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 포로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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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트로 포로셴코는 1965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사업가로 활동하다 정치에 입문하여 국회의원, 외무부 장관, 경제개발통상부 장관을 역임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의 유럽 연합과의 관계 강화, 탈공산화 정책 추진, 동부 우크라이나 분쟁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2019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여 물러났다.

페트로 포로셴코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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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초상화, 2014년
이름페트로 포로셴코
원어 이름Петро Порошенко우크라이나어
로마자 표기Petro Oleksiyovych Poroshenko
출생일1965년 9월 26일
출생지볼흐라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소련 (현재 오데사주, 우크라이나)
거주지키이우주 코진
국적우크라이나
민족루테니아인
서명Petro Poroshenko Signature 2014.png
음성포로셴코의 미국 의회 합동 연설
정치 경력
대통령제5대 우크라이나 대통령
재임 기간: 2014년 6월 7일 ~ 2019년 5월 20일
총리아르세니 야체뉴크
볼로디미르 흐로이스만
경제개발무역부 장관재임 기간: 2012년 3월 13일 ~ 2012년 12월 4일
총리: 미콜라 아자로우
외무부 장관재임 기간: 2009년 10월 9일 ~ 2010년 3월 11일
총리: 율리야 티모셴코, 올렉산드르 투르치노우 (권한대행)
국가안전보장국방회의 서기재임 기간: 2005년 2월 8일 ~ 2005년 9월 8일
대통령: 빅토르 유셴코
국회의원유럽연대, 1번 선거구 (2019년 8월 29일 ~ 현재)
빈니차주, 12번 선거구 (2012년 12월 12일 ~ 2014년 6월 3일)
빈니차주, 12번 선거구 (2002년 ~ 2006년)
우리 우크라이나 블록, 33번 (2006년 ~ 2007년)
정당유럽연대 (2019년 ~ 현재)
우크라이나 연합 사회민주당 (1998년 ~ 2000년)
PSU/S (2000년 ~ 2013년)
PRVTSU/PR (2000년 ~ 2001년)
NU/NSNU (2005년 ~ 2012년)
NASTUP/BOS (2013년 ~ 2014년)
개인 정보
배우자마리나 포로셴코 (결혼: 1984년)
자녀4명, 올렉시 포로셴코 포함
학력타라스 셰우첸코 국립 키이우 대학교
직업사업가
정치인
연봉약 11,000 유로 (연간)
군 복무
소속소련
우크라이나
군종소련군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
복무 기간1984년 ~ 1986년 (소련)
2022년 ~ 현재 (우크라이나)
전투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급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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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린 시절과 학업

페트로 포로셴코는 1965년 9월 26일 우크라이나 SSR 오데사주볼흐라드 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올렉시 포로셴코는 엔지니어로 여러 공장을 관리하다 정부 관료가 되었고, 어머니 에우헤니야 세르헤에우나 흐리호르추크는 회계사였으며 회계직업기술학교의 교사였다고 한다. 포로셴코는 어린 시절을 티기나(현재의 벤데르,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도시로 현재 미승인 독립국인 트란스니스트리아 내에 있음)에서 보내면서 루마니아어를 배웠다.

어린 시절 유도와 삼보를 연습하여 소련 스포츠 대표 후보생이 되기도 했다. 군사 위원회에서 소련 육군생도 4명과 싸운 후, 1984년에서 1986년까지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소련군에 배치되었다.

1989년 키이우 대학교 국제관계 및 법학부(후에 국제관계학회)에서 경제학 학위를 받으며 졸업했다. 대학교에서 미헤일 사카슈빌리와 친분을 쌓았다. 1984년, 의대생이었던 마리나 포로셴코와 결혼했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키이우 대학 국제무역학과의 조교로 근무했다.

