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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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동원은 대한민국 야구 선수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프로 선수로 활약했다. 경남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를 거치며 아마추어 야구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거두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선수협 결성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를 거쳐 은퇴 후에는 지도자, 해설위원, 시의원 등으로 활동했다. 2011년 대장암으로 사망했으며, 롯데 자이언츠는 그의 등번호 1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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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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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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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최동원 |
한자 | 崔東原 |
로마자 표기 | Choe Dongwon |
일본어 표기 | チェ・ドンウォン |
출생일 | 1958년 5월 24일 |
사망일 | 2011년 9월 14일 |
사망 장소 | 경기도 고양시 |
국적 | 대한민국 |
출생지 | 부산광역시 |
신장 | 179cm |
체중 | 95kg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포지션 | 투수 |
프로 데뷔 | 1983년 |
마지막 출장 | 1990년 |
선수 경력 | |
소속팀 | 롯데 자이언츠 (1983년–1988년) 삼성 라이온즈 (1989년–1990년) |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1차 10순위 (롯데 자이언츠) |
첫 출장 (실업) | 1981년 3월 16일 인천 대 한일은행전 |
첫 출장 (KBO) | 1983년 4월 3일 구덕 대 삼미전 |
마지막 경기 (KBO) | 1990년 10월 24일 잠실 대 LG전 |
아마추어 경력 | 경남고등학교 연세대학교 한국전력공사 |
코치/감독 경력 | |
소속팀 | 한화 이글스 (2001년, 2005년–2008년) |
주요 기록 | |
승패 | 103승 74패 |
세이브 | 26 |
평균 자책점 | 2.46 |
탈삼진 | 1019 |
KBO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 | 223 (1984년) |
한국시리즈 한 경기 최다 승리 투수 | 4승 (1984년) |
수상 내역 | |
KBO MVP | 1984년 |
KBO 골든글러브 | 1984년 |
한국시리즈 우승 | 1984년 |
실업 다승왕 | 1981년 |
실업 신인왕 | 1981년 |
실업 MVP | 1981년 |
KBO 다승왕 | 1984년 |
KBO 탈삼진왕 | 1984년, 1987년 |
국가대표 경력 | |
야구 월드컵 | 1978 로마 (동메달) 1980 도쿄 (은메달) 1982 서울 (금메달) |
인터콘티넨털컵 | 1977 니카라과 (금메달) |
월드 게임 | 1981 샌타클래라 (은메달) |
기타 | |
영구 결번 | 롯데 자이언츠 11번 |
2. 선수 시절
경남고등학교 시절부터 전국구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다.[7][10] 2학년 때 경북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7] 바로 다음 날 선린상고와의 경기에서도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이어가는 뛰어난 투구를 선보였다.[7] 3학년 때는 청룡기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 김성한의 군산상업고등학교를 상대로 9이닝 동안 20개의 탈삼진을 잡고 완봉승을 거두는 등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1]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77학번)한 후에도[34] 에이스로 활약하며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977년 니카라과 인터콘티넨털컵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첫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3] 한때 고려대 진학설이 있었지만[34] 중앙정보부의 강압에 의해 취소됐고 고향[35] 동아대 진학을 원했으나 동아대 측으로부터 거부받았으며 군대라도 빨리 다녀오기 위해 육군 경리단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자 고위 관계자의 공작에 의해 연세대로 진학했다.
