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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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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재세는 사천조동 출신의 유학자로, 일제강점기 창씨개명과 부일 협력을 거부하며 유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유림의 지도자로서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며 국권 회복을 위해 독립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하재세의 직계 선조는 하연이며, 그의 아들 하치호는 군인으로 훈장을 수훈했고, 손자 하승무는 역사신학자이자 시인으로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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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문중의 문장
한글하재세
한자河在世
히라가나가・자이세
로마자 표기Ha Jaese
가타카나하・제세
인물 정보
이름무명 하재세 (河在世)
출생일1885년 8월 26일
사망지사천 조동
사망일1944년 1월 28일
국적조선
대한제국
[[파일:Flag of Korea 1882.svg|25px]]대한민국 임시정부
본관진양
별명초휘 염세(廉世)
자 태원(泰元)
호 무명(無名)
군주대한제국 태황제(1897~1907)
대한제국 효황제(1907~1910)
경력학구(學究)
직업유학자, 교육인
종교유교(성리학)
배우자밀양 박씨 연순
부모하장수(河長水)
모 김백림(金伯林)

2. 생애

하재세는 '''사천조동'''의 명망 있는 유학자 가문 출신으로, 조부와 부친의 지도 아래 7세부터 유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성년에 이르러 모든 경서(經書)에 통달했다. 그는 격동기 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의 폭압과 강요 속에서도 지역 유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서 갖은 고초를 겪었다. 끝까지 창씨 개명과 부일 협력을 거부하다가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일제의 식민지 근대교육을 거부했으며 '''유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학자로 '''전통교육 현장'''의 '''학구(學究)'''로서 '''교육자'''의 자세를 끝까지 견지했다.[1][2]

2. 1. 창씨개명 관련 논란

하재세는 사천조동의 명망 있는 유학자 가문 출신으로, 조부와 부친의 지도 아래 7세부터 유학을 배워 성년에 이르러 모든 경서(經書)에 통달했다. 그는 격동기 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의 폭압 속에서도 지역 유림 지도자로서 고초를 겪었다. 끝까지 창씨 개명과 부일 협력을 거부하다가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제의 식민지 근대교육을 거부하고 유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유학자로서 '''교육자'''의 자세를 견지했다.

일설에는 하재세가 1940년 8월 10일 창씨개명 신고일 마지막 날을 넘겨 일제에 의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창씨개명으로 신고한 천황폐하진양하(天皇陛下晉陽河) 사건의 당사자로 추정된다고 한다.[4]

2. 2. 독립운동 관련 활동

하재세는 사천조동의 명망있는 유학자 가문 출신으로, 조부와 부친의 지도 아래 7세부터 유학을 배워 성년에 이르러 모든 경서(經書)에 통달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도 지역 유림의 지도자로서 창씨 개명과 부일 협력을 거부하다가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제의 식민지 근대교육을 거부하고 유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유학자이자 교육자로서의 자세를 끝까지 지켰다.[4]

일설에 따르면 하재세는 1940년 8월 10일 창씨개명 신고 마지막 날을 넘겨 일제에 의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창씨개명으로 신고한 천황폐하진양하(天皇陛下晉陽河) 사건의 당사자로 추정된다고 한다.[4]

한편, 당시 사천조동 문중에서는 하재세가 독자로서 장손의 책무 때문에 직접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지는 않았으나, 평소 유교 교육 현장에서 일경과 그들 앞잡이의 눈을 피해가며 국권회복을 역설하고 특히 독립자금을 비밀리에 지원하였다고 한다.[5]

3. 가계

직계 선조인 하연 선생


구분내용
하장수(유학자, 서예가, 사회운동가)
출계부하천수(유학자)
김해 김씨 백림
출계모동성 이씨
배우자밀양 박씨 연순


  • 자녀 및 후손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자녀 및 후손" 하위 섹션을 참조.