포로셴코의 형 미하일로 포로셴코는 1997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3. 사업 활동

1993년, 포로셴코는 아버지 올렉시이와 키이우의 도로교통연구소 내 동료들과 함께 제과 및 자동차 산업(나중에는 기타 농업가공업도 포괄) 부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우크르프로민베스트 산업투자회사를 설립했다. 1998년까지 회사의 최고이사로 활동하였고, 의회에 입성하면서 아버지에게 직함을 물려주었고, 자신은 명예회장 직위에 올랐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여러 국영 제과 기업을 인수, 합병하여 1996년 로셴 그룹을 설립,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과자 제조 공장을 건설했다. 제과 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여 "초콜릿 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제과 외에도 여러 자동차 및 버스 제조 회사, 쿠즈냐 나 리발스코무 조선소, 5 카날 방송국 등 우크라이나의 여러 산업체를 인수하였다. 대통령 당선 이후 사업체들을 백지신탁했다고 밝혔다. 2021년 2월, 우크라이나의 정보, 뉴스 채널인 프랴미 카날을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3.1. 재산

2012년 3월 포브스는 포로셴코를 미화 1 자산을 가진 억만장자로 선정했다. 2015년 5월 블룸버그 뉴스는 포로셴코의 재산이 약 720로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2015년 10월 우크라이나 저널 노보예 브레먀는 포로셴코의 자산 추정치가 20% 늘어난 약 979라고 보도했다.

포로셴코 소유 기업은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키프로스에 등록된 회사를 두고 있어, 우크라이나 법인세율(18%)보다 낮은 5%의 법인세만 납부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 이후 순자산이 40% 감소한 약 755로 기록되면서 억만장자 지위를 상실했다. 2022년 3월 포브스지 보도에 따르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로셴의 여러 공장이 가동 중단을 피할 수 없게 되는 등의 영향으로 자산이 700로 감소했다.

3.2. 포로셴코와 관련된 기업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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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명설명
보그단 그룹2009년 지분 매각
로셴 그룹우크라이나 최대 제과업체
5 카날텔레비전 채널
프랴미 카날텔레비전 채널 (2019년 이후 지분 관계 부인)
쿠즈냐 나 리발스코무 조선소키이우 소재
국제투자은행이호르 코노넨코와 공동 소유
우크르프로민베스트-아그로농업 지주회사
우크르프로민베스트-아그로 산하 농업 회사들
세바스토폴 조선소2015년 러시아에 의해 소유권 상실

4. 정치 활동

포로셴코는 1998년 1998년 빈니차 제12 단일 선거구에서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우크라이나 의회) 의석을 획득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그는 빅토르 메드베드추크가 이끌고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에게 충성하던 우크라이나 사회민주당 연합(SDPU) 소속이었다. 2000년에는 SDPU(o)를 탈당하여 중도보다 좌파적인 독립 의원 연대를 결성하고, 이를 우크라이나 연대당(PSU)이라는 정당으로 발전시켰다. 2001년에는 지역당 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우크라이나 연대당이 지역당에 합병되자 비슷한 이름의 새로운 정당인 "연대"당을 창당했다.

2012년 우크라이나 최고 의회 선거에서는 빈니차주 소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7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되어 의회에 재입성했지만, 입각하지는 않았다. 2013년 2월에는 키이우 시장 선거 출마를 시사했다.

2014년 뮌헨 안보회의에서. 왼쪽부터 비탈리 클리치코, 포로셴코,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 아르세니 야체뉴크
2014년 뮌헨 안보회의에서. 왼쪽부터 비탈리 클리치코, 포로셴코,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 아르세니 야체뉴크

4.1. 정계 입문

포로셴코는 1998년 우크라이나 제12선거구(빈니차 제2선거구)에서 17.44%의 득표율로 승리하여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원이 되었다. 처음에는 빅토르 메드베드추크가 당수였고 당시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을 지지했던 우크라이나 사회민주당(연합) 당원이었다. 2000년 사회민주당을 탈당하여 독립적인 좌익-중도 계열 원내교섭단체이자 이후 정당이 된 우크라이나의 연대당을 창당하였다. 2001년, 포로셴코는 쿠치마 대통령을 지지하는 지역당 창당에 큰 도움을 주었다. 2000년 말 우크라이나 연대당이 지역당과 합병되었고, 포로셴코는 비슷한 이름의 신당 플랫폼인 "연대"를 창당하였다.

