보호가 제공되지 않으며,[52] 공공 질서 및 도덕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체포될 수 있다.[53] 동성 결혼은 인정되지 않으며, 헌법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일부일처제 결혼만 인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53]
2006년 이후, 휴먼 라이츠 워치는 르완다 당국이 거리 아이, 노점상, 성 노동자, 노숙자, 거지를 체포하고 구금하는 것을 기록해왔다. 또한 카미 군 캠프, 콰 가치냐 및 기콘도 교도소와 같은 시설에서 고문이 사용된 사례도 기록했다.[54]
2022년 4월, 영국이 난민을 르완다로 이송하는 대가로 르완다에 1.2억파운드를 투자할 계획이 발표되어 비인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르완다는 내전으로 자국에서 난민이 발생한 역사를 고려하여 다른 나라의 난민을 수용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60]
8. 문화
음악과 춤은 르완다의 의식, 축제, 사교 모임 및 이야기 전달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가장 유명한 전통 춤은 여성이 추는 ''움샤기리로'' (소춤),[90] 남성이 추는 ''인토레'' (영웅의 춤),[90] 그리고 전통적으로 남성이 ''인고마''로 알려진 북을 연주하는 북 연주[91], 이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 정교하게 짜인 의식이다. 가장 잘 알려진 무용단은 국립 발레단으로, 1974년 하비야리마나 대통령에 의해 설립되어 국내외에서 공연한다.[92] 전통적으로 음악은 구전으로 전승되며, 사회 집단에 따라 스타일이 다양하다. 북은 매우 중요하며, 왕궁( ''Mwami'')의 왕실 북 연주자들은 높은 지위를 누렸다.[93] 북 연주자들은 보통 7명에서 9명으로 구성된 그룹으로 함께 연주한다.[94] 르완다는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 콩고, 미국 음악의 영향을 받은 성장하는 대중 음악 산업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힙합으로, 댄스홀, 랩, 레게, R&B, 댄스팝이 혼합되어 있다.[95]
전통 예술 공예품은 전국적으로 생산되지만, 대부분은 장식용이라기보다는 기능적인 용품으로 시작되었다. 엮은 바구니와 그릇이 특히 일반적인데, 아가세케 바구니 스타일이 대표적이다.[96] 독특한 소똥 예술인 ''이미공고''는 르완다 남동부에서 생산되며, 독립적인 기사카 왕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소똥은 다양한 색상의 천연 토양과 섞여 기하학적 모양을 형성하는 무늬가 있는 능선으로 칠해진다.[97] 다른 공예품으로는 도자기와 목각이 있다.[98] 전통 주택 양식은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며, 풀 지붕( ''nyakatsi''로 알려짐)을 가진 원형 또는 직사각형 진흙집이 가장 일반적이다. 정부는 이러한 주택을 물결 모양 철판과 같은 더 현대적인 재료로 교체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99][100]
르완다는 오랜 서면 문학의 역사는 없지만, 시에서 민담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구전 전통이 있다. 이 나라의 많은 도덕적 가치와 역사적 세부 사항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져 왔다. 가장 유명한 르완다 문학 인물은 구전 전통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자신의 시를 쓴 알렉시스 카가메 (1912–1981)이다. 르완다 대학살은 벤자민 세헤네와 무푸란지마 프레드와 같은 신세대 작가들의 증언, 수필, 소설 등의 문학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골든 글로브 후보에 오른 ''호텔 르완다'', ''100일'', ''악마와 악수하다'', ''4월 어느 날'', 그리고 ''총격 사건''을 포함하여 르완다 대학살에 관한 여러 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마지막 네 편은 르완다에서 촬영되었으며 생존자들이 출연진으로 참여했다.
