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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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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국회의사당은 일본의 입법부 건물로, 1881년 국회 개설 칙어 발표 이후 여러 차례의 가의사당 건설과 화재, 설계를 거쳐 1936년 현재의 건물이 완공되었다. 중앙탑을 포함하여 지상 9층 규모의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로, 3종류의 화강암과 다양한 석재를 사용하여 건설되었다. 내부에는 중앙 현관, 중앙 홀, 고쿠쇼(천황 휴게실), 중의원 및 참의원 회의장 등이 있으며, 국회의원과 관계자 외에도 일반인 견학이 가능하다. 국회의사당은 일본 정치의 중심지로서, 다양한 디자인에 입법부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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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일본)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국회의사당
원어 이름国会議事堂 (Kokkai-gijidō)
영어 이름National Diet Building
이전 이름帝国議会議事堂
위치도쿄도 치요다구 나가타초 1초메 7번지 1호
주소100-0014
좌표35°40′33.2″N 139°44′41.9″E
관할 기관일본 국회
건축 양식아르 데코
사용 용도국회 의사당 (1947년 - 현재)
이전 사용 용도제국 의회 의사당 (1936년 - 1947년)
이미지
국회의사당 본관 (2019년 촬영)
국회의사당 본관 (2019년 촬영)
건축 정보
설계자대장성 임시의원건축국
구조 형식철골 철근 콘크리트조
부지 면적103,007 m²
건축 면적13,356 m²
연면적53,464 m²
층수지상 3층, 지하 1층, 중앙탑 4층 (탑 최상부 9층)
높이양 날개 20.91 m, 중앙탑 65.45 m
착공1920년 1월 30일 (다이쇼 9년)
완공1936년 11월 7일 (쇼와 11년)
대중교통 정보
대중교통국회의사당앞역
나가타초역
기타
최고 높이 시작1936년
최고 높이 종료1964년
이전 최고 높이도지의 오층탑 (교토시)
다음 최고 높이호텔 뉴 오타니 도쿄

2. 역사

국회의사당 건립은 일본 제국이 발흥하던 1880년대에 처음 구상되었다. 그러나 의사당 건물 형태에 대한 합의를 보지 못해, 일본 의회는 약 50여 년간 임시 건물에서 회의를 열어야 했다.

1881년 메이지 천황이 국회 개설을 선포하고, 1885년 내각 제도가 발족되면서 의사당 건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1886년에는 임시건축국이 설립되어 독일 건축가를 초빙, 관청 집중 계획과 함께 의사당 설계가 이루어졌다. 1887년 의사당 건축 예정지가 현재 위치인 도쿄 고지마치구 나가타초 1정목(현 도쿄도 지요다구 나가타초 1정목)으로 결정되었지만, 막대한 경비 문제와 제국 의회 개설의 시급성 때문에 계획은 중단되었다.

이에 따라 임시 가의사당이 고지마치구 나이코초 2정목(현 지요다구 가스미가세키 1정목, 현재 경제산업성 부지)에 건설되었다. 독일인 건축가 아돌프 슈테히뮐러와 요시이 시게노리의 설계로 1890년 11월 24일 완공된 제1차 가의사당은, 1891년 1월 20일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전소되었다.[6][7] 이후 요시이 시게노리 등이 협력하여 제1차 가의사당과 유사한 외관에 방화벽을 추가한 제2차 가의사당을 1891년 10월 30일에 완공하였다.[9]

1894년 청일전쟁 발발로 대본영이 히로시마로 이동하면서, 히로시마 임시 가의사당이 약 보름 만에 건설되어 제7회 제국의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는 '''도쿄도(도쿄부) 이외에서 제국의회(국회)가 개회된 유일한 사례'''이다.

러일전쟁 이후 1906년 가의사당 개수 및 본격적인 의사당 건설이 결정되었지만, 다이쇼 정변으로 시행이 연기되었다. 1918년 신의사당 설계 공모가 시작되었고, 1919년 궁내성 기술 와타나베 후쿠조의 안이 1등으로 선정되었다.[10] 1920년 하라 다카시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이 열리고 신의사당 건설이 시작되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에도 건설 중이던 신의사당과 제2차 가의사당은 무사했지만,[11] 1925년 제2차 가의사당이 개수 작업 중 화재로 소실되었다.[12] 이에 제3차 가의사당이 건설되었고, 신의사당 건설은 더욱 지연되었다.

1936년 2·26 사건으로 육군 청년 장교들이 나가타초 일대를 점거하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신의사당은 예정대로 완공되었다. 1936년 11월 7일 3000명이 모인 가운데 준공식이 거행되었고, 히로타 고키 총리, 후타 다코지로 중의원 의장, 고노에 후미마로 귀족원 의장 등이 연설했다.[1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6년 일본국 헌법 제정으로 제국의회를 대신하는 국회가 국권 최고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국회의사당은 그 권위를 상징하는 시설이 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국회의사당 부지 확장 및 주변 정비가 이루어졌다.[15]

1959년 일미 안보 조약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국회의사당 부지 진입 사건[16]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안보 투쟁 관련 시위가 의사당 주변에서 벌어졌다.

현재 의사당 주변에는 양원 의원 회관, 내각총리대신 관저, 정당 관계 시설 등이 위치하여 일본의 정치 중추를 이루고 있다.

