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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예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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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화예술론은 1973년 김정일이 발표한 영화 이론서로, 주체사상을 영화, 문학, 예술에 적용하여 영화를 혁명의 도구로 삼으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영화 이론, 연출, 연기 등 영화 제작 전반을 다루며, 특히 '종자론', '모델링 이론', '속도전'과 같은 개념을 제시한다. 북한 영화 제작의 지침서로 여겨지지만, 실제 영화 산업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며, 김정일의 후계자 지위 확보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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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예술론 - [서적]에 관한 문서
서지 정보
영화 예술론 표지
영화 예술론 영어판 표지
제목영화 예술론
원어 제목영화예술론 (映畫藝術論)
저자김정일
원어한국어
국가북한
주제선전 영화
정부 정책
북한
장르(정보 없음)
출판일1973년 4월 11일
출판 장소조선로동당 출판사(평양)
영어 출판일1989년
영어 출판 장소외국문출판사(평양)
미디어 유형인쇄물
페이지 수 (한국어판)410쪽
페이지 수 (영어판)329쪽
ISBN(정보 없음)
OCLC22903260
Dewey 십진분류법(정보 없음)
의회도서관 분류(정보 없음)
관련 정보
기타 제목영화예술론 (문화어)
영화 예술 리론

2. 배경

김일성 동상과 카메라, 꽃바구니, 공책을 든 여섯 명의 조각상
평양 영화 촬영소의 김일성 동상. 영화예술론은 김일성의 예술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영화에 맞춰 재구성했다.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김정일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서 문화, 이념, 선전 관련 사업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개인적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22]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중요한 연례 영화 회의인 심미적 검토 회의에서 외국 영화 개념에 대한 논의를 금지했으며, 회의 기록 파기를 명령하고 참가자들에게 창작 활동에서 김일성과 당의 가르침만을 따를 것을 강조했다.

이후 김정일의 영화 및 문학 분야에서의 영향력은 점차 커졌으며, 그는 탈스탈린화 이후 소련에서 나타난 자유주의적 예술 경향을 비판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968년부터는 1930년대 항일 유격대 시절의 연극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주도했다. 김정일은 ''피바다''(1, 2부, 1969), ''한 자위단원의 운명''(1970), ''꽃파는 처녀''(1972) 등 주요 영화 제작 과정을 직접 현지지도 했다. 이후 혁명가극 제작에도 관여하는 등, 정부의 예술 행정 분야에서 약 10년간 활동하며 경험을 쌓았다.

김정일은 지난 5년간 영화 감독 및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했던 연설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편의 글을 썼고, 이를 모아 1973년 4월 11일 ''영화예술론''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은 김정일의 이름으로 나온 첫 번째 주요 저작물이었다.[5] 그는 1970년대 내내 문화예술 분야 활동을 지속적으로 감독했다.

3. 주요 내용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김정일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서 활동하며 문화, 이념, 선전 사업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그는 외국 영화의 자유주의적 영향을 경계하며 창작 활동에서 김일성과 당의 가르침만을 따를 것을 강조했다. 김정일은 영화 및 문학 분야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며 탈스탈린화 이후 소련의 예술적 경향을 거부했다. 1968년부터는 1930년대 항일 유격 투쟁 시기의 연극을 영화로 각색하는 작업을 주도하여, ''피바다''(1969), ''한 자위단원의 운명''(1970), ''꽃파는 처녀''(1972) 등의 제작 과정을 현지지도 했다. 이러한 경험과 지난 5년간 영화 감독 및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했던 연설 내용을 종합하여 1973년 4월 11일, 그의 첫 번째 주요 저작인 『영화예술론』을 출판했다.[5]

이 책은 북한의 통치 이념인 주체사상의 원리를 영화, 문학, 예술 분야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이다. 김정일은 영화를 "혁명화"하는 것이 예술과 문학 전체를 혁명화하고, 나아가 사회 전체를 로동당의 유일 사상과 주체사상으로 무장시키는 핵심적인 수단이라고 보았다. 책의 서문에서는 영화를 "혁명과 건설을 위한 강력한 이념적 무기"로 규정하고, 영화에 역량을 집중하여 예술과 문학 전반을 혁명화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제시한다.[6]

