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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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 다테역 - 후쿠시마현 다테시에 있는 다테역은 JR 동일본 도호쿠 본선의 역으로, 2면 2선의 지상역이며, 나가오카역으로 개업하여 역명 변경 후 도호쿠의 역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인명
실존 인물
- 다테 마사무네 - 다테 마사무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이자 다이묘이며 센다이 번의 초대 번주로, '독안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오슈 지역을 장악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복속, 임진왜란과 오사카 전투에 참전, 센다이 번 건설과 스페인과의 통상 추진, 문화 예술에도 힘썼다.
- 다테 무네나리 - 다테 무네나리는 에도 시대 우와지마 번의 번주로서 공무합체를 지지하며 막말 정치 활동을 펼쳤고,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에서 활동하며 외교에 참여했으며, 번주 시절에는 식산흥업을 중심으로 번정 개혁을 추진하는 등 우와지마 번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다.
- 다테 요시쿠니 - 에도 시대 센다이 번의 마지막 번주인 다테 요시쿠니는 덴포 기근과 에조 경비로 재정난을 겪었고, 보신 전쟁에서 오우에쓰 열판 동맹의 맹주로 활동했으나 패배 후 영지를 잃고 은거하다 사망했다.
- 다테 다다무네 - 다테 마사무네의 차남이자 센다이 번 제2대 번주인 다테 다다무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와 결혼 후 관위와 성을 받았으며, 부패 방지, 행정 효율화, 재정 안정, 농업 생산성 향상, 센다이 번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 다테 쓰나무네 - 에도 시대 센다이 번의 3대 번주 다테 쓰나무네는 선대 번주의 아들로 태어나 후계자가 되었지만, 방탕한 생활로 인해 젊은 나이에 은거하였고, 은거 후에는 예술가로 활동하며 다테 소동의 원인이 되었다.
- 다테 요시무라 - 에도 시대 센다이 번의 6대 번주인 다테 요시무라는 양현당 창립과 번 재정 재건에 기여했으며, 와카와 서화에도 능통했던 예술가이자 겐분 이혼 사건에서 강직함을 보여준 인물이다.
- 다테 시게자네 - 다테 시게자네는 다테 마사무네의 가신으로 오슈 평정에 공을 세운 무장이며, 니혼마쓰성주에 임명되었고, 임진왜란 참전 후 마사무네와의 불화로 출분했으나 복귀하여 깊은 신뢰를 받았으며, 와타리 다테씨 당주로서 영지 개발과 농업 진흥에 힘썼다.
- 다테 무네카쓰
- 다테 무라요리 - 다테 무라요리는 미즈사와 다테 가문을 계승하여 나카쓰야마 번의 번주가 되었으나 도키마치 사건으로 영지를 몰수당한 후 칩거하다가 말년에 사면되었고, 다테 무라카즈의 아버지이다.
- 다테 쓰나무라 - 다테 쓰나무라는 에도 시대 센다이 번의 4대 번주로, 어린 나이에 다이묘가 되어 도미타 시게쓰구의 보좌를 받아 치수 사업, 유교 장려, 사찰 건립 등 업적을 남겼으나 잦은 공사로 번 재정이 악화되어 은거하였다.
- 다테 무라카게 - 다테 무라카게는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8대 당주로서, 57년간 미즈사와 번을 통치하며 성 수리 및 화재 방지 대책을 세우고 재정 안정을 위해 노력했으나, 잦은 화재와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 다테 무네카게 - 다테 무네카게는 에도 시대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당주로, 에도 막부의 증인을 맡아 원복을 치르고 다테 쓰나무네로부터 이름을 받았으며, 가독 상속 후 다이묘가 되었으나 영지 분쟁 개입 후 급사하여 다테 무라카즈가 뒤를 이었다.
- 다테 무네히라 - 다테 무네히라는 에도 시대 말기 미즈사와 번의 다이묘이자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11대 당주로서, 가독 상속 후 미즈사와 번의 재정 안정과 학문 장려에 힘썼으며 쇄국 정책에 반대하는 개방적인 사고를 보였다.
