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구 (대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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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구는 진나라 시기에는 기현의 옥연으로, 항우에게 대사마에 임명된 인물이다. 항우가 유방과 대치할 때 성고를 지키라는 명을 받았으나, 한나라 군의 도발에 넘어가 사수를 건너다가 패배하여 사마흔, 예와 함께 자결했다.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에 기록이 전해진다.
진(秦)의 관리였던 조구는 항량을 도운 인연으로 진나라 멸망 후 항우에게 발탁되어 해혼후(海昏侯)에 봉해지고 대사마에 임명되었다. 기원전 203년, 항우의 명으로 성고를 수비하던 중 한의 유방 군에게 패배하였고, 사마흔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 생애
2. 1. 진나라 시기
진(秦) 시대에 기현의 옥연(刑獄, 형벌과 감옥 관련 사무를 맡는 관리)으로 일했다. 당시 죄를 짓고 체포된 항량을 비호하였는데, 자신의 상사였던 사마흔에게 부탁하여 항량이 무죄로 풀려나도록 도왔다.
2. 2. 초한쟁패기
진나라 시대에 기현의 옥연(獄吏)이었던 조구는 죄를 지은 항량을 비호하고 당시 상사였던 사마흔에게 주선하여 무죄로 풀려나게 도왔다. 이러한 인연으로 진나라 멸망 후 항우에게 발탁되어 해혼후(海昏侯)에 봉해지고 대사마에 임명되었다.
기원전 204년 (한왕 4년) 10월, 항우와 한왕 유방이 광무산에서 대치하던 중, 팽월이 양나라 땅을 평정하고 초나라의 군량 보급로를 차단했다. 이에 항우는 대사마 조구에게 성고(成皋, 현재의 형양시)를 굳게 지키라고 명하며, 한나라가 싸움을 걸어오더라도 절대 응하지 말고 동쪽으로 진군하지 못하게만 하라고 당부했다. 항우 자신은 15일 안에 팽성을 되찾고 양나라를 평정한 뒤 돌아와 합류하겠다고 약속했다.
조구는 사마흔, 장사 예(翳)[2]와 함께 성고 수비에 나섰다. 한나라 군대는 여러 차례 성고를 공격하며 도발했지만, 조구는 항우의 명령대로 싸우지 않고 수비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한나라 군대가 사람들을 시켜 초나라 군사들을 모욕하고 조롱하자, 분노를 참지 못한 조구는 군대를 이끌고 사수(汜水)를 건너 반격에 나섰다.
기원전 203년, 초나라 병사들이 강을 반쯤 건넜을 때, 한나라 군대가 이들을 급습하여 크게 무찔렀고 초나라 군대의 물자를 모두 빼앗았다. 이 전투에서 대패한 조구는 사마흔, 장사 예와 함께 사수 강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 출전
참조
[1]
서적
史記の事典
[2]
문서
'장사'는 직책으로, 성씨는 알 수 없다. [[동예 (진나라)|동예]]로 보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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