4.2.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2001년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지지자들과 결별하고 빅토르 유셴코의 야당인 우크라이나 우리의 선택 연합의 선거대책본부장이 되었다. 2002년 총선에서 우크라이나 우리의 선택이 제1당이 되었고, 포로셴코 또한 의원 당선에 성공했다. 우크라이나 예결산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나, 당시 4,700만 흐리브냐(약 8.9) 예산을 잘못 선정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2004년 4월 16일 무카체보 시장 선거를 앞두고 열린 회의에서 포로셴코와 빅토르 유셴코
2004년 4월 16일 무카체보 시장 선거를 앞두고 열린 회의에서 포로셴코와 빅토르 유셴코


포로셴코는 유셴코의 매우 밀접한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유셴코는 포로셴코 딸의 대부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우리의 선택 연합과 오렌지 혁명 당시 주요 재정적 후원자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셴코가 승리한 후, 국가안전보장회의 장관에 임명되었다.

2005년 7월 6일, 키이우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열린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에 참석한 포로셴코
2005년 7월 6일, 키이우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열린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에 참석한 포로셴코


2005년 9월, 포로셴코와 당시 총리 율리야 티모셴코 사이에 국영기업 민영화와 관련된 상호 부패 의혹이 불거졌다. 예를 들어, 포로셴코는 1000로 평가된 니코폴 페로합금을 80에 인수한 빅토르 핀추크의 이익을 옹호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부패 혐의가 불거지자 유셴코 대통령은 포로셴코와 티모셴코를 포함한 부패 혐의 각료들을 해임하였다.

2006년 총선에서 우리 우크라이나 블록의 지지를 받아 비례투표에서 의회 재선에 성공하였다. 우크라이나 의회 경제금융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7년 조기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2007년 2월부터 우크라이나 국립은행 위원회 총재를 맡았다. 1999년부터 2012년까지 우크라이나 국립은행의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4.3. 외무부 장관과 통상부 장관 시절

2009년 러시아-우크라이나 국제위원회 회합에서의 포로셴코
2009년 러시아-우크라이나 국제위원회 회합에서의 포로셴코

2009년 12월, 폴란드 상원에서 전 그리스 총리 게오르게 파판드레우와 함께 있는 우크라이나 외무부 장관 페트로 포로셴코
2009년 12월, 폴란드 상원에서 전 그리스 총리 게오르게 파판드레우와 함께 있는 우크라이나 외무부 장관 페트로 포로셴코


2009년 10월 7일, 비크토르 유셴코 대통령은 포로셴코를 외무장관으로 지명했다. 10월 9일 베르호브나 라다(우크라이나 의회)는 포로셴코의 외무장관 임명을 승인했다. 10월 12일, 유셴코 대통령은 포로셴코를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재임명했다.

포로셴코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지지했지만, NATO 가입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10년 3월 11일,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포로셴코를 외무장관직에서 해임했지만, 그와의 추가 협력에 대한 희망을 표명했다.

2012년 2월 말, 포로셴코는 아자로프 정부에서 무역 및 경제 개발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2012년 3월 9일,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포로셴코가 경제 개발 및 무역 장관직으로 정부에서 일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3월 23일, 포로셴코는 야누코비치에 의해 우크라이나 경제 개발 및 무역 장관(통상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달 그는 우크라이나 국립은행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포로셴코는 우크라이나를 EU에 더욱 가깝게 만들고 율리아 티모셴코를 감옥에서 석방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통상부 장관직을 수락했다고 주장한다.

4.4. 의원으로 복귀

2012년 우크라이나 최고 의회 선거에서 포로셴코는 빈니차주 제12 단수 선거구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여 70%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는 어느 원내교섭단체에도 합류하지 않았으며, 유럽 통합 문제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13년 2월 중순, 포로셴코는 2013년 키이우 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2013년, 연대당은 10년간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 이후 포로셴코는 자유와 우크라이나 애국주의 전국 동맹 "공격"을 발족하여 지도자가 되었으며, 이 단체는 나중에 "전우크라이나 연합 연대"(BOS)로 개명하였다.

