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자스시티 뮤니시펄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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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캔자스시티 뮤니시펄 스타디움은 1923년 뮬레바흐 필드로 개장하여 1976년 철거될 때까지 캔자스시티에서 다양한 스포츠 경기를 개최한 다목적 경기장이었다. 이 경기장은 캔자스시티 블루스, 캔자스시티 모나크스,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캔자스시티 치프스 등 여러 야구 및 미식축구 팀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었다. 1960년 메이저 리그 올스타전, 1964년 비틀즈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도 열렸으며, NFL 역사상 가장 긴 경기로 기록된 1971년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마이애미 돌핀스의 플레이오프 경기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시립 정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과거 경기장 위치를 알리는 기념비와 흑인 야구 박물관 등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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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자스시티 뮤니시펄 스타디움 - [경기장/극장]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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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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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 해당 없음 |
위치 | 미주리주캔자스시티 브루클린 애비뉴 2123 |
기공 | 1923년 |
개장 | 1923년 7월 3일 1955년 4월 12일 |
폐장 | 1972년 10월 4일 |
철거 | 1976년 |
소유주 | 캔자스시티 시 |
운영 | 캔자스시티 시 |
표면 | 천연 잔디 |
건설 비용 | 40만 달러 |
건축가 | 오스본 엔지니어링 |
이전 명칭 | 뮐레바흐 필드 (1923년–1937년) 루퍼트 스타디움 (1937년–1943년) 블루스 스타디움 (1943년–1954년) |
사용 팀 | |
야구 | 캔자스시티 블루스 (AA) (1923년–1954년) 캔자스시티 모나크스 (NNL / NAL) (1923년–1931년, 1937년–1955년)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 (MLB) (1955년–1967년) 캔자스시티 로열스 (MLB) (1969년–1972년) |
미식축구 | 캔자스시티 블루스 / 카우보이스 (NFL) (1924년–1926년) 캔자스시티 치프스 (AFL / NFL) (1963년–1971년) |
축구 | 캔자스시티 스퍼스 (NASL) (1968년–1969년) |
수용 인원 | |
1923–1955년 | 17,476명 |
1955–1961년 | 30,296명 |
1961–1969년 | 34,165명 |
1969–1971년 | 34,164명 |
1971–1972년 | 35,561명 |
주요 건설사 | |
건설사 | 델 E. 웹 건설 회사, 1955년 |
구장 크기 | |
1923년 | 좌익 중앙 우익 |
1972년 | 좌익 좌중간 중앙 우중간 우익 |
지도 | |
이전/다음 |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 개최 경기장 | 이전명: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 현재명: 뮤니서펄 스타디움 다음명: 양키 스타디움 종류: 년 이전: 1959 현재: 1960 다음: 1960 |
2. 초기 역사 (1923-1954)
스타디움은 1923년 뮬레바흐 필드로 개장했다. 이 이름은 뮬레바흐 맥주와 뮬레바흐 호텔을 포함하여 블루스와 여러 캔자스시티 사업체를 소유한 조지 E. 뮬레바흐(George E. Muehlebach|조지 E. 뮬레바흐영어)를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이 구장은 마이너 리그 블루스를 위해 400000USD를 들여 지어졌으며, 도심 인근의 18번가와 바인 근처에 위치했다. 이 경기장은 캔자스시티 블루스 야구팀과 니그로 리그 캔자스시티 모나크스의 홈구장이었다.[1][2]
경기장은 1층으로 된, 대부분 덮여 있는 관람석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우익 파울 폴에서 좌익 라인의 대부분을 따라 확장되었다. 1937년 뉴욕 양키스가 블루스를 톱 팜 팀으로 사들이자, 경기장은 양키스 구단주인 야콥 루퍼트 대령을 기리기 위해 루퍼트 스타디움으로 개명되었다.[4] 루퍼트가 2년 후 사망하자, 1943년 경기장은 블루스 스타디움으로 다시 개명되었다.