역대 국회의사당
구분완공소실구조건축 면적(부속 건물 포함)건축비장식비 기타
제1차 임시 국회의사당[17]1890년 11월 24일1891년 1월 20일목조 서양식 2층 건물8469m2233868JPY21107JPY[18]
제2차 임시 국회의사당[19]1891년 10월 30일1925년 9월 18일목조 서양식 2층 건물16016m2229424JPY25129JPY[18]
히로시마 임시 국회의사당1894년 10월 14일1897년까지 해체목조 기와지붕 서양식 평집 건물---
제3차 임시 국회의사당[20]1925년 12월 22일현 의사당 완공과 함께 해체목조 서양식 2층 건물20839m21599974JPY482969JPY[18]
현 의사당1936년 11월 7일-철골철근콘크리트조 지상 3층(중앙부 4층), 지하 1층13356m225735977JPY(결산액)[21]



중의원 측에서 본 국회의사당

2. 1. 초기 계획

일본 제국이 발흥하던 1920년대에 국회의사당 건립이 시작되었지만, 의사당 설계 도안 계획은 1880년대부터 있었다. 그러나 의사당 건물 형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일본 의회는 약 50여 년간 임시 건물에서 회의를 열었다.

1886년과 1887년에 독일인 건축가 빌헬름 뵈크만(Wilhelm Böckmann)과 헤르만 엔데(Hermann Ende)가 국회의사당 건축을 위해 도쿄로 초청되었다. 그들은 두 가지 건축안을 제시했는데, 뵈크만의 안은 황궁 남쪽에 돔과 측면 날개를 가진 석조 구조물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는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외무대신의 급격한 서구화 정책에 대한 반감이 커서, 건축가들은 설계에 일본적인 요소를 섞어야 했다.[6] 이 두 설계안은 실행되지 않았지만, 이들이 만든 다른 정부 청사 설계안(예: 일본 법무부 건물)은 실제로 만들어졌다.

1898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총리는 미국인 건축가 랄프 애덤스 크램(Ralph Adams Cram)을 만났고, 크램은 기와 지붕, 거대한 동양식 벽과 기둥 등 '동양적' 요소를 가미한 설계도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토 정부가 붕괴되면서 이 설계도 역시 현실화되지 못했다.[6]

2. 2. 첫 번째, 두 번째 건물

1881년 10월 12일, 메이지 천황으로부터 국회개설의 칙어가 발표되었고, 1890년을 기하여 "국회"(의회)를 열 것이 선포되었다. 1885년 내각 제도가 발족되면서 의사당 건설 작업이 시작되었다.[6] 초기에는 관청 집중 계획의 일환으로 의사당 건축이 추진되었으나, 많은 경비 문제와 제국 의회 개설의 시급성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이에 따라 임시 가의사당이 건설되었다. 독일인 건축가 아돌프 슈테히뮐러와 임시건축국 기술사 요시이 시게노리의 설계로, 1890년 11월 24일에 제1차 가의사당이 준공되었다. 11월 29일 귀족원 의장에서 메이지 천황 임석 하에 개원식이 거행되어 제1회 제국의회가 개회되었다. 그러나 1891년 1월 20일 새벽, 누전으로 인해 가의사당은 전소되었다.[7]

이후 요시이는 쓰마키 요시오 및 독일인 건축가 오스카 치체와 협력하여 제2차 가의사당을 설계했다. 제2차 가의사당은 제1차 가의사당과 비슷한 외관에 방화벽을 추가하여 1891년 10월 30일에 준공되었다.[9] 이 건물은 1925년 9월 18일 화재로 소실될 때까지 사용되었다.[12]

첫 번째, 두 번째 국회의사당
구분완공소실구조건축 면적(부속 건물 포함)건축비장식비 기타
제1차 임시 국회의사당[17]1890년 11월 24일1891년 1월 20일목조 서양식 2층 건물8,469m²23만 3,868엔 79전 5린[18]2만 1,107엔 12전 1린[18]
제2차 임시 국회의사당[19]1891년 10월 30일1925년 9월 18일목조 서양식 2층 건물16,016m²22만 9,424엔 10전 2린[18]2만 5,129엔 5전[18]



2. 3. 현재 국회의사당

개업식


회의 중


국회의사당


1910년, 일본 재무성은 새로운 국회의사당 건립 예산 마련에 착수했고, 가쓰라 다로 총리대신이 이를 승인했다. 가쓰라 다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건축을 제안했으나, 이는 너무 임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무산되었다. 1918년, 총리부는 국회의사당 설계 공모전을 열었고, 118개의 안이 제출되었다. 이 중 와타나베 후쿠조의 안이 1등으로 선정되었다. 현재 국회의사당은 와타나베 후쿠조의 설계안을 바탕으로 1920년부터 1936년까지 건설되었다.[65] 다만, 국회의사당 지붕과 중앙 탑은 공모전에서 3위를 차지한 다케우치 신시치의 안을 일부 도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다케우치 신시치의 안이 서양과 동양의 양식을 조화롭게 섞었다고 판단하여 채택했다. 중앙 탑 꼭대기의 피라미드형 지붕은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레움에서 착안한 것으로 추정된다.[66]

1936년 11월 7일, 3000명이 모인 가운데 국회의사당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히로타 고키 총리대신, 후타 다코지로 중의원 의장, 고노에 후미마로 귀족원 의장 등이 연설했다.[1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6년 일본국 헌법 제정과 의원내각제 확립으로 국회가 국권 최고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국회의사당은 그 권위를 상징하는 시설이 되었다.

