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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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는 1985년 2월 12일에 치러졌으며, 총 276석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선거 결과,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했지만, 신한민주당이 약진하며 정치 지형에 변화가 일어났다. 투표율은 84.6%를 기록했으며, 신민당은 서울 등 대도시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선거 이후, 신민당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 등 야당의 강경 투쟁으로 6·29 민주화 선언이 발표되었고, 제5공화국 종말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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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 |
---|---|
지도 | |
![]() | |
기본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선거 유형 | 입법부 선거 |
이전 선거 | 1981년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
이전 선거 연도 | 1981년 |
다음 선거 | 1988년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
다음 선거 연도 | 1988년 |
선출 의석 | 총 276석 (국회) |
과반 의석 | 139석 |
선거일 | 1985년 2월 12일 |
투표율 | 84.6% ( 6.9%p) |
선거 결과 | |
정당 | 민주정의당 |
대표 | 전두환 |
이전 선거 의석 | 151석 |
선거 후 의석 | 148석 |
의석 변동 | 3석 |
득표수 | 7,040,811표 |
득표율 | 35.25% |
득표율 변동 | 0.39%p |
정당 | 신한민주당 |
대표 | 이민우 |
이전 선거 의석 | 신생 정당 |
선거 후 의석 | 67석 |
의석 변동 | 신생 |
득표수 | 5,843,827표 |
득표율 | 29.26% |
득표율 변동 | 신생 |
정당 | 민주한국당 |
대표 | 유치송 |
이전 선거 의석 | 81석 |
선거 후 의석 | 35석 |
의석 변동 | 46석 |
득표수 | 3,930,966표 |
득표율 | 19.68% |
득표율 변동 | 1.87%p |
정당 | 한국국민당 |
대표 | 김종철 |
이전 선거 의석 | 25석 |
선거 후 의석 | 20석 |
의석 변동 | 5석 |
득표수 | 1,828,744표 |
득표율 | 9.16% |
득표율 변동 | 4.09%p |
선거 전후 국회의장 | |
선거 전 국회의장 | 채문식 |
선거 전 국회의장 소속 정당 | 민주정의당 |
선거 후 국회의장 | 이재형 |
선거 후 국회의장 소속 정당 | 민주정의당 |
2. 선거 정보
- 총유권자수: 23,987,830명[2]
- 투표일: 1985년 2월 12일[2]
- 의석 정수: 276석 (지역구 184석 + 전국구 92석)[2]
- 선거 제도: 중선거구제 + 비례대표제[2]
- 대통령: 전두환 (민주정의당)[2]
3. 선거 제도
총 276석 중 184석은 2인 선거구에서 단기 비례 대표 투표 방식으로 선출되었고, 나머지는 선거구에서 5석 이상을 획득한 정당들 간에 전국 단위 비례대표제에 따라 배분되었다. 그중 3분의 2는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정당(그 후 전국 의석 배분 대상에서 제외됨)에 배정되었고, 나머지는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었다.
항목 | 내용 |
---|---|
정수 | 276석 |
지역구(중선거구제) | 184석 |
전국구(비례대표제) | 92석 |
임기 | 4년 |
선거 제도 | 중선거구제비례대표제 병립제.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자에게만 투표(기호식). 선거 제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제11대 총선을 참고. |
유권자 수 | 23,987,830명 |
4. 정당
정당 | 대표 | 이념 | 지난 선거 의석 수 | 선거 전 의석 수 | 상태 |
---|---|---|---|---|---|
민주정의당 | 전두환 | 보수주의 | 여당 | ||
민주한국당 | 유치송 | 자유주의 | 야당 | ||
신한민주당 | 이민우 | 존재하지 않음 | 야당 | ||
한국국민당 | 김종철 | 보수주의 | 야당 | ||
rowspan="2" | 신사회당 | rowspan="5" | | rowspan="5" | | rowspan="2" | | 야당 | |
국민당 | 야당 | ||||
민주농민당 | 해산됨 | 야당 | |||
자유민주당 | 야당 |
전두환 정권의 국민화합조치[2]로 정치 활동이 해금된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신한민주당(약칭: 신민당)은, 결성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관제야당’(官製野黨)이라 조롱받던 민주한국당(민한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급부상했다. 이는 여당에 대한 정치 불신과 민주화 열망이 강했던 국민들의 바람을 반영한 결과였다.