2. 1. 뮬레바흐 필드 (1923)
'''뮬레바흐 필드'''는 1923년에 개장한 경기장이다. 이 이름은 뮬레바흐 맥주와 뮬레바흐 호텔을 포함하여 블루스와 여러 캔자스시티 사업체를 소유한 조지 E. 뮬레바흐(George E. Muehlebach|조지 E. 뮬레바흐영어)를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이 구장은 마이너 리그 블루스를 위해 400000USD를 들여 지어졌다. 블루스의 이전 홈구장인 어소시에이션 파크를 대체하는 역할을 했다.[1]2. 2. 캔자스시티 모나크스와 니그로 리그 (1923-1955)
이 경기장은 니그로 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운영된 팀인 캔자스시티 모나크스의 홈구장이었다. 모나크스는 통합 이전 11번의 리그 챔피언십을 차지했고, 4번의 흑인 월드 시리즈에 출전했다. 1924년 첫 번째 시리즈에서 우승했고, 1925년에 두 번째 시리즈에서 패했다. 이후 1942년 흑인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고, 1946년 시리즈에서 패했다.[1][2] 최초의 흑인 월드 시리즈 경기는 1924년 이 경기장에서 열렸다. 1990년에 설립된 니그로 리그 야구 박물관은 이 경기장 부지에서 몇 블록 떨어져 있다.[3]
뮬바흐 필드에서 모나크스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다음과 같다.
- 벅 오닐: 모나크스에서 10시즌을 뛰었다.
- 명예의 전당 헌액자: 불렛 로건, J. L. 윌킨슨, 호세 멘데스, 새첼 페이지, 힐튼 스미스, 윌라드 브라운
- 모나크스에서 한 시즌 이상을 보낸 다른 명예의 전당 헌액자: 크리스토발 토리엔테, 앤디 쿠퍼, 터키 스턴스, 쿨 파파 벨, 빌 포스터, 윌리 웰스, 어니 뱅크스, 재키 로빈슨
2. 3. 캔자스시티 블루스 (마이너 리그)
1888년부터 1954년까지 존속했던 캔자스시티 블루스는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의 창립 멤버 8개 팀 중 하나였다. 뮤니시펄 스타디움의 초기 입주 팀이었던 이 프랜차이즈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뉴욕 양키스의 최고 수준 팜 팀이었다. 캔자스시티 블루스는 1923년부터 1945년까지는 AA 팀, 1946년부터 1954년까지는 AAA 팀이었다.[7]뉴욕 양키스의 최고 팜 팀 중 하나였던 블루스는 많은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1939년의 블루스는 역대 최고의 마이너 리그 팀 중 하나로 불리며, 명예의 전당 선수이자 미래의 양키스 아나운서였던 필 리주토와 46개의 홈런을 기록한 빈스 디마지오가 이끌었다.[9][10]
미키 맨틀은 1951년 블루스에서 .361의 타율과 11개의 홈런을 기록했다.[11] 와이티 포드, 랄프 호크, 알 로젠, 빌리 마틴, 빌 버든, 조니 마이즈, 엘스턴 하워드 등도 양키스 팜 팀 시절 블루스를 거쳐 간 선수들이다. 약 580명의 블루스 선수들이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다.[12]
2. 4. 루퍼트 스타디움, 블루스 스타디움 (1937-1954)
뉴욕 양키스가 1937년 캔자스시티 블루스를 톱 팜 팀으로 인수하면서, 경기장 이름을 양키스 구단주인 야콥 루퍼트 대령을 기리기 위해 '''루퍼트 스타디움'''으로 개명했다.[4] 1939년 루퍼트가 사망하자, 1943년에 경기장 이름을 '''블루스 스타디움'''으로 다시 변경했다.3. 메이저 리그 시대로의 재건 (1955)
아놀드 존슨은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를 캔자스시티로 이전하기 위해 경기장을 매입하고 시에 매각한 후 다시 임대하는 방식으로 메이저 리그 야구팀을 유치했다.[5]
경기장은 상단 데크를 지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나, 오랜 시간 동안 중서부의 혹독한 겨울 날씨로 인해 기초가 약해져 있었다. 결국 경기장은 완전히 철거 후 재건축되었으며, 3교대 공사를 통해 90일 만에 완공되어 1955년 시즌 개막에 맞출 수 있었다. 재건축 자금은 채권 발행으로 조달되었으며, 초기에는 38,000석 규모로 계획되었으나 비용 문제로 30,000석 규모로 축소되었다.[5] 브레이브스 필드에서 사용되던 전광판은 100000USD에 구입하여 캔자스시티로 옮겨졌고, 임시 관람석이 추가되었다.[6]
1955년 개막일에는 미주리주 인디펜던스 출신의 해리 S. 트루먼 전 대통령이 시구를 했고, 코니 맥과 지미 폭스 등 애슬레틱스의 전설적인 선수들도 참석했다. 이날 애슬레틱스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8-2로 꺾었다.[6] 야구장은 해발 약 274.32m 고도에서 북동쪽(홈 플레이트에서 중견수 방향)으로 정렬되었다.