『영화예술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 이론과 김일성의 사상을 바탕으로, 이른바 "주체 사실주의"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 이론의 주요 목표는 영웅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를 통해 인민들을 이상적인 사회주의적 인간상, 즉 "주체형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영화 이론과 문학 이론을 비롯하여 연출, 연기, 음악, 촬영, 의상, 분장, 소품 등 영화 제작과 관련된 거의 모든 측면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특히 영화 제작 과정에서 연출과 제작의 역할을 핵심적인 원동력으로 강조한다. 책에서 제시된 이론들은 《피바다》를 비롯한 북한 영화의 실제 사례를 통해 설명된다.[22]

또한 이 책은 문학을 "인간학"으로 규정하고 예술 창작의 핵심 원리로서 "종자론(씨앗 이론)"을 제시하는 등 독자적인 이론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외에도 소위 "모델링 이론"과 생산성 향상을 강조하는 "속도전" 등의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이론들은 당의 방침에 따른 예술 창작을 정당화하고 효율화하기 위한 논리로 기능한다.[7]

영화는 현실을 반영해야 하지만, 이는 항일 혁명 투쟁의 이상과 결합되어야 하며, 지도자에 대한 숭배와 주체사상을 필수적으로 담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같은 일반적인 의미의 사실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김정일은 현대 북한 사회가 계급 투쟁을 극복했다고 보았기 때문에, 영화에서 묘사할 수 있는 갈등은 주로 역사적 사건이나 외부의 적과의 대립에 한정된다.[8] 북한 사회 내부의 갈등을 묘사하는 것은 체제 비판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당의 정책에 반하는 "부정적인 인물"의 등장은 허용되지 않는다. 역사적 소재를 다룰 때조차 과거의 전통은 현재의 이념적 요구에 맞춰 선별적으로 활용되어야 하며, 이야기 속에 담긴 "봉건적 이념"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3. 1. 인간학으로서의 문학

김정일은 문학을 "인간학"으로 정의하며, 이를 통해 문학이 인간의 삶과 관련된 영역 안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인간학의 핵심 주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선하고 가치 있는 삶인가에 대한 질문이며, 이는 선전이나 도덕적 교훈을 담은 예술을 만드는 기반이 된다.

자주성이라는 개념 역시 인간학 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자주성은 억압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설명된다. 철학적으로는 인간 주체의 자유 의지를 강조하는 비결정론적 관점에 바탕을 둔다. 특히 문학 작품 속 영웅은 이러한 자주성을 잘 보여주는 인물로 그려진다.

김정일에 따르면, "인간학 문학"은 주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으로 독립적인 개인을 길러내는 데 중점을 두며, 이를 통해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주장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학에서는 이 자주성 개념이 문학 창작에 대한 국가의 통제나 일국 사회주의와 같은 민족주의적 정책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되기도 한다.

3. 2. 종자론 (Seed Theory)

"종자론"은 김정일의 저서인 《영화예술론》의 본질을 형성하며, 결과적으로 북한 영화 이론의 핵심을 이룬다.[9] 종자론은 김정일과 《영화예술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이 논문보다 먼저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9]

이 이론은 예술가들에게 의 노선을 따르도록 강요하고 개인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18] 김정일은 영화를 살아있는 유기체에 비유하면서, '종자'가 그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예술적 해석이 단일한 이념적 기반, 즉 '종자'에서 출발해야 완성도 높은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창작팀의 모든 구성원이 개별적인 성격이나 초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작업하도록 유도한다. 감독의 중요한 임무는 종자의 본질과 다른 '이질적인' 요소가 영화에 포함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따라서 종자는 예술 창작의 근본적인 의식으로 간주된다.