1981년 8월에는 1981 인터컨티넨탈컵에서 한국 대표로 출전하여 2승 0패, 평균자책점 1.32를 기록했고, 예선 라운드에서 캐나다를 상대로 9회말까지 11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퍼펙트 게임을 이어갔으나, 안타를 허용했다.[7] 결국 대회 최우수 투수로 선정되었다. 이 대회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후, 토론토 블루제이스(Toronto Blue Jays)는 최동원에게 큰 관심을 보이며 곧바로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7] 1981년, 한국 야구 역사상 최초로 메이저리그(토론토 블루제이스(Toronto Blue Jays))로부터 오퍼를 받았으나, 병역을 마치지 않았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해야 했다.[10]
2. 1. 아마추어 시절
최동원은 경남고등학교 시절부터 전국구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다.[7][10] 2학년 때 경북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7] 바로 다음 날 선린상고와의 경기에서도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이어가는 뛰어난 투구를 선보였다.[7] 3학년 때는 청룡기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 김성한의 군산상업고등학교를 상대로 9이닝 동안 20개의 탈삼진을 잡고 완봉승을 거두는 등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1]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77학번)한 후에도[34] 에이스로 활약하며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977년 니카라과 인터콘티넨털컵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첫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3] 한때 고려대 진학설이 있었지만[34] 중앙정보부의 강압에 의해 취소됐고 고향[35] 동아대 진학을 원했으나 동아대 측으로부터 거부받았으며 군대라도 빨리 다녀오기 위해 육군 경리단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자 고위 관계자의 공작에 의해 연세대로 진학했다.
1981년 8월에는 1981 인터컨티넨탈컵에서 한국 대표로 출전하여 2승 0패, 평균자책점 1.32를 기록했고, 예선 라운드에서 캐나다를 상대로 9회말까지 11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퍼펙트 게임을 이어갔으나, 안타를 허용했다.[7] 결국 대회 최우수 투수로 선정되었다. 이 대회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후, 토론토 블루제이스(Toronto Blue Jays)는 최동원에게 큰 관심을 보이며 곧바로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7] 1981년, 한국 야구 역사상 최초로 메이저리그(토론토 블루제이스(Toronto Blue Jays))로부터 오퍼를 받았으나, 병역을 마치지 않았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해야 했다.[10]
2. 2. 프로 야구 선수 시절
2. 2. 1. 롯데 자이언츠 시절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36] 데뷔 첫해에는 9승 16패, 평균자책점 2.89, 148탈삼진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다소 아쉬운 성적이었다. 등번호 11번을 달고 9경기 완투와 1경기 완봉승을 거두었으며, 평균자책점과 삼진 부문에서 4위에 올랐다.하지만 이듬해인 1984년, 최동원은 27승 13패, 평균자책점 2.40, 223탈삼진을 기록하며 롯데 자이언츠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5] 특히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1패)을 거두며 롯데 자이언츠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1차전 완봉승, 3차전 완투승, 5차전 완투패, 6차전 구원승, 7차전 완투승을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역사상 유일한 4승 투수로 기록되었다.[5] 이는 철완 최동원의 위대한 업적이었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3년 연속 10승 이상, 200이닝 이상을 투구하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특히 1986년에는 19승 14패, 평균자책점 1.55, 208탈삼진을 기록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6]
1987년 5월 16일,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선동열과의 맞대결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힌다. 두 투수는 연장 15회까지 완투하며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최동원은 209개의 공을, 선동열은 232개의 공을 던졌다.
2. 2. 2. 삼성 라이온즈 시절
1988년 말 선수협 파동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김시진 등을 상대로 3:4 트레이드로 이적했으며, 트레이드에 반발하여 1989년 후반에서야 돌아왔다.[7] (이 트레이드가 삼성, 롯데 팬들의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고 한다.)1989년 시즌을 앞두고 최동원은 김용철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로 장효조와 김시진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다. 이적 후 그의 커리어는 급격히 하락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그의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라이온즈에서 2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7승 7패, 평균자책점 4.50을 기록했다.[7]
최동원은 1990년 5월 20일 대구에서 LG 트윈스의 이광은을 5회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1000탈삼진 클럽에 가입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1990년 시즌 후 최동원은 선수로서의 은퇴를 선언했다.