3. 1. 뮤니시펄 스타디움으로의 개명
아놀드 존슨은 시카고의 부동산 재벌로, 1953년에 블루스 스타디움과 양키 스타디움을 매입했다. 1954년 11월 코니 맥으로부터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를 매입한 존슨은 애슬레틱스를 필라델피아에서 캔자스시티로 이전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존슨은 블루스 스타디움을 시에 매각했고, 시는 경기장 이름을 '''뮤니시펄 스타디움'''으로 변경하고 애슬레틱스에 다시 임대했다.[5]뮤엘레바흐는 캔자스시티가 메이저 리그 팀을 유치할 것을 예상하고, 미래의 상단 데크를 지지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기초로 경기장을 설계했다. 그러나 애슬레틱스를 위해 경기장을 복층으로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 30년 동안 중서부의 혹독한 겨울 날씨로 인해 기초가 약해져 상단 데크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시 관계자들은 경기장을 완전히 철거하고 새로 짓기로 결정했다. 3교대로 공사가 진행되었고, 90일 만에 새로운 경기장이 건설되어 1955년 시즌 개막에 맞춰 완공되었다. 새로운 건설 자금은 채권 발행으로 조달되었다. 확장된 경기장은 38,000석을 수용할 예정이었지만, 초과 근무 수당으로 인한 비용 초과로 인해 관계자들은 수용 인원을 30,000석 이상으로 줄였다.[5] 브레이브스 필드의 전광판은 보스턴에서 100000USD에 구입하여 캔자스시티로 옮겨졌고, 임시 관람석은 좌익수 코너와 외야의 일부에 추가되었다.[6]
1955년 개막일에는 인근 미주리주 인디펜던스 거주민이자 전 대통령인 해리 S. 트루먼이 시구를 했다. 코니 맥과 애슬레틱스의 전설적인 선수 지미 폭스도 참석했다. 애슬레틱스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8-2로 이겼다.[6]
야구장은 해발 약 274.32m 고도에서 북동쪽(홈 플레이트에서 중견수 방향)으로 정렬되었다.
3. 2. 재건축 과정과 개장
아놀드 존슨은 1954년 11월 코니 맥으로부터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를 매입하고 필라델피아에서 캔자스시티로 애슬레틱스를 이전할 계획을 발표했다. 존슨은 이후 블루스 스타디움을 시에 매각했고, 시는 이곳의 이름을 '''뮤니시펄 스타디움'''으로 변경하고 애슬레틱스에 재임대했다.[5]뮤엘레바흐는 캔자스시티가 결국 메이저 리그 팀을 얻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따라서 그는 미래의 상단 데크를 지지할 수 있을 정도로 이론적으로 강한 기초로 경기장을 설계했다. 그러나 애슬레틱스를 위해 경기장을 복층으로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 가혹한 30년의 중서부 겨울 날씨로 인해 기초가 약해져 상단 데크의 무게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시 관계자들은 경기장을 완전히 철거하고 처음부터 다시 짓기로 결정했다. 시는 3교대로 공사를 진행했고 새로운 경기장은 90일 만에 건설되어 1955년 시즌 개막에 맞춰 원래의 설계에 충실하게 완공되었다. 새로운 건설은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확장된 경기장은 38,000석을 수용할 예정이었지만, 초과 근무 수당으로 인한 비용 초과로 인해 관계자들은 수용 인원을 30,000석 이상으로 줄였다.[5] 브레이브스 필드의 전광판은 보스턴에서 100000USD에 구입하여 보스턴에서 캔자스시티로 옮겨졌고, 임시 관람석은 좌익수 코너와 외야의 일부에 추가되었다.[6]
1955년 개막일에, 인근 미주리주 인디펜던스 거주민이자 전 대통령인 해리 S. 트루먼이 시구했다. 코니 맥과 전설적인 애슬레틱스 선수 지미 폭스도 참석했다. 애슬레틱스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8-2로 이겼다.[6]
4. 메이저 리그 야구 (1955-1972)
1955년 애슬레틱스가 필라델피아에서 캔자스시티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뮤니시펄 스타디움은 메이저 리그 야구 경기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곳은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1955-1967)와 캔자스시티 로열스(1969-1972)의 홈구장이었다.