4.5.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

포로셴코는 2013년 11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진행된 유로마이단 시위를 재정적으로 적극 지원하여 인기가 급상승했다. 2013년 12월 1일, 시위대 봉기 당시 현장으로 나가 경찰과 보안군의 공격으로부터 평화 시위대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유로마이단 시위에 참여했던 야당 사이 협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5 카날 TV를 통해 반정부 세력을 적극 옹호했다.

2014년 2월 크림 위기 당시,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는 위기 해결을 위해 포로셴코에게 권한을 위임하여 크림반도로 출장을 보냈다. 2014년 4월 24일에는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 하에 들어가지 않은 루한스크를 방문했다가 친러시아계 주민들의 봉쇄를 겪었다. 포로셴코는 이후 자신의 차가 공격받고 인질로 잡힐 뻔했다고 주장했다.

2014년 뮌헨 안보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야당 지도자 비탈리 클리치코, 포로셴코(왼쪽 두 번째), 아르세니 야체뉴크(오른쪽)와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오른쪽 두 번째)
2014년 뮌헨 안보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야당 지도자 비탈리 클리치코, 포로셴코(왼쪽 두 번째), 아르세니 야체뉴크(오른쪽)와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오른쪽 두 번째)

4.6. 2014년 우크라이나 대선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으로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직에서 탄핵되면서 2014년 5월 25일에 새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었다. 선거 이전인 2014년 3월 여론조사에서 포로셴코는 40%의 지지율로 다른 모든 후보를 제치고 압도적인 1위 후보로 올라섰다. 3월 29일, 포로셴코는 공식적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발표했고, 같은 날 비탈리 클리츠코는 키이우 시장 선거에 출마하고 대통령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으며 포로셴코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발표했다.

4월 2일, 포로셴코는 "만약 내가 당선된다면, 난 정직하게 로셴 관련해서 전부 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4월 초에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여론 지지도가 낮다며 "나라를 망치지 않게 하기 위해" 굳이 주요 의제에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4월 14일, 포로셴코는 폴란드의 야로스와프 고빈이 이끄는 폴란드 다함께 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고빈의 동료인 파베우 코발 의원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해 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포로셴코의 대통령 선거 슬로건은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아가자! - 포로셴코"(Жити по-новому우크라이나어)였다.

5월 29일,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포로셴코가 5월 25일 대통령 1차 선거에서 54.7%의 득표율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5월 초 포로셴코가 베를린을 방문했을 당시 돈바스의 친러 분리주의자들은 "그 누구도 대표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법과 질서를 회복하고 테러리스트를 거리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5월 11일 열리기로 계획된 2014년 돈바스 지위 국민투표에 대해 "가짜 조작투표"라고 말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대선 당시 우크라이나 주별 포로셴코의 지지율 그래프 지도.
2014년 우크라이나 대선 당시 우크라이나 주별 포로셴코의 지지율 그래프 지도.

5. 대통령직 시기 (2014-2019)

2014년 5월 25일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포로셴코는 당일 저녁, "첫 대통령직 순방은 돈바스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돈바스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고 일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포로셴코는 우크라이나군의 군사작전을 계속하여 무장반란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선포하며, "대테러리스트 작전은 최대한 빨리 끝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포로셴코는 무장 반군을 소말리아의 해적에 비유하며, 국제적인 중재자들이 마련된 가운데 러시아와 협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양자 관계 문제로 타국 중재세력은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포로셴코는 러시아가 합병한 크림반도를 반환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2014년 내에 새 총선거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대통령 선거 포로셴코 득표율
2014년 대통령 선거 포로셴코 득표율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 이후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2014년 5월 25일에 새로운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포로셴코는 2014년 3월 사전 여론조사에서 다른 예비 후보들보다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으며, 3월 29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을 밝혔다. 비탈리 클리츠코는 대선 경쟁에서 물러나 포로셴코를 지지했다.

포로셴코의 선거 슬로건은 "새로운 방식으로 살자 – 포로셴코!"였다.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4년 5월 29일, 포로셴코가 5월 25일 대통령 선거에서 54.7%의 득표율로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5.1. 취임식

포로셴코는 2014년 6월 4일 최고 라다 건물 안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취임사에서 우크라이나가 절대로 크림반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크라이나의 통합을 강조하였다. 또한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분쟁에 가담한 친러계 분리주의 세력과 그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에 대해 "피를 묻히지 않았다면 전부 사면"하겠다고 말했으나, "조폭이나 살인범과 대화하는 것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의 조기 지방선거를 주장하였다.

