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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폴란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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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크라이나-폴란드 관계는 9세기부터 시작되어 폴란드 왕국과 키예프 루스 사이의 관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기의 격동적인 관계를 거쳐 20세기 초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1989년 폴란드 민주화 이후 양국 관계는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여,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폴란드가 승인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1990년대에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NATO와 EU 가입을 지지하며 협력을 강화했다. 2015년 이후 역사적 해석의 차이로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으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군사적,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며 관계를 개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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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wikitext

== 역사 ==

=== 초기 관계 (9세기 ~ 18세기) ===

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는 9~10세기 폴란드 왕국루스 (소위 "키예프 루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5] 이후 13~14세기 폴란드 왕국과 루테니아 왕국이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5] 알렉산데르 1세의 문장에 러시아의 사자로서 루테니아 사자가 그려져 있었고, Wladyslaw Opolczyk의 동전에도 루테니아 사자가 그려진 러시아 화폐가 있었다.

피아스트 왕조 시대의 폴란드


1619년 최대 영토를 가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알렉산데르 1세의 문장. 러시아의 사자로서 루테니아 사자가 그려져 있다


Wladyslaw Opolczyk의 동전 (루테니아 사자가 그려진 러시아 화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기에는 폴란드 귀족 (슐라흐타)과 코사크 사이에 격동적인 관계가 이어졌다.[5] 1648년 흐멜니츠키 봉기는 우크라이나 정교회 인구에 대한 폴란드 가톨릭 슐라흐타의 지배를 종식시켰다.[5]

=== 19세기 ~ 20세기 초 ===

1920년 폴란드-우크라이나 군사 퍼레이드에서 연합 폴란드군과 우크라이나군이 소비에트군으로부터 도시를 탈환한 후


제1차 세계 대전의 여파인 1918~1920년에는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과 폴란드-우크라이나 동맹이 있었다. 전쟁 중·전후에는 양 민족 간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었는데, 볼히니아 학살과 비슬라 작전이 가장 악명 높다. 1937년부터 이듬해 1938년에 걸쳐 대숙청의 일환으로 실행된 "폴란드 작전"과 1940년의 카틴 숲 학살 사건과 같은 소비에트 연방에 의한 학살 사건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NKVD가 실행했다.

전간기에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하르키우와 키예프에 두 개의 영사관을 유지했다.[6] 키예프 영사관 직원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시작한 독일-소련의 폴란드 침공 동안 1939년 소련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폴란드 영사의 운명은 오늘날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7]

20세기 중반의 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는 좋지 않은 상태였으며, 폴란드 인민 공화국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사이에는 독립적인 외교적 접촉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망명 공동체에서 폴란드에 밀반입되어 널리 읽혀진 파리 기반의 잡지 ''Kultura''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및 리투아니아와의 화해를 옹호했다.[8]

=== 1989년 ~ 2004년 ===

1989년 9월 1일, 자율관리노동조합 연대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세력이 폴란드에서 정권을 잡은 직후, 폴란드 국회의원 대표단이 우크라이나 인민 운동(루흐) 회의 지원을 위해 키예프에 도착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민족 민주주의 세력의 뜻을 지지했고, 이때 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의 새로운 모델의 기초가 세워졌다.

1990년 7월 27일, 폴란드 공화국 상원은 1990년 7월 16일 우크라이나 주권 선언에 대한 성명을 통해 양국 관계 발전을 구체화했다. 이 문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990년 8월 3일, 폴란드 상원은 1947년 '비슬라 작전'에 대한 정치적, 도덕적 평가를 담은 특별 성명을 채택했다. 이 성명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에게 키스하는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 2005년, 다보스.


1990년 10월 13일, 양국 정부는 '양국 관계 발전의 기초와 일반 원칙에 관한 선언'에 합의했다. 이 선언의 제3조는 양국이 서로에 대해 어떠한 영토권도 주장하지 않으며, 미래에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양국은 자국 영토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의 권리를 존중하고, 그들의 상황을 개선할 것을 약속했다.

1991년 12월 2일, 폴란드는 다른 국가들보다 먼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승인했다. 1992년 1월 8일, 양국 간 외교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1992년 5월 18일부터 19일까지 레오니드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폴란드 공식 방문이 이루어졌고, '선린, 우호, 협력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전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 채택된 파리 헌장 최종 조항에 따라 "양국은 양국에 공통된 유산인 긍정적인 전통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며, 양국 간의 편견과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이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1993년 5월 24일부터 25일까지 레흐 바웬사 폴란드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공식 방문 결과, 우크라이나-폴란드 대통령 자문위원회가 설립되었다. 같은 해 2월, 우크라이나 국방부와 폴란드 국방부 사이에 군사 협력 협정이 체결되었고, 이후 여러 의정서로 보완되었다.

1994년 3월, 양국 외무부 장관은 국가 간 수준에서 처음으로 우크라이나-폴란드 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을 명시하고, 이 관계 발전을 약속하는 '우크라이나-폴란드 파트너십 원칙에 관한 선언'에 서명했다.

폴란드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 (NATO)와 유럽 연합 (EU) 가입을 지원하는 데 동의했다. 1996년 초, 초대 주우크라이나 대사 예지 코자키에비치는 "폴란드 외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와의 양자 관계 내에서 그의 국가가 유럽 기관으로 나아가는 길을 용이하게 하는 다양한 수단을 보급하고 강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표는 폴란드와의 협력 주요 방향을 "우크라이나에게 모스크바를 통하는 길은 시베리아로 이어지지만, 바르샤바를 통하는 것은 - 파리이다"라고 비유적으로 정의했다.

1996년 6월 25일, 양국 간 체결된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실되고 불법적으로 이전된 문화재의 보호 및 반환에 관한 합의서'는 양자 대화 구축에 있어 또 다른 이정표가 되었다. 이 합의서는 상호 협력 대상과 범위를 정의하고 규정했다. 제2조는 "양 체결국의 문화 및 역사와 관련하여 유실되거나 불법적으로 상대 체결국의 영토로 이전된 문화재를 보호, 보존, 수색 및 반환하기 위해 양 체결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유실, 불법적으로 이전된 문화재의 보호 및 반환을 위한) 우크라이나-폴란드 정부 간 위원회'를 설치한다"고 명시했다.

1996년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레오니드 쿠치마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바르샤바 방문과 1997년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의 키예프 방문을 거쳐 양국 관계는 전략적 파트너 수준에 도달했다. 1997년 5월 21일, 양국 정상은 비공식 공동 성명 '통일과 조화 선언'에 서명했다.

폴란드-우크라이나 간 정치적 협력 관계의 의미 있는 발전은 우크라이나가 미국 및 유럽 주요 국가와의 첫 대화를 확립하는 데 있어 폴란드의 지원을 가져왔다. 폴란드 국가 안보 전략 백서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열망을 특히 NATO에 대한 '개방 문' 정책의 지속의 일환으로 폴란드 정부가 지지할 것임을 명시했다. 또한, 폴란드-우크라이나 협력이 유럽 안보 정책에서 우크라이나의 중요한 역할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8년 9월 15일부터 16일까지 브로니스와프 게레메크 폴란드 외무부 장관의 우크라이나 공식 방문 동안, 양국은 EU 확장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피하기 위해 공동 행동을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 게레메크 장관은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의 유럽 통합 지향, 특히 EU 준회원국 지위 획득 의지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1999년 3월 말, '우크라이나-폴란드 유럽 통합 회의' 제1차 회의가 바르샤바에서 개최되었다.