3. 선수협 결성 주도
1988년 9월 13일, 최동원은 대전 유성호텔에서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선수협) 결성을 주도했다.[45][46][47][48] 해태 타이거즈 투수 김대현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면서 선수 복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45][46][47][48]
당시 1억 원의 연봉을 받던 최동원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어려운 동료들을 돕고자 선수협 결성을 추진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구단들의 강한 반발로 선수협 결성은 실패로 돌아갔다.[45][46][47][48]
이후 최동원은 1988년 11월 투수 오명록, 포수 김성현과 함께 삼성 투수 김시진, 전용권, 내야수 오대석, 외야수 허규옥을 상대로 한 3:4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45] 1990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에서 뛴 그는 1991년 시즌 전, 32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한편, 최동원의 선수협 법률 자문을 맡았던 변호사가 문재인이었으며, 문재인은 2012년 이러한 내막을 트위터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49][50]
4. 은퇴 이후
은퇴 후 1991년 최동원은 민주당 후보로 부산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38] '건강한 사회를 향한 새 정치의 강속구'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민자당의 공천을 뿌리치고 출마한 결과였다. 이후 뉴욕 메츠 등 미국 메이저리그 팀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으며,[39] SBS 시트콤 "형사들"에 출연하여 연기를 하기도 했다.
2001년 한화 이글스 1군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나, 성적 부진으로 이광권 코치와 보직을 맞바꿔 2군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40] 그해 말 팀을 떠난 뒤 2003년 KBS 스카이 스포츠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05년 다시 한화 이글스 코치로 복귀했다. 2007년부터는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을 맡아 2년 동안 유망주들을 가르쳤으며, 류현진을 발굴하기도 했다. 2008 시즌 후 한화 이글스에서 물러난 뒤, 2009년부터 KBO 경기감독위원으로 활동했다.[43]
연 도 | 소 속 | 나 이 | 승 리 | 패 전 | 승 률 | 평 자 책 | 출 장 | 선 발 | 완 투 | 완 봉 | 세 이 브 | 홀 드 | 이 닝 | 피 안 타 | 피 홈 런 | 볼 넷 | 고 4 | 탈 삼 진 | 몸 맞 | 보 크 | 폭 투 | 실 점 | 자 책 | 타 자 수 | W H I P | |
---|---|---|---|---|---|---|---|---|---|---|---|---|---|---|---|---|---|---|---|---|---|---|---|---|---|---|
1983 | 롯데 | 26 | 9 | 16 | .360 | 2.89 | 38 | 21 | 16 | 1 | 4 | 0 | 208.2 | 202 | 17 | 51 | 2 | 148 | 8 | 0 | 3 | 89 | 67 | 863 | 1.21 | |
1984 | 27 | 27 | 13 | .675 | 2.40 | 51 | 20 | 14 | 1 | 6 | 0 | 284.2 | 229 | 18 | 68 | 1 | 14 | 0 | 3 | 91 | 76 | 1,132 | 1.04 | |||
1985 | 28 | 20 | 9 | .690 | 1.92 | 42 | 17 | 14 | 4 | 8 | 0 | 225.0 | 170 | 7 | 41 | 2 | 161 | 8 | 1 | 3 | 60 | 48 | 865 | 0.94 | ||
1986 | 29 | 19 | 14 | .576 | 1.55 | 39 | 21 | 17 | 4 | 2 | 0 | 267.0 | 204 | 7 | 55 | 5 | 208 | 6 | 0 | 2 | 60 | 46 | 1,039 | 0.97 | ||
1987 | 30 | 14 | 12 | .538 | 2.81 | 32 | 22 | 15 | 4 | 2 | 0 | 224.0 | 218 | 6 | 61 | 2 | 163 | 7 | 0 | 3 | 80 | 70 | 920 | 1.25 | ||
1988 | 31 | 7 | 3 | .700 | 2.05 | 16 | 4 | 3 | 1 | 3 | 0 | 83.1 | 77 | 4 | 24 | 3 | 83 | 1 | 1 | 1 | 24 | 19 | 349 | 1.21 | ||
1989 | 삼성 | 32 | 1 | 2 | .333 | 2.10 | 8 | 4 | 0 | 0 | 0 | 0 | 30.0 | 36 | 2 | 18 | 0 | 9 | 1 | 0 | 1 | 12 | 7 | 138 | 1.80 | |
1990 | 33 | 6 | 5 | .545 | 5.28 | 22 | 15 | 2 | 0 | 1 | 0 | 92.0 | 113 | 9 | 54 | 0 | 24 | 2 | 0 | 2 | 62 | 54 | 424 | 1.82 | ||
KBO 통산: 8년 | 103 | 74 | .582 | 2.46 | 248 | 124 | 81 | 15 | 26 | 0 | 1414.2 | 1249 | 70 | 372 | 15 | 1019 | 47 | 2 | 18 | 478 | 387 | 5,730 | 1.15 |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이다.