포로셴코는 우크라이나-유럽 연합 제휴 협정의 경제 관련 부문에 서명할 것이며, 이것이 우크라이나의 유럽 연합 정식 가입을 위한 첫 단계가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어가 유일한 공용어"라고 말했지만, "러시아어기타 다른 모든 언어도 발전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설 일부는 러시아어로 말하기도 했다.

이날 취임식에는 조 바이든 미국의 부통령,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폴란드의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의 대통령,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리투아니아의 대통령, 디디에 부르칼테르 스위스의 대통령이자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 의장, 요아힘 가우크 독일의 대통령, 기오르기 마르그벨라슈빌리 조지아의 대통령, 스티븐 하퍼 캐나다의 총리,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의 총리, 헤르만 반 롬푀이 유럽 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 람베르토 찬니에르 OSCE 사무총장, 제퍼리 D. 펠트만 유엔 정치평화건설사무부 사무총장, 차이우 중화인민공화국 문화관광부장, 미하일 주라보프 주우크라이나 러시아 대사 등 50개국 해외 정상 및 대표와 더불어 율리야 티모셴코 우크라이나의 전 총리도 참석했다. 취임식 이후 티모셴코는 포로셴코에 대해 "우크라이나에 가장 안정적인 요소를 더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5.2. 국내 정책

포로셴코는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국내 정책 분야에서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다.

* 동우크라이나 평화 계획: 2014년 돈바스 전쟁 발발 이후, 포로셴코는 분리주의 세력과의 휴전 및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적 통로 설치를 골자로 하는 평화 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민스크 협정과 민스크 II 협정을 체결하여 사태 해결을 시도했으나, 분쟁은 계속되었다. 2018년에는 러시아를 침략국으로 규정하는 돈바스 재통합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 권력 분권화: 행정부 분권화를 위해 우크라이나 헌법 개정을 추진했다. 우크라이나의 행정 구역 개편, 지역별 언어 선택권 부여, 대통령 직속 감사관 신설 등을 제안했으나, 연방화와 대통령 권한 강화에는 반대했다.
* 의회 해산: 2014년 10월 조기 총선 실시를 위해 최고 라다(우크라이나 의회)를 해산했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정당인 페트로 포로셴코 블록 "연대"를 창당하여 총선에서 승리했다.
* 정화 운동: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 인사들의 공직 진출을 제한하는 정화 운동 법률에 서명했다.
* 핵무기 정책: 핵무기 보유국이 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탈공산화와 올리가르히 해체: 탈공산화 법안에 서명하여 공산주의 잔재 청산을 추진하고,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 해체를 시도했다.
* 언어 정책: 우크라이나어 사용 확대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소수민족 언어 교육권 보장을 위한 유럽 평의회 입법 회의(PACE)의 비판을 받았다.
* 종교 정책: 우크라이나 정교회 통합을 지원하여 독립 교회 우크라이나 정교회 수립에 기여했다.

5.2.1. 동우크라이나 평화 계획

2015년 2월 11-12일 양일간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린 민스크 II 협정 당시 각 국가원수의 모습. 왼쪽부터 벨라루스의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독일의 총리 앙겔라 메르켈, 프랑스의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포로셴코이다.
2015년 2월 11-12일 양일간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린 민스크 II 협정 당시 각 국가원수의 모습. 왼쪽부터 벨라루스의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독일의 총리 앙겔라 메르켈, 프랑스의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포로셴코이다.