구체적으로 종자는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선전 메시지의 기초, 즉 "무엇을 말해야 할지에 대한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아이디어"이다. 종자는 작품의 주제와 사상을 종합하여 형식과 내용을 모두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11] 이러한 점에서 종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학 이론의 '재료', '주제', '사상'이라는 개념들을 융합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10] 영화는 주체사상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기여해야 하며, 선전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하는 미학과 서사 구조를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영화 《자위대원의 운명》의 종자는 주인공 갑룡이 처한 선택, 즉 억압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혁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 종자는 "갑룡이 혁명 운동에 참여하든 안 하든 그는 죽는다"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김정일은 잉여 가치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종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11]

종자론은 북한 문학계에도 영향을 미쳐, 작가들은 김정일의 논문 발표 이전에 창작된 고전 작품들에서도 소급하여 종자를 찾아내려는 시도를 했다.[12] 예술 분야를 넘어 산업 및 경제 활동 전반에도 종자론의 개념이 적용되었다.[13]

3. 3. 모델링 이론과 속도전

"모델링 이론"은 해방 투쟁을 묘사할 때 민족 투쟁과 계급 투쟁을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 주민을 우상화하여 그리고 역할 모델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를 달성하고자 했다.[7]

"속도전"(sokto-jon|속토전한국어)은 영화를 신속하게 제작할 것을 요구하는 개념이다. 김정일은 영화 제작 속도를 높임으로써 전체 혁명 과정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7] 속도전의 개념은 본래 1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던 영화 ''자위대원의 운명''을 단 40일 만에 완성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영화예술론》 출판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8부작 영화 시리즈인 《이름 없는 영웅들》(1979–1981)은 각 편을 단 45일 만에 제작하는 속도전 원칙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후 속도전은 예술 분야를 넘어 경제 문제 해결에도 적용되었다. 속도전은 김일성천리마 운동과 비견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김정일의 지도력과 밀접하게 관련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4. 평가 및 영향

영화 제작자가 영화예술론을 들고 먼 곳을 가리키는 벽화의 모습
영화 제작자가 『영화예술론』을 들고 있는 벽화의 일부. 이 책은 북한에서 영화에 관한 최고 권위로 여겨지지만, 실제 영화 제작 관행을 바꿨는지는 불분명하다.


김정일의 공식 전기에는 『영화예술론』이 포괄적이고 독창적이며 "흠 잡을 데 없는 논리"를 갖추었다고 묘사하지만,[5]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휘트니 맬렛은 이 책을 지루하고 반복적이라고 평가했으며,[22] 안나 브로노우스키는 "진부하고, 기발하며, 조잡하다"고 보았다.[14] 다만, 데이비드-웨스트는 이 책이 "문학 텍스트의 구성적 요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보여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영화예술론』은 북한 영화 제작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지침서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실제 영향력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요하네스 쇤헤르에 따르면, 이 책은 북한 영화에 새로운 내용을 거의 제시하지 못하며, 담긴 아이디어 대부분은 독창적이지 않고 전문 영화 제작자들에게는 당연한 내용이다. 실제로 이 책의 출판 전후 영화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실제 북한 영화 산업에 미친 영향이 미미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반복성, 느린 편집, 구식 연극 연기 등 현대 북한 영화의 여러 특징은 오히려 『영화예술론』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면이 있다.[15] 북한 영화에 변화가 있었다면, 이는 책의 영향보다는 정치적, 경제적 압력 때문일 수 있다. 쇤헤르는 이 책이 새로운 이론적 돌파구를 제시하기보다는, 영화를 예술이자 선전 도구로 본 김일성의 생각을 재구성하고, 김정일 자신이 영화 산업에서 겪었던 "엉성함과 무사려함"을 막으려는 개인적인 경험의 산물이라고 분석한다.

김정일 자신도 이 책을 실패작으로 여겼다는 평가가 있다.[16] 이 책의 영향을 받은 영화들은 북한 내에서는 인기를 얻었을지 몰라도, 해외에서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대한민국 영화와의 질적 경쟁에서 뒤처졌다. 이러한 상황은 김정일이 1978년 대한민국의 유명 영화감독 신상옥과 배우 최은희를 납치하는 극단적인 조치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다.[16][17] 신상옥은 북한에 억류된 8년 동안 김정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영화예술론』을 연구했고, 이를 바탕으로 김정일이 제작에 참여한 괴수 영화 불가사리를 만들기도 했다.[18] 김정일은 이 영화에 만족하여 신상옥 부부에게 오스트리아 방문을 허락했으나, 부부는 이 기회를 이용해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했다.[18]