4. 1. 정당별 입장
전두환 대통령의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대한민국 국회에서 최대 정당으로 남았지만, 통합된 야당으로부터 더욱 강력한 도전을 받았다.김대중과 김영삼 등 주요 야당 지도자들이 출마 금지에도 불구하고 신민당 전 당원들에 의해 결성된 신한민주당은 더 큰 민주적 권리에 대한 집중 덕분에 전국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1981년 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당 전 당원들에 의해 결성된 한국국민당은 몇몇 중요한 성과를 거둔 후, 신한민주당의 약진으로 인해 지지율이 하락했다.
1981년 선거 이후 최대 야당이었던 민주한국당은 신한민주당으로의 대규모 탈당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5. 투표율
전국 선거인 수 23,987,830명 중 20,286,672명이 투표하여 84.6%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3]
시도 | 선거인 수 | 투표자 수 | 투표율 |
---|---|---|---|
서울특별시 | 5,955,403 | 4,832,039 | 81.1% |
부산광역시 | 2,055,161 | 1,752,887 | 85.3% |
대구광역시 | 1,148,657 | 941,908 | 82.0% |
인천광역시 | 813,562 | 656,859 | 80.7% |
경기도 | 2,791,114 | 2,318,463 | 83.1% |
강원도 | 1,017,454 | 910,284 | 89.5% |
충청북도 | 831,033 | 751,373 | 90.4% |
충청남도 | 1,720,236 | 1,487,372 | 86.5% |
전라북도 | 1,297,178 | 1,105,374 | 85.2% |
전라남도 | 2,132,196 | 1,813,534 | 85.1% |
경상북도 | 1,865,046 | 1,646,301 | 88.3% |
경상남도 | 2,096,119 | 1,834,892 | 87.5% |
제주도 | 264,671 | 235,386 | 88.9% |
계 | 23,987,830 | 20,286,672 | 84.6% |
6. 선거 결과
정당 | 득표 | 의석 | ||||||
---|---|---|---|---|---|---|---|---|
득표수 | % | ± | 지역구 | 전국구 | 합계 | ± | ||
민주정의당 | 7,040,811 | 35.25 | 87 | 61 | 148 | |||
신한민주당 | 5,843,827 | 29.26 | 50 | 17 | 67 | |||
민주한국당 | 3,930,966 | 19.68 | 26 | 9 | 35 | |||
한국국민당 | 1,828,744 | 9.16 | 15 | 5 | 20 | |||
신정사회당 | 288,863 | 1.45 | 1 | 0 | 1 | |||
근로농민당 | 185,859 | 0.93 | 0 | 0 | 0 | |||
신민주당 | 112,654 | 0.56 | 1 | 0 | 1 | |||
민권당 | 75,634 | 0.38 | 0 | 0 | 0 | |||
자유민족당 | 17,257 | 0.09 | 0 | 0 | 0 | |||
무소속 | 650,028 | 3.25 | 4 | |||||
4 | ||||||||
기권/무효 | 312,029 | colspan=6 | | ||||||
합계 | 20,286,672 | 100 | 184 | 92 | 276 | |||
등록유권자/투표율 | 23,987,830 | 84.57 | colspan=5 | |
총선 결과, 민주정의당은 지역구 의석 1위 정당에게 전국구 의석 2/3를 배분하는 제도 덕분에 과반 의석을 확보하여 제1당을 유지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의 국민화합조치[2]로 정치 활동이 해금된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신한민주당은 '관제야당'이라 조롱받던 민주한국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신한민주당은 서울특별시 14개, 부산광역시 6개, 광주광역시, 인천광역시, 대전광역시 5개 선거구에서 전원 당선되었고,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에서는 대부분 후보가 1위로 당선되는 등 대도시에서 압승을 거두며 득표율에서 민주정의당을 앞질렀다. (서울특별시에서 신한민주당 득표율 40.7%, 민주정의당 27%)
신한민주당은 이러한 결과를 "선거 혁명"이라고 불렀으며, 학생운동권 지지 등 젊은 세대의 정치적 관심 증가와 지지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또한, 기존 정치권과 야당, 그리고 정통성을 잃은 전두환 정권의 강압적인 정치 수법과 부도덕성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폭발한 것도 신한민주당 약진의 또 다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에서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 서울대학교 출신의 이철이 신한민주당 후보로 출마,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6. 1. 총괄
대한민국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는 1985년 2월 12일에 치러졌으며, 총 23,987,830명의 유권자 중 20,286,672명이 투표하여 84.6%의 투표율을 기록했다.[3]선거 제도는 중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병립하는 방식이었다.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에게만 투표하며, 지역구 의석 1위 정당인 민주정의당에 전국구 의석 2/3인 61석이 배분되었다. 지역구 5석 이상을 획득한 신한민주당,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에는 지역구 의석수에 따라 각각 17석, 9석, 5석이 배분되었다.
