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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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겸은 명나라 시대의 문신으로, 토목의 변 이후 북경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여 명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인물이다. 1421년 진사가 된 후, 선덕제 때 한왕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했으며, 병부우시랑을 거쳐 하남성과 산서성의 순무를 지냈다. 토목의 변으로 정통제가 포로로 잡히자, 북경 사수를 주장하며 경태제를 옹립하고, 에센의 공격을 격퇴했다. 군제 개혁을 통해 군사력을 강화했으나, 천순제의 복위 과정에서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사후 명예가 회복되었으며, 한국에서도 그의 충절이 널리 알려져 존경받았다. 베이징과 항저우 등지에 사당이 세워져 기념되고 있으며, 소설 《양경십오일》에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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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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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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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우겸 |
로마자 표기 | Yu Qian |
출생일 | 1398년 5월 13일 |
출생지 | 항저우, 저장성 |
사망일 | 1457년 2월 16일 |
사망지 | 베이징 |
배우자 | 동씨 부인 |
자녀 | 우면 딸 1명 |
아버지 | 우옌자오 |
직업 | 관료 |
관직 | |
관직 | 산시성 및 허난성 순무 |
임기 시작 | 1430년 |
임기 종료 | 1447년 |
전임 | 쉬쿠오 (허난성 순무) |
후임 | 주젠 (산시성 순무) 왕라이 (허난성 순무) |
관직 | 병부 상서 |
임기 시작 | 1449년 |
임기 종료 | 1457년 |
전임 | 쾅예 |
후임 | 왕지 |
2. 생애 초기
우겸은 항저우(杭州) 저장성(浙江省) 치안탕현(錢塘縣) 출신이다. 1421년 과거 제도에서 진사(進士)가 되어 명나라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1] 선덕제(宣德帝) 때 주고흡(朱高煦)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감찰어사(監察御史)를 거쳐 1430년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郎)에 임명되었다.[1] 이후 산서성(山西省)과 하남성(河南省)의 순무(巡撫)로 나가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데 힘썼다.[1] 정통제(正統帝) 때에는 환관 왕진(王振)에게 반대했다가 투옥되기도 했지만, 주변의 간청으로 석방되어 복직하였다.[1]
1449년 7월, 몽골의 실력자이자 오이라트 부의 에센(也先)이 대군을 이끌고 명나라에 침공해 왔다. 이에 환관 왕진의 의견에 따라 정통제의 친정(親征)이 이루어졌으나, 우겸을 비롯한 많은 신하들은 친정에 극구 반대했다. 50만 대군은 거용관을 넘었으나, 결국 토목보(土木堡)에서 명군은 대패하였다. 왕진을 비롯한 많은 장병들이 전사했고, 정통제는 포로가 되었으며, 에센은 더 나아가 수도 북경에 침공할 기세를 보였다.[1]
3. 토목의 변과 북경 방어
3. 1. 경태제의 옹립
정통제가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북경은 큰 혼란에 빠졌다. 서유정 등은 남경으로 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우겸은 이에 반대하며 북경을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겸은 황태후 손씨의 동의를 얻어 정통제의 동생인 익왕 주기옥을 감국으로 삼아 황제로 즉위시켰다. 정통제는 태상황으로 추존되었고, 그의 아들 주견심(이후의 성화제)이 황태자가 되었다.[1]
3. 2. 에센 격퇴
1449년 오이라트 몽골의 지도자 에센이 대군을 이끌고 명나라를 침공하여 토목의 변이 일어났다. 정통제가 포로로 잡히는 상황에서 북경은 큰 혼란에 빠졌으나, 병부상서였던 우겸은 남경 천도 주장에 반대하고 북경 사수를 주장했다. 그는 손황후의 동의를 얻어 정통제의 동생 주기옥을 감국으로 즉위시키니 이가 곧 경태제이다. [1]
우겸은 왕진의 일족과 당파를 제거하고, 각지에서 원군을 모아 북경의 방어 체제를 정비했다. 1449년 10월, 에센이 이끄는 몽골군이 북경으로 접근했으나, 우겸이 지휘하는 명나라 군대는 이들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에센은 결국 만리장성 밖으로 퇴각했다. [1]
4. 군제 개혁과 정치 활동
토목의 변 이후 에센이 이끄는 오이라트 군이 북경으로 진격해오자, 서유정 등은 남경 천도를 주장했으나, 우겸은 이에 반대하고 북경 사수를 주장했다. 황태후 손씨의 승인을 얻어 영종의 동생 주기옥을 감국으로 추대하고 경태제로 즉위시켰다. 영종은 태상황제가 되었고, 그의 아들 주견심(이후의 성화제)이 황태자가 되었다.[1] 우겸은 왕전의 일족과 당파를 제거하고, 각지에서 원군을 모아 북경의 방어 체제를 정비했다.[1]
1449년 10월, 에센이 거용관을 넘어 북경으로 접근했으나, 우겸이 이끄는 명군은 공세를 펼쳐 에센의 군대를 격퇴하고 만리장성 밖으로 몰아냈다.[1] 전투가 장기화되면서 불리해진 에센은 태도를 바꿔 1450년 명나라와 강화를 맺고 영종을 무조건 송환했다.[1] 영종은 궁중에 유폐되었지만, 경태제는 황제 자리를 유지했고, 우겸의 지휘 아래 군제 개혁을 실시하여 토목의 변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정을 엄격하게 다스렸다. 경태제는 우겸을 황태자의 옹주(擁主)이자 태사(太師)로 임명했다.[1]
5. 탈문의 변과 죽음
1450년, 에센이 명나라와 강화를 맺고 정통제를 송환했지만, 정통제는 궁중에 유폐되었다.[1] 1457년, 경태제가 병에 걸리자, 석형(石亨), 서유정(徐有貞), 조길상(曹吉祥) 등이 정통제 복위 음모를 꾸며 '탈문의 변'을 일으켰다.[1] 정통제는 천순제로 복위하였고, 우겸은 반역죄로 무고당하여 처형되었다.[1]
6. 사후 복권과 평가
우겸은 반역죄로 처형되었지만, 성화제 때 명예가 회복되었다. 홍치제는 1489년에 우겸에게 '숙민(肅愍)'이라는 시호를 추증했고, 만력제는 '충숙(忠肅)'이라는 시호를 더했다.[1]
6. 1. 한국에서의 인식
유겸의 충절과 업적은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유겸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그의 충의(忠義)는 조선 시대 지식인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을 겪으면서, 유겸과 같이 국난을 극복한 영웅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졌다.[1]7. 기념 시설
8. 대중문화
마보용의 소설 양경십오일이 있다.
참조
[1]
서적
历史文化常识全知道
https://books.google[...]
XinXueTang
2011
[2]
서적
명사
[3]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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