일부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 전문가, 정치학자들은 폴란드의 NATO 가입 후 우크라이나를 외면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지만, 폴란드 정부의 '대우크라이나 정책'은 NATO 가입 후에도 일관되게 '우크라이나의 NATO와의 신뢰 관계 확립 및 협력'에 대한 지지였다. 2002년 우크라이나는 NATO 참여 의사를 표명했다. 폴란드는 독립적이고 강력하며 우호적인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영향력과 야망에 대한 중대한 대항 수단이자 폴란드의 동유럽 정책에서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1998년 3월 5일, 게레메크 외무 장관은 하원 의회에서 "독립적인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우리나라의 안보, 그리고 지역 전체의 안정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크라이나와의 특권적인 관계 유지는 유럽 안보의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 2004년 ~ 2014년 ===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지지하며, 2004년 오렌지 혁명의 평화적 해결을 강력히 지지했다.[10] NATO와 우크라이나 간의 협력 및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노력을 지원했다.[10][11]

폴란드의 EU 가입은 우크라이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EU 회원국이 우크라이나의 EU 및 NATO 가입을 위해 로비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렌지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는 정치적 대화 구조를 현대화하고, EU 가입 기준, 특히 민주적 제도, 인권, 법치주의 보장을 위한 협력을 강화했다. 2005년은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의 해'로 선포되었고,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행사가 열렸다. 양국은 교육 및 과학 학위, 정보화 분야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무역, 경제, 과학 및 기술 관계를 확대했다. 폴란드는 중앙 유럽에서 우크라이나의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가 되었으며, 우크라이나는 폴란드 수출의 주요 대상국 중 하나이다. 2008년에는 150개 이상의 공동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2007년 폴란드 대통령 레흐 카친스키의 키이우 방문


1990년대 중반 설립된 카르파티 및 부그 유로 지역 내에서 국경 간 협력이 발전했다. 그러나 2007년 폴란드의 솅겐 지역 가입은 국경 통과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양국 협력에 어려움을 초래했다.

폴란드는 EU 정책에서 동부 방향 활성화를 주도했다. 유럽 이웃 정책 (ENP) 강화는 2008년 폴란드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였으며, 폴란드는 동유럽에서 리더 역할을 강화하고자 했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외무장관은 동방에 대한 공동 외교 정책 개발을 강조했고, 폴란드는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스웨덴과 함께 ENP 시행을 추진했다. 2008년 유럽 이사회에서 폴란드는 유럽 지중해 연합 창설을 지지하며, ENP의 동부 방향 분리를 기대했다.

2008년 폴란드와 스웨덴은 동방 파트너십을 공동 제안하여 EU의 승인을 받았다. 이 제안은 우크라이나, 몰도바,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벨라루스와는 기술 협력을 추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방 파트너십은 EU 가입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통합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UEFA 유로 2012를 공동 개최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의 폴란드 세임 방문


폴란드는 유로마이단과 러시아 연방의 크림반도 합병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를 강력히 지지했다. 폴란드 정부는 EU에서 우크라이나를 옹호하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지지했으며,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14년,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는 2008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도날트 투스크에게 우크라이나 분할을 제안했다고 주장했으나, 이후 발언이 과장되었다고 해명했다.[12] 폴란드는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했다.

=== 2015년 ~ 2021년 ===

제2차 세계 대전 중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씁쓸한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2015년 이후 양국 관계의 급격한 악화로 이어졌다.[17]

우크라이나 반군군대(UPA)와 그들의 볼히니아와 동갈리시아의 폴란드인 학살에 관한 역사적 문제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2015년에 통과된 우크라이나 기억법은 UPA, 관련 조직 및 그 구성원을 기리는 내용으로, 폴란드에서 비판을 받았다.[13] 이에 따라 2016년 7월, 폴란드 하원은 법과 정의당이 발의한 결의안을 통과시켜 7월 11일을 '제노사이드 희생자 추모의 날'로 정하고, UPA의 조직적인 공격으로 10만 명이 넘는 폴란드 시민이 학살되었다고 명시했다.[14]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 결정에 유감을 표명하며 "정치적 추측"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응하여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올렉시 무시이는 3월 24일을 "1919-1951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폴란드 국가의 제노사이드 희생자 추모의 날"로 선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폴란드 상원 의장 스타니스와프 카르체프스키는 이 결의안을 비난했다.[15]

2016년, 우크라이나 국회의원을 위한 폴란드 영화 ''볼히니아 (영화)''의 특별 상영회가 우크라이나 외무부의 권고에 따라 공공 질서를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키예프의 폴란드 연구소에서 연기되었다.[16]

2017년 4월, 우크라이나 국립기억연구소는 폴란드 내 기념물 해체에 대한 보복 조치로, 1943년 볼히니아와 동갈리시아의 폴란드인 학살 희생자의 유해 발굴을 금지하고, 우크라이나 내 폴란드 기념지 합법화를 중단했다.[17][18]

폴란드 대통령 안제이 두다는 민족주의적 반폴란드적 견해를 표명하는 사람들의 우크라이나 고위직 임명에 우려를 표명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우크라이나에 일반적인 반폴란드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19]

2018년, 폴란드 국립기억연구소에 관한 법률의 개정된 제2a조는 "독일 제3제국과 협력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및 우크라이나 조직 구성원의 범죄"에 대해 논의하면서 다시 우크라이나 측의 비판을 받았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개정안을 "반반데라 법"이라고 불렀다.[20][21]

2019년 8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전 우크라이나 정부가 UPA가 저지른 볼히니아 학살의 폴란드 희생자 유해 발굴을 금지한 이후, 우크라이나의 폴란드 집단 무덤 발굴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해제하겠다고 약속했다.[22]

Lublin Triangle의 로고


2022년, 폴란드, 체코, 슬로베니아 총리의 키이우 방문


2020년 7월 28일, 폴란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는 "루블린 삼각지대"라고 알려진 새로운 국제 협력 체제를 시작했다. 이 협정은 폴란드 루블린에서 폴란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외무장관 야체크 차푸토비치, 드미트로 쿨레바, 리나스 린케비치우스가 서명했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새로운 체제가 "중앙 유럽의 발전과 강화를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며, 유럽 및 유라시아 가족의 완전한 일원으로서의 우크라이나를 강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협력은 방위 문제뿐만 아니라 세 국가 간의 경제 협력, 무역 및 관광을 강화하는 데에도 관여할 것이다. 루블린 삼각지대 창설에 대한 공동 선언은 EU, NATO, 동부 파트너십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세 개의 바다 이니셔티브 개발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23]

2021년 8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65만 회의 코로나19 백신과 129톤 이상의 의료 장비를 제공했으며, 여기에는 산소 발생기, 인공호흡기, 보호 장비가 포함되었다.[24] 2021년 12월,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30만 회의 코로나19 백신을 기증했다.[25]

=== 2022년 ~ 현재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군사원조를 했다.

폴란드는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T-72 전차 230대, BWP-1 보병전투차 40대, 2S1 122mm 자주포 20문, 122mm 다연장로켓포(MLRS) 20문 등의 각종 야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폴란드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지난 4월부터 T-72 구형전차 230대를 순차적으로 넘겨주고 있다. 대신 폴란드는 미국으로부터 250대의 M1A2 에이브람스 전차를 받기로 했다. 우크라이나에 230대의 T-72 전차를 넘겨주고, 미국에서 250대의 M1A2 전차를 받겠다는 것이다. 폴란드가 인수하게 될 M1A2 전차는 기존 생산 모델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BWP-1는 소련제 궤도형 보병전투장갑차 BMP-1의 파생형 모델로 폴란드에서 생산됐다. 폴란드 지상군은 2016년 현재 이 두 종류의 장갑차를 1000대 이상 운용 중이다.

2022년 3월 13일, 러시아군이 폴란드 국경 인근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 인근 국제의용군 훈련소에 미사일 8발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우크라이나 야보리우 지역에 있는 국제평화유지안보센터(IPSC)에 떨어졌다. 이곳은 우크라이나 군대, 특히 평화유지 임무를 위한 훈련소로, 최근까지 미군이 우크라이나군의 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곳은 또 수 천 명의 민간인이 폴란드로 피난하는 길목이다.

이 시설은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가장 큰 군사훈련 시설로, 2015년부터 미군과 나토군이 자체 훈련을 하거나 우크라이나군을 훈련시켰던 곳이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를 도우러 온 국제의용군들의 훈련소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국경에서는 불과 2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서방의 무기가 우크라이나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IPSC에서 외국 용병들을 훈련하고 편성했으며, 외국에서 지원된 무기 등 군사장비를 보관하고 있어 공습했다고 밝혔다. 이고리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공습 뒤 브리핑에서 “용병 180명과 대규모 외국 무기들이 제거됐다”면서 “우크라이나 영토로 오는 외국 용병은 계속 제거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번 공격으로 35명이 사망하고 134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외국인 교관들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며 “피해자 정보를 확인 중”이라고 적었다.