1959년 11월 27일, 일미 안보 조약에 반대하는 전일본 학생 자치회 총연합 학생 2만 명이 국회의사당 부지에 진입하여 경찰과 충돌했다. 이 사건으로 양측에 758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했다.[16]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에도 안보 투쟁 관련 시위가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벌어졌다.

3. 내부

일본 국회의사당은 중앙 현관, 중앙 홀, 고쿠쇼(천황의 휴게실), 참의원 회의장, 중의원 회의장, 중앙 탑 4층의 국회도서관 분관 등으로 구성된다. 중앙 현관, 중앙 홀, 고쿠쇼, 중앙 탑은 참의원이 관할하고, 정원은 중의원이 관할하며, 중앙 탑 4층의 국회도서관 분관은 국회도서관이 관할한다.[29]

3. 1. 중앙 현관

중앙 현관은 정문 뒤편, 중앙 탑 바로 아래에 있으며, 폭이 넓은 진입로와 높이 3.94m, 너비 1.09m, 무게 1.125톤의 청동으로 제작된 입구 문이 특징이다. 이 문은 평소에는 닫혀 있어 "열리지 않는 문"이라고 불린다.

중앙 현관 문, 각 의사당 건물의 별도 입구 문, 그리고 건물 내부의 청동문은 도쿄예술대학에 외주 제작되었다.[29]

이 입구는 중의원 총선거 또는 참의원 정기선거 이후 의원들이 첫 회의에 참석할 때, 그리고 천황 또는 외국 정상이 국회의사당을 방문할 때 사용된다.[30] 또한, 국회의사당 공개 행사 시 방문객의 출입에도 이용된다.[31]

3. 2. 중앙 홀

중앙 현관 뒤편, 중앙 탑 바로 아래에 있는 넓은 공간은 중앙 홀이다. 2층에서 6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이 있으며, 천장 높이는 32.62m이다. 천장은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 있고, 네 귀퉁이에는 일본의 사계절을 묘사한 네 점의 유화가 있다. 이 그림들은 봄의 요시노산, 여름의 도와다호, 가을의 오쿠닛코, 겨울의 일본 알프스를 묘사하고 있다.[32] 이 그림들은 유명 화가의 작품이 아니라 미술학도들의 작품이다.[32]

중앙 홀의 네 귀퉁이에는 일본의 입헌 정부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타가키 다이스케, 오쿠마 시게노부, 이토 히로부미의 동상과 빈 받침대가 있다. 빈 받침대가 있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누구의 동상을 세울지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는 설, 정치는 항상 미완성임을 상징한다는 설, 더 위대한 정치가가 되라는 경계의 의미로 비워두었다는 설, 황궁을 등지게 되므로 피했다는 설 등 여러가지 설이 있다.[32] 빈 받침대 위에는 의회 소집일에 소나무 분재가 놓인다.

국회의사당 중앙홀


중앙 계단

3. 3. 고쿠쇼

천황이 의회를 방문하였을 때 잠시 머물러 쉴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공간이다. 고쿠쇼는 붉은 카펫이 덮인 중앙 계단의 맨 꼭대기 층에 자리하고 있다. 고쿠쇼에 놓인 L자형 탁자는 옛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인데, 이는 군복과 정복을 혼용했던 일본 천황이 자신의 모자를 놓아둘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40] 천황은 이곳에서 머물며 참의원 의장과 부의장, 중의원 의장과 부의장들을 모두 알현한다. 그 이후에는 참의원 회의장으로 옮겨 개회식 따위와 같은 행사에 참석한다.

국회의사당 건축에 소요된 비용 중 약 10분의 1이 모두 이 방에 쏟아부어진 것으로 추산된다. 고쿠쇼는 방 전체가 옻칠을 한 편백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며, 방 외관을 꾸미기 위하여 사용된 돌들은 도쿠시마현 아난시에서 채석해온 희귀한 광물이다.[41] 고쿠쇼의 장식들은 국회의사당 전체에서도 특별히 손질이 된 것들이나 화려한 것들이고, 천장에는 수정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또한 서양식과 일본식 화장실이 모두 딸려있다.[41]

천황이 국회의사당을 방문할 때에는 경찰차, 경찰 오토바이, 친위대, 경시청도쿄 특수 경찰들의 호위를 받는다. 국회 경비대는 여름에 백색 망토를 입으며, 겨울에는 검은색 망토를 입는다. 구전에 따르면 정부 청사들이 더 지어져 시선을 가로막기 전에는 고쿠쇼에서 후지산을 곧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한다.

3. 4. 참의원 회의장, 중의원 회의장


  • ---]]제1회 국회 개회식에서 마쓰오카 고마키치 중의원 의장이 시서를 낭독하는 모습 (1947년 6월 23일)]]

1936년 5월 특별회에서 사용하는 신선량 의원의 성명표를 쓰는 작업


일반적으로 “본회의장”이라고 불리는 대회의실이다. 각 원의 2층 부분에 있으며, 천장이 3층까지 뚫려 있다. 천장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되어 있어 낮에는 햇빛이 들어오며, 본회의 중이 아닐 때에는 천장의 형광등을 켜지 않는다. 회의장 구조는 의장석과 연단을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이며, 의석은 소속 정당별로 배분되어 앉는 소위 “대륙형”이다.[32]

정면 중앙 뒤편에는 의장석이 있고, 그 왼쪽에는 사무총장석이 있다. 연단은 의장석 전면에 있으며, 그 아래쪽에는 국회속기사석이 있어 의사록을 손으로 속기한다.[44] 의장석을 중심으로 좌우에 2열의 좌석이 있는데, 앞줄은 각료들이 앉는 국무대신석(의장석에서 오른쪽 가장 가까운 자리가 내각총리대신석)이고, 뒷줄은 국회사무처 직원들이 앉는 사무국 직원석이다.