포로셴코 취임 당시 우크라이나의 친러 반정부 무장세력은 자체적인 주민투표를 통해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돈바스 대부분을 장악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불법으로 간주했다. 취임식 이후 포로셴코는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결과를 인정받기 위해 "평화" 계획을 수립했는데, 이 계획은 분리주의자와의 휴전 및 민간인을 위한 인도주의적 회랑 설립 두 가지로 구성되었다. 포로셴코는 첫 평화 계획이 무산될 경우 "플랜 B"로 전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4년 6월 20일, 포로셴코는 돈바스를 처음 방문하여 현지 시각 18시 30분부터 6월 27일까지 휴전을 선언했다. 그는 이 휴전이 "테러리스트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평범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돈바스 방문 당시 포로셴코는 도네츠크주루한스크주의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할 계획을 제시하며 돈바스의 지방분권화와 조기 선거를 제안했다. 휴전 기간 동안 포로셴코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노르망디 포맷 전화 통화를 했다. 6월 27일 EU와의 연합 협정 서명일에 휴전 협정 기간을 72시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6월 30일 22시, 일방적 휴전 선언이 만료되자 포로셴코는 "우리는 우리 영토로 진격해 해방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8월 27일부터 러시아 정규군이 우크라이나에 개입하면서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후퇴했고, 결국 9월 7일 민스크 협정을 체결했지만 이후에도 돈바스 지역에서 무력 충돌은 계속되었다.

2015년 2월 12일,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포로셴코, 푸틴, 메르켈, 올랑드가 만나 민스크 협정 준수를 위한 추가 협정인 민스크 II 협정에 서명했다. 같은 해 10월 2일, 노르망디 포맷 회의에서 100mm 구경 이하의 경무기, 전차, 박격포를 철수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우크라이나-러시아 국경을 포함한 돈바스 점령 지역 전체에 휴전 협정 준수를 감시하기 위해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 감시단이 투입되었다.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요구했던, 즉 민스크 협정의 정치적 조항을 이행하기 전에 모든 안보 관련 요구 사항을 준수해야 한다는 해석 준칙을 받아들였다.

2018년 1월 28일,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는 포로셴코가 발의한 돈바스 재통합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러시아를 공식적으로 침략국으로 인정하며,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임의로 점령한 것으로 간주한다. 2018년 3월 27일, 독일 신문 베스트도이체 차이퉁(WZ)과의 인터뷰에서 포로셴코는 동우크라이나가 "얼어붙은 냉전이 아닌 열전 상태"라고 말했다.

2018년 4월 30일, 포로셴코는 돈바스 지역에서 4년간 진행된 대테러리스트 작전이 종료되고 합동군사작전(OOS)으로 전환된다고 선언했다. 2018년 5월 19일, 포로셴코는 독립국가연합(CIS)의 우크라이나 옵서버 참여 자격을 최종적으로 정지한다는 국가안전보장위원회 결정을 시행하는 법령에 서명하며 공식적으로 독립국가연합 준회원국에서 탈퇴했다.

2018년 8월 28일, 포로셴코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우호, 협력 및 동반자 관계 조약의 효력을 정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9월 3일, 친선 조약 폐기는 복잡하고 긴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폐기하지 않고 갱신만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5.2.2. 권력 분권 정책

2014년, 멜리토폴을 방문한 포로셴코.
2014년, 멜리토폴을 방문한 포로셴코.

6월 중순 포로셴코는 우크라이나 행정부의 분권화를 달성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헌법 개정 절차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2014년 6월 16일에는 헌법 개정이 "평화 계획의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2014년 6월 헌법 개정안 초안에서는 우크라이나의 행정 구역을 지역(현재의 를 대체), 지구, 호르마다(단일 지역공동체)로 개편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개정안에서 포로셴코는 "마을, 시, 지구, 지역 행정은 법에 명시된 절차에 따라 자신의 행정 구역 단위 내에서 러시아어 및 기타 소수언어의 지위를 결정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역의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 하나라고도 말했다.

포로셴코는 우크라이나의 각 나 현(라이온) 및 구가 우크라이나의 헌법과 법률을 제대로 준수하고 인권과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고 있는지 감사하는 대통령 직속 보직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비상사태가 발령되거나 계엄령 체제 하인 경우" 감사 중인 지역 행정을 "지도하고 조직"하는 역할도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체뉴크 내각의 주요 연정 파트너인 바트키우시나(조국당)는 이 계획에 대해 검토가 면밀히 필요하다고 즉각 통과에 반대하였다.