정당명 | 득표수 | 득표율(%) | 지역구 의석 | 비례대표 의석 | 합계 의석 | 의석 비율(%) |
---|---|---|---|---|---|---|
민주정의당 | 7,040,477 | 35.2 | 87 | 61 | 148 | 53.6 |
신한민주당 | 5,843,827 | 29.3 | 50 | 17 | 67 | 24.5 |
민주한국당 | 3,931,300 | 19.7 | 26 | 9 | 35 | 12.7 |
한국국민당 | 1,828,744 | 9.2 | 15 | 5 | 20 | 7.2 |
신정사회당 | 288,863 | 1.4 | 1 | 0 | 1[4] | 0.3 |
신민주당 | 112,654 | 0.6 | 1 | 0 | 1[4] | 0.3 |
기타 정당 | 278,750 | 1.4 | 0 | 0 | 0 | 0.0 |
무소속 | 650,028 | 3.2 | 4 | - | 4 | 1.4 |
합계 | 19,974,643 | - | 184 | 92 | 276 | 100.0 |
- 기타 정당: 근로농민당, 민권당, 자유민족당의 득표는 기타 정당으로 합산됨.
지역 | 정수 | 정당 | |||||||
---|---|---|---|---|---|---|---|---|---|
민정 | 신민 | 민한 | 국민 | 신사 | 신민주 | 무소 | |||
수도권 | 서울특별시 | 28 | 13 | 14 | 1 | 0 | 0 | 0 | 0 |
인천광역시 | 4 | 2 | 2 | 0 | 0 | 0 | 0 | 0 | |
경기도 | 20 | 10 | 4 | 3 | 3 | 0 | 0 | 0 | |
강원도 | 12 | 6 | 0 | 1 | 4 | 0 | 0 | 1 | |
충청도 | 충청북도 | 8 | 4 | 2 | 1 | 1 | 0 | 0 | 0 |
충청남도 | 16 | 8 | 4 | 4 | 0 | 0 | 0 | 0 | |
전라도 | 전라북도 | 14 | 7 | 2 | 1 | 3 | 0 | 1 | 0 |
전라남도 | 22 | 11 | 5 | 5 | 0 | 1 | 0 | 0 | |
경상도 | 부산광역시 | 12 | 3 | 6 | 2 | 1 | 0 | 0 | 0 |
대구광역시 | 6 | 2 | 2 | 1 | 1 | 0 | 0 | 0 | |
경상북도 | 20 | 10 | 4 | 3 | 1 | 0 | 0 | 2 | |
경상남도 | 20 | 10 | 5 | 4 | 1 | 0 | 0 | 0 | |
제주도 | 2 | 1 | 0 | 0 | 0 | 0 | 0 | 1 | |
합계 | 184 | 87 | 50 | 26 | 15 | 1 | 1 | 4 |
- 약칭: 민주정의당(민정), 신한민주당(신민), 민주한국당(민한), 한국국민당(국민), 신정사회당(신사), 신민주당(신민주), 무소속(무소)
- 최다 의석 확보 정당은 굵은 글씨로 표시.
민주정의당은 지역구 제1당에게 비례대표 의석 2/3를 배분하는 제도 덕분에 안정적인 과반 의석을 확보하며 제1당을 유지했다. 그러나 신한민주당은 서울(14개 선거구), 부산(6개 선거구), 광주·인천·대전(5개 선거구)에서 전원 당선되는 등 대도시에서 압승을 거두며 득표율에서 민주정의당을 앞서는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서울에서는 신한민주당이 40.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27%에 그친 민주정의당을 크게 앞섰다.
신한민주당의 약진은 학생운동권 등 젊은 세대의 지지와 더불어, 전두환 정권의 강압적인 통치와 비민주성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표출된 결과로 분석된다.