2022년 3월 8일, 폴란드 외무부가 폴란드 공군이 운용하던 소련제 미그-29 전투기 28대를 독일에 주둔하는 미공군의 람슈타인 공군기지에 배치한다고 밝혔다. 이후 전투기에 대한 처분은 미국에 맡긴다는 방침이다. 대신 미국이 F-16 전투기를 폴란드에 제공해 달라고, 이른바 '스왑 딜(swap deal)'을 미국에 제안했다.

3월 10일, 미국은 이러한 제안에 반대했다. 미국은 폴란드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제공하려면 직접 제공하라는 입장이다.

4월 8일, 국방부 차관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 고위 대표단은 최근 폴란드를 방문해 FA-50 수출을 타진했다. 폴란드 공군이 운용하던 소련제 미그-29 전투기 28대를 우크라이나 공군에 무상제공하고, FA-50 48대를 구매하기로 했다. FA-50은 한 대당 4000만달러(518억원)으로 48대는 19억 2000만달러(2조 4864억원)에 달한다.

FA-50은 "미니 F-16"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F-16을 개발한 미국 록히드 마틴과 한국 KAI가 10년 동안 2조원을 들여 공동개발했다. 록히드 마틴의 개발지분은 30%였다.

폴란드가 수입할 FA-50PL 모델은, 가장 최첨단 모델이다. 미국산 AESA 전자식 레이더, AIM-120C 암람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공중급유 기능을 추가했다. 현재 한국 공군의 FA-50은 기계식 레이더,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만 무장하며, 공중급유 기능도 없다. 최근 미국 정부는 FA-50에 미국산 AESA 전자식 레이더, AIM-120C 암람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장착을 허가했다. F-16C/D 블록 50/52의 성능과 맞먹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FA-50은 그동안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친미 서방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싼 가격의 4.5세대 경전투기이고, 미국 록히드 마틴이 개입하고 있어서, 갑자기 인기를 얻고 있다. 즉, 미국 방산기업이 판매하는 가장 싼 4.5세대 전투기이다. 5세대 스텔스 전투기는 가격도 운영유지비도 너무 비싸서, 많은 친미 서방국가들이 사기에는 매우 부담스럽다. "미니 F-16"이란 별명의 FA-50가 아닌, F-16도 물론 유명하지만,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점점 가격이 너무 비싸졌다. 전투기를 실제로 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은, 너무 고비용의 고성능 전투기를 대량구매하는 것을 꺼려한다. 그래서, 미국 기업이 판매하는 가장 싸고 가장 저성능의 전투기가 FA-50이다.

1999년 나토에 가입한 폴란드는 2004년에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되면서 동유럽의 서방화에 기수가 됐다. 이후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의 서방화, 즉 나토와 EU 가입을 지지했다. 폴란드의 서쪽에 우크라이나 동쪽과 접경해 있고, 우크라이나의 동쪽은 러시아의 서쪽과 접경해 있다.

2022년 10월 5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자국 영토에 미국 핵무기를 나토의 핵무기 공유 방식으로 배치해 달라고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 요청했다. 미국 핵무기의 폴란드 이전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1997년 러시아·나토 창설법 등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다. 나토는 1991년 냉전이 종료된 후 새로운 회원국 영토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반면 러시아는 나토-러시아 창설법에서 규정한 책무를 위반하고 있다. 폴란드 이웃국가인 벨라루스는 자국 영토에 러시아산 핵무기의 반입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중에선 미국, 영국, 프랑스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튀르키예는 미국과 핵무기 공유 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은 이 나라들에 미국 핵무기 100기가 배치된 것으로 추정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폴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유럽 전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폴란드 총리 모라비에츠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 총리 데니스 슈미할이 2022년 키예프에서 열린 정부 간 협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인근에서의 러시아 군사력 증강에 대응하여 2022년 1월 31일 폴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을 고려하여 우크라이나에 무기, 탄약 및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26] 2022년 2월 17일에는 영국-폴란드-우크라이나 3자 협정이 발표되었다. 2022년 2월 23일, 러시아의 긴장 고조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리주의자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 공화국에 대한 인정에 대응하여 폴란드 대통령 안제이 두다는 리투아니아 대통령과 함께 키예프를 방문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공동으로 선언하고 러시아에 대한 국제 제재를 촉구했다.[27]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일, 폴란드 하원(Sejm)은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28] 폴란드는 즉시 우크라이나에서 온 민간 난민을 수용하기 위해 9개의 접수 지점을 설치했다.[29] 2022년 전쟁 동안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두 번째로 큰 무기 공급국이 되었으며, 무기 총액은 16억 달

2. 1. 초기 관계 (9세기 ~ 18세기)

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는 9~10세기 폴란드 왕국루스 (소위 "키예프 루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5] 이후 13~14세기 폴란드 왕국과 루테니아 왕국이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5] 알렉산데르 1세의 문장에 러시아의 사자로서 루테니아 사자가 그려져 있었고, Wladyslaw Opolczyk의 동전에도 루테니아 사자가 그려진 러시아 화폐가 있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기에는 폴란드 귀족 (슐라흐타)과 코사크 사이에 격동적인 관계가 이어졌다.[5] 1648년 흐멜니츠키 봉기는 우크라이나 정교회 인구에 대한 폴란드 가톨릭 슐라흐타의 지배를 종식시켰다.[5]

2. 2. 19세기 ~ 20세기 초



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는 9~10세기 폴란드 왕국루스 (소위 "키예프 루스") 사이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코사크 사이의 관계로 이어졌다.[5] 13~14세기 폴란드 왕국과 루테니아 왕국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1648년 흐멜니츠키 봉기는 우크라이나 정교회 인구에 대한 폴란드 가톨릭 슐라흐타의 지배를 종식시켰다.[5]

제1차 세계 대전의 여파인 1918~1920년에는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과 폴란드-우크라이나 동맹이 있었다. 전쟁 중·전후에는 양 민족 간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었는데, 과 비슬라 작전이 가장 악명 높다.[58] 1937년부터 이듬해 1938년에 걸쳐 대숙청의 일환으로 실행된 "en"과 1940년의 카틴 숲 학살 사건과 같은 소비에트 연방에 의한 학살 사건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NKVD가 실행했다.

전간기에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하르키우와 키예프에 두 개의 영사관을 유지했다.[6] 키예프 영사관 직원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시작한 독일-소련의 폴란드 침공 동안 1939년 소련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폴란드 영사의 운명은 오늘날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7]

20세기 중반의 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는 좋지 않은 상태였으며, 폴란드 인민 공화국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사이에는 독립적인 외교적 접촉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망명 공동체에서 폴란드에 밀반입되어 널리 읽혀진 파리 기반의 잡지 ''Kultura''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및 리투아니아와의 화해를 옹호했다.[8]

2. 3. 20세기 중반 ~ 현대

1989년 9월 1일, 자율관리노동조합 연대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세력이 폴란드에서 정권을 잡은 직후, 폴란드 국회의원 대표단이 우크라이나 인민 운동/우크라이나 인민 운동ru(루흐) 회의 지원을 위해 키이우에 도착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민족 민주주의 세력의 뜻을 지지했고, 이때 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의 새로운 모델의 기초가 세워졌다.

1990년 7월 27일, 폴란드 공화국 상원은 1990년 7월 16일 우크라이나 주권 선언에 대한 성명을 통해 양국 관계 발전을 구체화했다. 이 문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990년 8월 3일, 폴란드 상원은 1947년 '비스와 작전'에 대한 정치적, 도덕적 평가를 담은 특별 성명을 채택했다.[58] 이 성명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990년 10월 13일, 양국 정부는 '양국 관계 발전의 기초와 일반 원칙에 관한 선언'에 합의했다. 이 선언의 제3조는 양국이 서로에 대해 어떠한 영토권도 주장하지 않으며, 미래에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양국은 자국 영토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의 권리를 존중하고, 그들의 상황을 개선할 것을 약속했다.

