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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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복성은 한국 곤충학의 선구자로서, 일생 동안 한국의 곤충 및 동물을 연구하고 곤충학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외국 학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토종 동물 6종에 학명을 부여하고, 한국곤충연구소를 설립하여 곤충 연구의 기반을 다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박물연구회 활동을 통해 과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곤충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한국 최초의 곤충기인 《곤충기》를 저술했다. 또한 독도 학술 조사에 참여하고, 과학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했다. 국민훈장 동백장, 서울특별시 교육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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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성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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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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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05년 12월 3일 |
출생지 | 대한제국 평안남도 평양부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사망일 | 1971년 3월 19일 |
호 | 관정(觀庭) |
별칭 | 한국의 파브르, 한국 곤충학의 아버지 |
국적 | 대한제국→대한민국 |
학력 | |
학력 |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이학사 |
경력 | |
경력 | 고려대학교 교수 한국동물학회 회장 한국학술원 회원 한국생물학과학협회 부회장 고려대학교 한국곤충연구소 소장 |
직업 | 교육자, 동물학자, 박물학자 |
2. 생애와 업적
조복성은 평생 동안 우리 땅의 동물을 연구하는 데 힘썼다. 외국 학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토종동물 6종에 학명을 붙였으며, 그중 조흰뱀눈나비, 조복성박쥐(황금박쥐) 등 4종에는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1963년에는 고려대학교에 한국곤충연구소를 설립하여 당시 낙후되었던 우리 자연과학 분야를 발전시키고 미래 자원으로서 곤충의 중요성을 알렸다.
2. 1. 일제강점기 활동
도봉섭, 석주명, 정태현 등과 함께 조선박물연구회를 조직해 서적 발행, 강연, 전람회 개최, 탐사 여행 등을 활발히 펼치며 조선의 사회와 백성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려고 노력했다. 더불어 조선어학회와 함께 토종 곤충에게 순우리말 이름을 찾아주는 일도 했다. 현재 불리는 곤충 이름들의 상당수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곤충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은 그만의 독자적인 노선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것이 1948년에 출간된 한국 최초의 《곤충기(昆蟲記)》다. 이 책은 국내 근대 대중 과학서의 시작을 알렸다.2. 2. 광복 이후 활동
조복성은 일제강점기에 도봉섭, 석주명, 정태현 등과 함께 조선박물연구회를 조직해 서적 발행, 강연, 전람회 개최, 탐사 여행 등을 활발히 펼치며 조선 사회와 백성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조선어학회와 함께 토종곤충에게 순우리말 이름을 찾아주는 일도 했다. 현재 불리는 곤충 이름들의 상당수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곤충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은 그의 독자적인 노선으로 평가된다. 1948년에 출간된 한국 최초의 《곤충기》는 국내 근대 대중 과학서의 시작을 알렸다. 1947년과 1952년에는 한국산악회 이사 자격으로 독도 학술 조사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독도 영유권 강화에 기여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양질의 과학 교과서 집필에 적극 참여했다. '한국 곤충학의 아버지'라 불린다.그는 일평생 우리 땅의 동물을 우리 손으로 연구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외국인 학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토종동물을 찾아내 6종에 학명을 붙였는데, 그중 조흰뱀눈나비, 조복성박쥐(황금박쥐) 등 4종에는 자신의 이름을 달았다. 1963년에는 고려대학교에 한국곤충연구소를 세워 곤충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미래 자원으로서 곤충의 중요성을 알렸다.
3. 주요 연구 분야
조복성은 한국 곤충, 특히 나비목(나비, 나방) 연구에 주력했으며, 1961년 '한국산 하늘소(천우)과 갑충에 관한 분류학적 연구'를 발표했다. 곤충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였고, 1963년 고려대학교에 한국곤충연구소를 설립해 곤충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도록 했다.
