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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아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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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흥아관음은 일본 시즈오카현 아타미시에 위치한 사찰로, 1940년 중일 전쟁 전몰자를 기리기 위해 마쓰이 이와네 육군 대장이 건립했다. 관음상 건립 후 A급 전범으로 처형된 7명의 유골이 안치되었고, BC급 전범과 기타 전몰자들을 포함하여 총 1,068위의 위패가 모셔져 '작은 야스쿠니 신사'로 비유되기도 한다. 1971년에는 극단주의 단체의 폭파 시도가 있었으며, 현재는 자원봉사자들과 후원 단체의 지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흥아관음은 A급 전범 합사 문제와 역사 인식 논란의 중심에 있으며, 월턴 워커 중장의 사망과 관련된 일화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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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아관음
개요
고아 관음
고아 관음
원어명興亜観音 (고아 간논)
종류불상
재료점토
제작 연도1940년
위치이즈산
제작자
조각가마쓰이 이와네

2. 연혁

1937년 중일 전쟁 당시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 육군 대장이 퇴역 후 1940년 사재를 털어 일·중 양군 전몰 장병을 "원친 평등" 정신으로 기리기 위해 성관음을 건립했다. 관음상은 격전지였던 상하이 다창전 주변 등 마쓰이 이와네가 총사령관으로 지휘했던 전장의 흙과 일본의 흙을 합쳐 만들어졌다.

1940년 2월 24일 시바 조조지의 오시마 텟스이 승정(정토종) 외 각계 명사들을 모아 개안식이 거행되었다. 마쓰이 대장은 근처에 암자를 짓고 매일 아침 관음경을 외웠다. 1948년 12월 23일(아키히토 생일), 극동 국제 군사 재판(도쿄 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처형된 마쓰이 이와네, 도조 히데키 등 7명은 요코하마 구보야마 화장장에서 화장되었다. 유골 대부분은 미군이 처리했지만, 고이소 구니아키변호인 미쓰지 쇼헤이는 흥선사 주지 이치카와 이오에게 상담하여 유골을 회수했다. 1959년 4월 19일 요시다 시게루수상 필체의 "칠사지비"가 세워졌고, 유골은 그 아래에 매장되었다. 1960년 아이치현 하즈군(현 니시오시) 미카네산 "순국 칠사묘"는 흥아관음의 칠사 유골에서 분골하여 매장한 것이다.

현재 흥아관음에는 A급 전범 형사자 7위와 더불어 BC급 전범 형사자 901위, 수용 중 사망한 ABC급 전범 160위를 합한 1,068위의 공양비(대동아 전쟁 순국 형사 1068위 공양비), 대동아 전쟁 전몰 전사 보제비(쇼와 19년)도 건립되어 "작은 야스쿠니 신사"로 비유되기도 한다.

1942년 설립된 "흥아관음 봉찬회"와 1994년 설립된 "흥아관음을 지키는 모임"이 지원 단체였지만, "흥아관음을 지키는 모임"은 회원 고령화로 해산했다. 흥아관음 금전 부정 의혹은 2014년 2월 시즈오카 지방 검찰청 수사 결과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2. 1. 흥아관음상 건립

1940년 마쓰이 이와네 장군은 중일 전쟁에서 전사한 일본군과 중국군 양측의 전몰 장병들을 "원친 평등"(怨親平等, 원수와 친구를 평등하게 대함)의 정신으로 추모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흥아관음상을 건립했다.[1] 이 관음상은 상하이 다창전(大場鎭) 주변 등 격전지의 흙과 일본의 흙을 합쳐 만들어졌다.[2]

1940년 2월 24일, 시바 조조지의 고위 정토종 승려인 오시마 텟수를 비롯한 각계 명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안식(開眼式, 불상에 눈을 넣어 생명을 불어넣는 의식)이 거행되었다.[1][2] 마쓰이 이와네는 근처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 매일 아침 산에 올라 관음경을 외웠다고 한다.[1][2]

2. 2. 전범 합사

1948년 12월 23일, 극동 국제 군사 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처형된 도조 히데키 등 7인의 유해가 요코하마 구보야마 화장장에서 화장되었다. 미군이 대부분의 유해를 처리했으나, 일부가 비밀리에 수습되어 흥아관음에 안치되었다.[2] 1959년 4월 19일,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가 쓴 '칠사지비'가 세워지고, 유해는 그 아래에 매장되었다.[2] 1960년에는 7인의 유해 중 일부가 아이치현 하즈군(현 니시오시) 미카네산의 '순국 칠사묘'에 분골되어 매장되었다.[2]

현재 흥아관음에는 A급 전범 7인 외에도 처형되거나 옥사한 B, C급 전범 1,068위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어 '작은 야스쿠니 신사'로 비유되기도 한다.[2]