1984년에는 단일 시즌 최다승 2위(27승), 최다 이닝 2위(284.2이닝), 최다 탈삼진 1위(223개)를 기록했다. 또한 역대 유일하게 2년 연속 200이닝-20승(1984-1985), 2년 연속 200이닝-1점대 평균자책점(1985-1986), 2년 연속 200이닝-1점대 FIP(1985-1986), 2년 연속 200이닝-0점대 WHIP(1985-1986)을 달성했다. 5년 연속 200이닝-14완투-2점대 이하 평균자책점(1983-1987), 5년 연속 200이닝-14완투-2점대 이하 FIP(1983-1987) 기록은 KBO 리그 역사상 유일하다.
통산 400탈삼진(1985), 500탈삼진(1985), 600탈삼진(1986), 700탈삼진(1986), 800탈삼진(1987), 900탈삼진(1987), 1000탈삼진(1990)을 KBO 리그 최초로 달성했다. 또한, KBO 리그 최초로 통산 100승-1000탈삼진(1990), 70완투(1987), 80완투(1990), 10완봉(1986), 15완봉(1988)을 기록했다.
최동원은 1984년에 KBO 단일 시즌 최다 승 2위(27승), 최다 이닝 2위(284.2이닝), 최다 탈삼진 1위(223개)를 기록했다. 1986년에는 단일 시즌 최다 이닝 4위(267이닝)를 기록했다.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거두며 단일 한국시리즈 최다 승, 40이닝을 투구하며 단일 한국시리즈 최다 이닝 기록을 세웠다. 또한 단일 한국시리즈 최다 선발 등판(4번), 최다 완투(4완투), 최다 선발승(3선발승), 최다 완투승(3완투승), 최다 탈삼진(35탈삼진)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선발 등판한 4경기에서 연속 완투, 한국시리즈 최초 완봉승, 한국시리즈 최초 선발 전원 탈삼진 기록을 세웠다.
8. 1. KBO 통산 기록
최동원은 KBO 리그 통산 248경기에 출장하여 103승 74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 1414.2이닝, 1019탈삼진을 기록했다. 통산 평균자책점 2위, 통산 완투 2위, 통산 완투율 1위에 올랐다.연 도 | 소 속 | 나 이 | 승 리 | 패 전 | 승 률 | 평 자 책 | 출 장 | 선 발 | 완 투 | 완 봉 | 세 이 브 | 홀 드 | 이 닝 | 피 안 타 | 피 홈 런 | 볼 넷 | 고 4 | 탈 삼 진 | 몸 맞 | 보 크 | 폭 투 | 실 점 | 자 책 | 타 자 수 | W H I P | |
---|---|---|---|---|---|---|---|---|---|---|---|---|---|---|---|---|---|---|---|---|---|---|---|---|---|---|
1983 | 롯데 | 26 | 9 | 16 | .360 | 2.89 | 38 | 21 | 16 | 1 | 4 | 0 | 208.2 | 202 | 17 | 51 | 2 | 148 | 8 | 0 | 3 | 89 | 67 | 863 | 1.21 | |
1984 | 27 | 27 | 13 | .675 | 2.40 | 51 | 20 | 14 | 1 | 6 | 0 | 284.2 | 229 | 18 | 68 | 1 | 14 | 0 | 3 | 91 | 76 | 1,132 | 1.04 | |||
1985 | 28 | 20 | 9 | .690 | 1.92 | 42 | 17 | 14 | 4 | 8 | 0 | 225.0 | 170 | 7 | 41 | 2 | 161 | 8 | 1 | 3 | 60 | 48 | 865 | 0.94 | ||
1986 | 29 | 19 | 14 | .576 | 1.55 | 39 | 21 | 17 | 4 | 2 | 0 | 267.0 | 204 | 7 | 55 | 5 | 208 | 6 | 0 | 2 | 60 | 46 | 1,039 | 0.97 | ||
