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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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리샤나는 고대부터 여러 민족의 지배를 받았으며, 중세 시대에는 헝가리 왕국의 일부였다. 1526년 모하치 전투 이후 동부 헝가리 왕국과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17세기 후반에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헝가리 왕국에 속했다가,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체 후 루마니아와 헝가리로 분할되었다. 현재는 루마니아의 아라드, 비호르, 설라지, 사투마레, 마라무레슈, 훈네도아라 주와 헝가리의 허이두-비하르, 베케시 주 지역을 포함한다. 주요 도시로는 오라데아, 아라드, 데브레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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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샤나 | |
---|---|
지리 | |
일반 정보 | |
다른 이름 | 루마니아어: Crișana 헝가리어: Körösvidék (쾨뢰슈비데크) 독일어: Kreischgebiet (크라이슈게비트) |
위치 | 중앙 유럽 |
특징 | 지리적, 역사적 지역 |
강 | 티서 강 |
역사 | |
관련 국가 | 루마니아 헝가리 |
2. 역사
고대 시대에 이 지역에는 켈트족, 다키아인, 사르마티아인, 게르만족이 정착했다. 기원전 1세기에는 부레비스타 치하의 다키아 왕국의 일부였다. 중세 시대에는 훈족 제국, 게피드 왕국, 아바르 제국, 제1차 불가리아 제국, 헝가리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게스타 훙가로룸에 따르면 이곳은 Kazárország라고 불렸으며, 케자의 시몬의 13세기 저서인 Gesta Hunnorum et Hungarorum에 따르면, 즈바타플루그(모루트의 아들)가 지배했고, 10세기에는 모루트의 손자 메누모루트가 지배했다.[3][4] 모루트는 폴란드의 공작으로, 브락타리를 정복하고 불가리아와 모라비아의 황제로 군림했다고 한다.[3][4] 모루트 공작은 크리샤나를 점령했고, 코자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코즐론과 관련하여 그 땅에 거주했다. 모루트 공작의 아들 즈바타플루그는 헝가리의 아르파드의 아들인 헝가리의 졸탄과 결혼한 메누모루트의 아버지였으며, 졸탄은 헝가리의 탁소니의 아버지였다.[5]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오라데아(Nagyváradhu)는 헝가리 통치 초기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크며, 1113년 베네딕토회 조보르 수도원 관련 문서에 "Varadinum"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언급되었다. 루마니아 이름 ''오라데아''는 "요새화된 장소"를 의미하는 헝가리어 ''Várad''에서 유래되었다. 이 도시는 중세 헝가리 국가의 가장 중요한 문화 중심지 중 하나였으며, 헝가리의 라슬로 1세 (1077-1095)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지기스문트 (1387-1437)가 그곳에 묻혔다. 1192년 라슬로 1세가 시성된 후, 바라드의 그의 성지는 가톨릭 순례지가 되었다.
모하치 전투 (1526) 이후, 이 지역은 동부 헝가리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1552년, 오스만 제국은 크리샤나 남부를 점령하여 테메슈바르 에얄레트에 포함시켰다. 슈파이어 조약 (1570)에 따르면 크리샤나의 나머지 지역은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일부가 되었다.[1] 존 지기스문드 자폴리야는 헝가리 왕위에서 물러났고,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 2세는 존 지기스문드의 헝가리 왕국 동부 영토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여, 존 지기스문드는 ''princeps Transsylvaniae et partium regni Hungariae dominus'' (트란실바니아 공작이자 헝가리 왕국의 일부 (파르티움)의 영주)가 되었다. 크리샤나는 파르티움에 포함되었다.[1]
17세기 후반에 형성된 오스만 바라트 에얄레트는 크리샤나를 중심으로 했다. 17세기 말부터 이 지역 전체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영토가 되었고, 합스부르크 헝가리 왕국, 합스부르크 트란실바니아 공국, 합스부르크 군사 국경 지대로 행정적으로 분할되었다.[1]
티서-무레슈 지역의 합스부르크 군사 국경 지대가 폐지(1750년)되고, 트란실바니아 공국이 1867년에 폐지된 후, 이 지역 전체는 헝가리 왕국에 포함되었고, 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군주국의 일부였다. 합스부르크 행정 기간 동안 크리샤나는 트란실바니아나 바나트와 같은 특별한 지위를 가지지 못했고, 1850년부터 1860년까지는 그로스바르다인 군사 지구로 잠시 조직되었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된 후, 크리샤나는 루마니아 왕국 (동부 지역)과 헝가리 (서부 지역)로 분할되었다.[1]
2. 1. 고대
고대 시대에 이 지역에는 켈트족, 다키아인, 사르마티아인, 게르만족이 정착했다. 기원전 1세기에는 부레비스타 치하의 다키아 왕국의 일부였다.2. 2. 중세