찰리 파이널리 구단주는 양키 스타디움의 우익수 펜스를 본따 약 90.22m 길이의 "페넌트 포치"를 만드는 등 경기장에 여러 독특한 시도를 했다.[13] 그러나 리그의 반대로 "하프 페넌트 포치"로 수정되었고, 이후 캐노피 설치 시도도 리그의 제지로 중단되었다.[14] 구장 아나운서 잭 레이턴은 홈런이 나올 때마다 "양키 스타디움에서는 홈런이었을 텐데"라고 말하는 이벤트를 벌였으나, 상대 팀 선수들의 홈런이 더 많아지자 곧 중단되었다.
파이널리는 펜스 위치를 자주 변경했지만, 팀 성적은 좋지 않았다. 경기장 우익수 펜스 뒤에는 염소와 양을 위한 동물원과 피크닉 구역이 있었고, 홈 플레이트에는 "하비"라는 기계 토끼가 있어 심판에게 새 공을 전달했다. 레지 잭슨, 캣피시 헌터 등 훗날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들이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 시절 뮤니시펄 스타디움에서 뛰었다.[15]
1969년 창단한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1972년까지 뮤니시펄 스타디움을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했다.[16] 루 피니엘라는 1969년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을 수상했고, 로열스는 첫 시즌에 거의 100만 명의 관중을 동원했다.[17] 아모스 오티스, 존 메이버리 등 훗날 로열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들이 이 시기에 데뷔했다.[18][19]
1972년 10월 4일, 뮤니시펄 스타디움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에서 로열스가 텍사스 레인저스를 4-0으로 꺾었다. 이 경기는 테드 윌리엄스의 감독으로서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다.
4. 1.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 (1955-1967)
이 경기장은 1960년 아놀드 존슨의 사망 후 애슬레틱스를 인수한 찰리 파이널리가 벌인 많은 장난의 현장이었다. 특히 그는 1964년 4월에 꽤나 멀리 뻗어 있던 펜스를 줄이려고 시도했는데, 이는 양키스의 홈구장인 양키 스타디움의 우익수 펜스를 조롱하기 위해, 작은 관람석 앞쪽 우익수에 약 90.22m 길이의 "페넌트 포치"를 만드는 방식이었다.[13] 이 시도는 곧 리그에 의해 거부되었고,[14] 파이널리는 펜스를 법적 최소 거리인 약 99.06m로 다시 세우고 "하프 페넌트 포치"라고 칠했다. 나중에는 작은 관람석 위에 캐노피를 설치하는 속임수를 썼는데, 이 캐노피는 경기장 위로 약 8.84m나 뻗어 있었다. 파이널리의 유머 감각에 즐거워하지 않은 리그는 다시 그에게 중단을 명령했다. 전설에 따르면, 애슬레틱스가 뉴욕으로 원정을 갔을 때, 양키스 타자가 좌익수 쪽으로 긴 플라이 볼을 날렸는데, 양키 스타디움의 넓은 좌익수에서는 평범한 아웃이 되었다. 밥 셰퍼드 양키스 구장 아나운서는 마이크를 통해 "캔자스시티에서는 홈런이었을 텐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파이널리가 캔자스시티 홈 플레이트에서 약 90.22m 떨어진 외야 잔디에 선을 긋고, 그 선 너머로 공이 날아갈 경우 뮤니시펄 스타디움의 구장 아나운서 잭 레이턴에게 "양키 스타디움에서는 홈런이었을 텐데"라고 발표하라고 지시한 것에 대한 응답이었다. 파이널리가 "홈런이었을 텐데"의 대부분이 애슬레틱스의 상대 팀 선수들에 의해 기록되는 것을 보고 레이턴의 속임수는 곧 중단되었다고 한다.
파이널리는 우익수 코너를 변경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을 뿐만 아니라, 팀을 운영한 7시즌 동안 다른 펜스들을 여러 번 안팎으로 이동시키는 실험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팀의 성적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팀은 거의 매년 꼴찌나 그 근처에서 시즌을 마쳤다.
작은 동물원에는 염소와 양이 있었고, 우익수 펜스 뒤에는 피크닉 구역이 있었다. 홈런이 펜스 안으로 날아가면 염소와 양들이 언덕 위로 재빨리 도망갔다. 동시에 파이널리는 애슬레틱스의 오래된 코끼리 마스코트를 "찰리-O"라는 적절한 이름의 살아있는 노새로 교체했다.