- 다테 무라노리 - 에도 시대 미즈사와 읍주였던 다테 무라노리는 다테 무라토시의 장남으로 태어나 2만 1천 석 규모의 영지를 계승하고 무라요시로 개명했으나 25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장남 다테 무라요리가 가독을 이었다.
- 다테 기미코 - 다테 기미코는 1990년대 세계 랭킹 4위까지 올랐던 일본의 은퇴한 프로 테니스 선수로, 한 차례 은퇴 후 복귀하여 활동했으며, 현재는 빵집을 운영하고 "라이징 샷"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 다테 무라토시 - 다테 무라토시는 에도 시대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7대 당주이자 요시다 번의 8대 번주로, 다테 무라카게의 아들이며 다테 무라아키의 양자가 되었으나 26세에 요절했다.
- 다테 히데무네 - 다테 마사무네의 서자이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였던 다테 히데무네는 오사카 전투 공으로 이요 우와지마 초대 번주가 되었으며, 번정 개혁을 통해 우와지마 번의 경제적 성장과 사회적 안정에 기여했으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 다테 구니나가 - 다테 구니나가는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13대 당주이자 미즈사와 읍주로서, 에도 막부 말기 센다이 번의 중요 인물이었으며, 번의 지위 유지, 쇼군 알현, 구호 활동, 가신 교육 등에 힘썼다.
- 다테 무네나오 - 다테 무네나오는 에도 시대 미즈사와 영지를 다스린 다이묘로, 가신 등용과 영지 개발에 힘썼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그의 아들이 가독을 이었다.
- 다테 무네무라 (1718년) - 다테 무네무라는 센다이 번주 다테 요시무라의 아들이자 1743년부터 1756년까지 센다이 번의 4대 번주로 재임하며, 도쿠가와 요시무네로부터 이름과 기슈 번주의 딸을 아내로 받았고, 호소카와 가문 단절을 막는 데 기여했으며, 기타하라 킨페이 직소 사건을 겪었고, 39세에 사망하여 아들이 가문을 이었다.
- 다테 무네모토 - 다테 무네모토는 다테 요시쿠니의 아들이자 센다이 번의 마지막 번주로, 어린 나이에 가독을 잇고 메이지 유신 후 센다이 현 지사를 지냈으며, 백작에 서임되어 종2위까지 올랐다.
- 다테 나리요시 - 다테 나리요시는 에도 시대 센다이 번 11대 번주로, 다테 나리무네의 양자가 되어 번주가 되었으나 급사하여 후계자 문제가 재발, 사촌 다테 나리카니가 뒤를 이었다.
- 다테 무라요시
- 다테 나리무라 - 다테 나리무라는 다테 시게무라의 서자로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로부터 이름을 받아 다이묘가 되었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센다이 번에 후계자 분쟁을 일으켰다.
- 다테 무네카쓰 (에도 시대) - 다테 무네카쓰는 다테 마사무네의 아들이자 이치노세키 번주로, 센다이 번 정치에 개입하여 다테 소동을 일으키고 유배된 후 그의 삶과 무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 다테 무라요시 (1772년) - 다테 무라요시는 에도 시대 이치노세키 번 미즈사와 영주로, 센다이 번의 횡포에 맞선 미즈사와 어망 사건을 해결하며 정치력을 발휘했고, 1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다테 나리무네 - 에도 시대 센다이 번의 9대 번주인 다테 나리무네는 선대 번주의 아들로 태어나 가독을 상속받았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양자에게 가문을 잇게 하였다.
- 다테 시게무라 - 다테 시게무라는 에도 시대 센다이 번의 7대 번주로, 재임 기간 동안 기근, 재정 악화, 가신 간 갈등을 겪었으며 엽관 운동에 몰두하여 번의 재정을 악화시키고 철전 주조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등 정치적, 재정적 문제 해결에 미흡했다.
