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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앤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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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짐 앤더튼은 1938년 오클랜드에서 태어나 2018년 사망한 뉴질랜드의 정치인이다. 그는 교사, 아동 복지 담당관, 사업가로 활동하다 1963년 노동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입문하여, 1984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앤더튼은 로저노믹스에 반대하며 노동당을 탈당, 신노동당을 창당했으며, 이후 연합당을 결성하여 부총리를 역임했다. 2002년 진보당을 창당하여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2010년 크라이스트처치 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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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앤더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짐 앤더튼
로마자 표기Jim Aendeoteon
2010년의 앤더튼
J Anderton
짐 앤더튼 서명
출생명제임스 패트릭 번
출생일1938년 1월 21일
출생지오클랜드, 뉴질랜드
사망일2018년 1월 7일
사망지크라이스트처치, 뉴질랜드
배우자캐롤 앤더튼
직업사업가, 정치인
정당
소속 정당뉴질랜드 노동당(1963–1989, 2011–2018)
뉴레이버(1989–1991)
얼라이언스(1991–2002)
진보(2002–2011)
의회 경력
선거구위그램
의회뉴질랜드
임기 시작1984년 7월 14일
임기 종료2011년 11월 26일
이전 의원존 커크
다음 의원메건 우즈
주요 직책
직책제15대 부총리
임기 시작1999년 12월 10일
임기 종료2002년 8월 15일
총리헬렌 클라크
이전 부총리와이어트 크리치
다음 부총리마이클 컬린
직책 2제32대 농업부 장관
임기 시작 22005년 10월 19일
임기 종료 22008년 11월 19일
총리 2헬렌 클라크
이전 장관 2짐 서튼
다음 장관 2데이비드 카터
직책 3진보당 대표
부대표매트 롭슨
이전 대표직책 신설
다음 대표직책 폐지
임기 시작 32002년 7월 27일
임기 종료 32012년 3월 15일
직책 4제1대 경제 개발부 장관
임기 시작 41999년 12월 10일
임기 종료 42005년 10월 19일
총리 4헬렌 클라크
다음 장관 4트레버 맬러드
직책 5제1대 얼라이언스 대표
부대표 2산드라 리
이전 대표 2산드라 리
다음 대표 2레일라 하레
임기 시작 51995년 5월 7일
임기 종료 52002년 4월 20일
부대표 3산드라 리
이전 대표 3직책 신설
다음 대표 3산드라 리
임기 시작 61991년 12월 1일
임기 종료 61994년 11월 10일
직책 6뉴레이버당 대표
이전 대표 4직책 신설
다음 대표 4직책 폐지
임기 시작 71989년 4월 1일
임기 종료 72000년 10월 13일
직책 7제25대 노동당 대표
임기 시작 81979년 5월 15일
임기 종료 81984년 9월 8일
부대표 5스튜 매커플리
이전 대표 5아서 포크너
다음 대표 5마가렛 윌슨
웹사이트

2. 성장 과정

1938년 1월 21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1] 오클랜드에서 모든 교육을 받았으며, 세든 기념 기술 대학과 오클랜드 교사 양성 대학을 졸업했다.[3] 세인트 피터스 칼리지, 오클랜드에서 2년 동안 교사로 근무한 후 왕가누이에서 아동 복지 담당관으로 일했다.[3]

1960년, 로마 가톨릭 교회 소년회에 참여했으며, 오클랜드 로마 가톨릭 교회 교구 교구장의 비서직을 맡았다.[4] 이후 사업계로 전환하여 타일 공장의 수출 매니저로 근무하다가 1971년 그의 형제 브라이언과 함께 제조 회사인 앤더튼 홀딩스를 설립했다.[3]

3. 정치 입문

1963년 노동당에 입당했다.[3] 1965년 오클랜드 지역 내 마누카우 시 시장으로 당선되며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3] 1971년 오클랜드 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5] 1974년 오클랜드 시장 선거에 재도전했으나 도브마이어 로빈슨에게 7,000표 차이로 패배했다.[6][7][8] 1977년 오클랜드 시장에 다시 도전했지만, 현직 시장에게 다시 패배했다. 그러나 로빈슨과의 득표 차이를 1,500표 가까이 줄이는 데 성공했다.[6][10][11] 1977년 초, 보궐 선거를 통해 오클랜드 지역 당국에 선출되었으며, 같은 해 1977년 지방 선거에서 시장 선거에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원직을 유지했다.[12][6] 1979년 뉴질랜드 노동당 당의장으로 선출되었다.[3]

4. 국회의원 활동

1963년 뉴질랜드 노동당에 입당한 짐 앤더튼은 1984년 뉴질랜드 의회 총선거에 크라이스트처치 시데넘 지구(현재 위그램)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뉴질랜드 제4차 노동당 정부에서 앤더튼은 로저노믹스에 반대하며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었다. 1989년 뉴질랜드 은행 매각안에 대한 당의 지시를 어겨 의원 총회에서 자격 정지를 당했고, 같은 해 4월 "내가 노동당을 떠난 것이 아니라 노동당이 나를 떠났다"며 탈당했다.[20]

이후 뉴 레이버당을 창당하고 1990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시드넘 지역구 의석을 유지했다. 그는 기존 정당을 탈당하여 다른 정당을 창당하고 재선된 뉴질랜드 최초의 국회의원이었다. 1991년에는 연합당을 창당하여 당 대표를 맡았다.

