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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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동선은 1935년 부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중동중학교와 중동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으며, 이후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민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자유선진당 등 여러 정당에서 활동했다. 제14, 15, 16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2001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를 비판하며 논란을 빚었고, 이후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여 이회창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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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선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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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국적 | 대한민국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경기도 부천군 |
종교 | 천주교(세례명: 마태오) |
학력 | |
학력 |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 경제학 학사 |
명예 박사 | 카자흐스탄 알마티 대학교 정치학 명예박사 |
병역 | |
경력 | |
정치 활동 | |
정당 | 국민의힘 |
지역구 | 경기 부천시·김포군·강화군(12) |
지역구 | 경기 부천시 중구 갑(14) |
지역구 | 경기 부천시 원미구 갑(15·16) |
의원 선수 | 4 |
의원 대수 | 12·14·15·16 |
웹사이트 | |
웹사이트 | 나우루 공식 홈페이지 |
2. 생애
1935년 10월 5일, 경기도 부천군에서 태어났다. 중동중학교와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초기 선거에서는 낙선하기도 했으나, 12대 국회에 신한민주당 소속으로 처음 입성했다. 이후 주로 민주당계 정당에서 활동하며 평화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기도 했다.[1] 13대 총선에서는 낙선했지만, 14대부터 16대까지 연이어 당선되어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1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빚어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했다.[2][3] 그러나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했고, 이후 자유선진당 창당에 참여하는 등 보수 정당으로 활동 기반을 옮겼다. 18대 총선에서는 낙선했으며, 2010년에는 한나라당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4]
2. 1. 정치 활동 초기
제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소속으로 시흥군·부천군·옹진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2.28%의 득표율로 3위에 그쳐 낙선했다.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한민주당 소속으로 부천시·김포군·강화군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통일민주당에 합류했지만, 김대중이 평화민주당을 창당하자 통일민주당을 탈당하고 평화민주당에 입당했다.[1]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부천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32.67%의 득표율로 2위로 낙선했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소속으로 부천시 중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며 50.82%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당선되어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2. 2. 제12대 국회의원 당선과 민주당계 정당 활동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한민주당 소속으로 부천시·김포군·강화군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통일민주당에 합류했지만 평화민주당이 창당할 때 탈당하고 평화민주당에 입당했다.[1]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부천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32.67%의 득표율로 2위로 낙선했다.2. 3. 제14, 15, 16대 국회의원 당선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소속으로 부천시 중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며 50.82%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당선,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제15대, 제16대 국회의원으로 연속해 당선되면서 4선 국회의원이 되었다.2001년 1월, 새천년민주당의 최고위원으로 지명되었다. 같은 해 8월 16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열린 국정홍보대회에서 "친일파는 삼대가 떵떵대는 데 반해 독립운동가는 삼대가 고생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회창씨는 일제강점기에 검찰서기를 지낸 아버지가 부끄러워서 어제 광복절 행사에 못 나온 모양이다"라고 광복절 행사에 불참한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을 비난했다. 이에 이회창은 9월에 예정된 여야영수회담 불참을 선언하였고,[2] 안동선은 영수회담 불발의 책임을 지고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3]
그러나 그는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지지 및 노무현의 대통령후보 사퇴를 요구하면서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했다. 이후 2008년 2월 자유선진당 창당 당시 발기인으로 참가하였으며 제18대 총선에서는 자유선진당 후보로 부천시 원미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7.52%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3위로 낙선했다. 2010년 5월 24일에는 이윤수 전 의원 등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구 민주당 소속 전 국회의원' 17명을 비롯한 원로 정치인 23명과 함께 한나라당 경기도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지사 후보 김문수를 지지하였다.[4]
2. 4.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시절과 이회창 총재 관련 논란
2001년 1월, 새천년민주당의 최고위원으로 지명되었다. 같은 해 8월 16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열린 국정홍보대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총재였던 이회창을 겨냥하여 발언했다. 그는 "친일파는 삼대가 떵떵대는 데 반해 독립운동가는 삼대가 고생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회창씨는 일제강점기에 검찰서기를 지낸 아버지가 부끄러워서 어제 광복절 행사에 못 나온 모양이다"라고 말하며, 이회창 총재가 광복절 행사에 불참한 것을 비판했다. 이 발언에 대해 이회창 총재는 강하게 반발하며 9월로 예정되었던 여야 영수회담 불참을 선언했고,[2] 결국 안동선은 영수회담 불발의 책임을 지고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했다.[3]그러나 이후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오히려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대통령 후보 사퇴를 요구하며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는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2008년 2월에는 자유선진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같은 해 제18대 총선에서는 자유선진당 후보로 부천시 원미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7.52%의 득표율로 3위에 그쳐 낙선했다.