1991년 12월 2일, 폴란드는 다른 국가들보다 먼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승인했다. 1992년 1월 8일, 양국 간 외교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1992년 5월 18일부터 19일까지 레오니드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폴란드 공식 방문이 이루어졌고, '선린, 우호, 협력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전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 채택된 새로운 유럽을 위한 파리 헌장/파리 헌장ru[60] 최종 조항에 따라 "양국은 양국에 공통된 유산인 긍정적인 전통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며, 양국 간의 편견과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이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1993년 5월 24일부터 25일까지 레흐 바웬사 폴란드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공식 방문 결과, 우크라이나-폴란드 대통령 자문위원회가 설립되었다. 같은 해 2월, 우크라이나 국방부와 폴란드 국방부 사이에 군사 협력 협정이 체결되었고, 이후 여러 의정서로 보완되었다.

1994년 3월, 양국 외무부 장관은 국가 간 수준에서 처음으로 우크라이나-폴란드 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을 명시하고, 이 관계 발전을 약속하는 '우크라이나-폴란드 파트너십 원칙에 관한 선언'에 서명했다.

폴란드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와 유럽 연합(EU) 가입을 지원하는 데 동의했다. 1996년 초, 초대 주우크라이나 대사 예지 코자키에비치/예지 코자키에비치 (정치학자)ru는 "폴란드 외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와의 양자 관계 내에서 그의 국가가 유럽 기관으로 나아가는 길을 용이하게 하는 다양한 수단을 보급하고 강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표는 폴란드와의 협력 주요 방향을 "우크라이나에게 모스크바를 통하는 길은 시베리아로 이어지지만, 바르샤바를 통하는 것은 - 파리이다"라고 비유적으로 정의했다.

1996년 6월 25일, 양국 간 체결된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실되고 불법적으로 이전된 문화재의 보호 및 반환에 관한 합의서'는 양자 대화 구축에 있어 또 다른 이정표가 되었다. 이 합의서는 상호 협력 대상과 범위를 정의하고 규정했다. 제2조는 "양 체결국의 문화 및 역사와 관련하여 유실되거나 불법적으로 상대 체결국의 영토로 이전된 문화재를 보호, 보존, 수색 및 반환하기 위해 양 체결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유실, 불법적으로 이전된 문화재의 보호 및 반환을 위한) 우크라이나-폴란드 정부 간 위원회'를 설치한다"[61]"고 명시했다.

1996년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레오니드 쿠치마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바르샤바 방문과 1997년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을 거쳐 양국 관계는 전략적 파트너 수준에 도달했다. 1997년 5월 21일, 양국 정상은 비공식 공동 성명 '통일과 조화 선언'에 서명했다.

폴란드-우크라이나 간 정치적 협력 관계의 의미 있는 발전은 우크라이나가 미국 및 유럽 주요 국가와의 첫 대화를 확립하는 데 있어 폴란드의 지원을 가져왔다. 폴란드 국가 안보 전략 백서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열망을 특히 NATO에 대한 '개방 문' 정책의 지속의 일환으로 폴란드 정부가 지지할 것임을 명시했다. 또한, 폴란드-우크라이나 협력이 유럽 안보 정책에서 우크라이나의 중요한 역할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8년 9월 15일부터 16일까지 브로니스와프 게레메크 폴란드 외무부 장관의 우크라이나 공식 방문 동안, 양국은 EU 확장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피하기 위해 공동 행동을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 게레메크 장관은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의 유럽 통합 지향, 특히 EU 준회원국 지위 획득 의지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1999년 3월 말, '우크라이나-폴란드 유럽 통합 회의'[62] 제1차 회의가 바르샤바에서 개최되었다.

일부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 전문가, 정치학자들은 폴란드의 NATO 가입 후 우크라이나를 외면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지만, 폴란드 정부의 '대우크라이나 정책'은 NATO 가입 후에도 일관되게 '우크라이나의 NATO와의 신뢰 관계 확립 및 협력'에 대한 지지였다. 2002년 우크라이나는 NATO 참여 의사를 표명했다. 폴란드는 독립적이고 강력하며 우호적인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영향력과 야망에 대한 중대한 대항 수단이자 폴란드의 동유럽 정책에서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1998년 3월 5일, 게레메크 외무 장관은 하원 의회에서 "독립적인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우리나라의 안보, 그리고 지역 전체의 안정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크라이나와의 특권적인 관계 유지는 유럽 안보의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2. 3. 1. 1989년 ~ 2004년

1989년 9월 1일, 자율관리노동조합 연대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세력이 폴란드에서 정권을 잡은 직후, 폴란드 국회의원 대표단이 (루흐) 회의 지원을 위해 키예프에 도착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민족 민주주의 세력의 뜻을 지지했고, 이때 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의 새로운 모델의 기초가 세워졌다.

1990년 7월 27일, 폴란드 공화국 상원은 1990년 7월 16일 우크라이나 주권 선언에 대한 성명을 통해 양국 관계 발전을 구체화했다. 이 문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990년 8월 3일, 폴란드 상원은 1947년 '비스와 작전'에 대한 정치적, 도덕적 평가를 담은 특별 성명을 채택했다. 이 성명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990년 10월 13일, 양국 정부는 '양국 관계 발전의 기초와 일반 원칙에 관한 선언'에 합의했다. 이 선언의 제3조는 양국이 서로에 대해 어떠한 영토권도 주장하지 않으며, 미래에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양국은 자국 영토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의 권리를 존중하고, 그들의 상황을 개선할 것을 약속했다.

1991년 12월 2일, 폴란드는 다른 국가들보다 먼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승인했다. 1992년 1월 8일, 양국 간 외교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1992년 5월 18일부터 19일까지 레오니드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폴란드 공식 방문이 이루어졌고, '선린, 우호, 협력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전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 채택된 [60] 최종 조항에 따라 "양국은 양국에 공통된 유산인 긍정적인 전통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며, 양국 간의 편견과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이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1993년 5월 24일부터 25일까지 레흐 바웬사 폴란드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공식 방문 결과, 우크라이나-폴란드 대통령 자문위원회가 설립되었다. 같은 해 2월, 우크라이나 국방부와 폴란드 국방부 사이에 군사 협력 협정이 체결되었고, 이후 여러 의정서로 보완되었다.

1994년 3월, 양국 외무부 장관은 국가 간 수준에서 처음으로 우크라이나-폴란드 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을 명시하고, 이 관계 발전을 약속하는 '우크라이나-폴란드 파트너십 원칙에 관한 선언'에 서명했다.

폴란드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 (NATO)와 유럽 연합 (EU) 가입을 지원하는 데 동의했다. 1996년 초, 초대 주우크라이나 대사 는 "폴란드 외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와의 양자 관계 내에서 그의 국가가 유럽 기관으로 나아가는 길을 용이하게 하는 다양한 수단을 보급하고 강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표는 폴란드와의 협력 주요 방향을 "우크라이나에게 모스크바를 통하는 길은 시베리아로 이어지지만, 바르샤바를 통하는 것은 - 파리이다"라고 비유적으로 정의했다.

1996년 6월 25일, 양국 간 체결된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실되고 불법적으로 이전된 문화재의 보호 및 반환에 관한 합의서'는 양자 대화 구축에 있어 또 다른 이정표가 되었다. 이 합의서는 상호 협력 대상과 범위를 정의하고 규정했다. 제2조는 "양 체결국의 문화 및 역사와 관련하여 유실되거나 불법적으로 상대 체결국의 영토로 이전된 문화재를 보호, 보존, 수색 및 반환하기 위해 양 체결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유실, 불법적으로 이전된 문화재의 보호 및 반환을 위한) 우크라이나-폴란드 정부 간 위원회'를 설치한다"[61]"고 명시했다.

1996년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레오니드 쿠치마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바르샤바 방문과 1997년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의 키예프 방문을 거쳐 양국 관계는 전략적 파트너 수준에 도달했다. 1997년 5월 21일, 양국 정상은 비공식 공동 성명 '통일과 조화 선언'에 서명했다.