일 년 내내 14개의 정기적인 국경일이 지정되어 있으며, 정부에 의해 추가로 지정되는 경우도 있다. 4월 7일 대학살 추모일 다음 주는 공식적인 애도 기간으로 지정된다. 후투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RPF의 승리는 7월 4일 해방일로 기념된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은 ''움간다''로,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지속되는 의무적인 봉사활동의 날이다. 18세에서 65세 사이의 모든 건강한 사람들은 거리 청소 또는 취약한 사람들을 위한 주택 건설과 같은 지역 사회 활동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서비스는 ''움간다'' 동안 중단되며, 대중 교통은 제한된다.
9. 국제 관계
프랑스는 하비아리마나 암살에 카가메 정권 관계자들이 연루되었다고 기소했고, 카가메 측도 프랑스가 대학살을 지원했다고 비난하며 국교를 단절했으나, 2009년 11월 29일 3년 만에 국교를 회복했다.[80]
르완다 정부는 영어권과의 접촉을 시도하여 2009년 11월 29일 영연방 가입이 승인되어 54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구 영국 식민지 이외의 국가가 영연방에 가입이 승인된 것은 1995년 모잠비크 이후 처음이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인도는 ICT 인프라 구축 및 기업 진출을 통해 르완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81][75] 특히 중국과는 무기 공급 등 군사적인 관계도 있으며, 2019년 7월 르완다 대학살 해방 25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서 르완다군은 중국인민해방군 훈련을 통해 기존의 영국식에서 중국식 거위걸음으로 바꾸었다.[82]
이웃 국가 부룬디와는 언어, 사회 구조, 민족 구성, 지형 등이 거의 공통적이며 형제 국가라고 할 수 있지만, 양국 관계는 독립 이후 1980년대 말까지 매우 불편했다. 이는 독립 직전의 혁명으로 르완다가 투치족의 국왕과 사회 상층부를 배제하고 후투족 중심의 사회를 만들어낸 반면, 부룬디는 왕정이 붕괴된 후에도 투치족이 사회의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이다.[83]
10. 스포츠
르완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 배구, 농구, 육상 및 장애인 올림픽 경기이다.[1] 크리켓은 케냐에서 귀환한 난민들이 배우면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2][3] 사이클링은 전통적으로 주요 교통 수단으로 여겨졌지만, 사이클 경기로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4] 르완다 국가대표팀은 "두 번째 기회의 땅: 르완다 사이클링 팀의 불가능한 부상"이라는 책과 "재에서 일어서다"라는 영화의 주제가 되었다.[5][6]
르완다는 1984년부터 올림픽에 참가해 왔으며[7], 2004년부터 패럴림픽에 참가하고 있다.[8] 2012년 런던 2012년 하계 올림픽에 육상, 수영, 마운틴 바이크 및 유도 종목에 7명의 선수를 파견했으며,[9] 2012년 하계 패럴림픽에는 육상, 장애인 역도, 앉은 배구 종목에 15명의 선수를 파견했다.[10] 2009년 영연방에 가입한 이후 영연방 경기 대회에도 참가하고 있다.[11][12]
르완다 국가 농구 팀은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남자 팀은 2007년 이후로 4번 연속 아프리카 농구 선수권 대회 결승전에 진출했다.[13] 르완다는 2013년 대회 개최를 위한 입찰에서 실패했다.[14][15]
르완다 국가 축구 팀은 200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한 번 출전했지만[16], 조별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17] 이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며, FIFA 월드컵 본선 진출 경험은 없다.[18] 르완다의 최고 국내 축구 대회는 르완다 내셔널 풋볼 리그이며,[19] 2015년 기준으로 키갈리의 APR FC가 지난 17번의 리그 중 13번 우승을 차지하며 최강팀으로 군림하고 있다.[20] 르완다 클럽들은 2002년부터 카가메 대통령이 후원하는 중앙 및 동아프리카 팀을 위한 카가메 인터클럽컵에 참가하고 있다.[21]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르완다에서도 축구가 압도적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1975년에는 프로 축구 리그인 르완다 프리미어리그가 창설되었다. 르완다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는 2004년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또한, 르완다 정부는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널 FC와 계약하여 2018-19 시즌부터 유니폼 소매에 '''VISIT RWANDA''' 광고를 게재하고 있다.[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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