그러나 정치적으로 『영화예술론』은 성공적인 저작이었다. 김정일은 이 책을 저술함으로써 사회적, 정치적 권력을 강화하고 아버지 김일성의 신뢰를 얻어 후계 구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후 김정일은 『오페라 예술론』(1974), 『연극 예술론』(1988), 『무용 예술론』(1990), 『음악 예술론』(1991), 『미술 예술론』(1991), 『건축 예술론』(1991), 『주체문학론』(1992),[19][20] 『서커스 예술론』(1993) 등[21] 다양한 예술 분야에 대한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영화예술론』은 오늘날 북한 문학 전공 학생들과 영화 제작자들에게 필수적인 학습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22] 또한,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등장한 민중 영화 운동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23] 그 영향력은 한국을 넘어, 호주 영화감독 안나 브로노우스키가 김정일의 지침을 따라 선전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에임 하이 인 크리에이션!』을 만들거나,[24] 덴마크 다큐멘터리 감독 마드 브뤼거가 그의 작품 『레드 채플』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이 책을 참고하는 모습[25] 등 해외에서도 나타난다.

5. 한국 현대사적 관점

김정일이 1973년에 출간한 『영화예술론』은 단순한 영화 이론서가 아니라, 한반도 분단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특수한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할 저작이다. 이 책은 김일성과 김정일 자신에 대한 우상화를 공고히 하고,[5] 주체사상을 영화를 비롯한 예술 전반에 주입하여 북한 주민을 사상적으로 통제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뚜렷하게 보여준다.[6]

이러한 정치적 도구로서의 성격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신상옥과 배우 최은희를 납치하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17][18] 한편, 1980년대 대한민국의 민중 영화 운동에 일부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도 있으나,[23] 그 영향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다. 결국 『영화예술론』은 예술 창작의 지침이라기보다는 북한 체제 선전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도구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5. 1. 김씨 일가 우상화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김정일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서 문화, 이념, 선전 사업에 집중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관심을 보였다고 알려져 있으나,[22] 중요한 연례 영화 회의인 심미적 검토 회의에서는 외국 영화 개념 논의를 금지했다. 김정일은 회의 기록 파기를 명령하고, 참가자들에게 창작 활동에서 오직 김일성과 당의 가르침만을 따를 것을 촉구했다. 이를 통해 김정일은 영화 및 문학 분야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나갔으며, 탈스탈린화된 소련의 자유주의적 예술 경향을 거부했다.

1968년부터 김정일은 1930년대 항일 유격대 활동을 다룬 연극의 영화화를 주도했다. 그는 ''피바다''(1, 2부, 1969), ''한 자위단원의 운명''(1970), ''꽃파는 처녀''(1972) 등의 영화 제작을 직접 현지지도하며 김일성의 항일 투쟁을 미화하고 영웅화하는 데 힘썼다. 이후 혁명가극 제작에도 관여하며 약 10년간 예술 행정을 이끌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김정일은 지난 5년간 영화감독 및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했던 연설 내용을 엮어 1973년 4월 11일 ''영화예술론''을 출판했다. 이는 그의 첫 주요 저작이었다.[5] 김정일은 1970년대 내내 문화 활동을 지속적으로 감독했다.

''영화예술론'' 서문에서 김정일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영화는 예술과 문학의 전반적인 발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그것은 혁명과 건설을 위한 강력한 이념적 무기이다. 그러므로 영화에 힘을 집중하고, 모든 예술 및 문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고 성공을 거두는 것이 우리가 예술과 문학을 혁명화하는 데 준수해야 할 기본 원칙이다.[6]


