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지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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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르지긴은 몽골의 씨족으로, 알란 고아의 다섯째 아들 보돈차르 뭉카그의 후손에서 시작되었다. 보르지긴 씨족은 칭기즈 칸 이전 카불 칸 시대에 몽골을 통일하는 데 기여했으며,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 시대에는 황금 씨족으로 불리며 지배층을 형성했다. 몽골 제국 멸망 후에도 칭기즈 칸의 후손들은 여러 왕조를 세우며 번성했고, 몽골 고원 재통일에도 기여했다. 현대에는 몽골과 중국 내몽골 지역에서 성씨로 사용되며, 유전자 연구를 통해 광범위한 지역에서 보르지긴-키야드 혈통이 확인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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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르지긴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가문 이름 | 보르지긴 |
| 로마자 표기 | Borjigin |
| 몽골어 표기 | ᠪᠣᠷᠵᠢᠭᠢᠨ |
| 키릴 문자 표기 | Боржигин |
| 중국어 간체 표기 | 孛儿只斤 |
| 중국어 번체 표기 | 孛兒只斤 |
| 페르시아어 표기 | بورجیگین |
| 영어 복수형 | 보르지긴스 또는 보르지기드 |
| 만주어 복수형 | [[File:Borjigit 1.png|24px]] |
| 기원 | 카마그 몽골 |
| 창시자 | 보돈차르 문카그 |
| 설립 시기 | 10세기경 |
| 해체 시기 | 1930년 |
| 마지막 통치자 | 샤힌 기라이 (유럽) 마크수드 샤 (아시아) |
| 주요 지배 지역 | 몽골 제국 북원 몽골 중국 (내몽골 및 신장 위구르 자치구) 러시아 중앙아시아 이란 |
| 통치자 칭호 | |
| 칭호 | 카간 칸 일칸 노얀 차르 |
| 분파 | |
| 분파 | 조치 가문 (기라이 가문, 샤이반 가문, 토레 가문) 원나라 훌라구 가문 차카타이 가문 |
| 기타 | |
| 주요 인물 | 칭기즈 칸 |
| 관련 가문 | 키야트 가문 타이치우트 가문 바를라스 가문 조치 가문 차카타이 가문 오고데이 가문 툴루이 가문 |
2. 기원과 명칭
보르지긴 씨족의 기원은 몽골 신화 속 푸른 늑대(볼테 치노)와 갈색 암사슴(구아 마랄)에서 시작되었다. 몽골비사에 따르면, 이들의 11대손인 도부 메르겐의 미망인 알란 구아는 빛에 감응하여 임신했다.[8] 그녀의 막내아들이 후대 보르지긴 씨족의 조상이 된 보돈차르 뭉카그이다.[9] 라시드 앗딘 하마다니는 "보르지긴"이라는 말이 투르크어에서 어두운 파란 눈을 가진 남자를 지칭한다고 설명했다.[4] 아부 알가지 바하두르는 예수게이와 그의 자손들이 어두운 파란 눈을 가졌으며, 이는 알란 구아를 임신시킨 정령의 특징과 일치한다고 덧붙였다.[2]
보르지긴 씨족의 시조 설화는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다룬 『원조비사』 서두에 제시된 칭기즈칸의 족보 전승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에 따르면, 그 기원은 하늘의 명을 받들어 태어나 큰 호수(바이칼 호)를 건너 오논강 상류의 불칸산으로 온 "볼테 치노"(푸른 늑대라는 뜻)와 그의 아내 "코아이 마랄"(희끄무레한 암사슴이라는 뜻)이었다. 볼테 치노의 11대손 도분 멜겐은 일찍 죽었지만, 그의 미망인 알란 구아는 하늘에서 온 빛을 느껴 남편 없이 세 아들을 낳았다. 칭기즈칸이 속한 보르지긴 씨의 시조인 보돈찰은 그 막내아들이라는 것이다.