1999년 뉴질랜드 총선 이후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부총리 겸 경제 개발부 장관을 역임하며 키위뱅크 설립 등을 추진했다. 2002년 연합당을 탈당하고 진보당을 창당했다. 2008년 뉴질랜드 총선까지 위그램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진보당은 2008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의석 확보에 실패했지만 앤더튼은 야당에서 노동당과 협력했다.

앤더튼의 정당별 의원 활동 기간은 다음과 같다.

정당기간선거구비고
뉴질랜드 노동당1984년 - 1989년시드넘
뉴 레이버당 (뉴질랜드)1989년 - 1991년시드넘
연합 (뉴질랜드 정당)1991년 - 2002년시드넘(1991-1996), 위그램(1996-2002)
짐 앤더튼의 진보당2002년 - 2011년위그램


4. 1. 노동당 의원 시절 (1984-1989)

1984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앤더턴은 크라이스트처치의 시드넘 선거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18] 이 선거로 제4차 노동당 정부가 구성되었다.[18] 헬렌 클라크를 포함한 당내 좌파 일부는 앤더턴에게 당 대표직을 유지하도록 설득하려 했지만, 그는 1984년 회의에서 당 대표는 국회의원을 겸임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재출마를 거부했다. 앤더턴은 노동당의 산업 관계에 관한 간부회 소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데이비드 랑게 총리는 1986년 8월 3일 앤더턴을 직무에서 해임하고 프랜 와일드로 교체했는데, 표면적인 이유는 회의 참석 기록이 좋지 않아서였지만, 앤더턴이 노동 시장 구조 조정을 비판하는 능력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더 컸을 것이다. 사실 두 번째로 높은 출석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앤더턴은 간부회 수준의 사과를 받았다.

앤더턴은 곧 당 지도부와 갈등을 겪었고, 재무부 장관 로저 더글러스를 가장 비판하는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더글러스와 그의 동맹인 리처드 프레블과 데이비드 케이길은 "로저노믹스"로 알려진 국가 경제 시스템의 급진적인 개혁을 시행하기로 결심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통화주의적 접근 방식, 관세보조금 철폐, 그리고 국영 자산의 민영화를 포함했는데, 앤더턴은 이 모든 것을 당의 좌파적 뿌리에 대한 배신이자 당의 선거 공약 포기로 간주했다.

더글러스와 그의 개혁에 대한 앤더턴의 심한 비판은 앤더턴의 좌절감을 공유하는 일부를 포함하여 당내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샀다. 그의 공개적인 발언은 당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여겨졌다. 1988년 7월 27일, 짐 서튼이 "폴란드 조선소에 대한 소련 처방전처럼 보이는" 정책 문서를 발표하자, 노동당 간부회에서 많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노동당의 신자유주의적 방향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그의 입장은 랑게 내각에서 각료가 되는 전망을 회피하게 했다.[3] 더니딘에서 열린 1988년 노동당 회의에서 앤더턴은 다시 당 대표직에 출마할 의사를 발표했다. 매우 공개적이고 격렬하게 경쟁한 끝에 그는 부대표인 루스 다이슨에게 473표 대 575표로 패배했다. 분열된 회의의 모습은 명확한 좌우 정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좌파가 앤더턴을 지지하고 우파가 다이슨을 중심으로 뭉치는 등 노동당의 이미지에 해를 끼쳤다.[19]

4. 2. 신노동당 창당과 연합당 활동 (1989-2002)

1989년, 앤더튼은 당시 재정부 장관인 로저 더글라스의 경제 정책, 즉 '로저노믹스'에 반대하며, 당 지도부와의 갈등 끝에 노동당을 탈당하고 신노동당(NewLabour Party)을 창당했다.[20] 그는 "나는 노동당을 떠난 것이 아니라 노동당이 나를 떠났다"고 말했다.[20] 1990년 총선에서 그는 사이던햄 지역구에서 3선에 성공했다.

1991년, 신노동당, 민주당, 마나 모투하케, 녹색당을 통합하여 연합당(Alliance)을 창당하고 당수로 선임되었다.[3] 1993년 총선에서 연합당은 2석을 확보했다. 1996년 총선에서 앤더튼은 위그램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연합당은 총 13석을 차지했다.