폴란드-우크라이나 간 정치적 협력 관계의 의미 있는 발전은 우크라이나가 미국 및 유럽 주요 국가와의 첫 대화를 확립하는 데 있어 폴란드의 지원을 가져왔다. 폴란드 국가 안보 전략 백서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열망을 특히 NATO에 대한 '개방 문' 정책의 지속의 일환으로 폴란드 정부가 지지할 것임을 명시했다. 또한, 폴란드-우크라이나 협력이 유럽 안보 정책에서 우크라이나의 중요한 역할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8년 9월 15일부터 16일까지 브로니스와프 게레메크 폴란드 외무부 장관의 우크라이나 공식 방문 동안, 양국은 EU 확장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피하기 위해 공동 행동을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 게레메크 장관은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의 유럽 통합 지향, 특히 EU 준회원국 지위 획득 의지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1999년 3월 말, '우크라이나-폴란드 유럽 통합 회의'[62] 제1차 회의가 바르샤바에서 개최되었다.

일부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 전문가, 정치학자들은 폴란드의 NATO 가입 후 우크라이나를 외면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지만, 폴란드 정부의 '대우크라이나 정책'은 NATO 가입 후에도 일관되게 '우크라이나의 NATO와의 신뢰 관계 확립 및 협력'에 대한 지지였다. 2002년 우크라이나는 NATO 참여 의사를 표명했다. 폴란드는 독립적이고 강력하며 우호적인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영향력과 야망에 대한 중대한 대항 수단이자 폴란드의 동유럽 정책에서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1998년 3월 5일, 게레메크 외무 장관은 하원 의회에서 "독립적인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우리나라의 안보, 그리고 지역 전체의 안정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크라이나와의 특권적인 관계 유지는 유럽 안보의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2. 3. 2. 2004년 ~ 2014년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지지하며, 2004년 오렌지 혁명의 평화적 해결을 강력히 지지했다.[10] NATO와 우크라이나 간의 협력 및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노력을 지원했다.[10][11]

폴란드의 EU 가입은 우크라이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EU 회원국이 우크라이나의 EU 및 NATO 가입을 위해 로비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렌지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는 정치적 대화 구조를 현대화하고, EU 가입 기준, 특히 민주적 제도, 인권, 법치주의 보장을 위한 협력을 강화했다. 2005년은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의 해'로 선포되었고,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행사가 열렸다. 양국은 교육 및 과학 학위, 정보화 분야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무역, 경제, 과학 및 기술 관계를 확대했다. 폴란드는 중앙 유럽에서 우크라이나의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가 되었으며, 우크라이나는 폴란드 수출의 주요 대상국 중 하나이다. 2008년에는 150개 이상의 공동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1990년대 중반 설립된 카르파티 및 부그 유로 지역 내에서 국경 간 협력이 발전했다. 그러나 2007년 폴란드의 솅겐 지역 가입은 국경 통과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양국 협력에 어려움을 초래했다.

폴란드는 EU 정책에서 동부 방향 활성화를 주도했다. 유럽 이웃 정책 (ENP) 강화는 2008년 폴란드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였으며, 폴란드는 동유럽에서 리더 역할을 강화하고자 했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외무장관은 동방에 대한 공동 외교 정책 개발을 강조했고, 폴란드는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스웨덴과 함께 ENP 시행을 추진했다. 2008년 유럽 이사회에서 폴란드는 유럽 지중해 연합 창설을 지지하며, ENP의 동부 방향 분리를 기대했다.

2008년 폴란드와 스웨덴은 동방 파트너십을 공동 제안하여 EU의 승인을 받았다. 이 제안은 우크라이나, 몰도바,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벨라루스와는 기술 협력을 추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방 파트너십은 EU 가입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통합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UEFA 유로 2012를 공동 개최했다.

폴란드는 유로마이단과 러시아 연방의 크림반도 합병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를 강력히 지지했다. 폴란드 정부는 EU에서 우크라이나를 옹호하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지지했으며,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14년,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는 2008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도날트 투스크에게 우크라이나 분할을 제안했다고 주장했으나, 이후 발언이 과장되었다고 해명했다.[12] 폴란드는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했다.

2. 3. 3. 2015년 ~ 2021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씁쓸한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2015년 이후 양국 관계의 급격한 악화로 이어졌다.[17]

우크라이나 반군군대(UPA)와 그들의 볼히니아와 동갈리시아의 폴란드인 학살에 관한 역사적 문제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2015년에 통과된 우크라이나 기억법(우크라이나 탈공산화법)은 UPA, 관련 조직 및 그 구성원을 기리는 내용으로, 폴란드에서 비판을 받았다.[13] 이에 따라 2016년 7월, 폴란드 하원은 법과 정의당이 발의한 결의안을 통과시켜 7월 11일을 '제노사이드 희생자 추모의 날'로 정하고, UPA의 조직적인 공격으로 10만 명이 넘는 폴란드 시민이 학살되었다고 명시했다.[14]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 결정에 유감을 표명하며 "정치적 추측"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응하여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올렉시 무시이는 3월 24일을 "1919-1951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폴란드 국가의 제노사이드 희생자 추모의 날"로 선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폴란드 상원 의장 스타니스와프 카르체프스키는 이 결의안을 비난했다.[15]

2016년, 우크라이나 국회의원을 위한 폴란드 영화 ''볼히니아 (영화)''의 특별 상영회가 우크라이나 외무부의 권고에 따라 공공 질서를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키예프의 폴란드 연구소에서 연기되었다.[16]

2017년 4월, 우크라이나 국립기억연구소는 폴란드 내 기념물 해체에 대한 보복 조치로, 1943년 볼히니아와 동갈리시아의 폴란드인 학살 희생자의 유해 발굴을 금지하고, 우크라이나 내 폴란드 기념지 합법화를 중단했다.[17][18]

폴란드 대통령 안제이 두다는 민족주의적 반폴란드적 견해를 표명하는 사람들의 우크라이나 고위직 임명에 우려를 표명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우크라이나에 일반적인 반폴란드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19]

2018년, 폴란드 국립기억연구소에 관한 법률의 개정된 제2a조는 "독일 제3제국과 협력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및 우크라이나 조직 구성원의 범죄"에 대해 논의하면서 다시 우크라이나 측의 비판을 받았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개정안을 "반반데라 법"이라고 불렀다.[20][21]

2019년 8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전 우크라이나 정부가 UPA가 저지른 볼히니아 학살의 폴란드 희생자 유해 발굴을 금지한 이후, 우크라이나의 폴란드 집단 무덤 발굴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해제하겠다고 약속했다.[22]

2020년 7월 28일, 폴란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는 "루블린 삼각지대"라고 알려진 새로운 국제 협력 체제를 시작했다. 이 협정은 폴란드 루블린에서 폴란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외무장관 야체크 차푸토비치, 드미트로 쿨레바, 리나스 린케비치우스가 서명했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새로운 체제가 "중앙 유럽의 발전과 강화를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며, 유럽 및 유라시아 가족의 완전한 일원으로서의 우크라이나를 강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협력은 방위 문제뿐만 아니라 세 국가 간의 경제 협력, 무역 및 관광을 강화하는 데에도 관여할 것이다. 루블린 삼각지대 창설에 대한 공동 선언은 EU, NATO, 동부 파트너십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세 개의 바다 이니셔티브 개발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23]

2021년 8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65만 회의 코로나19 백신과 129톤 이상의 의료 장비를 제공했으며, 여기에는 산소 발생기, 인공호흡기, 보호 장비가 포함되었다.[24] 2021년 12월,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30만 회의 코로나19 백신을 기증했다.[25]

2. 3. 4. 2022년 ~ 현재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군사원조를 했다.

