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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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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환속은 승려가 속세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 이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환속했으며, 가마쿠라 시대에는 호넨, 신란 등이 환속한 사례가 있다. 중국에서는 구마라집, 측천무후 등 승려가 되기 전 속인이거나, 승려였다가 환속하여 관리가 된 사례가 존재한다. 불교 계율에서는 파라이지에 해당하는 중대한 죄를 범한 승려는 환속이 강제되며 재출가도 금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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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속
불교 용어
환속 (還俗) / 사계 (捨戒)승려가 계율을 버리고 속인으로 돌아감
정의
설명환속은 출가 수행자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출가 생활을 포기하고 일반인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함. 이는 계율을 버리는 행위인 사계(捨戒) 또는 환계(還戒)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함.
이유환속의 이유는 다양하며, 개인적인 사정, 건강 문제, 수행의 어려움, 경제적인 문제 등이 있을 수 있음.
절차환속을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소속 사찰이나 종단에 환속 의사를 밝히고, 관련 절차를 따라야 함.
환속 후
생활환속 후에는 일반인과 동일한 생활을 하게 되며, 사회생활, 결혼, 직업 선택 등에서 자유로워짐.
재출가환속 후에도 다시 출가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재출가 절차를 따라야 함.
참고 사항
환속에 대한 시각환속에 대한 시각은 개인 및 종교적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음.
파계자에 대한 기회환속은 파계한 출가자에게 기회를 주는 방편으로 여겨지기도 함.

2. 역사

일본에서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환속하였다. 덴무 천황, 와케노 히로무시, 사와라 친왕 등은 헤이안 시대 이전에 환속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사와라 친왕은 황태자 신분으로 환속하였다. 헤이안 시대에는 황족이나 귀족이 출가했다가 다시 속세로 돌아오는 것을 천황이 칙명으로 허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조겐의 난으로 인해 승려를 처벌하려면 속인이 아니면 안 되었기 때문에 환속한 호넨[1], "비승비속" 사상의 기원을 만든 신란, 아버지 고노 미치히로의 죽음으로 영지 상속을 위해 환속했다가 다시 출가한 잇펜, 시조 다카스케, 고다이고 천황의 명으로 가마쿠라 막부 토벌을 위해 환속한 소료 친왕, 다이토노미야 칭호의 유래가 된 모리나가 친왕 등이 환속하였다.

무로마치 시대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는 무로마치 막부 쇼군직 상속을 위해 환속한 아시카가 요시노리, 이복 동생 요시마사의 명으로 고가 공방을 치기 위해 환속한 아시카가 마사토모, 형 요시마사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환속한 아시카가 요시미, 형 요시테루를 죽인 적을 치고 쇼군직을 계승하기 위해 환속하였으며 쇼군 사임 후 재출가한 아시카가 요시아키, 아마고 가츠히사, 아버지 요시시게와 동생의 전사로 가독 상속을 위해 환속한 이타쿠라 가츠시게, 아버지 미치노리와 형의 전사로 가독 상속을 위해 환속한 이나바 요시미치, 형 우지테루의 사망으로 가독 상속을 위해 환속한 이마가와 요시모토, 적자이자 동생인 타카히로의 사망으로 가독 상속을 위해 환속한 사이가에 히로타네, 야마오카 가게토모, 류조지 타카노부 등이 환속했다.

에도 시대에는 승려가 환속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은 환속 당시 中川宮|나카가와노미야일본어를 칭했고, 이후 賀陽宮|가야노미야일본어 궁호를 칭했다가 메이지 시대에 久邇宮|구니노미야일본어로 개명했다.

근대에는 승려가 환속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한 사례가 여럿 있다.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 친왕, 고후쿠지 다이죠인(문적사원) 폐지로 인해 환속하여 자작 작위를 받은 마츠조노 나오요시(나라 화족 참고), 홍설조, 무라카미 센세이, 가와구치 에카이, 메이지 시대 초기 가라보(면사 방적기)를 발명한 가운 신치, 이나모리 가즈오, 이치카와 하쿠겐, 폴 마키, 유메노 큐사쿠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에서는 승려가 환속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구마라집은 여러 차례 강제로 환속하여 결혼해야 했으며, 위원숭은 북주 무제 때 강제로 환속하였다.[1] 비장방의 『역대삼보기』에는 북위에서 신행 등 40여 명이 환속했다는 기록이 있다. 측천무후는 자신의 정부였던 설회의를 총애하기 위해 그를 승려로 만들었다가 다시 환속시켰다. 당나라 때에는 가도와 같이 스스로 환속하는 경우도 있었다. 원나라 때 유병중은 승려였다가 쿠빌라이의 명으로 환속하여 관리가 되었다.

2. 1. 일본

일본에서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환속하였다.

덴무 천황, 와케노 히로무시, 사와라 친왕 등이 헤이안 시대 이전에 환속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사와라 친왕은 황태자 신분으로 환속하였다. 헤이안 시대에는 황족이나 귀족이 출가했다가 다시 속세로 돌아오는 것을 천황이 칙명으로 허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호넨(조겐의 난으로 인해 승려를 처벌하려면 속인이 아니면 안 되었기 때문에 환속, 속명은 후지이 모토히코),[1] 신란(속명 후지이 젠신, "비승비속" 사상의 기원), 잇펜(아버지 고노 미치히로의 죽음으로 영지 상속을 위해 환속했다가 다시 출가), 시조 다카스케, 소료 친왕(고다이고 천황의 명으로 가마쿠라 막부 토벌을 위해 환속), 모리나가 친왕(다이토노미야 칭호의 유래) 등이 환속하였다.