1999년 총선 이후, 앤더튼은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수립하고 부총리로 임명되었다.[20] 그는 또한 경제 개발부 장관 직책을 맡아 일자리 창출과 지역 개발 계획을 강조했다. 뉴질랜드 연금 기금을 공동으로 작성했으며, 최초의 와카 점핑 방지 법안인 2001년 선거 무결성 법안을 추진했다. 앤더튼은 동료 연합당 국회의원 라일라 해레와 함께 12주 유급 출산 휴가 제도를 만들고 실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20]

키위뱅크(Kiwibank) 설립은 앤더튼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27]

4. 3. 진보당 창당과 활동 (2002-2011)

2002년, 노동당과의 연립 정부 구성에 대한 의견 차이와 당 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앤더튼은 연합당을 탈당하고 진보당을 창당했다.[20] 1989년 5월에는 로저노믹스에 비판적인 전통적인 좌파 노동당 정책을 내걸고 "신노동당"을 결성하기도 했다. 1991년, 신노동당은 다른 정치 그룹과 함께 "연합당"을 결성했고, 앤더튼은 연합당 대표가 되었다.

2002년 총선에서 앤더튼은 위그램 지역구에서 당선되었으나, 진보당은 2석을 얻는 데 그쳤다. 헬렌 클라크가 이끄는 노동당 연립 정권에서 그는 농림부와 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20]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의견 차이로 앤더튼과 다른 의원들은 연합당을 탈당하고 "혁신당"(진보당)을 설립했다. 2002년 총선에서 앤더튼은 의석을 유지했지만, 혁신당의 득표율은 급락했다. 연립 정권에는 계속 참여했지만, 부총리직에서는 물러났다.

2005년 총선에서 앤더튼은 위그램 지역구에서 다시 당선되었으나, 진보당은 1석만을 얻었다. 그는 농업부 장관, 생물 안전부 장관, 어업부 장관, 임업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2005년 총선에서도 의석을 유지했지만, 득표율은 저조했고 부당수도 낙선했다.

2008년 총선에서 앤더튼은 위그램 지역구에서 당선되었으나, 진보당은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더튼은 야당에서 노동당과의 협력을 유지할 것을 발표했다.[28] 2008년 총선에서 앤더튼은 의석을 유지했지만, 혁신당은 0.91%의 득표율로 참패했다.

1990년 총선에서 신노동당은 앤더튼 외 후보는 당선되지 못했고, 총 득표율은 5.15%에 그쳤다. 1996년 총선에서 연합당은 13석을 획득했다. 1999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정권을 잡자, 앤더튼은 연립 정부에 참여하여 부총리 겸 경제 개발 담당 장관을 역임했다.

5. 크라이스트처치 시장 선거 출마 및 정계 은퇴

앤더튼은 2010년 5월에 그해 10월 크라이스트처치 시장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30] 처음에는 시장에 당선되더라도, 비싼 보궐선거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국회의원직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31] 그러나 2010년 캔터베리 지진 이후, 시장으로 당선되면 도시 재건에 전념하기 위해 위그램 선거구의 국회의원직에서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32] 지진 발생 전까지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렸으나,[33][34] 선거에서 패배하여 40.6%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현직 시장인 밥 파커는 53.7%를 얻었다.

2011년 11월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2012년 3월 15일에는 그가 이끌던 혁신당도 해산했다.

6. 사망

짐 앤더튼은 2018년 1월 6일 크라이스트처치의 캐시미어 뷰 병원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46] 헬렌 클라크는 앤더튼의 사망에 대해 자신의 트위터에 추모 글을 올렸다.[47]

7. 유산

짐 앤더튼은 뉴질랜드 정치에서 사회 정의와 공공 서비스 확대를 위해 헌신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키위뱅크 설립은 그의 주요 업적 중 하나로 기억된다. 그는 로저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싸운 정치인으로, 뉴질랜드 좌파 정치의 중요한 인물로 여겨진다.[3] 그는 소탈한 성격과 서민적인 행보로 많은 뉴질랜드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소수자 및 고령층의 지지가 두터웠다. 공적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 이동과 오스트레일리아 출장은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등 일반 생활자의 시점을 중시했다.