귀족원(참의원) 의장석, 대신석, 연단 주변의 의원 서기석 등은 일본악기제조가 담당했으며, 재료는 국산 벚나무 재가 지정되었다고 한다.

의원 의석은 회기 시작 시 의장이 정하지만, 회기 중 필요하면 변경할 수 있다(중의원 규칙 제14조 제1항, 참의원 규칙 제14조 제1항). 중의원에서는 의석 순서가 의장석을 향해 왼쪽부터 소속 의원이 많은 순서대로 정당에 할당되는 것이 관례이다. 즉, 의장석에서 보아 우익석부터 제1당, 제2당 순서로 배치되고, 최좌익에 무소속 의원들이 자리한다. 반면 참의원에서는 최대 정당이 중앙 의석에, 그 좌우에 소수 정당이 위치한다.[45][46] 같은 정당 내에서는 당선 횟수가 적은 의원이 의장석에 가까운 앞줄에, 당선 횟수가 많은 의원이 뒷줄에 배치된다.[47] 각 의석에는 번호가 붙여지고,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의원 성명이 적힌 성명표가 부착된다(중의원 규칙 제14조 제2항, 참의원 규칙 제14조 제2항).

참의원 의장에서는 의장석 뒤쪽 계단 위에 천황의 자리(옥좌)가 있으며, 개회식 때는 의장석을 분해하여 식장을 설치한다. 제국 의회 개원식 때 천황을 귀족원 의장에 맞이하여 진행했던 전통에 따라, 현재도 국회 개회식은 천황을 구 귀족원을 개편한 참의원 의장에 맞이하여 진행하며, 천황은 이 자리에서 개회 “어서”를 말한다.[48]

본회의장에 설치된 마이크는 참의원에서는 의장석과 연단에만 있지만, 중의원에서는 사무총장석(주로 기명 투표 결과 보고에 사용)과 의사진행계를 맡는 의원 자리에도 설치되어 있다.

2022년 이후 참의원 의원 정수는 248명이지만, 참의원 의장에는 460석이 있다. 중의원과 참의원 의원 총수 713석에 비해 부족하므로, 개회식에서는 통로나 뒤쪽 빈 공간에 선 채로 참석하는 의원도 있다.[49]

두 의원 모두, 의원은 선례에 따라 재킷과 의원 배지[50]를 착용해야 입장이 허용된다. 예외는 인정되지 않으며, 과거 후쿠다 다케오가 배지를 잊고 중의원 의장에 들어가려다 위병에게 제지당하고, 주변에 있던 다른 의원(모리 요시로)에게 배지를 빌려 입장한 일도 있다.[51]

각 원 모두 의장 허가 없이는 의장에서 모자, 외투, 목도리, 우산, 지팡이 등의 착용·휴대가 금지되며(중의원 규칙 제213조, 참의원 규칙 제209조), 흡연도 금지된다(중의원 규칙 제214조, 참의원 규칙 제210조). 또한, 의사 중에는 참고 자료를 제외하고 신문 및 서적 등을 열람해서는 안 된다(중의원 규칙 제215조, 참의원 규칙 제211조).

4. 구조

국회의사당은 철골철근콘크리트조 건물이다. 중앙탑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상 3층 건물이며, 중앙탑은 4층, 탑 최상부까지 포함하면 9층 건물이다.[22] 선대칭 구조를 가지고 있다.

건물 외장은 3종류의 화강암을 사용한 돌쌓기 방식이며, 내장에는 33종류의 대리석, 2종류의 사문암을 비롯하여,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산호석회암(조개를 포함한 거석, 트라베르틴), 감람암, 흑발석, 미타테이시, 일화석 등 다양한 석재가 사용되었다.[23][24] 이 석재들은 대부분 일본 국내에서 조달되었다. 특히 외장에 많이 사용된 것은 히로시마현 쿠라하시섬에서 채석된 벚꽃색 화강암(사쿠라 미게이시)으로, "의원석"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천황의 휴식실에는 시즈오카현 시마다시산 단풍석이 사용되었다.[25]

건축자재와 설비 재료 중 우편함, 손잡이 열쇠(마스터키),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외한 모든 재료는 일본산을 사용했다.[26]

국회의사당 건축 개요
구분내용
구조철골철근콘크리트조(벽체는 화강암 마감)
구성지상 3층, 지하 1층, 중앙탑 4층(탑 상부 최상부 9층)
너비(길이)206.36m
깊이88.63m
높이양익부 20.91m, 중앙탑 65.45m
대지면적69,245.92(현재는 10만 3001m²)
건축면적12,396.75m²(현재는 1만 3358m²)
연면적52,165.52m²(현재는 5만 3466m²)
주요실 수390실(잡실 포함 449실)
복도 총연장4,639m(광장 280.20m, 계단 연장 1310.20m 포함)
총중량10만 9000t
작업원 수254만 2877명


5. 시설



의사당 내에서 중앙부의 중앙현관, 중앙홀, 휴게실, 중앙탑은 참의원이 관리하고, 현관 앞뜰은 중의원이 관리한다. 중앙탑 4층의 국회도서관 국회분관은 국립국회도서관이 관리한다.

