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록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진의록은 삼국 시대에 여포 휘하에서 활동하다가 조조에게 투항한 인물이다. 여포의 사자로 원술에게 갔을 때 한나라 황실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고, 조조에게 항복한 후에는 현의 현감으로 임명되었다. 유비의 장비가 조조를 배신하고 유비를 따를 것을 권유했을 때 따랐으나, 곧 후회하여 장비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아들 진랑은 조조의 양자가 되어 위나라의 장군이 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중국 삼국 시대 사람 - 위유
위유는 후한 말 유우의 동조연으로, 유우가 공손찬을 공격하려 할 때 만류했으며 이민족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정책을 건의했으나 193년에 병사한 인물이다. - 중국 삼국 시대 사람 - 위자 (삼국지)
위자는 후한 말 장막의 부장으로, 조조를 알아보고 동탁 토벌을 지원했으며, 서영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 문화에 관한 - 르네상스 미술
르네상스 미술은 14세기부터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미술 양식의 변화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부흥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적 세계관과 사실적 표현 기법이 발달했으며, 회화, 조각, 건축 분야에서 다양한 발전을 이루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거장들이 활약하며 유럽 각 지역에서 특색을 반영하여 발전했다. - 문화에 관한 -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는 나관중이 유비를 중심으로 184년부터 280년까지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저술한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역사 소설로, 격동적인 시대의 사건과 인물들의 활약상을 다루며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미디어로 각색되어 왔다. - 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진의록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이름 | 진의록 |
한자 표기 | 秦宜祿 |
로마자 표기 | Qin Yilu |
출생지 | 토거토현(내몽골 자치구) |
사망일 | 199년 |
사망지 | 패현(장쑤성) |
배우자 | 두씨 부인 |
자녀 | 진랑 |
직업 | 군사 |
소속 | 여포 |
2. 생애
병주 운중군(雲中郡) 출신으로[7], 같은 병주 출신인 여포(呂布)를 섬겼다.[7] 192년 동탁(董卓) 암살 당시 여포의 지시를 받아 동탁을 습격하는 데 가담하기도 했다.[1]
여포의 부하로서 활동하던 중, 198년 하비 전투에서 여포가 조조(曹操)와 유비(劉備) 연합군에게 포위되자, 여포의 명을 받아 원술(袁術) 등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사자로 파견되었다.[7][6] 원술은 진의록에게 한(漢) 왕실의 여성을 아내로 주선해주었다.[7] 이때 그의 본래 아내였던 두씨(杜氏)와 아들 진랑(秦朗)은 하비(下邳)에 남아 있었는데,[7][1][2] 하비가 함락된 후 두씨는 조조의 첩이 되었다.[8][1][2] 이는 본래 두씨를 아내로 맞이하길 원했던 관우(關羽)의 요청을 조조가 거절하고 차지한 것이었다.[8]
여포가 멸망한 후 진의록은 조조에게 귀순하여 즐장(銍長) 또는 지현(銍縣) 현령으로 임명되었다.[8][3] 건안 4년(199년), 유비가 소패(小沛)에서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 유비 휘하의 장비는 진의록을 찾아와 아내를 빼앗긴 치욕을 상기시키며 함께할 것을 권유했다.[8][3] 진의록은 처음에 이를 받아들여 유비군을 따라나섰으나, 곧 후회하고 돌아가려 하다가 분노한 장비에게 살해당했다.[8][3]
그의 아들 진랑은 조조의 양자가 되어 길러졌으며, 훗날 위나라의 장군이 되었다.[8][4]
2. 1. 여포 휘하에서의 활동
병주 운중군(雲中郡) 출신으로, 같은 병주 출신인 여포(呂布)를 섬겼다. 192년 동탁(董卓) 암살 당시, 장안에서 여포의 명으로 동탁을 매복 공격한 경비병 중 한 명이었다. 이후 여포가 장안에서 도망쳐 중원을 떠돌다 유비(劉備)에게서 서주를 빼앗는 과정에도 함께한 것으로 보인다.198년(건안 3년), 조조(曹操)와 유비 연합군이 하비(下邳)를 포위하자, 여포의 명령으로 원술(袁術)과 장양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사자로 파견되었다.[6][7] 원술은 진의록에게 한(漢) 왕실의 여성을 아내로 주선해주었다.[7] 이때 그의 본래 아내였던 두씨(杜氏)와 아들 진랑(秦朗)은 하비에 남아 있었다.[7][1][2]