6. 2. 지역별 결과
지역 | 정수 | 정당별 의석 수 | |||||||
---|---|---|---|---|---|---|---|---|---|
민정 | 신민 | 민한 | 국민 | 신사 | 신민주 | 무소속 | |||
수도권 | 서울특별시 | 28 | 13 | 14 | 1 | 0 | 0 | 0 | 0 |
인천광역시 | 4 | 2 | 2 | 0 | 0 | 0 | 0 | 0 | |
경기도 | 20 | 10 | 4 | 3 | 3 | 0 | 0 | 0 | |
강원도 | 12 | 6 | 0 | 1 | 4 | 0 | 0 | 1 | |
충청도 | 충청북도 | 8 | 4 | 2 | 1 | 1 | 0 | 0 | 0 |
충청남도 | 16 | 8 | 4 | 4 | 0 | 0 | 0 | 0 | |
호남 (전라도) | 전라북도 | 14 | 7 | 2 | 1 | 3 | 0 | 1 | 0 |
전라남도 | 22 | 11 | 5 | 5 | 0 | 1 | 0 | 0 | |
영남 (경상도) | 부산광역시 | 12 | 3 | 6 | 2 | 1 | 0 | 0 | 0 |
대구광역시 | 6 | 2 | 2 | 1 | 1 | 0 | 0 | 0 | |
경상북도 | 20 | 10 | 4 | 3 | 1 | 0 | 0 | 2 | |
경상남도 | 20 | 10 | 5 | 4 | 1 | 0 | 0 | 0 | |
제주도 | 2 | 1 | 0 | 0 | 0 | 0 | 0 | 1 | |
합계 | 184 | 87 | 50 | 26 | 15 | 1 | 1 | 4 |
- 각 지역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정당은 굵은 글씨로 표시했다.
민정당은 지역구 제1당에 비례대표 의석 2/3를 배분하는 제도 덕분에 과반 의석을 확보, 제1당을 유지했다. 그러나 신민당은 서울특별시 14개, 부산광역시 6개, 광주·인천광역시·대전광역시 5개 선거구에서 전원 당선되었고,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등에서 대부분 후보가 1위로 당선, 대도시에서 압승하며 득표율에서 민정당을 앞질렀다. (서울: 신민당 40.7%, 민정당 27%)
신민당은 이를 "선거 혁명"이라 칭했고, 학생운동권 지지 등 젊은 세대의 정치적 관심 증가와 지지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또한, 기존 정치권과 야당, 전두환 정권의 강압적 정치와 부도덕성에 대한 국민 불만이 폭발한 것도 신민당 약진의 이유로 꼽힌다.
서울특별시 성북구에서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서울대학교 출신 이철이 신민당 후보로 출마,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6. 3. 정당별 지역구 의원 수
지역 | 민주정의당 | 민주한국당 | 한국국민당 | 신한민주당 | 신정사회당 | 신민주당 | 무소속 | 합계 |
---|---|---|---|---|---|---|---|---|
서울특별시 | 13 | 1 | - | 14 | - | - | - | 28 |
인천광역시 | 2 | - | - | 2 | - | - | - | 4 |
경기도 | 10 | 3 | 3 | 4 | - | - | - | 20 |
강원도 | 6 | 1 | 4 | - | - | - | 1 | 12 |
충청남도 | 8 | 4 | - | 4 | - | - | - | 16 |
충청북도 | 4 | 1 | 1 | 2 | - | - | - | 8 |
전라남도 | 11 | 5 | - | 5 | 1 | - | - | 22 |
전라북도 | 7 | 1 | 3 | 2 | - | 1 | - | 14 |
부산광역시 | 3 | 2 | 1 | 6 | - | - | - | 12 |
경상남도 | 10 | 4 | 1 | 5 | - | - | - | 20 |
대구광역시 | 2 | 1 | 1 | 2 | - | - | - | 6 |
경상북도 | 10 | 3 | 1 | 4 | - | - | 2 | 20 |
제주도 | 1 | - | - | - | - | - | 1 | 2 |
합계 | 87 | 26 | 15 | 50 | 1 | 1 | 4 | 184 |
7. 당선자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 #
| width="100" | 민주정의당
| width="100" | 신한민주당
| width="100" | 민주한국당
| width="100" | 한국국민당
|-
! 1
| 이재형
| 신달수
| 이태구
| 김종철
|-
! 2
| 진의종
| 임춘원
| 박해충
| 정시봉
|-
! 3
| 노태우
| 고한준
| 신재휴
| 문병하
|-
! 4
| 왕상은
| 김형경
| 손태곤
| 김규원
|-
! 5
| 유학성
| 정재문
| 정상구
| 최재구
|-
! 6
| 이상재
| 한석봉
| 최운지
|
|-
! 7
| 서정화
| 윤영탁
| 신동준
|
|-
! 8
| 박종문
| 신병열
| 황대봉
|
|-
! 9
| 강경식
| 박종률
| 송현섭
|
|-
! 10
| 황인성
| 조영수
|
|
|-
! 11
| 박동진
| 김병수
|
|
|-
! 12
| 이용훈
| 김동욱
|
|
|-
! 13
| 나웅배
| 이길범
|
|
|-
! 14
| 조일문
| 김용오
|
|
|-
! 15
| 권중동
| 장충준
|
|
|-
! 16
| 이성렬
| 최훈
|
|
|-
! 17
| 김현자
| 신경설
|
|
|-
! 18
| 배성동
|
|
|
|-
! 19
| 현홍주
|
|
|
|-
! 20
| 이영욱
|
|
|
|-
! 21
| 김영작
|
|
|
|-
! 22
| 조상현
|
|
|
|-
! 23
| 김영정
|
|
|
|-
! 24
| 안갑준
|
|
|
|-
! 25
| 김성기
|
|
|
|-
! 26
| 조종호
|
|
|
|-
! 27
| 이상희
|
|
|
|-
! 28
| 류근환
|
|
|
|-
! 29
| 한양순
|
|
|
|-
! 30
| 홍종욱
|
|
|
|-
! 31
| 정창화
|
|
|
|-
! 32
| 김종인
|
|
|
|-
! 33
| 김영구
|
|
|
|-
! 34
| 최병렬
|
|
|
|-
! 35
| 강용식
|
|
|
|-
! 36
| 송용식
|
|
|
|-
! 37
| 지연태
|
|
|
|-
! 38
| 임두빈
|
|
|
|-
! 39
| 정현경
|
|
|
|-
! 40
| 진치범
|
|
|
|-
! 41
| 최영덕
|
|
|
|-
! 42
| 임영득
|
|
|
|-
! 43
| 김집
|
|
|
|-
! 44
| 지갑종
|
|
|
|-
! 45
| 최명헌
|
|
|
|-
! 46
| 이종률
|
|
|
|-
! 47
