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탄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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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갈탄의 난은 258년 위나라에서 제갈탄이 사마소에게 반기를 들고 일으킨 반란이다. 고평릉의 변 이후 사마씨가 위나라를 장악한 가운데, 제갈탄은 사마소의 의심을 받자 동오의 지원을 받아 수춘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오나라의 지원이 실패하고, 내분과 투항이 이어지면서 제갈탄은 사마소에게 진압당했다. 이 사건은 위나라 내 마지막 봉기였으며, 사마소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고 이후 촉나라 정벌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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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탄의 난 - [전쟁]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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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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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명칭 | 제갈탄의 난 |
부분 분쟁 | 수춘삼반 |
시기 | 대략 257년 6월 - 258년 3월 또는 4월 |
장소 | 안후이성 서우현 주변 |
결과 | 조위의 승리 |
교전 세력 | |
교전 1 | 조위 |
교전 2 | 제갈탄, 동오 |
지휘관 및 지도자 | |
조위 | 사마소, 종회, 호분, 왕기 |
반란군 | 제갈탄†, 손침, 문흠†, 정봉 |
병력 규모 | |
조위 | 260,000명 |
반란군 | 제갈탄: 140,000-150,000명, 동오: 30,000명 |
2. 배경
249년 고평릉의 변 이후 사마씨가 위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고, 251년과 255년 수춘에서 왕릉과 관구검의 반란이 일어났지만 모두 진압되었다. 255년 수춘의 두 번째 반란 진압에 공을 세운 제갈탄은 사마씨의 전횡에 불안감을 느끼고, 회수 지역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2. 1. 제갈탄의 불안과 의심
고평릉의 변과 251년과 255년 수춘에서 일어난 이전의 반란 사건들 이후, 위나라는 사마소와 그의 일족이 섭정하며 거의 완벽하게 통제하게 되었다. 수춘의 두 번째 반란 이후, 사마사가 사망하면서 그의 동생인 사마소에게 권력이 넘어갔다. 위나라 황제는 조모였고, 문흠이 동오로 도망가면서 수춘의 일은 위나라 장군 제갈탄에게 맡겨졌다. 제갈탄은 왕릉과 관구검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봤으며, 수춘에서 일어난 두 번째 반란에서도 엄청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하후현과 등양이 모두 사마씨에게 처형되었고, 왕릉과 관구검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제갈탄은 불안감을 느꼈다. 제갈탄은 회수 지역에서 자신의 인기를 높이기 시작했고, 많은 호위병을 고용했다.256년 겨울, 동오는 군대를 보내 서예(徐堨)를 공격했다. 제갈탄은 이를 처리할 수 있었지만, 위 황실에 10만 명의 추가 병력을 요청했고, 이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사마소는 제갈탄의 행동을 의심하여 측근 가충을 제갈탄에게 보내 그가 위 황제 조모에게 충성하는지, 아니면 사마소에게 충성하는지 평가하게 했다. 가충이 제갈탄이 황제를 지지한다고 보고하자, 사마소는 황제의 명의로 그에게 칙령을 보내 낙양으로 돌아가 사공으로 봉사하라고 지시했다. (겉으로는 제갈탄의 승진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를 수춘의 군사 지휘에서 해임하고 낙양으로 소환하여 사마소의 감시를 받게 하려는 의도였다.)[1]
3. 반란의 발발
256년 겨울, 동오가 군대를 보내 서예(徐堨)를 공격했다. 제갈탄은 이를 처리했지만, 위 황실에 10만 명의 추가 병력을 요청하고 이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사마소는 제갈탄의 행동을 의심하여 측근 가충을 보내 제갈탄이 위 황제 조모에게 충성하는지, 아니면 사마소에게 충성하는지 평가하게 했다. 가충이 제갈탄이 황제를 지지한다고 보고하자, 사마소는 황제의 명의로 칙령을 보내 낙양으로 돌아가 사공으로 봉사하라고 지시했다. (겉으로는 제갈탄의 승진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를 수춘의 군사 지휘에서 해임하고 낙양으로 소환하여 사마소의 감시를 받게 하려는 의도였다.)[1]
제갈탄은 명령을 받은 후 사마소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직속 상관인 악림과 양주 자사를 살해하고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4만에서 5만 명의 군대를 장악한 후 사마소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는 주부 오강(吳綱)을 시켜 자신의 아들 제갈경을 인질로 동오로 보내 오나라의 지원군을 요청했다. 이에 오나라는 두 번째 수춘의 난 때보다 더 많은 지원군을 보내 제갈탄에게 막대한 병력을 지원했다. 사마소 또한 제갈탄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위나라 전역에서 병력을 동원했다.[2]
4. 반란의 전개
사마소는 수춘 인근 요충지인 추두에 26만 명의 대군을 주둔시켰다. 왕기와 진건에게 공격 부대를 이끌고 수춘을 포위하도록 명령하여 반란 초기에 큰 피해를 입혔다. 오나라가 수춘 남쪽으로 대규모 병력을 보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사마소는 사포 등에게 대규모 병력을 보내 오나라 지원군을 막게 했다. 이전에 반란을 일으켰던 문흠, 전이, 당자는 위나라 포위군이 제갈탄을 포위하기 전에 재빨리 수춘으로 들어갔다. 문흠은 여러 차례 포위를 돌파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4. 1. 오나라의 지원과 좌절