홈 플레이트에는 하비 (1944)라는 연극과 그 후의 동명의 영화 (1950)를 참조하여 "하비"라는 별명이 붙은 기계 토끼가 심판에게 새로운 야구공을 가져다주고, 압축 공기 장치("리틀 블로우하드"라는 별명)로 홈 플레이트의 먼지를 날렸다.
레지 잭슨, 샐 반도, 캣피시 헌터, 조 루디 그리고 진 테네이스는 캔자스시티에서 데뷔하여 오클랜드에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끈 젊은 애슬레틱스 선수들 중 일부였다. 헌터와 잭슨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5]
4. 2. 캔자스시티 로열스 (1969-1972)
1969년 아메리칸 리그 확장팀으로 창단된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1972년까지 뮤니시펄 스타디움을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했다.[16] 캔자스시티는 루 피니엘라를 영입하며 1969년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을 배출했고, 로열스는 69승 93패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첫 시즌에 거의 100만 명의 팬을 끌어모았다.[17]이후 시즌에 많은 미래의 스타들이 로열스에서 데뷔했고, 1971년에는 85승 76패를 기록하며 경쟁력 있는 팀으로 성장했다. 아모스 오티스(1970년), 폴 스플리토르프(1970년), 프레디 파텍(1971년), 존 메이버리(1972년), 스티브 버스비(1972년)는 뮤니시펄 스타디움에서 데뷔한 젊은 로열스의 핵심 선수들이었다. 이들은 각각 로열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8][19]
1972년 야구 시즌 이후, 로열스는 트루먼 스포츠 콤플렉스의 카우프만 스타디움으로 옮겨갔다. 1972년 10월 4일 텍사스 레인저스를 상대로 4-0으로 승리하며 뮤니시펄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경기(및 행사)에서 승리했는데, 이는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 and Museum) 헌액자 테드 윌리엄스가 감독한 마지막 메이저 리그 경기이기도 했다. 아모스 오티스는 뮤니시펄 스타디움 역사상 마지막 득점을 올렸고 에드 키크패트릭이 마지막 안타를 기록했다. 4일 전 오클랜드 A's의 진 테네이스가 마지막 홈런을 쳤고, 그 전날 밤에는 존 메이버리가 로열스의 마지막 홈런을 쳤다.
5. 미국 미식축구 리그/내셔널 풋볼 리그 (1963-1971)
1962년 시즌 이후, 아메리칸 풋볼 리그(AFL)의 댈러스 텍산스 구단주 라마 헌트는 팀을 캔자스시티로 옮겨 캔자스시티 치프스로 이름을 바꿨다.[20] 캔자스시티 뮤니시펄 스타디움은 풋볼 경기에 맞춰 개조되었는데, 특이하게도 1루선을 따라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매년 가을 좌익수에 임시 관중석을 설치하여 수용 인원을 늘렸지만, 야구 시즌에는 철거해야 했다.[20]
2층 규모의 관람석은 남쪽 사이드라인을 따라 설치되었지만, 서쪽 엔드존(3루선) 중간에서 끝났다. 양 팀 벤치는 북쪽 사이드라인에, 동쪽 엔드존은 우익수 펜스에 닿아 있었고, 대형 스코어보드가 설치되었다. 펜스 때문에 동쪽 엔드존 공간은 서쪽보다 훨씬 좁았다.[20]
캔자스시티 치프스는 뮤니시펄 스타디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슈퍼볼 I에 출전했지만 그린베이 패커스에게 패했다.[24] 이후 슈퍼볼 IV에서 미네소타 바이킹스를 23-7로 꺾고 우승했다.[24] 쿼터백 렌 데이슨, 수비 엔드 벅 부캐넌, 수비 태클 컬리 컬프, 라인배커 바비 벨과 윌리 라니어, 수비 백 에미트 토마스와 조니 로빈슨, 키커 얀 스테네루드 등 많은 명예의 전당 선수들이 활약했다.[21][22] 라마 헌트는 리그 개척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21][22] AFL-NFL 챔피언십 경기를 "슈퍼볼"이라고 처음 불렀고, 이 용어는 나중에 공식 명칭이 되었다.[24] 슈퍼볼 IV는 AFL과 NFL 통합 전 마지막 경기였다.[25]
5. 1. 캔자스시티 치프스 (1963-1971)