5. 1. 중앙 현관

의사당 정문 정면에 있는 중앙 현관은 중앙탑 바로 아래에 있다. 평소 의사당 출입에는 사용하지 않아 '열리지 않는 문'이라고 불린다.[30]

폭이 넓은 진입로와 높이 3.94m, 너비 1.09m, 무게 1.125톤의 청동으로 제작된 문이 특징이다. 중앙 현관 문, 각 의사당 건물의 별도 입구 문, 그리고 건물 내부의 청동문은 도쿄예술학교(현재의 도쿄 예술대학)에 외주 제작되었다.[29]

이 입구는 중의원 총선거 또는 참의원 정기선거 이후 의원들이 첫 회의에 참석할 때, 그리고 천황 또는 외국 정상이 국회의사당을 방문할 때 사용된다.[30] 국회의사당 공개 행사 시 방문객의 출입에도 이용된다.[31]

5. 2. 중앙 광장

중앙 현관 안쪽, 중앙탑 바로 아래에 있는 광장이다. 2층부터 6층까지 개방되어 있으며, 천장 높이는 32.62m이다. 법륭사 5층탑(31.5m)이 쏙 들어갈 정도의 높이이다. 천장은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 있으며, 벽면 네 귀퉁이에는 일본의 춘하추동을 그린 네 점의 유화가 있다. 각각 봄의 요시노산, 여름의 도와다호, 가을의 오쿠니코, 겨울의 일본알프스를 묘사한 것으로, 모두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 아니라 미술학도의 작품이다.

광장의 네 귀퉁이에는 일본 헌정에 공헌한 이타가키 다이스케, 오쿠마 시게노부, 이토 히로부미의 동상과, 동상이 없는 빈 대좌가 놓여 있다.[33] 빈 대좌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누구의 동상을 세울지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는 설, 정치는 항상 미완성임을 상징한다는 설, 더 위대한 정치가가 되라는 경계의 의미로 비워두었다는 설, 황궁을 등지게 되므로 피했다는 설 등이 있다.[32] 빈 대좌 위에는 의회 소집일에 소나무 분재가 놓인다.

5. 3. 중앙탑

높이 65.45m로, 준공 당시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4] 중앙탑은 참의원 관할이다. 1964년 호텔 뉴오타니 본관(약 73m)이 건설될 때까지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남아 있었다.

피라미드 모양의 돔 안에는 대형 홀이 있으며, 그 중앙에서 나선형 계단이 탑 최상층의 전망대로 이어진다. 약 7㎡ 면적의 전망대는 도쿄의 파노라마 전망을 제공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는 건물 관리자를 제외하고는 전망대와 홀 모두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국회의원조차 출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앙탑 4층은 국회도서관의 사무실로, 국회 관련자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4층에는 화장실이 없는데, 이는 근처 고규쇼(후술)에 있는 천황 전용 화장실 위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2003년 9월, 중앙탑에 낙뢰가 발생하여 탑 꼭대기의 화강암이 파손되고 아래층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깨지는 피해가 있었다. 마침 화장실 수리 작업을 위해 현장에 있던 가시마 건설 직원들이 회사에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가시마 건설이 탑의 수리 작업을 맡게 되었다. 파손된 화강암은 현재 도호쿠 대학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의 기적 세계 석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4]

5. 4. 고쿠쇼(御休所)

고쿠쇼(御休所)는 천황이 국회 개회식 등에 참석할 때 사용하는 공간이다. 중앙 홀에서 이어지는 붉은 카펫이 깔린 주 계단 꼭대기에 있다.[40]

고쿠쇼에 있는 L자형 탁자는 천황이 군복을 입던 시절, 모자를 놓아둘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천황은 이곳에서 참의원 의장과 부의장, 중의원 의장과 부의장을 만난 후, 참의원 회의장으로 이동하여 개회식 등에 참석한다.[40]

국회의사당 건축 비용의 약 10분의 1이 고쿠쇼에 사용되었다. 방 전체가 옻칠을 한 측백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며, 방 외관 장식에는 도쿠시마현 아난시에서 채석한 희귀한 광물(부귀귀(不如帰))을 사용했다.[40] 고쿠쇼의 장식은 국회의사당 전체에서도 특별히 정성을 들인 것이며, 천장에는 수정 샹들리에가 달려 있다. 또한 서양식과 일본식 화장실이 모두 갖춰져 있다.[41]

천황이 국회의사당을 방문할 때에는 경찰차, 경찰 오토바이, 친위대, 도쿄 특수 경찰들의 호위를 받는다. 국회 경비대는 여름에는 흰색 망토를, 겨울에는 검은색 망토를 입는다. 과거에는 고쿠쇼에서 후지산을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건물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40]

고규쇼(御休所)

5. 5. 중의원 의장과 참의원 의장

이 두 개의 주 회의장은 흔히 '본회의장'으로 불리며, 2층에 자리하고 있으나 그 천장이 워낙 높아 3층까지 뻗어 올라간다. 천장은 그 일부가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져 있어 낮에는 햇빛이 들어오고, 회의가 열리지 않을 때에는 회의장 내부의 조명을 대부분 켜지 않는다.[32] 회의장들은 소위 '대륙적'인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의원석들이 부채꼴로 연단과 의장석을 둘러싸고 있으며, 의원들은 소속된 정당에 따라 배치가 나뉘어 지정된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의장은 회의장 가운데에 있는 자리에 앉는다. 그 옆에는 사무총장이 앉는다. 연단은 국회의장석 앞에 있고, 그 앞에는 국회속기사들이 연단자의 발언들을 모두 기록한다.[44] 의장석 양옆으로는 2줄의 좌석들이 연이어 있는데, 앞줄에는 각료들이 앉는 국무대신석이고(의장석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는 내각총리대신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뒷줄에는 국회사무처 직원들이 앉는 사무국 직원석이다.

