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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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낙순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영조와 정조 시대에 걸쳐 관직을 역임했다. 1757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조카 홍국영이 세도 정치를 펼치다 실각하면서 함께 파직되어 관직에서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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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낙순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인물 정보 | |
| 이름 | 홍낙순 |
| 원래 이름 | 洪樂純 |
| 출생일 | 1723년 |
| 본관 | 풍산 |
| 사망일 | ? |
| 자(字) | 백효(伯孝) |
| 아호(雅號) | 대릉(大陵) |
| 시호(諡號) | 문헌(文憲) |
| 배우자 | 경주 김씨 부인 |
| 정당 | 무소속(골수 비당파 세력) |
| 종교 | 유교(성리학) |
| 학력 | 1757년 정시문과 병과 급제 |
| 관직 정보 | |
| 직책 | 조선국 의정부 좌의정 |
| 임기 | 1779년 ~ 1780년 |
| 군주 | 정조 이산 |
| 섭정 | 도승지 홍국영 |
| 가족 관계 | |
| 형제 | 홍낙춘(아우) 홍낙빈(아우) |
| 친인척 | 홍국영(조카) 원빈 홍씨(조카딸) 정조(조카사위) 상계군(양외종손자) |
2. 생애
1757년 (영조 때)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문과 급제 후 설서, 사서, 수찬을 지내고 진위 사진 어사를 거쳐 사진 어사, 영남 어사, 양진 어사를 지냈다. 이후 교리, 부수찬, 문사 낭청, 부응교, 사간, 응교를 거쳐 의주부윤으로 특채되었다. 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지내며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우부승지를 지내고 충청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가 있다가 홍봉한 세력에 의해 이조참의를 거쳐 동지의금부사에 제수되었다. 대사헌, 성균관대사성을 거쳐 공조판서로 비변사제조를 겸하고 공조판서, 호조판서, 대제학, 이조판서를 하였다. 의정부좌참찬을 거쳐 강화유수로 외직에 나갔다가 정조에 의해 우의정이 되고, 곧 좌의정까지 되었다.
1779년 좌의정에 제수되었으나, 조카 홍국영이 조정에서 퇴출되면서 함께 파직되었다. 1780년 삭탈되고 관직에서 쫓겨났다.
2. 1. 가계 및 배경
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홍창한이고, 어머니는 기계 유씨(杞溪兪氏)로 유두순(兪斗純) 혹은 유두기(兪斗基)의 딸이다. 그는 선조와 인목왕후 소생 적녀 정명공주와 영안위 홍주원의 6대손이다. 홍주원의 장남 홍만용은 홍봉한, 홍인한, 홍용한, 홍준한 4형제와 홍상한의 고조부가 되고, 홍주원의 차남이자 홍만용의 동생 홍만형은 홍낙순의 5대조가 된다.홍봉한, 홍인한, 홍상한 등은 9촌 아저씨가 되고,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와도 10촌간이 된다. 그런데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의하면 홍낙순은 9촌 아저씨인 홍인한과 원수가 져서 서로 죽이려고 할 정도였다 한다. 왜 원한을 품게 되었는가는 나타나지 않는다. 혜경궁의 한중록에 의하면 홍국영이 홍인한을 싫어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로 홍인한과 홍낙순이 서로 원수처럼 여긴 것을 지목했다.
2. 2. 관직 생활
1757년 영조 때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문과 급제 후 설서, 사서, 수찬을 지내고 진위 사진 어사를 거쳐 사진 어사, 영남 어사, 양진 어사를 지냈다. 이후 교리, 부수찬, 문사 낭청, 부응교, 사간, 응교를 거쳐 의주부윤으로 특채되었다. 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지내며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우부승지를 지내고 충청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가 있다가 홍봉한 세력에 의해 이조참의를 거쳐 동지의금부사에 제수되었다. 대사헌을 거쳐 성균관대사성을 지내다 공조판서로 비변사제조를 겸하고 공조판서, 호조판서, 대제학, 이조판서를 하였다. 의정부좌참찬을 거쳐 강화유수로 외직에 나가있다가 정조에 의해 우의정이 되고, 곧 좌의정까지 되었다.1779년 좌의정에 제수되었으나, 조카 홍국영이 조정에서 퇴출되면서 함께 파직에 처해졌다. 1780년 삭탈되고 관직에서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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