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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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무카는 카마그 몽골 연맹의 자다란 출신으로, 칭기즈 칸의 의형제였다. 몽골부의 유력 지도자로 부상한 테무진과 동맹을 맺었으나, 가축 약탈 사건으로 관계가 악화되었고, 테무진이 칸으로 추대되자 타이치우트 씨족 편에 서면서 대립했다. 자무카는 13익의 전투에서 테무진 측 병사들을 삶아 죽이는 형벌을 가했으나, 테무진에게 패하여 체포되었다. 그는 의형제의 손에서 죽기를 원하여 피를 흘리지 않는 방식으로 처형되었으며, 대중문화 속에서 칭기즈 칸의 라이벌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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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무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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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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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札木合 (찰목합) |
한자 | 古兒汗 (고아한) |
정치 | |
직책 | 몽골 울루스의 칸 |
임기 | 1201년 ~ 1206년 |
전임자 | 예수게이 |
후임자 | 칭기즈칸 |
2. 생애
자무카는 카마그 몽골 연맹의 하위 부족인 자다란에서 태어났으며, 테무진의 ''안다''(즉, 의형제)였다.[1]
몽골비사에 따르면, 테무진의 아내 보르테가 메르키트족에 의해 납치되었을 때, 왕 칸, 자무카, 테무진은 보르테를 되찾기 위해 메르키트족에 대항하여 힘을 합쳤다.[1]
1201년, 테무진에게 적대적인 13개의 부족 지도자들(그 중에는 메르키트, 타타르, 나이만 등이 있었고)과 그와 동맹하지 않은 몽골 부족들(자다란, 타이치우드 등)이 쿠릴타이를 열어 자무카를 구르칸(Gur-khan), 즉 ''만국의 지배자''로 선출했다. 이 칭호는 카라 키타이 칸국의 통치자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자무카가 이 칭호를 사용한 것은 테무진과 자무카의 최종적인 결별을 의미했다. 그해 가을, 자무카 동맹과 케레이트-카마그 몽골 동맹 사이에 에르구네 계곡에서 벌어진 13개 측면의 전투는 테무진의 승리로 끝났고, 결국 그는 모든 연합 몽골 부족의 칸으로 등극했다.[1]
자무카는 몽골 전통에서 부족 지위가 없는 양치기들을 모집하지 않는 등 연합 구축에 덜 성공했다. 이는 테무진이 자무카에 의해 가해진 일련의 군사적 패배에서 회복하여 승리할 수 있게 했다.[1]
13개 측면의 전투 이후, 자무카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배신당하여 체포되었고, 승리한 테무진에게 넘겨졌다. 테무진은 자신이 만든 법("절대로 너의 칸을 배신하지 말라")에 따라 배신자들을 즉시 처형했고, 자무카는 살아서 테무진과 합류할 수 있었지만, 대신 의형제의 손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처형되었다.[1]
최근 연구에 따르면, 12세기 말 몽골 고원에서는 동쪽의 금나라와 서쪽의 서요가 각각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며, 몽골, 케레이트, 타타르, 나이만과 같은 유력 부족 간의 항쟁은 금나라와 서요라는 두 강대국의 대리 전쟁 양상을 띠고 있었다. 테무진과 자무카는 몽골 고원 동방의 "금나라파"와 "서요파"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고 여겨진다.
1196년, 테무진은 "서요파"였던 케레이트부의 토오릴을 "금나라파"로 끌어들여, 금나라군·몽골군·케레이트군의 3군 연합으로 올즈 강 전투에서 타타르부에 승리했다. 이 전투의 공으로 토오릴과 테무진은 각각 "옹 칸"과 "자우트 크리"라는 칭호를 금나라로부터 받고, 금나라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했다.[4]
금나라와의 우호 관계를 확립한 케레이트-몽골 동맹("금나라파" 동맹)은 주변 여러 부족을 토벌하여 세력을 확대했고, 몽골 고원 동방에서는 "금나라파"가 우세해지고 있었다. 이에 몽골 고원 동방의 "서요파"가 결집하여 1201년에 자무카를 구르칸으로 추대했다. 실제로, 이때 자무카를 추대한 콩기라트, 카다킨, 사르지우트와 같은 여러 부족들은 과거 서요의 창시자 야율대석을 도왔던 부족들이며, "구르칸"이라는 칭호도 서요 황제의 칭호를 의식한 것이었다.[5]
또한, 『금사』에는 1196년~1199년경에 "장갈"이라는 인물이 금나라의 변방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인물은 자무카이며, 이 군사 행동은 1196년의 "올즈 강 전투"에서 "금나라파" 확장에 대한 보복 행위라고 여겨진다.[6]
