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마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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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르마 공작은 1545년부터 1860년까지 파르마 공국을 통치했던 군주를 의미한다. 파르네세 가문, 부르봉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 보르보네파르마 가문 등이 파르마 공작을 배출했으며, 프랑스의 점령과 이탈리아 통일 전쟁으로 인해 공작의 통치는 단절되기도 했다. 1860년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된 이후에는 보르보네파르마 가문 당주에게 명목상으로만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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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파르네세 가문 (1545–1731)
1545년부터 1731년까지 파르네세 가문이 파르마 공국을 통치했다. 파르네세 가문은 교황 바오로 3세(피에르 루이지 파르네세의 아버지)의 후원으로 공국을 다스렸으며,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서 복잡한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파르네세 가문의 공작들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걸쳐 파르마의 정치, 경제,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알레산드로는 스페인의 네덜란드 총독으로 활약하며 군사적 명성을 얻었고, 라누초 2세는 문화 예술을 후원하여 파르마의 바로크 시대를 열었다.
안토니오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파르네세 가문의 직계는 단절되었다.
2. 1. 피에르 루이지 파르네세 (1545–1547)
피에르 루이지는 초대 파르마 공작이다. 교황 바오로 3세의 서자로, 교황의 권력을 등에 업고 공국을 통치했다.[1]
2. 2. 오타비오 파르네세 (1547–1586)
1549년 11월 9일 – 1586년 9월 18일발렌타노
피에르 루이지 파르네세, 파르마 공작와 지롤라마 오르시니의 아들
1538년 11월 4일
로마
자녀 2명
파르마
61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