1962년 시즌 이후, 아메리칸 풋볼 리그(AFL)의 댈러스 텍산스 구단주 라마 헌트는 팀을 캔자스시티로 옮겨 캔자스시티 치프스로 이름을 바꿨다.[20] 캔자스시티 뮤니시펄 스타디움은 풋볼 경기에 맞춰 개조되었는데, 특이하게도 1루선을 따라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매년 가을 좌익수에 임시 관중석을 설치하여 수용 인원을 늘렸지만, 야구 시즌에는 철거해야 했다.[20] 이 때문에 치프스는 1963년부터 1971년까지 거의 매 시즌 첫 3경기 이상을 원정 경기로 치러야 했다(1968년 제외).[20]2층 규모의 관람석은 남쪽 사이드라인을 따라 설치되었지만, 서쪽 엔드존(3루선) 중간에서 끝났다. 양 팀 벤치는 북쪽 사이드라인에, 동쪽 엔드존은 우익수 펜스에 닿아 있었고, 대형 스코어보드가 설치되었다. 펜스 때문에 동쪽 엔드존 공간은 서쪽보다 훨씬 좁았다.[20]
치프스는 뮤니시펄 스타디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쿼터백 렌 데이슨, 수비 엔드 벅 부캐넌, 수비 태클 컬리 컬프, 라인배커 바비 벨과 윌리 라니어, 수비 백 에미트 토마스와 조니 로빈슨, 키커 얀 스테네루드 등 많은 명예의 전당 선수들이 활약했다.[21][22] 라마 헌트는 리그 개척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1][22] 1964년 11월 1일, 렌 데이슨은 덴버 브롱코스를 상대로 435야드 패스와 6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하며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23]
행크 스트램 감독이 이끈 치프스는 슈퍼볼 IV에서 미네소타 바이킹스를 23-7로 꺾고 우승했다.[24] 슈퍼볼 I에도 출전했지만 그린베이 패커스에게 패했다.[24] 라마 헌트는 AFL-NFL 챔피언십 경기를 "슈퍼볼"이라고 처음 불렀고, 이 용어는 나중에 공식 명칭이 되었다.[24] 슈퍼볼 IV는 AFL과 NFL 통합 전 마지막 경기였다.[25] 치프스는 1972년 시즌부터 트루먼 스포츠 콤플렉스의 애로헤드 스타디움으로 홈구장을 옮겼다.
5. 2. NFL 역사상 가장 긴 경기 (1971년 크리스마스)
1971년 크리스마스에 열린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마이애미 돌핀스의 경기는 NFL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였다. 치프스의 에드 포돌락은 총 350야드를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이 기록은 아직까지 NFL 플레이오프 기록으로 깨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치프스는 연장 2쿼터 7분 20초를 남기고 가로 예프레미안의 역전 필드 골로 마이애미 돌핀스에게 27-24로 패했다.[26]이 더블 연장 플레이오프 경기는 82분 40초 동안 진행되었으며(연장전은 22분 이상), 이는 NFL 역사상 가장 긴 경기로 기록되어 있다.[27] 또한 이 경기는 캔자스시티 뮤니시펄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일한 포스트 시즌 풋볼 경기였다.
6. 북미 축구 리그 (1968-1970)
북미 축구 리그(NASL) 캔자스시티 스퍼스는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이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스퍼스는 1969년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캔자스시티 로열스 야구팀 및 캔자스시티 치프스 미식축구팀과의 경기 일정 문제로 1970년 홈구장을 이전해야 했다.[1]
6. 1. 캔자스시티 스퍼스 (1968-1970)
전미 프로 축구 리그(NPSL) 소속 시카고 스퍼스는 1967년 NPSL과 미국 축구 협회가 북미 축구 리그(NASL)를 결성한 후 캔자스시티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야노스 베들 코치의 지휘 아래, 스퍼스는 평균 8,510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리그 최다 관중을 기록했다. 그러나 로열스 야구팀 및 치프스 미식축구팀과의 경기 일정 문제로 인해 1970년 시즌 홈경기를 펨브로크 고등학교 미식축구 경기장으로 옮겼고, 이후 구단은 해체되었다. 스퍼스의 팀 색상은 빨간색과 흰색이었으며, 마스코트는 "카우보이 조"였다.7. 기타 주요 행사
캔자스시티 뮤니시펄 스타디움에서는 야구 경기 외에도 다양한 행사들이 열렸다.