2. 1. 초기 생애와 테무진과의 관계
자무카는 카마그 몽골 연맹의 하위 부족인 자다란에서 태어났으며, 테무진의 ''안다''(즉, 의형제)였다.[1]몽골비사에 따르면, 테무진의 아내 보르테와 그의 계모 소치겔이 메르키트족에 의해 납치되었을 때, 왕 칸, 자무카, 테무진은 보르테를 되찾기 위해 메르키트족에 대항하여 힘을 합쳤다.[1]
札木合중국어는 자다란 씨 (혹은 자지라트 씨) 출신이다. 자다란 씨는 몽골부에 속한다고 여겨지지만, 『원조비사』에 따르면 그 조상 자지라다이는 칭기스 칸의 전설적인 조상 중 한 명이자 보르지긴 씨의 시조인 보돈차르가 아내 울량카다이와 결혼했을 때 이미 임신한 상태에서 낳은 아들이며, 몽골부의 칸을 배출한 보르지긴 씨와는 전설상의 혈통으로도 매우 거리가 멀다. 또한, 자지라다이로부터 자무카까지의 세대수를 세면 5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자지라다이의 의붓아버지인 보돈차르로부터 칭기스 칸까지는 11세대가 헤아려지며, 세대수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자다란의 이름은 『요사』에도 독립된 집단으로 보이며, 원래 고원 북서부의 상당히 강력한 집단이었으나, 점차 쇠퇴하여 보르지긴 씨에게 종속되면서 몽골부 안으로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자무카는 어린 시절, 훗날 칭기스 칸이 되는 테무진과 함께 놀았던 친구이자 맹우(안다)의 맹세를 맺었다. 그러나 그 후, 고원 북부의 유력 부족인 메르키트의 세력이 강해져 몽골부는 메르키트에게 공격을 받고, 자무카는 오랫동안 억류되었지만, 메르키트로부터 풀려나자 몽골부로 돌아와 그 유력자가 되었다.
테무진이 몽골부의 유력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부상하자, 다시 맹우의 맹세를 확인하고 그 동맹자가 되었다. 『원조비사』는 자무카와 테무진이 맹우의 맹세를 한 것은 테무진의 아내 보르테가 메르키트에게 빼앗겨, 그 탈환을 위해 메르키트에게 복수전을 벌였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 싸움은 『원조비사』에만 기록되어 있다.
테무진과 자무카는 동맹하여 인접하여 유목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어느 날 자무카의 일족[2]이 테무진 휘하의 유목민의 가축을 몰래 약탈하려다 가축을 관리하는 테무진의 피지배민에 의해 사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의 결과, 테무진과 자무카의 관계는 냉랭해졌고, 테무진은 자무카의 목초지에서 이탈했다. 더욱이, 테무진에 속하는 키야트 씨족의 족장들이 테무진을 칸으로 추대하자, 이를 질투한 자무카와 테무진 사이의 결렬은 결정적이 되었고, 자무카는 보르지긴 씨의 직계인 키야트 씨의 동족에 해당하는 유력 씨족인 타이치우트 씨의 편으로 갔다. 키야트는 몽골부의 초대 칸, 타이치우트는 제2대 칸을 각각 시조로 하는 몽골부 내의 유력 씨족이며,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2. 2. 테무진과의 대립과 13익의 전투
자무카는 카마그 몽골 연맹의 하위 부족인 자다란 출신으로, 테무진의 안다였다. 몽골비사에 따르면, 테무진의 아내 보르테가 메르키트족에 납치되었을 때, 왕 칸, 자무카, 테무진은 힘을 합쳐 보르테를 구출했다.[1]1201년, 테무진에 적대적인 13개 부족 지도자들과 몽골 부족들이 쿠릴타이를 열어 자무카를 구르칸으로 선출했다. 이 칭호는 카라 키타이 칸국 통치자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테무진과 자무카의 최종 결별을 의미했다. 그해 가을, 자무카 동맹과 케레이트-카마그 몽골 동맹 사이에 에르구네 계곡에서 큰 전투(13개 측면의 전투)가 벌어졌고, 테무진이 승리했다.[1]
자무카는 연합 구축에 덜 성공했는데, 예를 들어 몽골 전통에서 부족 지위가 없는 양치기들을 모집하지 않았다. 이는 테무진이 자무카에 의해 가해진 군사적 패배에서 회복하여 승리할 수 있게 했다.[1]
13개 측면의 전투 이후, 자무카는 부하들에게 배신당해 테무진에게 넘겨졌다. 테무진은 "절대로 너의 칸을 배신하지 말라"는 법에 따라 배신자들을 처형했고, 자무카는 의형제의 손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처형되기를 요청하여 죽음을 맞았다.[1]
『원조비사』에 따르면, 자무카는 어린 시절 테무진과 맹우(안다)를 맺었지만, 테무진 휘하 유목민의 가축 약탈 사건으로 관계가 냉랭해졌다. 테무진이 칸으로 추대되자, 자무카는 타이치우트 씨의 편으로 가 테무진과 대립했다.
자무카는 타이치우트 씨족 등을 동원하여 테무진과 싸웠고(13익의 전투), 포로 70명을 삶아 죽이는 형에 처했다. 이 형벌 이후, 동맹 씨족 족장들이 테무진에게 투항했다.
13익의 전투 이후, 자무카의 세력은 약해졌지만, 테무진은 옹 칸을 도와 케레이트의 칸으로 복귀시키고, 타타르, 나이만, 메르키트 등과 싸우며 세력을 확대했다. 타이치우트는 테무진에게 패배했다.
