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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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두서는 조선 숙종 때의 문인으로, 윤선도의 증손이다. 진사에 급제했으나 당쟁으로 벼슬을 버리고 학문과 서화에 몰두했다. 특히 인물, 동식물 그림에 뛰어났으며, 심사정, 정선과 함께 조선의 3재로 불린다. 산수화, 초상화, 풍속화 등 다양한 회화를 남겼으며, 화보를 통해 남종화 유행에 기여했다. 《동국여지지도》와 같은 회화식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윤두서 자화상》이 있으며, 국보 및 보물로 지정된 작품과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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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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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 | |
한글 이름 | 윤두서 |
한자 이름 | 尹斗緖 |
호 | 공재(恭齋), 호재 |
자 | 효언(孝彦) |
국적 | 조선 |
직업 | 문인, 화가 |
생애 |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
사망지 | 조선 전라도 해남 연동 |
가족 | |
아버지 | 윤이석 |
어머니 | 청송 심씨 |
배우자 | 전주 이씨 |
자녀 | 윤덕희(장남) 윤덕렬(차남) |
친척 | 외증조부 : 심액(沈詻, 1571년~1654년) 외조부 : 심광사(沈光泗, 1620년~1671년) 외육촌 : 심득경(沈得經, 1673년~1710년) 손녀 : 윤소온(尹小溫, 1728년~1770년) 증손자 : 윤경(尹憬, 한의업 종사) 외증손자 : 정약전(丁若銓, 1758년~1816년) 외증손자 : 정약종(丁若鍾, 1760년~1801년) 외증손자 : 정약용(丁若鏞, 1762년~1836년) |
2. 생애
윤선도의 증손이며 윤이후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숙종 때(26세)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당쟁이 심해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학문과 예술에 몰두했다. 조선 후기 화단의 선구자로 현재 심사정, 겸재 정선과 함께 '3재(三齋)'로 불린다. 서화뿐만 아니라 유학, 천문지리, 수학, 병법 등 다양한 분야에 능통했다. 대표작으로는 〈노승도〉, 〈산수도〉, 〈자화상〉 등이 있다.
2. 1. 가계
3. 작품 활동
윤두서는 시, 서, 화에 모두 능했으며, 특히 인물, 동물, 산수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겨 조선 후기 화단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3. 1. 회화
윤두서는 산수화, 초상화, 도석인물화 등 다양한 분야의 그림을 그렸다. 특히 백성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풍속화는 당시 사회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3. 1. 1. 화보
고씨화보, 당시화보 등 다양한 화보를 통해 남종화 및 작화 방법론의 유행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3. 2. 지도 제작
풍수에 대한 관심으로 동국여지지도, 일본여도 등 회화식 지도를 만들었다.[1] --4. 학문적 성향
윤선도의 증손이며, 윤이후의 넷째 아들이다. 숙종 때(26세) 진사에 급제하였다. 당쟁이 심하던 시기였기에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며 서화로 생애를 보냈다. 글씨와 그림에 능하였는데, 특히 인물·동식물 등의 그림에 뛰어났다. 조선 후기 화단의 선구자로 지목받으며, 현재 심사정, 겸재 정선과 함께 조선의 ‘3재(三齋)’라 불린다. 서화뿐만 아니라 유학, 천문지리, 수학, 병법 등 각 방면에 능통한 실학적인 태도는 가풍으로 전해졌다.
5. 문화재
윤두서 자화상은 대한민국 국보 제240호이다.[1] 심득경 초상은 대한민국 보물 제1488호이다.[2]
6. 기타
국립광주박물관은 2014년 윤두서 서거 30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이 전시는 창립 50주년을 맞은 광주MBC, 윤두서 집안의 본가인 해남 녹우당과 공동으로 개최하였다.[5]
참조
[1]
간행물
국립광주박물관 기획전시 공재 윤두서 서거 300주년 기념 공재 윤두서 팜플렛
2014-10-21
[2]
웹인용
최초 천주교 순교자 윤지충과 정약용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7-03-19
[3]
웹인용
천주교 첫 순교자 尹持忠의 최후진술과 기적
http://haenamyoon.ne[...]
해남윤씨 광주 종친회
2004-10-21
[4]
문서
디지털 장서각 1717년 윤덕렬(尹德烈) 등(等) 간찰(簡札)
http://jsg.aks.ac.kr[...]
[5]
웹사이트
특별전 <공재 윤두서>
http://gwangju.mus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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