- 다테 무라야스 - 다테 무라야스는 미즈사와 번의 다이묘로서 센다이 번과 관계를 맺고 번정을 대행했으며, 1775년 출생, 1787년 가문 상속, 1812년 쇼군 배알 후 번정 참여, 1820년 은거 후 가독 상속, 1830년 사망했다.
- 다테 나리쿠니 - 에도 시대 센다이 번의 12대 번주인 다테 나리쿠니는 이달 가문 양자로서 번주가 되어 기근 대비 정책과 번정 개혁을 추진했으나, 잦은 재해와 사치스러운 생활로 비판받았으며, 학문과 문학 장려로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다테 무네아쓰 - 우와지마 번주 아들로 태어나 센다이 번주 양자가 되었으나 보신 전쟁으로 폐적된 다테 무네아쓰는 메이지 유신 후 지번사와 영국 유학을 거쳐 귀족원 남작 의원을 역임한 메이지 시대의 화족이자 남작이다.
- 다테 무네에 - 다테 무네에는 센다이 번의 9대 번주이자 메이지 시대의 정치인으로, 막부 말 혼란 속에서 센다이 번의 근대화를 이끌며 메이지 유신 이후 귀족원 의원을 역임했다.
- 다테 무네타다 - 다테 무네타다는 에도 시대 우와지마 번의 7대 번주로서, 번의 재정 개혁을 성공시키고 메이지 시대까지 장수한 인물이다.
- 다테 지카무네 - 다테 지카무네는 에도 시대 센다이 번의 10대 번주로, 쇼군과의 혼인으로 막부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간세이 백성 잇키와 러시아의 남하 대비 등의 사건을 겪었으며, 갑작스러운 죽음과 통치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다.
- 다테 마사미치 - 다테 마사미치는 센고쿠 시대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활동한 다테 테루무네의 차남이자 다테 마사무네의 동생으로, 아시나 씨 후계자 후보였으나 1590년 사망하여 사인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으며, 에도 시대 추방령 이후 복권되어 대중문화에서 비극적 인물로 묘사된다.
- 다테 무라토요 - 다테 무라토요는 에도 시대 이요 요시다 번의 번주로, 아코 사건 당시 아사노 나가노리 체포에 가담했으며, 재임 시절 교호 대기근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칙사 접대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칭송받았다.
- 다테 무라나가
- 다테 구니무네 - 다테 구니무네는 다테 요시쿠니의 아들로 태어나 센다이 번 13대 번주의 아들이 되었으며, 종4위 서훈과 목배 1조 서훈을 받았고, 루스 코바에를 부인으로 맞이하여 5남 4녀를 두었으며, 그의 장남 다테 오키무네는 다테 가의 32대 당주가 되었다.
- 다테 무네토시 - 이요 우와지마 번 제2대 번주
- 다테 무라토모
- 다테 무네즈미 - 다테 무네즈미는 에도 시대 무장으로, 우와지마 번주 다테 히데무네의 아들이자 1657년 요시다 번을 세운 초대 번주이며, 야마다 소동, 우와지마 번과의 대립, 다테 무네오키 가족을 돌보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 다테 미치히사 - 다테 미치히사는 일본의 축구 선수 출신 지도자로, 야마하 모터스, 주빌로 이와타, 가시와 레이솔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가시와 레이솔과 시미즈 에스펄스에서 유소년 육성에 기여했다.
- 다테 무네아키 - 다테 무네아키는 후작 다테 무네노부의 양자로서 후작 작위를 습작한 일본의 화족이자 관료, 기업인으로, 도쿄 제국 대학 졸업 후 대장성에 입성하여 관료 생활을 하였고, 귀족원 의원, 기업 임원 등을 지냈으며 우와지마성을 기증하기도 했다.
가공의 인물
- 다테 쿄코 - 1996년 호리프로에서 개발된 3D CG 가상 아이돌 다테 쿄코는 "DK-96"이라는 코드명으로 데뷔하여 일본과 한국에서 활동했으며, 이후 버전 업그레이드와 세컨드 라이프 아바타 활동, 그리고 "다테 쿄코의 딸" 설정의 버츄얼 유튜버 다테 아야노 공개를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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