2. 2. 조조 휘하에서의 짧은 생애
여포가 198년 하비 전투에서 조조와 유비 연합군에게 패배한 후, 진의록의 전처 두씨는 조조의 수중에 들어갔다. 앞서 관우는 조조에게 여포 토벌 후 두씨를 아내로 맞이하게 해달라고 여러 차례 청했으나, 조조는 두씨의 미모를 보고 약속을 어기고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7][8][1][2] 이 일로 관우는 조조에게 불쾌감을 느꼈다.[8]당시 원술 휘하에 사자로 가 있던 진의록은 하비가 함락되자 아내를 잃게 되었다. 원술은 그를 위해 한나라 황실의 여성과 혼인시켜 주었다.[7] 이후 진의록은 원술에게서 벗어나 조조에게 항복하였고, 조조는 그를 패군 질현(銍縣)의 현장(縣長)으로 임명했다.[8][3]
건안 4년(199년), 유비가 소패에서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때 유비 휘하 장수 장비는 진의록을 찾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8][3]
'''"다른 사람이 당신의 아내를 빼앗아 갔는데, 당신은 도리어 그 밑에서 현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어찌 그리 어리석은가? 우리를 따라가지 않겠는가?"'''[3]
진의록은 장비의 말에 설득되어 유비군을 따라나섰다. 그러나 몇 리(里) 가지 않아 곧 후회하며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분노한 장비는 진의록을 살해했다.[8][3]
진의록의 아들 진랑은 조조의 양자가 되어 길러졌으며, 훗날 위나라의 장군이 되었다.[8][4]
2. 3. 두씨와 관우, 그리고 조조
198년 하비 전투 당시, 여포는 진의록을 원술 등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사자로 보냈다.[6] 이때 진의록의 아내 두씨와 아들 진랑은 하비(下邳)에 남아 있었다.[7][1][2]당시 조조 휘하에 있던 유비의 장수 관우는 두씨에게 관심을 가졌다. 관우는 조조에게 여포를 토벌하고 나면 두씨를 자신의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여러 차례 간청했다.[8][1][2] 조조는 처음에는 이를 허락했으나,[8] 하비성이 함락된 후 직접 두씨를 보고는 그녀의 미모에 반해 마음을 바꾸었다. 조조는 관우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두씨를 자신의 첩으로 삼았으며, 이 일로 관우는 조조에게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다고 전해진다.[8][1][2] 조조는 두씨의 아들인 진랑 또한 거두어 자신의 양자로 삼았다.[1][2][4]
한편, 여포가 멸망한 후 진의록은 조조에게 귀순하여 즐장(銍長) 또는 지현(銍縣) 현령으로 임명되었다.[8][3] 건안 4년(199년), 유비가 소패(小沛)에서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 장비는 진의록을 찾아가 "남이 당신의 아내를 빼앗았는데, 당신은 도리어 그 밑에서 현령 노릇을 하고 있으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무지하게 행동할 수 있다니! 우리를 따르고 싶은가?"[3] (혹은 "아내를 빼앗은 자를 섬기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나를 따라와라"[8]) 라고 말하며 유비를 따를 것을 강권했다. 진의록은 장비의 말에 설득되어 유비 군을 따라나섰으나, 몇 리(里)를 가지 못해 후회하고 돌아가려 했다.[3] 이에 분노한 장비는 진의록을 그 자리에서 살해했다.[8][3]
3. 진의록의 친족 관계
진의록에게는 본래 두씨라는 아내가 있었으며, 하비에 머물고 있었다. 건안 3년(198년), 여포의 명으로 원술에게 사자로 갔다가, 원술에 의해 멸망한 진민왕 유총(명제의 후손)의 딸과 새로 결혼하게 되었다.[6] 여포가 조조에게 멸망한 후, 하비에 남아 있던 아내 두씨는 조조의 측실이 되었다.
아들 진랑은 생모인 두씨가 조조의 측실이 되면서 조조의 양자가 되었고, 훗날 위나라에서 권력을 가진 신하가 되었다.
참조
[1]
서적
Xiandi Zhuan annotation in Sanguozhi vol. 3
[2]
서적
Huayang Guo Zhi vol. 6
[3]
서적
Xiandi Zhuan annotation in Sanguozhi vol. 3
[4]
서적
Xiandi Zhuan annotation in Sanguozhi vol. 3
[5]
서적
九州春秋
後漢書
[6]
문서
[7]
서적
헌제전(獻帝傳)
[8]
서적
촉기(蜀記)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