폴란드는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T-72 전차 230대, BWP-1 보병전투차 40대, 2S1 122mm 자주포 20문, 122mm 다연장로켓포(MLRS) 20문 등의 각종 야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폴란드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지난 4월부터 T-72 구형전차 230대를 순차적으로 넘겨주고 있다. 대신 폴란드는 미국으로부터 250대의 M1A2 에이브람스 전차를 받기로 했다. 우크라이나에 230대의 T-72 전차를 넘겨주고, 미국에서 250대의 M1A2 전차를 받겠다는 것이다. 폴란드가 인수하게 될 M1A2 전차는 기존 생산 모델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BWP-1는 소련제 궤도형 보병전투장갑차 BMP-1의 파생형 모델로 폴란드에서 생산됐다. 폴란드 지상군은 2016년 현재 이 두 종류의 장갑차를 1000대 이상 운용 중이다.

2022년 3월 13일, 러시아군이 폴란드 국경 인근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 인근 국제의용군 훈련소에 미사일 8발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우크라이나 야보리우 지역에 있는 국제평화유지안보센터(IPSC)에 떨어졌다. 이곳은 우크라이나 군대, 특히 평화유지 임무를 위한 훈련소로, 최근까지 미군이 우크라이나군의 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곳은 또 수 천 명의 민간인이 폴란드로 피난하는 길목이다.

이 시설은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가장 큰 군사훈련 시설로, 2015년부터 미군과 나토군이 자체 훈련을 하거나 우크라이나군을 훈련시켰던 곳이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를 도우러 온 국제의용군들의 훈련소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국경에서는 불과 2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서방의 무기가 우크라이나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IPSC에서 외국 용병들을 훈련하고 편성했으며, 외국에서 지원된 무기 등 군사장비를 보관하고 있어 공습했다고 밝혔다. 이고리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공습 뒤 브리핑에서 “용병 180명과 대규모 외국 무기들이 제거됐다”면서 “우크라이나 영토로 오는 외국 용병은 계속 제거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번 공격으로 35명이 사망하고 134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외국인 교관들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며 “피해자 정보를 확인 중”이라고 적었다.

2022년 3월 8일, 폴란드 외무부가 폴란드 공군이 운용하던 소련제 미그-29 전투기 28대를 독일에 주둔하는 미공군의 람슈타인 공군기지에 배치한다고 밝혔다. 이후 전투기에 대한 처분은 미국에 맡긴다는 방침이다. 대신 미국이 F-16 전투기를 폴란드에 제공해 달라고, 이른바 '스왑 딜(swap deal)'을 미국에 제안했다.

3월 10일, 미국은 이러한 제안에 반대했다. 미국은 폴란드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제공하려면 직접 제공하라는 입장이다.

4월 8일, 국방부 차관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 고위 대표단은 최근 폴란드를 방문해 FA-50 수출을 타진했다. 폴란드 공군이 운용하던 소련제 미그-29 전투기 28대를 우크라이나 공군에 무상제공하고, FA-50 48대를 구매하기로 했다. FA-50은 한 대당 4000만달러(518억원)으로 48대는 19억 2000만달러(2조 4864억원)에 달한다.

FA-50은 "미니 F-16"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F-16을 개발한 미국 록히드 마틴과 한국 KAI가 10년 동안 2조원을 들여 공동개발했다. 록히드 마틴의 개발지분은 30%였다.

폴란드가 수입할 FA-50PL 모델은, 가장 최첨단 모델이다. 미국산 AESA 전자식 레이더, AIM-120C 암람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공중급유 기능을 추가했다. 현재 한국 공군의 FA-50은 기계식 레이더,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만 무장하며, 공중급유 기능도 없다. 최근 미국 정부는 FA-50에 미국산 AESA 전자식 레이더, AIM-120C 암람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장착을 허가했다. F-16C/D 블록 50/52의 성능과 맞먹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FA-50은 그동안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친미 서방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싼 가격의 4.5세대 경전투기이고, 미국 록히드 마틴이 개입하고 있어서, 갑자기 인기를 얻고 있다. 즉, 미국 방산기업이 판매하는 가장 싼 4.5세대 전투기이다. 5세대 스텔스 전투기는 가격도 운영유지비도 너무 비싸서, 많은 친미 서방국가들이 사기에는 매우 부담스럽다. "미니 F-16"이란 별명의 FA-50가 아닌, F-16도 물론 유명하지만,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점점 가격이 너무 비싸졌다. 전투기를 실제로 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은, 너무 고비용의 고성능 전투기를 대량구매하는 것을 꺼려한다. 그래서, 미국 기업이 판매하는 가장 싸고 가장 저성능의 전투기가 FA-50이다.

1999년 나토에 가입한 폴란드는 2004년에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되면서 동유럽의 서방화에 기수가 됐다. 이후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의 서방화, 즉 나토와 EU 가입을 지지했다. 폴란드의 서쪽에 우크라이나 동쪽과 접경해 있고, 우크라이나의 동쪽은 러시아의 서쪽과 접경해 있다.

2022년 10월 5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자국 영토에 미국 핵무기를 나토의 핵무기 공유 방식으로 배치해 달라고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 요청했다. 미국 핵무기의 폴란드 이전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1997년 러시아·나토 창설법 등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다. 나토는 1991년 냉전이 종료된 후 새로운 회원국 영토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반면 러시아는 나토-러시아 창설법에서 규정한 책무를 위반하고 있다. 폴란드 이웃국가인 벨라루스는 자국 영토에 러시아산 핵무기의 반입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중에선 미국, 영국, 프랑스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튀르키예는 미국과 핵무기 공유 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은 이 나라들에 미국 핵무기 100기가 배치된 것으로 추정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폴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유럽 전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우크라이나 인근에서의 러시아 군사력 증강에 대응하여 2022년 1월 31일 폴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을 고려하여 우크라이나에 무기, 탄약 및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26] 2022년 2월 17일에는 영국-폴란드-우크라이나 3자 협정이 발표되었다. 2022년 2월 23일, 러시아의 긴장 고조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리주의자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 공화국에 대한 인정에 대응하여 폴란드 대통령 안제이 두다는 리투아니아 대통령과 함께 키예프를 방문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공동으로 선언하고 러시아에 대한 국제 제재를 촉구했다.[27]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일, 폴란드 하원(Sejm)은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28] 폴란드는 즉시 우크라이나에서 온 민간 난민을 수용하기 위해 9개의 접수 지점을 설치했다.[29] 2022년 전쟁 동안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두 번째로 큰 무기 공급국이 되었으며, 무기 총액은 16억 달러(2022년 5월 24일 기준)를 넘어섰다.[30] 제공된 무기에는 미사일, 수류탄 발사기, 소총, 드론, 전차, RPG 및 탄약이 포함된다.[30] 2022년 초 폴란드의 지속적인 우크라이나 지원은 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에 상당한 개선을 가져왔다.[31][32]

2022년 6월 1일, 첫 번째 양자 정부 간 협의가 키예프에서 열렸다.

2023년 9월 20일, 폴란드 총리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는 폴란드 시장에서 판매된 우크라이나산 저렴한 곡물이 폴란드를 통해 수출될 예정이었으나, 폴란드의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 금지 조치에 따른 양국 간의 긴장 속에서, 이전에 합의된 무기 외에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33][34]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며 곡물을 가지고 폴란드를 비판하며 '정치적 쇼'를 벌인다고 비난하자,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다시는 "폴란드인을 모욕하지 말라"고 경고했다.[35]

|thumb|폴란드 총리 도날트 투스크가 2024년 1월 22일 키예프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 함께 있다.]]