2017년 여왕 생일 훈장에서 뉴질랜드 공로 훈장 동반자로 임명되었다.[39] 2017년 9월 3일에는 뉴질랜드 총독 (데임 패시 레디), 크라이스트처치 시장 (리앤 달지엘), 그리고 헬렌 클라크 전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특별 서임식이 열렸다.[38]

앤더튼은 2018년 1월 7일 크라이스트처치에서 7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40][41][42] 그의 사망 이후 뉴질랜드 의회 정당 대표들이 조의를 표했다.[3][45]

참조

[1] 서적 Who's Who in Asian and Australasian Politics https://books.google[...] Bowker-Saur 2008-09-11
[2] 뉴스 The secret life of Matthew Byrne http://www.liverpool[...] 2010-11-05
[3] 뉴스 The legacy of Jim Anderton: Former Deputy Prime Minister hailed 'one of the most highly-principled and idealistic' politicians https://www.stuff.co[...] 2018-01-07
[4] 웹사이트 Anderton, Jim - New Zealand Parliament https://www.parliame[...] 2021-11-01
[5] 뉴스 Declaration of Result of Election 1971-10-22
[6] 뉴스 The final push http://www.stuff.co.[...] 2010-07-23
[7] 뉴스 Declaration of Result of Election 1974-10-22
[8] 뉴스 Declaration of Result of Election 1974-10-23
[9] 서적 My Life Penguin
[10] 뉴스 Mayor back by 5633 1977-10-24
[11] 뉴스 Declaration of Result of Election 1977-10-24
[12] 뉴스 Anderton has easy win in ARA poll 1977-02-07
[13] 뉴스 Onehunga Asks: Which Way Will Mr Anderton Jump? 1980-04-30
[14] 뉴스 Anderton says 'no bid' on Onehunga 1980-05-02
[15] 뉴스 Dr Bassett Pays Penalty but Intends to Continue 'Fight' 1982-02-05
[16] 뉴스 Electorate picks Aucklander 1983-08-08
[17] 뉴스 Angry M.P. blasts Sydenham's choice 1983-08-08
[18] 서적 New Zealand Parliamentary Record, 1840–1984 V.R. Ward, Govt. Printer
[19] 뉴스 Government sweeps clean at conference 1988-09-04
[20] 뉴스 Jim Anderton remembered as champion of MMP, Kiwibank, paid parental leave http://www.nzherald.[...] 2018-01-08
[21] 서적 Honoured by the Queen – New Zealand New Zealand Who's Who Aotearoa
[22] 서적 A View from the Top Viking
[23] 뉴스 26 years on, our star Jim is shining https://www.nzherald[...] 2000-08-25
[24] 웹사이트 Anderton, Jim – New Zealand Parliament https://www.parliame[...]
[25] 웹사이트 Electoral (Integrity) Amendment Bill — Second Reading - New Zealand Parliament https://www.parliame[...]
[26] 웹사이트 Alliance Collapse Threatens Legality of Government http://www.scoop.co.[...] scoop.co.nz 2002-03-25
[27] 뉴스 Anderton's persistence led to Kiwibank http://www.stuff.co.[...] 2011-10-05
[28] 웹사이트 Election results 2008. http://www.electionr[...]
[29] 뉴스 Anderton to stay with Labour, even in opposition http://www.nzherald.[...] 2008-11-19
[30] 뉴스 Anderton to run for mayor http://www.stuff.co.[...] 2010-05-06
[31] 뉴스 Jim Anderton won't give up seat if elected mayor http://www.stuff.co.[...] NZPA 2010-05-10
[32] 뉴스 Anderton presses on with mayoral bid http://www.nzherald.[...] 2010-09-12
[33] 웹사이트 Anderton leads Christchurch mayoral poll https://www.stuff.co[...] 2010-06-14
[34] 웹사이트 Post-quake Christchurch poll shock https://www.stuff.co[...] 2010-09-29
[35] 웹사이트 Dr Megan Woods http://www.meganwood[...]
[36] 웹사이트 Official Count Results – Wigram http://archive.elect[...] 2017-09-19
[37] 서적 Yes, Minister Allen and Unwin
[38] 뉴스 Ailing Jim Anderton recognised at special investiture ceremony http://www.star.kiwi[...] 2017-09-10
[39] 웹사이트 Queen's Birthday honours list 2017 https://www.dpmc.gov[...] Department of the Prime Minister and Cabinet 2017-06-05
[40] 뉴스 Honourable James Anderton death notice http://deaths.dompos[...] 2018-01-08
[41] 뉴스 Former deputy PM Jim Anderton dies http://www.nzherald.[...] The New Zealand Herald 2018-01-08
[42] 웹사이트 Former Deputy Prime Minister Jim Anderton has died https://www.radionz.[...] RNZ 2018-01-08
[43] 뉴스 New Zealand statesman Jim Anderton farewelled by family and friends https://www.stuff.co[...] 2018-01-11
[44] 뉴스 Family say final goodbyes to Jim Anderton at Waiheke burial http://www.nzherald.[...] 2018-01-13
[45] 뉴스 Tributes for Jim Anderton: 'A man of integrity' https://www.rnz.co.n[...] 2021-06-10
[46] 뉴스 Jim Anderton dies aged 79 http://www.newshub.c[...] 2018-01-07
[47] Twitter Deeply saddened https://twitter.com/[...] 2018-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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