1964년 9월 17일, 비틀즈는 미국 첫 투어의 일환으로 이곳에서 공연을 가졌다.[31] 원래 이 날은 밴드의 휴식일이었지만, 당시 구단주였던 핀리가 150000USD(2014년 기준 1140000USD)라는 거액을 제시하여 공연이 성사되었다.[32] 비틀즈는 공연에서 "캔자스시티"와 "헤이, 헤이, 헤이, 헤이" 메들리를 연주하며 캔자스시티를 향한 경의를 표했다.[32]
7. 1. 1960년 메이저 리그 올스타전
1960년 메이저 리그 올스타전은 1960년 7월 11일 캔자스시티 뮤니시펄 스타디움에서 30,619명의 관중 앞에서 개최되었으며, 내셔널 리그가 5-3으로 승리했다. 이 경기에는 15명 이상의 미래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이 포함되었다.[30]이 경기에는 행크 애런, 테드 윌리엄스, 미키 맨틀, 윌리 메이스, 로베르토 클레멘테(그의 첫 올스타전), 스탠 뮤지얼, 요기 베라, 로저 매리스, 화이티 포드, 브룩스 로빈슨, 어니 뱅크스, 에디 매튜스, 빌 마제로스키, 알 칼라인, 올랜도 세페다, 넬리 폭스 및 루이스 아파리시오가 참가했다.[30]
어니 뱅크스, 델 크랜들 및 알 칼라인은 이 경기에서 홈런을 쳤다.[30]
7. 2. 1964년 비틀즈 콘서트
1964년 9월 17일, 비틀즈는 미국 첫 투어의 일환으로 이 경기장에서 공연했다.[31] 원래 이 날짜는 뉴올리언스에서의 콘서트 이후 밴드의 휴식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핀리가 당시 기록적인 금액인 150000USD(2014년 기준 1140000USD에 해당)를 그들의 매니저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에게 제시하면서 공연에 동의했다. 비틀즈는 목요일 밤 콘서트에서 "캔자스시티"와 "헤이, 헤이, 헤이, 헤이" 메들리를 연주하며 개최 도시를 향한 경례로 공연을 시작했다.[32] 한 달 후, 그들은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비틀즈 포 세일''에 이 메들리를 녹음할 것이다.7. 3. 기타 야구 경기
- 1947년 7월 10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돈 블랙이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인디언스 3 - 0 애슬레틱스).
- 1960년 7월 11일, 올스타전 제1전을 개최했다(내셔널리그 5 - 3 아메리칸리그).
- 1965년 9월 8일, 버트 캠파네리스가 1경기에서 모든 수비 위치를 소화했는데, 이는 메이저 리그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8. 철거와 현재 (1976-현재)
전 캔자스시티 모나크스의 선수였던 벅 오닐의 참여로 흑인 야구 박물관이 1990년에 설립되어 1997년에 개관했다. 18번가와 바인 지구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1920년에 흑인 리그가 처음 결성된 이전 파세오 YMCA 건물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아메리칸 재즈 박물관 옆에 있다. 이 부지는 뮤니시펄 스타디움 부지에서 약 1.61km 이내에 있다.[34][35][36]
8. 1. 철거와 부지 활용
경기장은 1976년에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시립 정원이 들어섰다. 오늘날, 이전 야구장 부지는 새로운 단독 주택으로 재개발되고 있다. 22번가와 브루클린 스트리트에는 이전 경기장의 위치를 표시하는 기념비가 있다.
8. 2. 기념비와 주변 명소
경기장은 1976년에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시립 정원이 들어섰다. 오늘날, 이전 야구장 부지는 새로운 단독 주택으로 재개발되고 있다.22번가와 브루클린 스트리트에는 이전 경기장의 위치를 표시하는 기념비가 있다. 이 지역에는 1908년에 설립되어 뮤니시펄 스타디움이 근처에 있을 때 팬과 선수들이 즐겨 찾았던 전설적인 아서 브라이언트'스 바비큐가 18번가와 브루클린 스트리트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33]
전 캔자스시티 모나크스의 선수였던 벅 오닐의 참여로, 흑인 야구 박물관은 1990년에 설립되어 1997년에 개관했다. 18번가와 바인 지구에 위치한 박물관은 1920년에 흑인 리그가 처음 결성된 이전 파세오 YMCA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은 아메리칸 재즈 박물관 옆에 있다. 이 부지는 뮤니시펄 스타디움 부지에서 약 1.61km 이내에 있다.[34][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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