중의원의 경우, 의원이 가장 많은 정당이 의장석의 맨 오른편에 앉는다. 이로 인하여 최대 정당이 맨 오른쪽 끝에 앉고, 제2당이 그다음으로 앉으며, 무소속 의원들은 좌측 맨 끝에 앉게 된다. 대조적으로 참의원의 경우에는 가장 의원 수가 많은 정당들이 한가운데 자리에 앉고, 나머지가 그 양옆으로 퍼져 앉는다.[45][46] 또한 초선 의원들과 같이 이력이 얼마 되지 않는 의원들은 의장석과 가까운 앞자리에 앉고, 다선 의원들이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한 인사들은 맨 뒷줄에 앉는다.[47] 각각의 좌석들은 모두 숫자가 배정되어 있고, 그 좌석들에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의원들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부착되어 있다.

참의원 회의장의 경우, 의장석 뒤의 층계 맨 위에는 천황의 옥좌가 자리한다. 과거 일본 제국 시절, 참의원이 귀족원이었던 시절에는 의회 개회식 때마다 천황을 초청하여 참석하게 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 귀족원의 후신 격인 참의원에서 천황이 참석하는 관례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천황은 옥좌에 앉아 축사를 한다.[48] 참의원의 경우에는 의장석과 연단에만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고, 중의원의 경우에는 의사진행계를 맡는 의원과 사무총장에게도 마이크가 주어져 투표 결과를 공지하거나 안내 사항을 곧바로 알 수 있게 한다.

현재 참의원에는 248명의 의원들이 있지만, 개회식 행사 때에는 중의원의 의원들도 행사에 참석하는 관계로 회의장에는 총 460개의 좌석이 있다. 다만 이에도 불구하고 이 460개의 좌석들이 총 713명에 달하는 참의원, 중의원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몇몇 중의원 인사들은 개회식 때에 맨 끝에 서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49]

참의원과 중의원 모두 정장을 입지 않거나 의원 배지[50]를 착용하고 오지 않은 의원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 규칙에는 그 어떠한 예외도 없다. 일례로 후쿠다 다케오 총리가 배지 없이 회의장을 출입하려 하자 경비에게 제지당했고, 옆에 있던 의원(모리 요시로)의 배지를 대신 빌려 착용한 후에야 겨우 출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51] 또한 참의원과 중의원 모두 모자, 코트, 목도리, 혹은 우산 등을 가지고 회의장에 들어오는 것을 금하고, 흡연 또한 금지되어 있다. 또한 의회 업무 도중 반드시 필요한 서류가 아니면 그 어떠한 신문이나 잡지도 읽을 수 없다.

5. 6. 방청석

본회의장 뒤편에는 방청석이 있는데, 물리적으로는 본회의장의 일부이지만, 국회 내규에 따라 별개의 구역으로 간주된다. 규정에 따라 방청석 방문객은 본회의장에 출입할 수 없다.

중의원 방청석은 귀빈석, 외교관석, 참의원 의원석, 정부 관계자석, 일반 시민석, 기자석으로 나뉜다. 참의원 방청석은 황족석, 귀빈석, 외국 외교관석, 중의원 의원석, 정부 관계자석, 일반 시민석, 기자석으로 나뉜다. 일반 시민석은 국회의원이 초대한 손님에게 일부 배정되고, 나머지는 선착순으로 방문객에게 개방된다.[1]

방청석 방문객은 입장권이 필요하다. 신문 및 뉴스 서비스 기자는 회기 전체에 유효한 출입증을 받는다. 방청석은 의장이 규정한 내규를 따라야 하며, 의장은 방청석의 질서 유지를 위해 경비 및 사법 당국에 명령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2]

5. 7. 위원회와 별관, 분관

국회에서는 위원회가 열리는 방을 중의원은 '위원실', 참의원은 '위원회실'이라고 부른다.

위원회 회의실 중에서 가장 큰 곳은 텔레비전 국회 중계로 친숙한 예산위원회나 중요한 특별위원회, 당수 토론 등이 열리고, 때로는 증인 신문이나 참고인 소환 등도 이루어지는 '중의원 제1위원실'과 '참의원 제1위원회실'이다. 이들은 모두 국회의사당 본관 안에 있다. 참고로, 본회의장·위원회실 모두 설치되어 있는 마이크는 여러 개가 있으며, 하나는 본관 내부 음성용, 하나는 NHK의 생중계·취재용, 하나는 '민방'이라고 적힌 민간 방송 각국 공동 사용의 생중계·취재용 등 다양한 용도별로 설치되어 있다.[4]

그 외의 위원회가 열리는 위원실·위원회실은 각 원의 후방에 있는 별관(중의원 제1별관·참의원 별관)과 각 원의 양옆에 있는 분관(중의원 분관·참의원 분관) 안에 있다. 각 원의 사무국, 법제국, 강당 등도 이 안에 있다.[4]

별관은 공도(특례도도 중앙관청 257호선·국도 246호)에 면해 있으며, 의원과의 면회 및 의사 방청 접수 창구가 있다. 중의원 제1별관에는 국회 내 우체국이 있으며, 공도에 면하여 입구가 설치되어 있으므로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다.[4]