3. 1. 곤충 분류학
조복성은 한국 곤충, 특히 나비목(나비, 나방) 연구에 주력했다. 1961년에는 '한국산 하늘소(천우)과 갑충에 관한 분류학적 연구'를 발표했다. 일제강점기에 도봉섭, 석주명, 정태현 등과 함께 조선박물연구회를 조직해 서적 발행, 강연, 전람회 개최, 탐사 여행 등을 활발히 펼치며 조선의 사회와 백성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려고 노력했다. 더불어 조선어학회와 함께 토종곤충에게 순우리말 이름을 찾아주는 일도 했다. 현재 불리는 곤충 이름들의 상당수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곤충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은 그만의 독자적인 노선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것이 1948년에 출간된 한국 최초의 《곤충기(昆蟲記)》이다. 이 책은 국내 근대 대중 과학서의 시작을 알렸다.3. 2. 곤충 생태학
조복성은 일제강점기에 도봉섭, 석주명, 정태현 등과 함께 조선박물연구회를 조직해 서적 발행, 강연, 전람회 개최, 탐사 여행 등을 활발히 펼치며 조선 사회와 백성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려고 노력했다. 더불어 조선어학회와 함께 토종 곤충에게 순우리말 이름을 찾아주는 일도 했다. 현재 불리는 곤충 이름들의 상당수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곤충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은 그만의 독자적인 노선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것이 1948년에 출간된 한국 최초의 《곤충기》다. 이 책은 국내 근대 대중과학서의 시작을 알렸다. 1963년에는 고려대학교에 한국곤충연구소를 세워 곤충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당시까지 낙후되어 있던 우리 자연과학 분야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미래 자원으로써 곤충의 중요성을 알렸다.4. 저서 및 논문
조복성은 1934년 모리 다메조, 도이 히로노부와 함께 《원색 조선의 접류》를 썼고, 《곤충기》(1948), 《일반생물학》(1954), 《동물학개론》(1956) 등을 저술했다. 〈울릉도산 린시목〉(1929), 〈만주국 간도성의 접류〉(1936), 〈몽고의 곤충류〉(1939/1941), 〈한국산 하늘소과 갑충에 관한 분류학적 연구〉(1961)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4. 1. 주요 저서
제목 | 출판사 | 발행일 |
---|---|---|
《원색 조선의 접류》 (모리 다메조, 도이 히로노부 공저) | 대판옥호서점 | 1934년 12월 |
《곤충기》 | 을유문화사 | 1948년 |
《곤충이야기 : 소년과학독본》 | 아협 | 1948년 |
《조선동물그림책》 | 금룡도서주식회사 | 1948년 |
《일반과학 동물계》 | 정음사 | 1949년 7월 |
《일반생물학》 | 장왕사 | 1954년 |
《동물학개론》 | 장왕사 | 1956년 |
《한국곤충도감 : 나비 편》 | 장왕사 | 1956년 |
《동물분류학》 | 장왕사 | 1959년 |
《일반곤충학》 | 홍지사 | 1961년 |
《최신동물도감》 | 문리사 | 1961년 |
《동물의 생활》 | 정음사 | 1962년 |
《곤충의 생활》 | 정음사 | 1964년 |
《한국동식물도감 : 제10권 곤충 편Ⅱ》 | 문교부 | 1969년 |
《한국동식물도감 : 제12권 곤충 편Ⅳ》 | 문교부 | 1969년 |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 (관정 조복성 박사 기념사업회 편자) | 고려대학교 한국곤충문제연구소 | 1975년 |
《조복성 곤충기》 (황의웅 엮음, 윤일병 배연재 해제) | 뜨인돌 | 2011년 |
4. 2. 주요 논문
논문 제목 | 연도 | 학술지 |
---|---|---|
鬱陵島産 鱗翅目 | 1929 | 조선박물학회잡지 |
滿洲國 間島省の蝶類 | 1936 | Zephyrus |
蒙古の昆虫類(其一/二) | 1939/1941 | 조선박물학회잡지 |
韓國産 하늘소(天牛)科 甲蟲에 관한 分類學的硏究 | 1961 | 학술원논문집 |
5. 수상 경력
수상명 | 내용 |
---|---|
국민훈장 동백장 | |
서울특별시교육공로상 | |
학술원상 | 저작상 |
하은생물학상 |
6. 평가 및 영향
일평생 우리 땅의 동물을 우리 손으로 연구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는 외국인 학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토종동물을 찾아내 6종에 학명을 붙였다. 그중 조흰뱀눈나비, 조복성박쥐(황금박쥐) 등 4종에는 자신의 이름을 달았다. 1963년에는 곤충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도록 고려대학교에 한국곤충연구소를 세웠다. 이를 통해 당시까지 낙후되어있던 우리 자연과학 분야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미래자원으로써 곤충의 중요성을 알렸다.
일제강점기에 도봉섭, 석주명, 정태현 등과 함께 조선박물연구회를 조직해 서적 발행, 강연, 전람회 개최, 탐사 여행 등을 활발히 펼치며 조선의 사회와 백성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려고 노력했다. 더불어 조선어학회와 함께 토종곤충에게 순우리말 이름을 찾아주는 일도 했다. 현재 불리는 곤충 이름들의 상당수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곤충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은 그만의 독자적인 노선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것이 1948년에 출간된 한국 최초의 《곤충기(昆蟲記)》다. 이 책은 국내 근대 대중 과학서의 시작을 알렸다. 1947년과 1952년에는 한국산악회 이사 자격으로 독도 학술 조사에 참가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양질의 과학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집필에 적극 참여했다. '한국 곤충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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