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토사게스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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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텍토사게스족은 '재산을 찾는 자' 또는 '거처를 찾는 자'를 의미하는 켈트어에서 유래된 명칭을 가진 부족이다. 원래 갈리아의 톨로사 주변 지역에서 기원하여 볼카이 부족 연합의 일부였으며, 기원전 280년경 발칸 반도 침략 이후 델포이에서 돌아오던 중 분리되었다. 이후 비티니아의 니코메데스 1세에게 용병으로 고용되어 소아시아로 이동, 동부 프리지아에 정착하여 톨리스토보기족, 트로크미족과 함께 갈라티아인으로서 새로운 켈트족 연합을 이루었다. 텍토사게스족은 갈라티아 영토의 중심부를 차지했으며, 수도는 앙키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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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토사게스족 | |
---|---|
지리 | |
역사 | |
시대 | 고대 |
존속 기간 | 기원전 3세기 ~ 기원전 1세기 |
중심지 | 툴루즈 |
민족 | 켈트족 |
부족 | 갈리아인 |
정치 | |
정치 체제 | 부족 국가 |
언어 | |
사용 언어 | 갈리아어 |
2. 명칭
'''텍토사게스족'''(라틴어: ''Tectosages'')은 골어 *''Textosagioi''(단수 ''Textosagios'')를 라틴어화한 것이다. 라틴어에 존재하지 않는 무성 연구개 마찰음 ⟨x⟩는 ⟨k⟩ 소리로 대체되었다.[1] '텍토사게스'라는 명칭은 '상품, 재산, 소유'를 뜻하는 켈트어 어간 ''*texto-''(cf. 고대 아일랜드어 ''techt'' '소유')와 '찾는 자'를 의미하는 ''sagi-''가 결합된 것으로, '거처를 찾는 자들' 또는 '소유를 찾는 자들'로 번역될 수 있다. 이는 '토지에 대한 법적 청구를 확립(또는 재확립)하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고대 아일랜드 법률 용어 ''techtaigidir''와 비교될 수 있다.[1][2]
텍토사게스족은 원래 갈리아 남부 톨로사 지역의 볼카이 부족 연합의 일원이었다. 기원전 280년경 발칸 반도의 갈리아 침략에 참여했다가, 델포이에서 돌아오던 중 주 집단에서 분리되었다. 이후 톨리스토보기족, 트로크미족과 함께 비티니아의 니코메데스 1세에게 고용되어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소아시아로 이동했다. 이들은 소아시아를 약탈하다 동부 프리지아에 정착하여 갈라티아인이라는 새로운 켈트족 연합을 세웠다. 텍토사게스족은 갈라티아 영토의 중심부를 차지했으며, 수도는 앙키라였다.
3. 역사
3. 1. 갈리아 원정
스트라본에 따르면 텍토사게스족은 원래 갈리아의 톨로사 주변 지역에서 기원했으며, 그곳에서 볼카이 부족 연합의 일부였다. 기원전 280년경 발칸 반도의 갈리아 침략 동안, 델포이에서 돌아오던 볼카이 텍토사게스족의 한 분파는 주 집단에서 분리되어 다른 두 부족인 톨리스토보기족과 트로크미족에 합류했다. 기원전 278년경 그들은 비티니아의 니코메데스 1세에게 용병으로 고용되어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넜다.
3. 2. 소아시아 이주와 갈라티아 건국
스트라본에 따르면 텍토사게스족은 원래 갈리아의 톨로사 주변 지역에서 기원했으며, 그곳에서 볼카이 부족 연합의 일부였다. 기원전 280년경 발칸 반도의 갈리아 침략 동안, 델포이에서 돌아오던 볼카이 텍토사게스족의 한 분파는 주 집단에서 분리되어 다른 두 부족인 톨리스토보기족과 트로크미족에 합류했다. 기원전 278년경 그들은 비티니아의 니코메데스 1세에게 용병으로 고용되어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넜다. 비티니아를 떠난 후, 그들은 소아시아를 약탈했으며 마침내 동부 프리지아에 정착하여 갈라티아인으로서 새로운 켈트족 연합 정체성을 확립했다.
텍토사게스족은 갈라티아 영토의 중심부를 차지했으며, 수도인 앙키라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톨리스토보기족, 동쪽에는 트로크미족이 있었다.
참조
[1]
서적
Livy
[2]
서적
리비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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