5. 8. 의장 응접실

중의원 회관과 참의원 회관 모두 의장 응접실이 있다. 두 응접실에는 벽난로가 있으며, 중의원 회관 응접실에는 역대 의장들의 액자가 있다.[52] [53]

5. 9. 국회 앞뜰

국회의사당 정면에는 정문 앞 가로수 길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뉘는 국회전정이 있다. 국회전정 북쪽 지역은 서양식 정원, 남쪽 지역은 일본식 정원으로 조성되어 있다.[1] 북쪽 지역 한쪽에는 국회의 제도와 헌정의 역사를 전시하는 헌정기념관과 일본 수준원점이 있다.[1]

5. 10. 현관 앞뜰

국회의사당 중앙현관, 참의원 정문, 중의원 정문 앞에는 현관 전정(前庭)이라 불리는 정원과 산책로가 있다. 1960년대 전반, 주변 구획 정리가 이루어지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확장되었다. 당시 부지 밖 국회도서관 앞에 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동상[54]도 참의원 정문 앞으로 이전되었다. 1970년(쇼와 45년)에는 전국 47개 도도부현의 나무가 기증되어 이곳에 심어졌고, 길이 만들어졌다. 1990년(헤이세이 2년)에는 의회 개설 100주년을 기념하여 중의원과 참의원 정문 앞에 분수가 설치되었다.

5. 11. 주변 시설

국회의사당 부지 서쪽에는 공도(특례도도 중앙관아 257호선)를 사이에 두고 남쪽부터 중의원 제1의원회관, 중의원 제2의원회관, 참의원 의원회관 3동이 있다. 이 건물들은 각각 공도 아래 지하연락통로를 통해 별관, 분관, 의사당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도쿄 메트로 국회의사당앞역과 나가타초역으로 연결되는 지하철역 연결통로도 있다.[55]

국회의사당 부지 남쪽에는 공도(특례도도 중앙관아 247호선, 통칭: 구미坂)를 사이에 두고 중의원 제2별관과 국회기자회관이 있다. 북쪽에는 공도(특례도도 중앙관아 176호선)를 사이에 두고 국립국회도서관이 있다. 참의원 의원회관 북쪽에는 참의원 제2별관, 중의원 제1의원회관 남쪽 이웃에는 총리대신 관저(총리관저) 등 국회 관련 시설이 있다. 국회도서관과 총리관저를 제외한 이들 시설은 국회의사당과 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왕래할 수 있다.[55]

6. 경비 체제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입법부 최고 기관이 행정부 하부 조직(경찰청·경시청)에 경찰권을 위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의사당 구내에서는 일본 경찰이 아닌 각 의원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질서 유지를 하고 있다(의원경찰권).[57] 이 때문에 경찰관은 중의원 의장이나 참의원 의장의 허가 없이는 구내에 출입할 수 없다. 원내에서 경비를 담당하는 사람은 위시라고 불리는 중의원 사무국과 참의원 사무국의 직원이다.[57]

정문 앞 경비원


의사당 구내에 매일 출입하는 국회의원을, 위시는 의원 배지(정식 명칭: 의원기장)와 의원 신분증(정식 명칭: 대용증) 착용 유무로 식별한다. 이것이 없는 자는 위시는 원칙적으로 제지하지만, 그래도 위시는 국회의원 전원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의원은 등원 시 각 원의 현관 및 뒷편 출입구, 분관 입구에 있는 등원 표시판을 누르도록 되어 있다. 3곳은 연동되어 있으며, 언제 눌렀는지도 관리되고 있다. 가끔 참관하러 온 사람이 누르는 경우가 있다. 의회 소집일에는 정문에서 표시판을 누르는 대신 명함을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7. 견학과 경관

국회의사당은 도쿄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 중 하나로, 매년 많은 수학여행생과 단체 관광객이 방문한다. 참의원은 본회의 개회 중이 아닌 평일이라면 누구든지 견학을 허용하지만, 중의원은 국회의원의 소개 등이 있는 사람에게만 내부 견학을 허용했던 시기가 있었다.[58] 견학 외에도, 의원과의 면회나 의사의 방청 등으로 의사당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 후문으로 입장하여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간 참관객 홀에서 공항에서의 보안 검색과 같은 수준의 보안 검사를 받는다.[59]

의회 개설 백주년을 기념하여, 1990년 11월 28일부터 국회의사당은 매일 일몰부터 오후 8시까지 조명을 밝혀, 조명에 비치는 백색의 의사당 모습을 밖에서 감상할 수 있었지만,[60]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전력 부족으로 2011년 3월 14일 이후, 당분간 조명 운영을 중지했다.[61]

경관은 산왕파크타워와 프루덴셜타워의 건설로 점차 손상되고 있다. 특히 국회의사당 남서쪽 약 800미터에는 TBS가 재개발한 복합 시설 아카사카 사카스가 있다.

도쿄도2007년 4월 1일에 「도쿄도 경관 계획」을 시행하고, 국회의사당, 영빈관, 성덕기념회화관, 도쿄역 마루노우치 역사의 전망 보전에 관한 경관 유도를 위해, 뒤편에 고층 빌딩이나 기발한 색채의 건물 건설을 금지하는 「대규모 건축물 등 경관 형성 지침」을 제정했지만,[62] 아카사카 사카스에 있는 아카사카 Biz 타워는 지침이 생기기 전에 계획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그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자율 규제로 당초 계획보다 높이를 낮추는 데 그쳤다.