이 설화는 보르지긴 씨가 하늘의 자손이며, 볼테 치노를 시조로 하는 다른 몽골 부족과는 다소 출신이 다르고 고귀한 가문임을 이야기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2. 1. 보돈차르에서 시작된 보르지긴 씨족
알란 구아의 막내아들 보돈차르 뭉카그는 보르지긴 씨족의 조상이 되었다.[9] 보돈차르의 후손들은 보르지긴 씨가 되었고,[25] 그의 형제들과 함께 몽골 민족 전체의 시조가 되었다.[10] 알란 구아에게서 태어난 장남 베르그누테이의 후손은 베르그누트 씨(ベルグヌウト氏), 차남 부그누테이의 후손은 부그누트 씨(ブグヌウト氏), 삼남 부구 카타기의 후손은 카타긴 씨(カタギン氏), 사남 부카투 살지의 후손은 살지우트 씨(サルジウト氏)가 되었다.[25]보돈차르의 손자인 메넨 토돈(メネン・トドン) 사후, 그의 아내 모누룬과 일곱 자녀는 자라일 부족과의 갈등을 겪었다. 거란(契丹)(요(遼))])의 대학살을 피해 온 자라일 부족 70호가 모누룬의 영토로 피난 왔으나, 기근으로 인해 모누룬의 목초지에서 풀뿌리를 캐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모누룬이 이에 분노하여 자라일 사람들에게 부상을 입히자, 자라일 사람들은 모누룬과 여섯 자녀를 살해했다.[27] 유모 덕분에 살아남은 손자
3. 칭기즈 칸 이전의 키야트 씨족
카불 칸 시대에, 보르지긴 씨족은 몽골 전 지역을 통일하는 데 성공했다. 『원조비사』는 카불 칸이 "모든 몽골인을 통치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28], 몽골 역사상 처음으로 몽골 부족들을 통일한 왕(칸)으로 즉위했다고 여겨진다. 카불 칸은 금에 입조하여 연회 자리에서 왕성한 식욕을 보이거나, 취해서 황제의 수염을 만지는 등 무례를 저질러 금나라 군사들에게 쫓겼으나, 쫓아온 사자들을 모두 죽였다.[29]
이 무렵 몽골 부족의 거주지는 오논강 유역에서 알룬강 유역에 걸친 몽골 고원 북동부에 넓게 펼쳐져 있었다. 중국 측 기록에 따르면, 1140년대에 카불 칸으로 추정되는 인물(熬羅孛極烈)이 이끄는 몽골(朦骨) 국가가 금나라를 침공했고, 이를 막지 못한 금나라는 화의를 맺었다. 금나라는 서평하 이북의 27개 성을 할양하고, 매년 소, 양, 쌀, 콩을 제공하기로 약정했으며, 카불 칸을 "몽골(朦骨) 국주"로 책봉했다. 이때 熬羅孛極烈은 "조원황제"라고 자칭하고, 천흥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고 한다.[30]
카불 칸 사후, 칸의 지위는 카불 칸의 5촌 당숙뻘인 암바가이에게 계승되었다. 이 두 칸 이후, 서쪽 오논강 상류에 유목하는 카불 칸의 후손들이 키야트(단수형 키얀) 씨족, 동쪽 오논강 하류에 유목하는 암바가이 칸의 후손들이 타이치우트 씨족이라는 동족 집단을 형성하여, 몽골 부족의 중심 씨족인 보르지긴 씨족의 동서 양대 분파가 되었다. 그러나 카불 칸이 저지른 불상사 때문에 암바가이 칸은 타타르 부족에게 잡혀 금나라에 넘겨졌고, 나무 말뚝에 손발이 못으로 박힌 채 온몸의 가죽이 벗겨지는 끔찍한 방법으로 처형당했다. 뒤를 이은 카불 칸의 아들 쿠투라 칸과 그의 일족은 타타르와 금나라를 원망하여, 암바가이 칸의 아들 카다안 타이시와 협력하여 타타르와 금나라에 대한 복수전을 되풀이했다. 이 항쟁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쿠투라 칸의 형 바르탄 바아투르의 셋째 아들 예수게이였고, 그의 장남이 칭기즈 칸(테무진)이다. 예수게이는 1155년에 타타르 족장인 테무진 우게와 콜리 부카를 살해하는 공을 세웠다.[31][32]
