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전시체제 하에서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된 여성 강제 동원 단체이다. 1944년 8월 23일 여자정신근로령이 공포되면서 법적 근거를 갖추고 공식 출범했으며,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조선 여성들이 군수 공장 등에 동원되었다. 강제 동원된 조선 여성은 5만에서 7만 명으로 추산되며, 미쓰비시 중공업, 후지코시 제강 등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노동력 착취 외에도 일본군 위안부로 연계되는 등 여성 착취의 한 형태로 인식되며, 해방 이후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제2차 세계 대전기의 징용 - 이춘식 대 신일본제철
    이춘식 대 신일본제철 사건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으로,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피해자 배상 판결이 내려졌으나 일본제철의 불복으로 한일 외교 문제로 비화되며 여러 쟁점을 낳았다.
  • 제2차 세계 대전기의 징용 - 독일군 위안소
    독일군 위안소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점령지에서 운영한 군인을 위한 위안 시설로, 외국인 여성, 강제 노동자, 전쟁 포로 등이 강제 동원되어 성적 착취를 당했으며, 종전 후 독일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에 비판이 있다.
  • 전쟁과 여성 - 위안부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군에 의해 성적 노예로 강제 동원된 여성들을 일컫는 '위안부'는 일본군 공식 문서에도 사용된 용어이나, 국제적으로는 "일본군 성노예"로 불리며, 한국과 중국 출신 여성들이 주로 피해를 입었고, 성병 감소 및 군 기강 유지 목적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성적 학대와 비인간적인 대우가 자행되었으며, 한일 관계의 주요 쟁점으로 남아 국제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 전쟁과 여성 - 미군 위안부
    미군 위안부는 주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한국 여성들을 지칭하며, 미군정 시기부터 기지촌이 형성되어 인권 유린 문제가 심각했고, 2014년에는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 일제강점기의 단체 - 신간회
    신간회는 1927년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하여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로, 민족 대단결을 목표로 노동 운동과 농민 운동을 지원하며 일제에 저항하다가 1931년 해산되었다.
  • 일제강점기의 단체 - 국민총력조선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은 1940년 일제가 중일 전쟁 수행을 위해 조선인을 통제하고 동원할 목적으로 설립한 단체로,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조선인과 조선 거주 일본인을 가입시켜 황민화 사상을 주입하고 징병, 징용, 공출 등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자원을 동원하는 활동을 펼쳤으나, 1945년 해체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친일 단체로서 비판받는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
개요
명칭조선여자근로정신대 (Joseon Yeoja Geunro Jeongsin-dae)
다른 명칭반도여자정신대 (Bando Yeoja Jeongsin-dae)
활동 기간1944년 ~ 1945년
성격강제 노역 조직
대상주로 10대 한국인 여성
배경
시대적 배경태평양 전쟁 말기, 국가총동원법 하의 전시 동원 체제
목적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한 노동력 동원
동원 방식강제 동원, 모집, 학교를 통한 할당 등
활동 내용
주요 활동 장소일본의 군수 공장 등
주요 작업군수품 생산, 탄광 작업 등
근무 환경열악한 환경, 가혹한 노동, 영양 부족, 폭력 등
임금제대로 지급되지 않거나, 강제 저축 등의 형태로 착취
규모
추정 동원 인원수만 명 (정확한 통계 부재)
종전 이후
귀환대부분 귀환했으나, 일부는 일본에 잔류
보상 문제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 미흡
피해자 지원한국 정부와 시민 단체의 지원 활동
논란 및 쟁점
강제 동원 인정 여부일본 정부는 '모집' 형태를 주장하며 강제성을 부인
법적 책임일본 기업 및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문제
명예 회복피해자들의 명예 회복 및 역사적 진실 규명 요구
관련 단체
한국 관련 단체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참고 자료
관련 서적강제동원 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 등

2. 용어의 정의 및 역사적 배경

본래 정신대는 '국가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조직'이라는 의미로, 여러 분야의 전쟁 지원 단체에 붙어 사용되었다.[16] 전쟁이 계속되면서 일제의 전시체제 하에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근로정신대'가 조직되어 전쟁 수행을 위한 노역에 투입되기 시작하였으며 여성 대원으로 이루어진 '여자근로정신대'도 결성되었다.[16]

여자근로정신대가 조선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미 특별한 법적 근거 없이 일제에 의해 실시되고 있던 조선의 여자근로정신대는 1944년 8월 23일에 '''여자정신근로령'''이 공포되면서 합법적인 근거가 마련되고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 법령은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도 적용되었다.[2]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는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배우자가 없는 조선 여성이 소속되었으며, 군수공장 등에 투입되었다. 동원 방법은 관청의 알선, 공개 모집, 자발적인 지원, 학교나 단체를 통한 선전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일제에 의해 근로정신대로서 동원된 일본과 조선의 여성은 20만명이며, 그 중 조선인은 5만에서 7만명이다.[3][4][5][6][7][8]