2. 5. 보수 정당으로의 전향과 이후 정치 활동
2001년 1월, 새천년민주당의 최고위원으로 지명되었다. 같은 해 8월 16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열린 국정홍보대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총재였던 이회창이 광복절 행사에 불참한 것을 두고, "친일파는 삼대가 떵떵대는 데 반해 독립운동가는 삼대가 고생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회창씨는 일제강점기에 검찰서기를 지낸 아버지가 부끄러워서 어제 광복절 행사에 못 나온 모양이다"라고 비난했다. 이 발언에 대해 이회창 총재는 강하게 반발하며 9월로 예정되었던 여야 영수회담 불참을 선언했고,[2] 안동선은 영수회담 불발의 책임을 지고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했다.[3]그러나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노무현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며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후 2008년 2월 자유선진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제18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후보로 부천시 원미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7.52%의 득표율로 3위에 그쳐 낙선했다.
2010년 5월 24일에는 이윤수 전 의원 등 과거 민주당 소속 전직 국회의원 17명을 포함한 원로 정치인 23명과 함께 한나라당 경기도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지사 후보 김문수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4]
3. 학력
wikitext
4. 이외 이력
5. 역대 선거 결과
선거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선거구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결과 |
---|---|---|---|---|---|---|
1967년 | 제7대 총선 | 민주당 | 경기 시흥군·부천군·옹진군 | 2,157 (2.28%) | 4위 | 낙선 |
1971년 | 제8대 총선 | 신민당 | 경기 부천군·옹진군 | 24,807 (43.74%) | 2위 | 낙선 |
1973년 | 제9대 총선 | 무소속 | 경기 시흥군·부천군·옹진군 | 22,394 (17.17%) | 3위 | 낙선 |
1978년 | 제10대 총선 | 무소속 | 경기 부천시·안양시·시흥군·옹진군 | 36,678 (14.86%) | 3위 | 낙선 |
1985년 | 제12대 총선 | 신한민주당 | 경기 부천시·김포군·강화군 | 98,218 (32.49%) | 1위 | 당선 (초선) |
1988년 | 제13대 총선 | 평화민주당 | 경기 부천시 중구 | 37,022 (32.67%) | 2위 | 낙선 |
1992년 | 제14대 총선 | 민주당 | 경기 부천시 중구 갑 | 39,082 (50.82%) | 1위 | 당선 (재선) |
1996년 | 제15대 총선 | 새정치국민회의 | 경기 부천시 원미구 갑 | 25,118 (37.41%) | 1위 | 당선 (3선) |
2000년 | 제16대 총선 | 새천년민주당 | 경기 부천시 원미구 갑 | 30,494 (52.31%) | 1위 | 당선 (4선) |
2004년 | 제17대 총선 | 새천년민주당 | 경기 부천시 원미구 갑 | 7,548 (11.14%) | 3위 | 낙선 |
2005년 | 10.26 재보선 | 무소속 | 경기 부천시 원미구 갑 | 1,166 (3.03%) | 5위 | 낙선 |
2008년 | 제18대 총선 | 자유선진당 | 경기 부천시 원미구 갑 | 3,892 (7.52%) | 3위 | 낙선 |
참조
[1]
뉴스
가칭 평화민주당 주비위발족
https://www.mk.co.kr[...]
[2]
뉴스
민주 안동선 최고, 비난 발언 돌출
https://news.kbs.co.[...]
[3]
뉴스
與 안동선최고 자진 사퇴
https://www.hankooki[...]
[4]
뉴스
6·2지방선거 안동선·이윤수 등 '구 민주당 중진', 김문수 한나라당 후보 지지 공식화
https://news.nav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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