사마소는 우선 수춘 인근의 요충지인 추두에 26만 명의 대군을 주둔시켰다. 그는 왕기와 진건에게 공격 부대를 이끌고 수춘을 포위하여 반란 초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도록 명령했다. 오나라가 수춘 남쪽으로 대규모 병력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마소는 사포와 다른 장수들에게 대규모 병력을 보내 오나라 지원군의 진격을 막으려 했다. 이전에 반란을 일으켰던 문흠, 전이, 당자는 위나라 포위군이 제갈탄을 포위하기 전에 서둘러 수춘으로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반격 시도에서 문흠은 부하들을 이끌고 여러 차례 포위를 돌파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 상황에서 주이가 이끄는 오나라 군대는 수춘 남서쪽 안풍(安豊) 수비대에서 지원 병력을 이끌고 위나라 군대에 피해를 입히려 했지만, 위나라 군대에 의해 신속하게 격퇴되었다. 그는 간신히 손침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손침은 정봉, 이비, 주이에게 군대를 이끌고 초호 방향으로 이동하여 수춘의 위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포위를 막도록 했다. 위나라 군대는 수춘으로 향하는 길에 그들의 군대를 신속하게 요격하여 손침이 보낸 오나라 군대의 대규모 병력을 격파했다. 제갈단과 오나라 측의 사기는 급락했다. 잇따른 헛된 노력과 패배로 손침은 주이를 처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격파되었을 때, 오나라의 군수 물자는 호열이 이끄는 위나라의 기습 공격으로 파괴되었다. 많은 병사들이 사마소의 군대에 항복하거나 오나라 진영을 버렸다. 절망에 빠진 손침은 제갈단이 위나라를 상대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수춘에서 건강으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4. 2. 내분과 투항
제갈탄의 군대는 여전히 수춘에 포위되어 있었지만, 위나라 군에게 경미한 피해만 입혔을 뿐, 사기는 여전히 낮았고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제갈탄의 부하 강반(蔣班)과 교이(焦彝)는 그에게 포위망의 한쪽 측면을 돌파하여 포위를 풀고 전세를 뒤집을 것을 조언했다. 오나라 군을 이끌고 주력 부대와 떨어져 수춘에서 계속 전투를 벌이던 문흠은 이 계획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는 나머지 오나라 군대가 곧 제갈탄과 합류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손준이 오나라 수도 건업으로 퇴각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제갈탄은 교이와 강반의 무능한 조언을 비웃으며 문흠에게 동의했다. 그는 그들을 죽이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교이와 강반은 두려움에 질려 제갈탄의 많은 병력을 이끌고 투항했고, 이는 제갈탄의 남은 병력에게 거의 모든 희망을 앗아갔다. 종회는 사마소에게 전휘(全輝)와 전의(全儀)의 편지를 위조하여 전위(全禕)와 전단(全端)을 항복하도록 함으로써 제갈탄 군대의 더 많은 투항을 유도할 것을 제안했다. 전의는 곧 그 편지를 입수했고, 계획대로 그 편지가 진짜라고 속아 즉시 사마소에게 항복했다. 제갈탄의 군대는 기습을 당했고 더 많은 사상자를 냈다.5. 반란의 진압
258년 2월 말 또는 3월 초, 제갈탄, 당자, 문흠, 문앙(문흠의 아들) 휘하의 잔존 병력은 포위망을 뚫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신속하게 패배했고 막대한 사상자를 냈다. 그 무렵 제갈탄에게 남은 병력은 거의 없었고, 성내의 군수 물자는 빠르게 고갈되고 있었다. 심지어 더 많은 병력이 사마에게 항복했다.
문흠은 자신이 통제하는 북방 출신 병사들과 성내의 나머지 오나라 병사들의 활동을 중단시켜 군수 물자를 절약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제갈탄은 문흠의 제안을 무시하고, 그를 겁쟁이라고 비난하며 문흠을 속여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서 문흠을 죽였다. 문흠의 아들인 문앙과 문호는 아버지의 처형 소식을 듣고 급히 수춘에서 탈출하여 사마에게 항복했다. 사마는 아버지의 행적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다시 위나라에 받아들였다. 문흠의 아들들의 항복은 반란군을 완전히 사기 잃게 만들었다.
258년 3월 22일과 4월 19일 사이, 위나라 군대는 마침내 수춘에 있는 제갈탄의 거점을 공격하여 돌파했다. 제갈탄은 모든 희망을 잃고 성에서 도망쳤지만, 호분의 부하들에게 살해당했다. 오나라 장수 유전은 전투에서 전사했고, 당자와 왕조는 제갈탄의 남은 병력과 함께 사마에게 항복했다.
6. 결과
반란이 진압된 후, 사마소는 위나라에서 영웅으로 여겨졌고, 마침내 대부분의 위나라 인물들의 신뢰와 협력을 되찾았다. 이후 조모는 사마소를 살해하려 했지만, 쿠데타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이 살해되었다.
이는 수춘에서 일어난 마지막 봉기였으며, 나머지 위나라 군대가 촉나라 전면 침공에 집중할 기회를 제공했다.
7. 전투 서열
위나라 군 | 제갈탄 및 동오 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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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 위나라 군
7. 2. 제갈탄 및 동오 군
8. 대중 문화에서의 제갈탄의 난
코에이 테크모의 비디오 게임 시리즈인 ''진 삼국무쌍''에서 플레이 가능한 스테이지로 등장한다. 이 스테이지는 ''진·삼국무쌍 7''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참조
[1]
서적
Sanguozhi vol. 28
[2]
서적
Sanguozhi vol. 28
[3]
서적
Sanguozhi vol.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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