2. 3. 폭파 사건

1971년 12월 12일, 극단주의 단체인 동아시아 반일 무장 전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흥아관음, 칠사지비, 대동아 전쟁 순국 형사 1068위 공양비를 폭파하려 시도했다.[1] 칠사지비는 파괴되었지만, 도화선이 짧아 다른 두 곳은 파괴되지 않았다.[2] 파괴된 칠사지비는 이후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복원되었다.[1][2]

3. 지원 및 관리

흥아관음은 일반적인 사찰과 달리 묘지나 단가 제도에 따른 신도가 없어, 방문객의 헌금, 자원봉사자,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유지된다. 1942년 마쓰이 이와네가 초대 회장으로 설립한 '흥아관음 봉찬회'가 이러한 지원 단체 중 하나이며, 주로 아타미 지역 신도들이 유지하고 있다.

1994년 '흥아관음을 지키는 모임'이 설립되었으나, 일부 이사진의 스캔들로 인해 2011년 3월 해산되었다.[1] 이 단체는 육군사관학교 58기생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나, 회원 고령화 등으로 해산되었다. 2014년 2월 시즈오카 지방 검찰청 수사 결과, 흥아관음의 금전 부정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헤이세이 10년부터 이타미 야스아키(구칭 하야카와 야스히코)가 전 주지 묘토쿠니의 양자가 되어 사찰 사무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묘토쿠의 여동생 묘조가 야스아키의 보좌를 받으며 주지를 맡고 있다.

4. 논란

흥아관음은 A급 전범 합사와 마쓰이 이와네의 "원친 평등" 정신으로 인해, 일본의 전쟁 책임을 부정하고 침략 전쟁을 미화하는 장소로 인식될 수 있다. 특히 한국 전쟁 등 전쟁 피해국 입장에서는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화해 노력을 의심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4. 1. A급 전범 합사와 역사 인식 문제

1948년 12월 23일, 도조 히데키를 포함한 7명의 A급 전범은 극동 국제 군사 재판에서 처형된 후 요코하마의 구보야마 화장장에서 화장되었다.[1] 유해는 미군이 처리했지만, 일부가 비밀리에 수집되어 1949년 5월 3일 마쓰이 이와네와 연관이 있는 흥아관음에 안치되었다.[1] 1959년 4월 19일, 요시다 시게루수상이 직접 쓴 "칠사지비"가 세워졌고, 유해는 그 아래에 매장되었다.[1] 1960년에는 아이치현하즈군(현 니시오시) 미카네산에 있는 "순국 칠사묘"에 일부 유골이 분골되어 매장되었다.[1]

흥아관음에는 A급 전범 외에도 처형되거나 옥사한 B급 및 C급 전범 1,068위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어 "작은 야스쿠니 신사"로 비유되기도 한다.[1] 이는 1937년 중일 전쟁 당시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이었던 마쓰이 이와네가 1940년, 양국 전몰 장병을 "원친 평등"으로 기리기 위해 사재를 털어 성관음을 건립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관음상은 격전지였던 상하이 다창전 주변 등 마쓰이 이와네가 지휘했던 전장의 흙과 일본의 흙을 합쳐 만들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흥아관음은 일본의 전쟁 책임을 부정하고 침략 전쟁을 미화하는 장소로 인식될 수 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전쟁 피해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시설이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화해 노력을 의심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4. 2. 월턴 워커 중장 사망 관련

월턴 워커 중장은 1948년 8월, 로버트 아이켈버거의 후임으로 일본 점령군인 제8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7명의 교수형, 화장, 유골 처리에 관련된 집행 책임을 맡았다.[2] 이후 한국 전쟁에서 미군 사령관으로 참전했다.[2] 도조 히데키 등의 교수형 집행일로부터 정확히 2년 후(3주기)인 1950년 12월 23일 심야, 워커 중장은 제1선 시찰 중 자신이 운전하던 지프의 조작 실수로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2] 워커 중장의 사망 시각까지 일치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이를 7인의 저주라고 여기기도 했다.[2] 워커 중장의 부관은 아군인 한국 장교의 조언을 받아 흥아관음에 7인의 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배했다.[2] 이 소식을 들은 이타미 시노부 렌시는 "원친평등" 정신에 따라 워커 대장(전사 후 진급)의 영혼을 정중하게 공양했다.[2]

5. 교통

JR 아타미역 또는 유가와라역에서 이즈 도카이 버스를 타고 '코아 칸논'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1]

참조

[1] 뉴스 Liberty Times http://ns2.libertyti[...]
[2] 뉴스 【戦後70年~東京裁判とGHQ(1)】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1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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