1987 | 30 | 14 | 12 | .538 | 2.81 | 32 | 22 | 15 | 4 | 2 | 0 | 224.0 | 218 | 6 | 61 | 2 | 163 | 7 | 0 | 3 | 80 | 70 | 920 | 1.25 | ||
1988 | 31 | 7 | 3 | .700 | 2.05 | 16 | 4 | 3 | 1 | 3 | 0 | 83.1 | 77 | 4 | 24 | 3 | 83 | 1 | 1 | 1 | 24 | 19 | 349 | 1.21 | ||
1989 | 삼성 | 32 | 1 | 2 | .333 | 2.10 | 8 | 4 | 0 | 0 | 0 | 0 | 30.0 | 36 | 2 | 18 | 0 | 9 | 1 | 0 | 1 | 12 | 7 | 138 | 1.80 | |
1990 | 33 | 6 | 5 | .545 | 5.28 | 22 | 15 | 2 | 0 | 1 | 0 | 92.0 | 113 | 9 | 54 | 0 | 24 | 2 | 0 | 2 | 62 | 54 | 424 | 1.82 | ||
KBO 통산: 8년 | 103 | 74 | .582 | 2.46 | 248 | 124 | 81 | 15 | 26 | 0 | 1414.2 | 1249 | 70 | 372 | 15 | 1019 | 47 | 2 | 18 | 478 | 387 | 5,730 | 1.15 |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이다.
1984년에는 단일 시즌 최다승 2위(27승), 최다 이닝 2위(284.2이닝), 최다 탈삼진 1위(223개)를 기록했다. 또한 역대 유일하게 2년 연속 200이닝-20승(1984-1985), 2년 연속 200이닝-1점대 평균자책점(1985-1986), 2년 연속 200이닝-1점대 FIP(1985-1986), 2년 연속 200이닝-0점대 WHIP(1985-1986)을 달성했다. 5년 연속 200이닝-14완투-2점대 이하 평균자책점(1983-1987), 5년 연속 200이닝-14완투-2점대 이하 FIP(1983-1987) 기록은 KBO 리그 역사상 유일하다.
통산 400탈삼진(1985), 500탈삼진(1985), 600탈삼진(1986), 700탈삼진(1986), 800탈삼진(1987), 900탈삼진(1987), 1000탈삼진(1990)을 KBO 리그 최초로 달성했다. 또한, KBO 리그 최초로 통산 100승-1000탈삼진(1990), 70완투(1987), 80완투(1990), 10완봉(1986), 15완봉(1988)을 기록했다.
8. 2. KBO 단일 시즌 기록
최동원은 1984년에 KBO 단일 시즌 최다 승 2위(27승), 최다 이닝 2위(284.2이닝), 최다 탈삼진 1위(223개)를 기록했다. 1986년에는 단일 시즌 최다 이닝 4위(267이닝)를 기록했다.8. 3. 한국시리즈 기록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거두며 단일 한국시리즈 최다 승, 40이닝을 투구하며 단일 한국시리즈 최다 이닝 기록을 세웠다. 또한 단일 한국시리즈 최다 선발 등판(4번), 최다 완투(4완투), 최다 선발승(3선발승), 최다 완투승(3완투승), 최다 탈삼진(35탈삼진)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선발 등판한 4경기에서 연속 완투, 한국시리즈 최초 완봉승, 한국시리즈 최초 선발 전원 탈삼진 기록을 세웠다.9. 등번호
최동원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1983년부터 1988년까지 등번호 11번을 달았으며, 이는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2001년과 2005년부터 2008년까지는 한화 이글스 코치로 활동하며 75번을 등번호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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