2010년 이후, 국회의사당에서 의사당 정면 사진을 찍으면, 산왕파크타워, 더 캐피톨 호텔 도큐, 아카사카 Biz 타워가 정면 왼쪽에, 프루덴셜타워가 정면 오른쪽에 비친다. 그에 따라 국회의사당 이미지 영상(뉴스에서 국회의사당을 비추는 영상)은 종전 정면이었던 것이 정면 로우앵글 또는 좌우 어느 한쪽 측면에서의 영상이 많아지고 있다.

8. 접근성

9. 디자인

국회의사당은 지폐, 화폐, 우표, 엽서의 디자인에 입법부의 상징으로 여러 차례 등장하고 있다.

종류내용
지폐
화폐
우표
엽서


참조

[1] 서적 The Architecture of Tokyo: An Architectural History in 571 Individual Presentations https://books.google[...] Edition Axel Menges
[2] 웹사이트 National Diet Building http://structurae.ne[...] 2022-08-29
[3] 논문 Japan's Imperial Diet Building: debate over construction of a national identity 1996-09-01
[4] 웹사이트 奇石博物館 http://www.kiseki-jp[...] 2022-08-01
[5] 서적 帝國議會議事堂建築の概要
[6] 기타
[7] 웹사이트 国会議事堂の火災原因をめぐり宣伝合戦 https://www.tfd.metr[...] 東京消防庁 2024-02-19
[8] 논문 帝國議會 書記官長報告參集ノ件 https://dl.ndl.go.jp[...] 内閣官報局 1891-01-21
[9] 논문 第二次国会仮議事堂の意匠,平面計画ならびに小屋組について―第一次仮議事堂との比較考察― https://swu.repo.nii[...] 光葉会
[10] 기타
[11] 기타
[12] 뉴스 改修中の貴族院庁舎全焼 大阪毎日新聞 1925-09-18
[13] 뉴스 十五年一月までに仮議事堂完成へ 東京朝日新聞 1925-09-19
[14] 웹사이트 傘寿を迎える国会議事堂 https://www.takushok[...] 2016-09-01
[15] 기타
[16] 서적 日本災害史事典 1868-2009 日外アソシエーツ
[17] 서적 帝國議會議事堂建築の概要
[18] 웹사이트 コラム:議事堂 写真の中の明治・大正 - 国立国会図書館所蔵写真帳から - https://www.ndl.go.j[...]
[19] 서적 帝國議會議事堂建築の概要
[20] 서적 帝國議會議事堂建築の概要
[21] 웹사이트 参観者用パンフレット 一般(大人)向け https://www.sangiin.[...] 2022-09-01
[22] 서적 帝國議會議事堂建築の概要
[23] 서적 帝国議会議事堂建築報告書
[24] 기타
[25] 서적 議事堂の石 新日本出版社
[26] 기타
[27] 기타
[28] 웹사이트 国会議事堂について https://www.sangiin.[...]
[29] 서적 帝國議會議事堂建築の概要
[30] 웹사이트 国会議事堂案内 中央玄関 https://www.sangiin.[...]
[31] 기타
[32] 웹사이트 http://www.shugiin.g[...]
[33] 기타
[34] 웹사이트 国会施設案内 https://www.shugiin.[...]
[35] 웹사이트 「渋谷文化」の原点がここから生まれた。 https://www.shibuyab[...]
[36] 일반텍스트
[37] 웹사이트 https://twitter.com/KenAkamatsu/status/1597921037488107521 https://twitter.com/[...] 2023-02-12
[38] 웹사이트 https://twitter.com/KenAkamatsu/status/1597221614135160832 https://twitter.com/[...] 2023-02-12
[39] 웹사이트 国会議事堂本館中央塔屋頂部石材修復工事 http://www.kajima.co[...]
[40] 일반텍스트
[41] 일반텍스트
[42] 일반텍스트
[43] 웹사이트 国会議事堂 御便殿 | 施工実績 http://www.naigai-te[...]
[44] 일반텍스트
[45] 웹사이트 よくある質問 >本会議について https://www.sangiin.[...]
[46] 웹사이트 会派別議席割当区分の変遷 https://www.sangiin.[...]
[47] 웹사이트 国会施設案内 - 衆議院 https://www.shugiin.[...]
[48] 일반텍스트
[49] 일반텍스트
[50] 일반텍스트
[51] 일반텍스트
[52] 웹사이트 美珍麗・探訪(衆議院) https://mosu3.blog.f[...]
[53] 웹사이트 美珍麗・探訪(参議院) https://mosu3.blog.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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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웹사이트 議員会館レポート http://www.fukudamin[...]
[56] 일반텍스트
[57] 일반텍스트
[58] 일반텍스트
[59] 일반텍스트
[60] 일반텍스트
[61] 웹사이트 国会議事堂中央塔屋のライトアップの休止について https://web.archive.[...] 参議院 2011-03-14
[62] 웹사이트 景観計画 https://www.toshisei[...]
[63] 웹사이트 特殊切手「日米安全保障条約改定50周年」の発行 https://www.post.jap[...]
[64] 서적 The Architecture of Tokyo: An Architecture History in 571 individual presentations 2011
[65] 서적 National Diet Building-International Database for Civil and Structural Engineering
[66] 서적 Japan's Imperial Diet building:debate over construction of a national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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