중세 시대에 이곳은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 제국, 게피드 왕국, 아바르 제국, 제1차 불가리아 제국, 헝가리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게스타 훙가로룸을 기반으로 한 헝가리 지도는 이곳을 Kazárország라고 부른다. 케자의 시몬의 13세기 저서인 Gesta Hunnorum et Hungarorum에 따르면, 이 지역은 즈바타플루그(모루트의 아들)[3][4]에 의해 지배되었으며, 10세기에 모루트의 손자인 메누모루트가 지배했다. 모루트는 폴란드의 공작으로, 브락타리를 정복하고 불가리아와 모라비아의 황제로 군림했다고 한다.[3][4] 모루트 공작은 크리샤나를 점령했고, 코자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코즐론과 관련하여 그 땅에 거주했다. 모루트 공작의 아들 즈바타플루그는 헝가리의 아르파드의 아들인 헝가리의 졸탄과 결혼한 모루트 공작의 손자 메누모루트의 아버지였으며, 졸탄은 헝가리의 탁소니의 아버지였다.[5]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오라데아(Nagyváradhu)는 헝가리 통치 초기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 도시는 1113년 베네딕토회 조보르 수도원에 속한 외교 문서에 "Varadinum"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언급되었다. 루마니아 이름 ''오라데아''는 "요새화된 장소"를 의미하는 헝가리어 이름 ''Várad''에서 유래되었다. 이 도시는 중세 헝가리 국가의 가장 중요한 문화 중심지 중 하나였다. 두 명의 헝가리 왕, 헝가리의 라슬로 1세 (1077-1095)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지기스문트 (1387-1437)가 그곳에 묻혔다. 1192년 라슬로 1세가 시성된 후, 바라드의 그의 성지는 가톨릭 순례지가 되었다.
2. 3. 근대
모하치 전투 (1526) 이후, 이 지역은 동부 헝가리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1552년, 오스만 제국은 크리샤나의 남부를 점령하여 새로 설립된 테메슈바르 에얄레트에 포함시켰다. 슈파이어 조약 (1570)에 따르면 크리샤나의 나머지 지역은 동부 헝가리 왕국의 계승국인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일부가 되었다.[1]존 지기스문드 자폴리야는 헝가리 왕위에서 물러났고, 그 대가로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 2세는 존 지기스문드의 헝가리 왕국 동부 영토에 대한 권위를 인정했다. 존 지기스문드는 ''princeps Transsylvaniae et partium regni Hungariae dominus'' (트란실바니아 공작이자 헝가리 왕국의 일부 (파르티움)의 영주)가 되었다. 크리샤나는 파르티움에 포함되었다.[1]
17세기 후반에 형성된 오스만 바라트 에얄레트는 크리샤나를 중심으로 했다. 17세기 말부터 이 지역 전체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영토가 되었고, 합스부르크 헝가리 왕국, 합스부르크 트란실바니아 공국 및 합스부르크 군사 국경 지대로 행정적으로 분할되었다.[1]
티서-무레슈 지역의 합스부르크 군사 국경 지대가 폐지(1750년)되고, 트란실바니아 공국이 1867년에 폐지된 후, 이 지역 전체는 다시 헝가리 왕국에 포함되었고, 이는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군주국의 일부였다. 합스부르크 행정 기간 동안 크리샤나는 트란실바니아나 바나트와 같은 특별한 지위를 전체적으로 가지지 못했다. 1850년부터 1860년까지는 그로스바르다인 군사 지구로 잠시 조직되었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된 후, 크리샤나는 루마니아 왕국 (동부 지역)과 헝가리 (서부 지역)로 분할되었다.[1]
3. 지리
크리샤나는 판노니아 분지 내에 위치하며, 루마니아에서는 북쪽으로 마라무레슈, 동쪽으로 트란실바니아, 남쪽으로 바나트, 서쪽으로 헝가리와 접해 있다. 이 지역은 현재 루마니아의 아라드 주 (대부분), 비호르 주와 설라지 주, 사투마레 주, 마라무레슈 주 (코드루, 키오아르) 및 훈네도아라 주의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역사적 공국 경계 안에 완전히 속하지는 않았지만, 때때로 역사적 지역인 트란실바니아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한다.[1]
헝가리 쾨뢰시비데크는 허이두-비하르 주와 베케시 주 지역으로 덮여 있다.[1] 무레슈 강 인근 크리샤나 남부는 세르비아인에 의해 포모리슈예라고 불렸다.[1]
4. 문화
(주어진 원본 소스가 없으므로, 내용을 생성할 수 없습니다.)
4. 1. 주요 도시
5. 갤러리
참조
[1]
서적
Romania: Borderland of Europe
https://books.google[...]
Reaktion Books
2001-01-01
[2]
서적
Nationalism and Territory: Constructing Group Identity in Southeastern Europe
https://books.google[...]
Rowman & Littlefield
2000-01-01
[3]
서적
Simonis De Keza Gesta Hungarorum
CEU Press
1999
[4]
서적
The Nitrian Principality: The Beginnings of Medieval Slovakia
https://books.google[...]
Brill
2020-01-01
[5]
서적
Anonymous Notary of King Bela: The Deeds of the Hungarians
CEU Press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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