2. 1. 여자정신근로령

본래 정신대는 '국가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조직'이라는 의미로, 여러 분야의 전쟁 지원 단체에 붙어 사용되었다.[16] 전쟁이 계속되면서 전시체제 하에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근로정신대'가 조직되어 전쟁 수행을 위한 노역에 투입되기 시작하였으며 여성 대원으로 이루어진 '여자근로정신대'도 결성되었다.[16]

1944년 8월 23일에 공포된 '''여자정신근로령'''은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 적용되었으며, 여자근로정신대 강제 동원의 합법적인 근거를 마련했다.[16] 여자정신근로령에 따라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는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배우자가 없는 조선 여성이 소속되었으며, 군수공장 등에 투입되었다.[17][18][19][20][21][22] 동원 방법은 관청의 알선, 공개 모집, 자발적인 지원, 학교나 단체를 통한 선전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17][18][19][20][21][22] 근로정신대로서 동원된 일본과 조선의 여성은 20만명이며, 그 중 조선인은 5만에서 7만명이다.[17][18][19][20][21][22]

3. 강제 동원 실태

1944년 봄, 충청남도전라남도에서 12세에서 14세 사이의 소녀들이 취업 및 진학을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미쓰비시 중공업의 군용 항공기 공장에 동원되어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한 채 강제 노역을 했다.[23][9] 이들 중 일부는 일본인 교사의 소개로 동원되기도 했다.[24][10] 이 공장에서 강제 노동한 조선인 여성은 약 400명으로 파악된다.[25][11]

경상북도 등지에서 모집된 소녀들은 군수업체인 후지코시 제강 도야마 공장에서 강제로 노역했다는 증언이 있으며, 이들 역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경성가정의숙 학생이던 김금진은 1943년에 학교장 황신덕이 다른 학교와 달리 근로정신대에 지원하는 학생이 없다며 한탄하는 것을 듣고 근로정신대에 자원해 들어갔다.[26][12] 김금진은 후지코시 공장에서 총알 만드는 일을 하다가 종전 후 귀국하였다.

이 외에도 도쿄 마사방적주식회사 누마즈 공장, 미쓰비시 나고야항공기제작소 도토쿠 공장, 나가사키 조선소, 사가미 해군공창, 야하타 제철소 등에서 강제 노역이 이루어진 것으로 지적되었다.

3. 1. 동원 지역 및 피해 사례

1944년 봄, 충청남도전라남도에서 12세에서 14세 사이의 소녀들이 취업 및 진학을 미끼로 모집되어 미쓰비시 중공업의 군용 항공기 공장에서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강제 노역을 했다.[23][9] 이들 중 일부는 일본인 교사의 소개로 동원되기도 했다.[24][10] 이 공장에서 강제 노동한 조선인 여성은 약 400명으로 파악된다.[25][11]

경상북도 등지에서 모집된 소녀들은 군수업체인 후지코시 제강 도야마 공장에서 강제로 노역했다는 증언이 있으며, 이들 역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경성가정의숙 학생이던 김금진은 1943년에 학교장 황신덕이 근로정신대에 지원하는 학생이 없다며 한탄하는 것을 듣고 자원하여,[26][12] 후지코시 공장에서 총알 만드는 일을 하다가 종전 후 귀국하였다.

이 외에도 도쿄 마사방적주식회사 누마즈 공장, 미쓰비시 나고야항공기제작소 도토쿠 공장, 나가사키 조선소, 사가미 해군공창, 야하타 제철소 등에서 강제 노역이 이루어진 것으로 지적되었다.

4. 일본군 '위안부'와의 관계

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노동력 동원이라는 점에서 성적 착취가 이루어진 위안부와는 다르지만, 근로정신대로 모집해 놓고 위안부로 끌려가거나 성 착취를 당하는 경우가 잦았다.[27] 따라서 일제에 의한 여성 착취라는 개념에서 한 분류로 인식되어 종전 후 위안부와 혼용하여 정신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다.[27] 성 착취를 당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근로정신대로 강제 노역을 마치고 온 여성들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경력자로 오해받을까 봐 근로정신대원이었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고 살아온 경우도 있었다.[28] "근로 정신대"라는 용어는 종종 전쟁 후 "위안부"라는 용어와 혼용되었다.[13][14] 이러한 오해 때문에 일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은 위안부로 오해받을까 봐 이를 부인하기도 했다.[15]

5. 해방 이후

5. 1. 진상 규명 노력

대한민국 정부와 시민단체는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항소심 제1차 공판에 참여하였다.