| 조경목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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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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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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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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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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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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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희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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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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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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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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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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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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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선거 이후
국민화합조치[2]에 따라 정치 활동이 해금된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신한민주당(약칭: 신민당)은 결성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실시된 이번 선거에서 ‘관제야당’이라 조롱받던 민주한국당(민한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급부상하였다. 이는 여당에 대한 정치 불신과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강한 바람을 반영한 결과였다.
민정당은 지역구에서 제1당의 의석을 얻은 정당에 비례대표 의석 3분의 2를 배분하는 제도에 의해 안정적인 과반수를 확보하여 제1당의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신민당은 서울 14개 선거구, 부산 6개 선거구, 광주·인천·대전 5개 선거구에서 전원 당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울·부산 등에서 후보 대부분이 1위로 당선되었다. 또한 신민당은 대도시권의 표를 휩쓸어(서울에서 신민당 득표율 40.7% 대 민정당 27%) 득표율에서 여당인 민정당을 제치고 괄목할 만한 약진을 이루었다(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를 제외한 지방에서는 민정당이 우세).
신민당은 이 선거를 "선거 혁명"이라고 불렀으며, 학생운동권의 지지 등 젊은 세대의 정치적 관심 고조와 지지가 신민당 약진의 큰 이유였다. 또한 기존 정치권과 야당, 그리고 정당성을 잃은 전두환 정권의 강압적인 정치 수법과 부도덕성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폭발한 것도 신민당 약진의 또 다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성북구에서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 서울대학교 출신의 이철(1948년)이 신민당 공인으로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신민당의 약진으로 정치 환경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민정당 내 온건파의 세력이 커졌다. 신민당은 대통령 직선제 부활을 위한 헌법 개정 서명 운동 등 여당에 대한 강경 투쟁을 벌이게 되면서 6·29 민주화 선언으로 이어져 제5공화국의 종말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 반면 ‘야당 흉내’, ‘가짜 야당’이라고 비웃음을 샀던 민한당은 선거 직후부터 소속 의원들의 신민당으로의 집단 탈당이 잇따르면서 최종적으로 3석의 소수 정당으로 전락, 해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신민당은 민한당 등 다른 당에서 입당한 의원들을 포함하여 5월까지 의원 수가 102명이 되었고, 전체 의석 수의 3분의 1을 넘어 국회 소집 권한을 단독으로 확보하게 되었다.
참조
[1]
서적
Elections in Asia: A data handbook, Volume II
[2]
문서
1983년 12월부터 1년여에 걸쳐 정부가 시행한 조치의 명칭
[3]
문서
선거인수와 총투표자수, 유효표수
[4]
문서
3월에 신한민주당에 입당
[5]
서적
現代韓国と女性
新幹社
[6]
뉴스
12대 의원, 지역구 184명·득표 최종 집계
http://gonews.kinds.[...]
한국일보
198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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