예수게이는 그 후 몽골 부족을 통합하여 키야트 씨족의 족장이 되었지만, 이전 전투에서 타타르 족의 원한을 샀기 때문에, 콩기라트의 보스쿨 씨족에 아들 테무진을 보내러 갔다가 독살당했다. 예수게이의 죽음 후, 키야트 씨족의 지도력이 약해져 타이치우트 씨족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고, 키야트 씨족의 대부분은 그들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테무진의 가족과 소수의 수행원만이 남게 되었다.[33][34]
4. 몽골 제국 시대의 보르지긴 씨족
칭기스칸은 1206년 몽골 제국을 건국했다. 몽골 제국 시대에 칭기즈칸과 그의 세 동복 동생인 조치 카사르, 카치운, 템게 오치긴의 후손들은 “'''황금씨족'''(알탄 우르크)”이라 불리며, 일반 유목민이나 유목 귀족보다 훨씬 위에 군림하는 군주의 혈통으로 여겨졌다.[12] 칭기즈칸 형제 이외의 키야트 씨족 사람들과 “황금씨족”을 구분하기 위해, 그들은 단순히 “보르지긴”을 씨족 이름으로 사용했다. 여기서, 과거 보돈찰의 후손 전체의 씨족 이름이었던 보르지긴은 몽골 제국의 카안(칸, 황제) 가문에 고유한 씨족 이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칭기즈칸이 건설한 몽골 제국은 중국에서 러시아, 중동에 이르기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세계사상 전례 없는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이 때문에 보르지긴씨의 후손들은 제국의 최고 군주인 카안(칸)의 지위를 계승한 원나라를 비롯하여 차가타이 울루스, 조치 울루스, 프레그 울루스 등 크고 작은 여러 왕국을 형성하여 그 왕가로 번영했다.
이러한 여러 정권들은 14세기에 점차 쇠퇴하여 해체되거나 재편되었지만, 그 후에도 몽골 제국의 옛 지배 지역에서는 칭기즈칸의 남계 후손만이 카안(칸)이 될 수 있다는 관습이 뿌리 깊게 남았다. 이를 칭기즈 칸의 계승 원칙이라고 한다.
몽골 고원에서는 원이 명나라에 쫓겨 고원으로 물러난 후, 보르지긴씨의 왕가는 일시적으로 쇠퇴했지만, 16세기 초에 칭기즈칸의 후손인 다얀 칸이 몽골 고원을 재통일함으로써 다시 부흥했다. 그 후 몽골에서는 다얀 칸의 후손들이 분가를 반복하면서 각 부족을 지배하는 왕후로 자리 잡았고, 17세기 이후 청나라의 지배하에서도 그들의 지위를 유지했으며, 보르지깃(博爾済吉特)씨(Borjigit hala)는 효장문황후 등을 통해 황제와 혈연 관계를 맺기도 했다.
20세기에도 보르지긴씨는 데무추크돈롭(덕왕), 달리자야(달왕) 등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5. 몽골 제국 이후의 보르지긴 씨족
1368년, 토곤 테무르(원 혜종) 치세 동안 원나라는 명나라에 의해 멸망했지만, 몽골 제국의 붕괴 이후에도 칭기즈 칸의 후손들은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서아시아 등지에서 여러 왕조를 세우며 영향력을 유지했다. 가문의 일원들은 17세기까지 북중국과 몽골 고원을 지배하며 북원으로 알려졌다. 몽골 고원에서는 원나라가 명나라에 의해 멸망한 후 북원으로 명맥을 유지했으나, 다얀 칸(1480~1517) 치하에서 보르지긴 가문이 재부흥하여 몽골 본토에서 보르지긴의 우위가 재확립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번성하여 새로운 지배 계급이 되었다.[12]
칭기즈 칸의 형제인 하사르와 벨구테이의 후손들은 1380년대에 명나라에 항복했다. 1470년까지 보르지긴 계보는 심각하게 약화되었고, 몽골 고원은 거의 혼란에 빠졌다.