2023년 11월 6일, 수십 명의 폴란드 운송 회사 소유주들이 우크라이나 운송 회사와의 불공정 경쟁을 주장하며 3개의 주요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 검문소를 봉쇄했다. 임시 전시 EU 협정은 우크라이나 트럭이 통상적인 허가 없이 EU로 물품을 배송하고 수집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36] 11월 19일에는 약 3,000대의 우크라이나 트럭이 검문소에서 최대 30km 떨어진 곳에 갇혔다. 트럭이 국경을 넘는 데 약 1주일이 걸렸다.[37][38] 11월 27일에는 봉쇄가 네 번째 검문소로 확대되었다.[39] 2024년 2월까지 봉쇄는 철도를 포함한 모든 주요 검문소로 확대되었고, 시위대는 기차로 운송된 곡물을 바닥에 쏟았다. 봉쇄는 위기가 되었다.[40][41] 2024년 2월 27일, 약 10,000명의 농민들이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산 식품 수입 금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42]

2024년 4월, 폴란드 정부는 폴란드에 거주하는 징병 연령의 우크라이나 남성들을 우크라이나군에 징집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송환하는 것을 제안했다.[43][44] 폴란드에는 약 30만~40만 명의 우크라이나 남성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43]

3. 정치

3. 1. 외교 관계

폴란드는 키이우에 대사관을, 하르키우, 루츠크, 리비우, 오데사, 빈니차에 영사관을 두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바르샤바에 대사관을, 그단스크, 크라쿠프, 루블린, 브로츠와프에 영사관을 두고 있다.

3. 2. 2022년 러시아 침공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군사원조를 했다.[30] 폴란드는 T-72 전차 230대, BWP-1 보병전투차 40대, 2S1 122mm 자주포 20문, 122mm 다연장로켓포(MLRS) 20문 등 각종 야포를 지원했다.[30] 폴란드는 T-72 전차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M1A2 에이브람스 전차 250대를 받기로 했다.

BWP-1는 소련제 BMP-1의 폴란드 생산형 모델이다. 2016년 기준 폴란드 지상군은 1000대 이상을 운용 중이다.

2022년 3월 13일, 러시아군은 폴란드 국경 인근 국제의용군 훈련소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이 시설은 국제평화유지안보센터(IPSC)로, 우크라이나 서부 최대 군사훈련 시설이자 서방 무기 수송 통로였다. 러시아는 이곳에서 외국 용병 훈련 및 무기 보관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35명 사망, 134명 부상이라고 발표했다.

2022년 3월 8일, 폴란드 외무부는 폴란드 공군의 미그-29 전투기 28대를 람슈타인 공군기지에 배치하고 미국에 처분을 맡기는 대신 F-16 전투기를 제공받는 '스왑 딜'을 제안했으나, 미국은 3월 10일 이에 반대했다.

4월 8일, 한국 대표단은 폴란드에 FA-50 수출을 타진했다. 폴란드 공군은 미그-29 28대를 우크라이나 공군에 제공하고 FA-50 48대를 구매하기로 했다. FA-50은 "미니 F-16"으로 불리며, 록히드 마틴과 KAI가 공동 개발했다. 폴란드가 수입할 FA-50PL 모델은 미국산 AESA 레이더, AIM-120C 암람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공중급유 기능이 추가된 최첨단 모델이다.

1999년 나토, 2004년 유럽 연합(EU) 회원국이 된 폴란드는 동유럽의 서방화에 앞장섰고, 우크라이나의 나토와 EU 가입을 지지했다.

2022년 10월 5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핵무기 공유 방식으로 미국 핵무기를 자국 영토에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핵확산금지조약(NPT)과 1997년 러시아·나토 창설법 등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 반면 러시아는 나토-러시아 창설법을 위반하고 벨라루스에 핵무기 반입을 허용했다. 현재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회원국 중 미국, 영국, 프랑스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튀르키예는 미국과 핵무기 공유 협정을 체결했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은 이 나라들에 미국 핵무기 100기가 배치된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에 대응하여 2022년 1월 31일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결정했고,[26] 2월 17일 영국-폴란드-우크라이나 3자 협정이 발표되었다. 2월 23일,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리투아니아 대통령과 함께 키예프를 방문, 우크라이나 지지를 선언하고 러시아 제재를 촉구했다.[27] 2월 24일 러시아 침공 당일, 폴란드 하원(Sejm)은 만장일치로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다.[28]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을 위해 9개 접수 지점을 설치했다.[29]

2022년 6월 1일, 키예프에서 첫 양자 정부 간 협의가 열렸다.

2023년 9월 20일,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폴란드의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 금지 조치로 인한 양국 긴장 속에서, 이전에 합의된 무기 외 추가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33][34]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폴란드를 비판하자,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폴란드인을 모욕하지 말라"고 경고했다.[35]

2023년 11월 6일부터 폴란드 운송 회사 소유주들이 우크라이나 운송 회사와의 불공정 경쟁을 주장하며 국경 검문소를 봉쇄했다. 임시 전시 EU 협정으로 우크라이나 트럭은 허가 없이 EU 운송이 가능했다.[36] 11월 19일, 약 3,000대의 우크라이나 트럭이 갇혔고,[37][38] 11월 27일 봉쇄는 네 번째 검문소로 확대되었다.[39] 2024년 2월까지 봉쇄는 모든 주요 검문소로 확대되었고, 위기가 되었다.[40][41] 2024년 2월 27일, 약 10,000명의 농민들이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산 식품 수입 금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42]

2024년 4월, 폴란드 정부는 폴란드 거주 징병 연령 우크라이나 남성들을 우크라이나군 징집을 위해 우크라이나로 송환하는 것을 제안했다.[43][44] 폴란드에는 약 30만~40만 명의 우크라이나 남성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43]

4. 경제

5. 사회

5. 1. 인구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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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폴란드로 피난을 가면서 2022년 우크라이나 난민 위기가 발생하였다.

5. 2. 민족 갈등

6. 문화

7. 비교

폴란드 우크라이나
국장
인구38,383,000명41,660,982명
영토 면적312,696 km2603,628 km2
인구 밀도123명/km273.8명/km2
수도바르샤바키이우
최대 도시바르샤바 - 1,790,658명 (수도권 인구 3,100,844명)[50][51]키이우 - 3,703,100명 (수도권 인구 5,989,500명)[52][53]
정부단일 국가・의원내각제・입헌 공화국단일 국가・반 대통령제・입헌 공화국
공용어폴란드어우크라이나어
정부대통령 안제이 두다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종교92.9% 기독교87.3% 기독교
민족98% 폴란드인77.8% 우크라이나인
실질 GDP
명목 GDP
상호간 국외 이주자우크라이나 거주 폴란드인 144,000명 (2001년)폴란드 거주 우크라이나인 1,200,000명 (2017년)
군사 지출137억 달러129억 달러[56][57]
국제 환경유럽 연합 회원국유럽 연합 비회원국