무로마치 시대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는 아시카가 요시노리(무로마치 막부 쇼군직 상속), 아시카가 마사토모(이복 동생 요시마사의 명으로 고가 공방을 치기 위해 환속), 아시카가 요시미(형 요시마사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환속), 아시카가 요시아키(형 요시테루를 죽인 적을 치고 쇼군직을 계승하기 위해 환속, 쇼군 사임 후 재출가), 아마고 가츠히사, 이타쿠라 가츠시게(아버지 요시시게와 동생의 전사로 가독 상속), 이나바 요시미치(아버지 미치노리와 형의 전사로 가독 상속), 이마가와 요시모토(형 우지테루의 사망으로 가독 상속), 사이가에 히로타네(적자이자 동생인 타카히로의 사망으로 가독 상속), 야마오카 가게토모, 류조지 타카노부 등이 환속했다.

에도 시대에는 승려가 환속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다음은 에도 시대에 환속한 승려의 예시이다.

환속 전 법명(계명)환속 후 이름
사사 무네아쓰
이이 나오오키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
구조 나오자네
고노에 다다히로
고유가이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은 환속 당시 中川宮|나카가와노미야일본어를 칭했고, 이후 賀陽宮|가야노미야일본어 궁호를 칭했다가 메이지 시대에 久邇宮|구니노미야일본어로 개명했다.

근대에는 승려가 환속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한 사례가 여럿 있다.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 친왕, 마츠조노 나오요시(고후쿠지 다이죠인(문적사원) 폐지로 인해 환속, 자작 작위 받음, 나라 화족 참고), 홍설조, 무라카미 센세이, 가와구치 에카이, 가운 신치(메이지 시대 초기 가라보(면사 방적기) 발명), 이나모리 가즈오, 이치카와 하쿠겐, 폴 마키, 유메노 큐사쿠 등이 대표적이다.

2. 1. 1. 헤이안 시대 이전

덴무 천황, 와케노 히로무시, 사와라 친왕 등이 환속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와라 친왕은 황태자였기 때문에 환속하였다.

2. 1. 2. 헤이안 시대

平安時代|헤이안 시대일본어에는 황족이나 귀족이 출가했다가 다시 속세로 돌아오는 것을 천황이 칙명으로 허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2. 1. 3. 가마쿠라 시대


  • 호넨보 겐쿠 (조겐의 난에 의해 승려를 유죄로 하려면 속인이 아니면 안 되었기 때문. 속명은 후지이 모토히코)[1]
  • 젠신보 신란 (속명 후지이 젠신. "비승비속"의 사상은 여기서 생겨난다)
  • 잇펜보 치신 (아버지 고노 미치히로의 죽음으로 소령 상속을 위해 환속. 이후 재출가)
  • 시조 다카스케
  • 소료 친왕 (고다이고 천황의 명에 의한 가마쿠라 막부 토벌을 위해)
  • 모리나가 친왕 (다이토노미야의 호칭은 여기에서 유래)

2. 1. 4. 무로마치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아시카가 요시노리 (무로마치 막부 쇼군직을 상속하기 위해 환속)
  • 아시카가 마사토모 (이복 동생 요시마사의 명령으로 고가 공방을 치기 위해 환속)
  • 아시카가 요시미 (형 요시마사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환속)
  • 아시카가 요시아키 (형 요시테루를 죽인 적을 치고 쇼군직을 계승하기 위해 환속. 쇼군 사임 후 재출가)
  • 아마고 가츠히사
  • 이타쿠라 가츠시게 (아버지 요시시게와 동생이 전사하여 가독을 상속하기 위해 환속)
  • 이나바 요시미치 (아버지 미치노리와 형이 전사하여 가독을 상속하기 위해 환속)
  • 이마가와 요시모토 (형 우지테루가 사망하여 가독을 상속하기 위해 환속)
  • 사이가에 히로타네 (적자이자 동생인 타카히로가 사망하여 가독을 상속하기 위해 환속)
  • 야마오카 가게토모
  • 류조지 타카노부

2. 1. 5. 에도 시대

江戸時代일본어에는 승려가 환속하는 예가 드물지 않았다.

다음은 江戸時代일본어에 환속한 승려의 예시이다.

환속 전 법명(계명)환속 후 이름
사사 무네아쓰
이이 나오오키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
구조 나오자네
고노에 다다히로
고유가이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은 환속 당시에는 中川宮일본어를 칭했고, 이후에는 賀陽宮일본어의 궁호를 칭했다. 메이지 시대에 久邇宮일본어로 개명했다.

2. 1. 6. 근대

근대 시기에는 승려가 환속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한 사례가 여럿 존재한다.

2. 2. 중국

중국에서는 승려가 환속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구마라집은 여러 차례 강제로 환속하여 결혼해야 했으며, 위원숭은 북주 무제 때 강제로 환속하였다.[1] 비장방의 『역대삼보기』에는 북위에서 신행 등 40여 명이 환속했다는 기록이 있다. 측천무후는 자신의 정부였던 설회의를 총애하기 위해 그를 승려로 만들었다가 다시 환속시켰다. 당나라 때에는 가도와 같이 스스로 환속하는 경우도 있었다. 원나라 때 유병중은 승려였다가 쿠빌라이의 명으로 환속하여 관리가 되었다.

3. 불교의 파라이지

불교 계율에서 파라이지라고 불리는 4가지 대죄를 범한 승려에게 내려지는 가장 무거운 형벌은 파문이며, 스스로 환속할 수도 없고, 이러한 죄로 처벌받은 경우에는 재출가도 금지된다. 즉, 종신 교단 추방을 의미한다.


  • '''살인죄'''를 범한 자
  • '''도둑질죄'''를 범한 자 (단, 일정 액수 이상)
  • '''음행죄'''를 범한 자
  • '''대망어죄'''를 범한 자 (득도를 사칭한 대망어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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