5. 2. 피해자 지원 현황

wikitext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항소심 제1차 공판이 열렸다.

5. 3. 일본의 역사 왜곡

일본 정부는 역사 왜곡을 시도하며, 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source

  • {{저널 인용

|제목=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항소심 제1차 공판 열려

|저자=민족문제연구소

|저널=민족사랑

|연도=2008

|작성월=6

|쪽=9쪽}}

참조

[1] 서적 "Fighting for the Enemy: Koreans in Japan's War, 1937-1945 (Korean Studies of the Henry M. Jackson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2013-07-30
[2] 서적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기파랑 2008
[3] 뉴스 "총인구 321만에 강제동원 인구 650만?" http://news.naver.co[...] 연합뉴스 2005-04-26
[4] 뉴스 한국 초대석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일제 청산, 정확한 사실에 기초해야"사회적 통념에 도전하고 상식의 벽을 넘어선 용기있는 학자"일본군 위안부·징용자 수 과장"국민정서에 反한 주장으로 파문 http://weekly.hankoo[...] 한국i닷컴 2005-05-19
[5] 뉴스 이영훈, "국사 교과서 일제피해 과장됐다" "위안부 수십만-강제 연행 650만은 허구", 국사학계 논란 예고 http://www.pressian.[...] Pressian 2005-04-26
[6] 뉴스 이영훈 교수 "교과서 속 '위안부 20만'에 찬성 못해"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5-04-26
[7] 뉴스 이영훈 교수, 수십만 위안부설은 “허수의 덫” http://legacy.www.ha[...] 한겨레 2005-04-26
[8] 뉴스 이영훈 "국사교과서의 일제 수탈상은 신화" https://archive.toda[...] 중앙일보 2006-06-20
[9] 뉴스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들어보셨나요? -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또 기각... 정부와 정치권 관심 절실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7-06-05
[10] 뉴스 입학 69년 만에 나주초등 명예졸업장 -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http://www.newsnaju.[...] 나주뉴스 2007-05-20
[11] 뉴스 '"지금이라도 한국정부가 나서면 가능하다" - [인터뷰]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두 일본인 변호사'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3-09-18
[12] 서적 친일파 99인 2 돌베개 1993-03-01
[13] 뉴스 ‘여러분은 달러를 벌어주는 애국자입니다’ 증언 통해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속속 드러나 http://www.ildaro.co[...] 2008-12-15
[14] 웹사이트 Confusion with 'volunteer corps': Insufficient research at that time led to comfort women and volunteer corps seen as the same http://www.asahi.com[...] The Asahi Shimbun 2014-08-22
[15] 간행물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항소심 제1차 공판 열려 민족문제연구소 2008-06
[16] 서적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기파랑 2008
[17] 뉴스 "총인구 321만에 강제동원 인구 650만?" http://news.naver.co[...] 연합뉴스 2005-04-26
[18] 뉴스 한국 초대석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일제 청산, 정확한 사실에 기초해야"사회적 통념에 도전하고 상식의 벽을 넘어선 용기있는 학자"일본군 위안부·징용자 수 과장"국민정서에 反한 주장으로 파문 http://weekly.hankoo[...] 한국i닷컴 2005-05-19
[19] 뉴스 이영훈, "국사 교과서 일제피해 과장됐다" "위안부 수십만-강제 연행 650만은 허구", 국사학계 논란 예고 http://www.pressian.[...] Pressian 2005-04-26
[20] 뉴스 이영훈 교수 "교과서 속 '위안부 20만'에 찬성 못해"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5-04-26
[21] 뉴스 이영훈 교수, 수십만 위안부설은 “허수의 덫” http://legacy.www.ha[...] 한겨레 2005-04-26
[22] 뉴스 이영훈 "국사교과서의 일제 수탈상은 신화" http://article.joins[...] 중앙일보 2006-06-20
[23] 뉴스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들어보셨나요? -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또 기각... 정부와 정치권 관심 절실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8-07-12
[24] 뉴스 입학 69년 만에 나주초등 명예졸업장 -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http://www.newsnaju.[...] 나주뉴스 2008-07-12
[25] 뉴스 '"지금이라도 한국정부가 나서면 가능하다" - [인터뷰]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두 일본인 변호사'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8-07-12
[26] 서적 친일파 99인 2 돌베개 1993-03-01
[27] 뉴스 ‘여러분은 달러를 벌어주는 애국자입니다’ 증언 통해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속속 드러나 http://www.ildaro.co[...] 2008-12-15
[28] 저널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항소심 제1차 공판 열려 2008-0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