참조

[1] 문서 Copsey, 2006.
[2] 뉴스 Information about Poland - general information http://www.prezydent[...] 2005-02-22
[3] 뉴스 Local Border Traffic Agreement With Poland Takes Effect http://www.ukranews.[...] 2009-07-01
[4] 뉴스 Poland to open consulate general in Sevastopol in 2010 http://www.kyivpost.[...] 2010-05-17
[5] 웹사이트 The Khmelnytsky insurrection https://www.britanni[...]
[6] 서적 Polskie Konsulaty na Wschodzie 1918-1939
[7] 문서 Wasilewski, pp. 88–89
[8] 서적 The Politics of Memory in Poland and Ukraine: From Reconciliation to De-Conciliation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21-09-30
[9] 서적 Povernennia i restytutsiia kul'turnykh tsinnostei u politychnomu ta kul'turnomu zhytti Ukraїny u XX–na poch. XXI st. NASU Institute for the History of Ukraine 2020
[10] 문서 Zajączkowski, 2005.
[11] 라디오 Poland supports Ukraine http://www.polskiera[...] 2008-03-18
[12] 뉴스 Polish ex-minister quoted saying Putin offered to divide Ukraine with Poland https://www.reuters.[...] 2015-01-19
[13] 뉴스 "Mówię: UPA odpowiada za ludobójstwo Polaków. Ukraińcy, ścigajcie mnie!" http://www.tvp.info/[...] 2018-03-06
[14] 뉴스 Polish MPs adopt resolution calling 1940s massacre genocide http://www.thenews.p[...] 2017-01-28
[15] 뉴스 Marshal of Polish Senate Warns Ukraine against Adopting Resolution on Genocide http://www.pravda.co[...] 2017-01-28
[16] 웹사이트 Kiev screening of Polish film on WWII massacre postponed http://www.thenews.p[...] 2017-01-28
[17] 웹사이트 The Polish-Ukrainian Battle for the Past https://carnegieeuro[...]
[18] 웹사이트 Ukrainians call on Poland to rebuild controversial monument http://archiwum.then[...]
[19] 웹사이트 Poland's Duda urges Ukraine leadership not to appoint to high positions officials with anti-Polish views https://www.unian.in[...]
[20] 웹사이트 Ukraińskie media o oświadczeniu prezydenta Dudy: słowo Ukraina nawet nie padło https://wiadomosci.w[...]
[21] 웹사이트 "Польські депутати вночі прийняли закон про заборону 'бандерівської ідеології' " https://dt.ua/WORLD/[...] 2018-09-01
[22] 뉴스 Ukrainian president to resume exhumation of Poles in Ukraine: report https://polandin.com[...] 2020-07-25
[23] 뉴스 Ukraine, Poland, and Lithuania create "Lublin Triangle," stirring memories of 17th century republic https://euromaidanpr[...] 2020-07-30
[24] 웹사이트 Polska kontynuuje wsparcie dla Ukrainy w walce z pandemią COVID-19 https://www.gov.pl/w[...] 2022-02-26
[25] 웹사이트 Polska przekazała Ukrainie 300 tys. dawek szczepionki przeciwko COVID-19 https://www.polskier[...] 2022-02-26
[26] 웹사이트 Poland handing over defense aid to Ukraine – Duda's Office https://www.ukrinfor[...] 2022-02-26
[27] 웹사이트 Polska i Litwa solidarne z Ukrainą https://www.prezyden[...] 2022-02-26
[28] 웹사이트 Sejm przyjął przez aklamację oświadczenie potępiające rosyjską agresję na Ukrainę https://radio.lublin[...] 2022-02-26
[29] 웹사이트 Polska jest gotowa na przyjęcie uchodźców z Ukrainy. Powstały już punkty recepcyjne przy granicy polsko-ukraińskiej https://www.pap.pl/a[...] 2022-02-26
[30] 웹사이트 Polish Weapons Defending Ukraine [ANALYSIS] https://defence24.co[...] 2022-07-09
[31] 웹사이트 The Russian invasion has united Poland and Ukraine, two countries with a fractious history https://neweasterneu[...] 2022-06-06
[32] 웹사이트 Poland's deputy PM: War gives Poland, Ukraine chance to bury troubled past https://www.euractiv[...] 2022-06-06
[33] 웹사이트 Poland will stop providing weapons to Ukraine as dispute over grain imports deepens https://www.cnn.com/[...] 2023-09-21
[34] 뉴스 Polish PM tells Ukraine's Zelenskiy 'never to insult Poles again' https://www.reuters.[...] 2023-09-23
[35] 웹사이트 Never 'insult Poles again,' Poland's prime minister tells Ukraine's Zelensky https://www.cnn.com/[...] 2023-10-01
[36] 뉴스 Ukraine fumes as Polish truckers block border crossings https://www.politico[...] 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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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뉴스 Thousands Wait at Ukraine Border After Polish Truckers Blockade It https://www.nytimes.[...] 2023-11-10
[39] 뉴스 Polish truckers start round-the-clock blockade of fourth Ukrainian border crossing https://www.reuters.[...] Reuters 2023-11-27
[40] 뉴스 Polish Farmers Protest Ukraine Imports as Government Weighs New Bans https://www.kyivpost[...] Kyiv Post 2024-02-09
[41] 뉴스 Polish farmers block Ukraine border in grain import protest https://www.dw.com/e[...] 2024-02-20
[42] 뉴스 Polish farmers march to protest Ukrainian imports, EU policy https://www.dw.com/e[...] 2024-02-27
[43] 뉴스 Poland and Lithuania pledge to help Kyiv repatriate Ukrainians subject to military draft https://www.theguard[...] 2024-04-26
[44] 뉴스 Lithuanian leaders in favour of sending military-age men back to Ukraine https://www.lrt.lt/e[...] 2024-04-29
[45] 문서 Embassy of Poland in Kyiv https://www.gov.pl/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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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문서 Copsey,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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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문서 なお、「ヴィスワ作戦」について、民主化後のポーランド政府は正式に態度を表明している。一方、2016年現在、「ヴォルイーニの悲劇」に関して、ウクライナ政府は正式な行動を起こしてい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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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문서 1990年11月19日から21日にかけ行われた会議で採択。
[61] 서적 Povernennia i restytutsiia kul'turnykh tsinnostei u politychnomu ta kul'turnomu zhytti Ukraїny u XX–na poch. XXI st. NASU Institute for the History of Ukraine 2020
[62] 문서 Ukrainian-Polish Conference on European Integration
[63] 문서 Zajączkowski,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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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문서 'ポーランド#EU加盟なお、ポーランド共和国は2004年5月1日に欧州連合へ加盟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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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문서 cross-border cooperation
[68] 뉴스 EU intensiviert Beziehungen zu Ostnachbarn http://www.tagesscha[...] tagesschau.de 2021-03-03
[69] 문서 ベラルーシはその後正式なメンバーになったが、2021年にこの東方メンバーシップの枠組みから脱退した。
[70] 뉴스 ロシアが2008年にウクライナ割譲を提案=ポーランド元外相 https://jp.reuters.c[...] 201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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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웹사이트 The Polish-Ukrainian Battle for the Past https://carnegieeuro[...] 2017-12-15
[73] 뉴스 旧ソ連のシンボル・記念碑を禁止 新法「脱共産主義法」発効 https://www.sankei.c[...] 2015-05-21
[74] 뉴스 "Mówię: UPA odpowiada za ludobójstwo Polaków. Ukraińcy, ścigajcie mnie!" http://www.tvp.info/[...]
[75] 문서 Narodowy Dzień Pamięci Ofiar Ludobójstwa dokonanego przez ukraińskich nacjonalistów na obywatelach II Rzeczypospolitej Polskiej
[76] 문서 Oleksii Musii
[77] 뉴스 Marshal of Polish Senate Warns Ukraine against Adopting Resolution on Genocide http://www.pravda.co[...] Ukrayinska Pravda 20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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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웹사이트 Ukrainians call on Poland to rebuild controversial monument http://archiwum.then[...] Radio Poland
[81] 웹사이트 Poland's Duda urges Ukraine leadership not to appoint to high positions officials with anti-Polish views https://www.unian.in[...] 2017-11-07
[82] 뉴스 ホロコーストに「ポーランド加担」の表現禁止する法案、上院可決 https://www.bbc.com/[...] 2018-02-01
[83] 웹사이트 Ukraińskie media o oświadczeniu prezydenta Dudy: słowo Ukraina nawet nie padło https://wiadomosci.w[...]
[84] 웹사이트 Польські депутати вночі прийняли закон про заборону 'бандерівської ідеології' https://dt.ua/WORLD/[...]
[85] 뉴스 Ukrainian president to resume exhumation of Poles in Ukraine: report https://polandin.com[...] 2019-08-29
[86] 뉴스 Ukraine, Poland, and Lithuania create “Lublin Triangle,” stirring memories of 17th century republic https://euromaidanpr[...]
[87] 웹사이트 Polska kontynuuje wsparcie dla Ukrainy w walce z pandemią COVID-19 https://www.gov.pl/w[...] 2021-08-18
[88] 웹사이트 Polska przekazała Ukrainie 300 tys. dawek szczepionki przeciwko COVID-19 https://www.polskier[...] 2021-12-08
[89] 웹사이트 Poland handing over defense aid to Ukraine – Duda's Office https://www.ukrinfor[...] Ukrinform 2022-01-31
[90] 웹사이트 Sejm przyjął przez aklamację oświadczenie potępiające rosyjską agresję na Ukrainę https://radio.lublin[...] 2022-02-24
[91] 웹사이트 Polska jest gotowa na przyjęcie uchodźców z Ukrainy. Powstały już punkty recepcyjne przy granicy polsko-ukraińskiej https://www.pap.pl/a[...] 2022-02-24
[92] 뉴스 ポーランドとハンガリー、ウクライナ農産品を禁輸 国内農家を保護 EU・ウクライナは反発 日本経済新聞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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