포로셴코는 우크라이나의 연방화에 반대하며, 대통령 권한 강화에도 반대한다.

2015년 7월 1일 지방분권 관련 법안 초안에서 각 지역자치단체는 자기 지역마다 세수가 어떻게 지출되는지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또한 초안에서 돈바스 지역은 친러 반군의 요구대로 완전한 자치권을 주지 않고 3년간 부분적인 자치권을 가지는 내용으로 제정되었다.

5.2.3. 의회 해산

2014년 8월 25일, 포로셴코는 그해 10월 26일에 최고 라다(우크라이나의 의회) 조기선거를 열 것이라고 발표했다. 포로셴코는 조기선거는 "(전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주축을 이루었던 라다를 정화시키기 위해"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 의원들을 "명백히 선출한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한 라다 의원들이 "2014년 1월 사망한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우크라이나 시위금지법"의 제정에 책임이 있다고도 말했다. 포로셴코는 현 의원 중 많은 수가 "군사를 동원한 분리주의자의 직접적인 후원자, 공범 혹은 최소 동조자"라고 말했다.

포로셴코는 2014년 5월 대통령에 당선된 후 의회 총선거 시행에 압력을 가했다. 결국 7월 24일 조기선거를 위해 의회 연립여당 원내교섭단체인 유럽의 선택을 해체하여 의회 내 다수당을 없애 조기선거 조건을 만족시켰다. 8월 25일 저녁 포로셴코 대통령은 최고 라다를 해산하고 2014년 10월 26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2014년 8월 27일 전우크라이나 평화통일당 당대표회에서 정당명을 "페트로 포로셴코 블록"(BPP)라는 새 명칭으로 개명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 페트로 포로셴코 블록은 "페트로 포로셴코 블록 "연대""로 다시 개명하였다.

10월 24일 총선 결과 페트로 포로셴코 블록은 21.81%의 득표율을 기록하였고 총 132명의 의원이 당선되어 원내 1당이 되었다.

5.2.4. 정화 운동

2014년 10월 9일, 포로셴코는 9월 16일 최고 라다에서 통과된 정화 운동에 관한 법률에 서명하였다. 이 법은 야누코비치 정권 하에 고위공직자로 재직했던 인사는 10년간, 기타 관료는 5년간 정부 직위 종사를 제한한다. 2010년 2월 25일부터 2014년 2월 22일까지 1년 이상 정부 각료 지위에 있었던 인사는 10년간 직위가 금지된다.

2015년 7월 11일까지 650명 이상의 공무원이 해고되었으며, 9월 19일에는 760명이 해고되고 80명이 조사를 받았다. 2016년 7월 기준으로 총 923명이 해고되었다.

5.2.5. 핵무기 정책

2014년 12월 13일, 포로셴코는 우크라이나가 다시는 핵무기 보유국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5.2.6. 탈공산화와 올리가르히 해체

2015년 5월 15일, 포로셴코는 공산주의 관련 기념물을 철거하고 공산주의와 관련된 이름을 가진 거리, 공공장소, 마을 이름을 수정하도록 의무화한 탈공산화 법안에 서명하였다. 그는 법안에 서명하며 "난 해야 할 일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국가로서 해야 할 일을 했고, 정부는 미래를 책임지고 역사가들이 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소련의 정치적 탄압과 홀로도모르를 1940년대 나치의 범죄와 동등하다고 언급했다. 이 법안에는 로만타라스 슈헤비치, 스테판 반데라 등이 가담한 우크라이나 반역군(UPA)을 포함하여 "20세기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위해 싸운 모든 사람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포로셴코는 독일 잡지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당선된다면 모든 것을 깨끗이 청산하고 다들 우려하는 로셴도 전부 매각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서 나는 국가의 복지에만 집중할 것이고 그러고 싶다"라고 말했다.