1201년, 테무진의 세력 확대를 두려워한 여러 씨족은 자무카를 지도자로 추대하고 굴 칸이라 칭했다. 그러나 콩기라트 부족장 데이 세첸은 테무진에게 밀고했고, 테무진은 자무카를 격파했다.
자무카는 일카 세웅군과 테무진 암살을 계획했지만 실패했다. 1203년 옹 칸은 테무진과 동맹을 파기하고 몽골부를 멸망시켰지만, 테무진은 세력을 되찾아 케레이트를 멸망시켰다.
자무카는 나이만, 메르키트로 도망쳤지만, 테무진에게 사로잡혔다. 『원조비사』에 따르면, 자무카를 넘겨준 부하들은 처형당했고, 자무카는 테무진에게 사면을 제안받았지만, "피를 흘리지 않고 죽여주시오. 죽은 후, 나의 혼은 당신의 자손들을 영원히 지켜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죽음을 택했다.[3]
2. 3. 몰락과 최후
몽골비사에 따르면, 13개 측면의 전투 이후 자무카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배신당하여 체포되었고, 승리한 테무진에게 넘겨졌다.[1] 테무진은 자신이 만든 법("절대로 너의 칸을 배신하지 말라")에 따라 배신자들을 즉시 처형했다.[1]이후 테무진은 자무카를 심문했다. 자무카는 테무진과 다시 합류할 수 있었지만, 대신 의형제의 손에 죽기를 요청하며 "피를 흘리지 않고 죽여주시오. 죽은 후, 나의 혼은 당신의 자손들을 영원히 지켜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3] 테무진은 이를 받아들여 자무카를 피를 흘리지 않는 방법으로 처형하고 후하게 장례를 치렀다.[3]
3. 평가 및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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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중문화 속의 자무카
자무카는 1965년 영화 징기스칸에서 스티븐 보이드가 연기했으며, 2007년 영화 몽골에서는 쑨훙레이가 연기했다. 1956년 영화 정복자에서는 테무진에게 충성하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테무진이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하자 피를 보지 않고 죽는 것을 택한다. 이는 평생의 경쟁자이자 적으로 묘사되며 마지막 결투에서 함께 죽는 1965년 영화와는 대조적이다.
코에이의 게임 징기스칸 2에서는 플레이 가능한 통치자(Jamuga)로 등장한다.
다음은 자무카가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다.
연도 | 작품명 | 제작 | 배우 |
---|---|---|---|
1943년 | 칭기즈 칸 | 다이에이 교토 촬영소 | 기타 류지 |
1955년 | 정복자 | 미국 | 페드로 알멘다리스 |
1965년 | 징기스칸 | 미국·영국·서독·유고슬라비아 합작 | 스티븐 보이드 |
1980년 | 푸른 늑대 ~칭기즈 칸의 생애~ | 일본 | 와카바야시 고 |
1992년 | 칭기스 칸 | 몽골 | 체베그미딘 툼르바타르 |
1998년 | Genghis Khan (1998 film)|푸른 늑대 칭기즈 칸영어 | 중국 | |
2000년 | 칭기즈 칸 | 중국 | 자오헝쉬안 |
2007년 | 푸른 늑대 ~지구 끝 바다 끝까지~ | 쇼치쿠 | 히라야마 유스케 |
2007년 | 몽골 | 도에이/티 조이 | 쑨훙레이 |
2009년 | Тайна Чингис Хаана|라이징 로드 남자들의 전기ru | 러시아·몽골·미국 합작 | |
2018년 | 战神纪|전신기 칭기즈 칸 전기중국어 | 중국 | 리광제 |
2018년 | 칸 - 풀과 쇠와 양- | 모닝(코단샤) | |
2018년 | 징기스칸기 | 호쿠호 겐조 저 (슈에이샤) | |
1973년 | 이 사랑은 구름의 끝까지 | 다카라즈카 가극단 하나구미 | 마츠 아키라 |
1973년 | 이 사랑은 구름의 끝까지 | 다카라즈카 가극단 호시구미 | 미즈시로 타마모 |
1992년 | 이 사랑은 구름의 끝까지 | 다카라즈카 가극단 유키구미 | 코다이 미즈키 |
1997년 | 초원의 연가 ~ 젊은 날의 징기스칸 | 메이지좌 | 츠카야마 마사네 |
2008년 | 징기스칸 ~ 나의 검, 열사를 물들여라 ~ | 일본・몽골 친선 특별 공연 | 에노키 타카오키 |
푸른 늑대와 하얀 암사슴 원조비사 | 코에이 |
참조
[1]
웹사이트
How Genghis Khan Became the Most Feared Ruler in the World
https://medium.com/@[...]
2020-06-08
[2]
문서
元朝秘史では弟のタイチャルが、ジェルメの弟のダルマラの馬を盗み、ダルマラに射殺される事件が起こった、と記述されている。
[3]
서적
元朝秘史
[4]
서적
[5]
서적
[6]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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