3. 1. 자녀 및 후손

4. 직계 선조



참조

[1] 논문 河承武의晉陽河氏家門人物硏究 2015
[2] 논문 河承武의 晉陽河氏家門人物硏究 2015
[3] 웹사이트 仁済大 族譜圖書館 http://jokbo.inje.ac[...]
[4] 문서 진양하씨 사천조동 문중 종가의 평소 구전 증언(하재세 선생의 처인 박연순 여사와 장손 하치호)에 의하면 하재세 선생이 창씨개명 신고를 마감날까지 하지 않아, 일경과 면사무소 직원이 집으로 찾아와 난리가 일으킨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하재세 선생은 갖은 괴롭힘과 고초를 당하자, 창씨개명 신고를 했는데 얼마후 면주재소에서 '진양하씨마을 사천조동문중 하재세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건과 관련해서 그 누구도 입밖으로 소문을 내면 감옥살이를 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직계 후손들은 당시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알수는 없으나, 정황상 ''''천황폐하진양하 사건(天皇陛下晉陽河 事件)''''의 당사자가 선조인 하재세 선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5] 논문 河承武의 晉陽河氏 家門人物硏究 하제세 편 2015
[6] 뉴스 고신대 동문뉴스 https://blog.naver.c[...] 202-04-22
[7] 뉴스 베리타스알파 https://www.veritas-[...] 202-04-23
[8] 뉴스 더코리아 http://www.thekorea.[...] 202-04-23
[9] 뉴스 CRSNews https://www.crs-news[...] 202-05-11
[10] 뉴스 K채널 https://www.kchannel[...] 202-04-23
[11] 뉴스 톡톡뉴스 http://www.newstokto[...] 202-04-23
[12] 뉴스 무등일보 http://www.mdilbo.co[...] 202-04-23
[13] 뉴스 전남매일 http://www.jndn.com/[...] 202-04-23
[14] 뉴스 아시아경제 https://www.asiae.co[...] 2020-11-26
[15] 뉴스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 11월 26일
[16] 뉴스 위키트리 http://www.wikitree.[...] 11월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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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뉴스 뉴스핌 http://www.newspim.c[...] 11월 26일
[20] 뉴스 남도일보 http://www.namdonews[...] 11월 26일
[21] 뉴스 국제뉴스 http://www.gukjenews[...] 2020-11-25
[22] 뉴스 열린통신뉴스 http://www.onews.tv/[...] 2020-11-26
[23] 뉴스 잡포스트 http://www.job-post.[...] 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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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뉴스 앤디앤뉴스 http://www.ndnnews.c[...] 2020-11-24
[26] 뉴스 미디어리퍼블릭 http://www.mrepublic[...] 2020-11-25
[27] 뉴스 교육신문 http://www.ihopenews[...]
[28] 뉴스 하승무 동문 제10회 '자랑스런대한국민大賞'에 선정 https://www.bufs.ac.[...]
[29] 뉴스 하승무 교수 무공수훈자회 유공표창 받아, 경북하나굿뉴스 http://www.gbhana.co[...]
[30] 뉴스 매일종교신문 http://www.dailywrn.[...] 2020-03-19
[31] 뉴스 2018 제34회 자랑스러운 시민상,부산광역시청 https://www.busan.go[...]
[32] 뉴스 고신대학교 선교목회대학원 하승무 동문 제34회 '자랑스러운 시민상'에 선정 http://www.busan.com[...]
[33] 뉴스 국제신문 http://www.kookje.co[...] 2018-10-04
[34] 뉴스 톡톡뉴스 http://www.newstokto[...] 2018-09-18
[35] 뉴스 매일종교신문 http://www.dailywrn.[...] 2018-09-17
[36] 뉴스 부산시 제34회 자랑스러운 시민상 수상자 선정 http://www.fairn.co.[...] 공정뉴스
[37] 웹사이트 하승무 동문 제34회 '자랑스러운 시민상'에 선정 https://www.bufs.ac.[...]
[38] 뉴스 고신대 하승무 동문, 제34회 '자랑스러운 시민상'에 선정 http://www.kscoramde[...] 코람데오닷컴
[39] 뉴스 자랑스런부산시민상 선정 https://m.nocutnews.[...] 노컷뉴스
[40] 뉴스 ‘한국신학교육자상에 하승무 시인’ 연합뉴스 2018-01-18
[41] 뉴스 http://www.dailywrn.[...] 종교매일신문 2018-01-18
[42] 뉴스 http://www.hani.co.k[...] 한겨레신문 2018-01-18
[43] 웹사이트 https://m.mk.co.kr/n[...] 매일경제신문
[44] 뉴스 http://www.kookje.co[...] 국제신문 2017-09-13
[45] 웹사이트 http://www.viva100.c[...] 브릿지경제 2017-10-12
[46] 뉴스 http://www.gukjenews[...] 국제뉴스 2017-10-12
[47] 웹사이트 https://www.konas.ne[...] 코나스뉴스 2017-09-06
[48] 뉴스 http://www.kookje.co[...] 국제신문 2017-09-13
[49] 뉴스 http://www.gukjenews[...] 국제뉴스 2017-10-12
[50] 웹사이트 http://www.viva100.c[...] 브릿지경제 2017-10-12
[51] 뉴스 http://www.seoul.co.[...] 서울신문 2017-09-07
[52] 웹사이트 https://www.konas.ne[...] 코나스뉴스 2017-09-06
[53] 뉴스 기독교선교신문 1995-05-01
[54] 뉴스 부산일보 1994-06-03
[55] 뉴스 교회복음신문 1994-06-06
[56] 웹사이트 http://m.viva100.com[...] 브릿지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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