이 책에서 김정일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영화, 문학, 예술 전반에 적용하고자 했다. 그에게 영화를 "혁명화"하는 것은 예술과 문학 전체를 혁명화하고, 사회 전체를 로동당의 "유일 사상"과 ''주체사상''에 물들게 하는 핵심 수단이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 이론과 김일성의 사상을 기반으로, 김정일은 소위 "''주체'' 사실주의"를 내세웠다. 그의 주된 목표는 영웅적인 영화 서사를 통해 인민을 사회주의적 인간, 즉 "''주체''형 인간"으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영화와 문학 이론, 연기, 연출, 작곡, 스크린, 촬영, 의상, 분장, 소품 등 영화 제작의 모든 측면을 다루고 있다. 특히 영화 제작의 핵심 동력으로 연출과 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책의 이론들은 북한 영화, 특히 《피바다》를 주요 사례로 들어 설명된다.[22] ''영화예술론''은 문학을 "인간학"으로 정의하고, "씨앗 이론"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제시한다. 이 두 이론은 모두 당의 예술 창작 통제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논문에서 개발된 다른 아이디어는 소위 "모델링 이론"과 "속도전"이다. 이러한 원칙을 준수하면 예술 작품은 "집단 창작물"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7]

김정일은 영화가 현실적이어야 하며, 이는 항일 혁명가들의 이상과 마찬가지로, 영화 제작자가 대중과 함께 생활할 때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실주의"는 지도자에 대한 숭배와 ''주체사상''을 섞어야 했기에,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같은 영화의 일반적인 유형의 사실주의와 비교할 수 없게 만들었다. 김정일은 현대 북한이 계급 투쟁을 초월했으며, 영화에서 묘사할 실제 갈등은 역사적이고 외부적인 것 외에는 없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다.[8] 이것은 스탈린주의 즈다노프 독트린의 재확인으로 볼 수 있다. 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부정적인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영화에서 북한 사회 내부의 갈등을 묘사하는 것은 정권 비판으로 간주될 수 있다.[8] 역사적 주제가 묘사될 때, 전통은 현재의 이념적 요구를 뒷받침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묘사되어야 하며, 전통 이야기와 전설의 "봉건적 이념"을 제거해야 한다. 결국 ''영화예술론''은 영화를 김일성과 김정일 자신을 우상화하고, 주체사상을 주민들에게 주입하며, 북한 체제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강력한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이론적 지침서 역할을 했다.

5. 2. 남북 관계에 미친 영향

(작성할 내용 없음 - 원본 소스에 해당 섹션 관련 정보 부재)

5. 3. 한국 영화계에 미친 영향

『영화예술론』 출간 이후에도 북한 영화는 품질 면에서 대한민국 영화와 경쟁하기 어려웠다.[22] 이러한 상황은 1978년 김정일이 대한민국의 유명 영화감독 신상옥[16]과 그의 아내인 배우 최은희를 납치하는 사건으로 이어졌다.[17] 신상옥과 최은희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8년간 북한에 억류되었다. 이 기간 동안 신상옥은 김정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영화예술론』을 연구해야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김정일의 지원 하에 괴수 영화 불가사리를 만들기도 했다.[18] 김정일은 이 영화에 만족하여 신상옥 부부에게 오스트리아 으로의 여행을 허락했으나, 부부는 이 기회를 이용해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했다.[18]

한편, 『영화예술론』은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한국에서 전개된 민중 영화 운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23] 이는 『영화예술론』의 이념적 내용 일부가 당시 사회 변혁을 추구하던 일부 한국 영화인들에게 받아들여진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예술론』의 경직된 이론과 창작 방식은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지향하는 한국 영화계 전반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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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적 On the art of the cinema, April 11, 1973 (Book, 1989) [WorldCat.org] World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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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서적 On the Art of the Cinema http://www.naenara.c[...]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1973-04-11
[7] 간행물 CINEMA AND CONSTRUCTION OF NATIONHOOD IN CONTEMPORARY KOREA http://www.kinu.or.k[...] Korea Institute for National Unification
[8] 간행물 The Downfall of a Model Citizen?: Family Background in North Korean Graphic Novels 2012-01
[9] 서적 Illusive Utopia: Theater, Film, and Everyday Performance in North Korea http://site.ebrary.c[...]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00-08
[10] 서적 Great Successor to the Cause of Juche: Scientific Treatises Offered in Celebration of the 50th Birthday of Comrade Kim Jong Il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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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웹사이트 North Korea's Literary Theory https://www.koreatim[...] 200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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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간행물 North Korean cinema: A history [Book Review] http://search.inform[...] Australian Teachers of Media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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