몽골 제국이 붕괴된 후, 킵차크 씨족(Khiyat)은 18세기 후반까지 크림과 카잔을 지배했다. 그들은 러시아 제국과 중국에 병합되었다. 몽골에서는 쿠빌라이 씨족(Kublaids)이 몽골의 카간으로 통치했지만, 오고타이와 아리크 보케의 후손들이 잠시 왕위를 찬탈하기도 했다.
청나라는 보르지긴 가문을 존중했고, 초기 황제들은 코르친의 하사리드 보르지긴과 결혼했다. 친청 몽골인들 사이에서도 대안적인 전통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기(旗)의 장군인 아치 로미(Aci Lomi)는 1732년에서 1735년 사이에 그의 저서인 "보르지긴 씨족의 역사"를 저술했다.[13] 18세기와 19세기 청나라 귀족들은 초기 몽골 추종자들의 후손들, 특히 보르지긴 씨족의 후손들로 장식되었다.[14]
칭기즈 칸의 후손으로부터 내려온 아시아 왕조에는 중국의 원나라, 페르시아의 일칸국, 골든 호드의 조치드, 시베리아와 중앙 아시아의 샤이바니드, 중앙 아시아의 아스트라한 칸국이 포함된다. 칭기즈 칸의 후손만이 칸이 될 수 있다는 "칭기즈 칸의 계승 원칙"은 몽골 제국 붕괴 이후에도 오랫동안 유목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15] 예를 들어, 마마이는 꼭두각시 칸들의 계승을 통해 권력을 행사해야 했지만, 칭기즈 칸의 혈통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칸이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인도의 무굴 제국의 창업자인 바부르와 후마윤은 칭기즈 칸의 후손임을 주장했다. 그들은 모계 혈통을 통해 계승을 주장했기 때문에 보르지긴이라는 씨족 이름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칭기즈 칸의 후손 중 마지막 통치 군주인 막수드 샤(1930년 사망)는 1908년부터 1930년까지 쿠물 칸이었다.
6. 현대의 보르지긴 씨족
20세기 몽골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보르지긴 씨족은 권력을 잃었다. 사회주의 시대에 귀족 출신은 탄압의 대상이었다.[17] 조셉 스탈린의 측근들은 몽골 문화와 종교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보르지긴 귀족들을 포함, 3만 명에 달하는 몽골인들을 처형했다.[18]
1920년대 공산 정권은 씨족 이름 사용을 금지했다. 1997년 이 금지령이 해제되었을 때 대부분의 몽골 가족들은 자신의 씨족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이 때문에 많은 가족들이 역사적 정당성 없이도 가장 권위 있는 씨족 이름인 보르지긴을 등록했다.[19][20] 보르지긴이라는 명칭은 문화적 우월성을 나타내는 척도로 사용되기도 한다.[21]
내몽골에서는 보르지긴 또는 키야드라는 이름이 중국식 성씨의 기초가 되었다.[12] 내몽골 보르지긴 타이지들은 보르지긴에서 유래한 보(鲍)씨(鲍중국어)를 사용했고, 오르도스에서는 치(奇)씨(奇중국어, 키야트)를 사용했다.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서쪽의 하자라인부터 동쪽의 허저족에 이르기까지 최대 1,600만 명의 남성이 보르지긴-키야드 혈통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한다.[22] 키야트 씨족 이름은 카자흐스탄인, 우즈베크인, 노가이, 카라칼팍인들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현대에도 몽골인들은 씨족 연관성을 명예와 자부심의 문제로 여기고 있다. 몽골국에서는 민주화 이후 사회주의 시대에 금지되었던 씨족명을 부활시키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이때 보르지긴을 씨족명으로 신고한 사람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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