2015년 3월 19일, 최고 라다에서는 주식회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으로 소유권 유형에 관계없이 모든 주식회사의 대주주 비율은 2015년 기준 50% + 1주로 제한되었다. 2015년 3월 23일, 포로셴코는 국영 석유회사의 통제권을 둘러싸고 억만장자 올리가르히인 이호르 콜로모이스키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주지사직 사임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는 "우크라이나에는 더 이상 올리가르히가 없을 것이다. 올리가르히가 중산층과 중소기업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시민들에게 "탈올리가르히(올리가르히 해체) 작업이 실현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와 맞서 싸우겠다고 약속했다.

2015년 7월 24일, 우크라이나 법무부는 탈공산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법 위반을 이유로 우크라이나 공산당(CPU)의 지방 선거, 총선, 대통령 선거 출마를 금지하였다. 같은 해 12월 17일, 키예프 행정지방법원은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키예프 내 활동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2018년 12월, 포로셴코는 우크라이나 국민주의자 기구(OUN)와 우크라이나 반역군의 무장부대원이 우크라이나 독립을 위해 싸운 참전용사이자 전투원의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재천명했다.

5.2.7. 언어 정책

2016년 말, 우크라이나의 라디오 방송국은 매일 우크라이나어 노래를 일정 시간 동안 송출해야 한다는 새로운 법률이 시행되었다. 이 법은 TV 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이 뉴스와 심층보도 같은 프로그램은 우크라이나어를 60%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도 포함하고 있다.

2017년 9월 15일, 포로셴코 대통령은 2017년 9월 5일 최고 라다에서 통과된 새 교육법에 서명하였다. 이 법은 영어와 기타 유럽 연합의 공용어 중 하나로 두 개 이상의 언어로 가르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수준에서 우크라이나어로 교육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새 교육법은 3년간의 과도기를 거친 후 전면적으로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2018년 2월 유예 기간이 2023년까지 연장되었다.

새 교육법은 유럽 평의회 입법 회의(PACE)에서 "국가 내 소수민족 교육에 큰 장애"가 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헝가리, 루마니아, 러시아도 새 교육법을 비판하였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새 교육법이 유럽 연합의 소수민족 권리에 관한 규범을 준수한다고 강조하였다.

새 교육법은 "우크라이나의 소수민족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공용어와 함께 각 민족의 언어로 취학 전 유치원과 초등학교 공공시설에서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PACE는 이 법안이 각 소수민족 대표와의 협의 없이 소수민족의 권리를 크게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018년 6월 27일, 우크라이나의 외무부 장관 파울로 클림킨은 (2017년 9월의) 새 교육법을 베니스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사립학교에는 적용하지 않을 것이며, 소수민족이 공부하는 모든 공립학교에는 "우크라이나어나 소수민족의 모국어 둘 중 하나로 수업을 받을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9년 5월, 포로셴코 대통령이 안드리 파루비 국회의장(왼쪽)이 보는 앞에서 "우크라이나어의 공용어 기능에 관한 법률"에 서명하는 모습.
2019년 5월, 포로셴코 대통령이 안드리 파루비 국회의장(왼쪽)이 보는 앞에서 "우크라이나어의 공용어 기능에 관한 법률"에 서명하는 모습.


2019년 5월 19일, 포로셴코는 "우크라이나어의 공용어 기능에 관한 법률"에 서명하였다.

5.2.8. 종교 정책

포로셴코 정권 하에서 키이우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UOC-KP)와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UAOC)가 합병하여 독립 교회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수립되었고, 우크라이나 동방정교회 통합회의 내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UOC-MP) 의원 2명이 에피파니누스 1세를 초대 수좌주교로 선출하였다. 2018년 10월 11일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청이 우크라이나 정교회에 자치권을 부여해 주는 발표를 하며 결정적으로 10월 15일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이 세계총대주교청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였다.

통합 공의회 당시 키예프의 성 소피아 대성당 내부. 왼쪽부터 오른쪽 순서대로: 포로셴코, 에피파니우스 1세, 에마누엘 대주교, 필라레트 (필라레트는 스쿠피아를 쓰고 있음), 2018년 12월 15일.
통합 공의회 당시 키예프의 성 소피아 대성당 내부. 왼쪽부터 오른쪽 순서대로: 포로셴코, 에피파니우스 1세, 에마누엘 대주교, 필라레트 (필라레트는 스쿠피아를 쓰고 있음), 2018년 1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